[Review] 그녀가 편지를 쓸 수밖에 없었던 진짜 이유, 스위밍 레슨 [도서]

글 입력 2019.04.07 20:33
댓글 0
  • 카카오 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 밴드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 플러스로 보내기
  • 글 스크랩
  • 글 내용 글자 크게
  • 글 내용 글자 작게



377bcabfd3e8b28c8fa0e24720090366_HPptrIsPz5q.jpg
 


처음 이 책을 접하게 됐을 때 제목에서 느껴지는 특유의 독특한 끌림. 그리고 주인공이 남긴 편지들로 사건의 비밀들을 하나씩 알아가는 미스테리 소설이라는 점이 내 이목을 끌었던 것 같다.


또한 탁탁한 빛깔의 남색 네모바다에 몸을 담그고 있는 한 여성의 초점 없는 눈빛. 표지에서 이 눈빛을 보며 그녀가 말하고자 했던 이야기들은 무엇인지 궁금했다. 표지는 독자가 책을 선정하는 데 있어 첫 만남의 단추를 끼워주기도 하고 때론 책과의 소통을 시작하게 하는 첫 번째 시작점이 되기도 한다. 스위밍레슨의 표지는 내게 단순히 스토리에 대한 궁금증을 넘어 그 내막을 꼭 알아봐야겠다는 결심을 불러일으켰다.


이 책이 나에게 오기까진 꽤 시간이 걸렸다. 배송됐다는 알림에 설렘을 품고 택배를 찾으러 갔지만 있어야 하는 자리에 책이 없었고, 혹시나 하는 마음에 다른 택배실을 찾아보고 우체국 기사님께 재차 확인전화를 걸어보기도 했다. 책이 분실되어서 찾을 길이 없겠구나라고 마음을 단정지을 때쯤 택배실에서 등기우편으로 배달된 거라서 이때까지 등기함에 보관돼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렇게 책을 읽기 전부터 날 애타게 했던 스위밍레슨이 드디어 나를 찾아왔고, 평소 내용을 음미하는 것을 좋아해 읽는 속도가 꽤 느렸던 내가 이 소설을 하루 반나절 만에 완독했다는 것은 지금도 믿기지 않는다.


이렇게 될 수 있었던 가장 결정적인 요인은 바로 이 책의 흥미로운 전개방식과 작가의 섬세한 표현력 때문이었다. 대학교수이자 유명작가인 길은 12년 전 갑자기 사라진 아내를 보고 그녀의 행방을 쫒다 해변 산책로 난간 아래로 떨어지고만다. 이 사고로 두 딸 낸과 플로라는 아버지를 간호하기 위해 고향집 스위밍 파빌리온으로 모이게 된다.


나이들고 병든 길 콜먼과 두 딸, 플로라의 남자친구 리처드가 함께 생활하며 어릴적을 회상하기도 하고 엄마 잉그리드를 추억하는 것이 소설의 현재 시점이다. 그리고 작가는 현재 시점과 잉그리드가 쓴 수많은 편지들 속에 담겨있는 과거 시점을 교차하며 독자에게 긴장의 끈을 놓지 못하게 만든다. 현재의 이야기 한 챕터를 읽고 나면 이어 잉그리드의 편지 속에서 과거이야기를 알게 되고, 이를 바탕으로 현재 인물들을 좀 더 입체적으로 볼 수 있는 시야를 가지게 된다.


또한, 소설의 현재에 실제로 등장하지 않는 잉그리드의 속마음과 그녀가 풀어내는 기막힌 과거이야기들은 소설을 손에서 놓지 못하게끔 만든다. “어떻게 이럴수가. 이 다음에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는 꼭 보고 책을 덮어야해” 라는 생각의 달콤한 날갯짓은 끊임없이 계속되어 책의 마지막 장을 덮던 그 순간에서야 멈추었다.

  
 


수선화로 시작된 길과 잉그리드의 첫 만남



141.jpg



잉그리드가 실수로 자전거 자물쇠를 옆 자전거까지 같이 채우는 바람에 길은 비 오는 날 비를 쫄딱 맞으며 집에 걸어갈 수 밖에 없게 된다. 이에 길은 자신이 처했던 난감한 상황을 담은 쪽지를 잉그리드의 자전거에 꽂아두고, 쪽지를 확인한 잉그리드는 화단의 수선화를 꺾어 길의 자전거에 꽂아둔다. 이렇게 수선화로서 시작된 그들의 첫 만남은 길이 수업시간에 이 수선화에 대한 비밀이야기를 강의하며, 그 만남을 더욱 은밀하고 특별하게 만든다.




잉그리드가 사랑을 택해서 포기해야만 했던 것




“하지만 다음 주부터 기말고사인데요.”


“그건 걱정하지 않아도 됩니다.

집에 가서 남편과 아기를 돌보세요.

이젠 그게 토르젠슨 양의 자리니까.”


“하지만 제 자리는 여기에요.

전... 꼭 졸업해야 돼요.”


“트로젠슨 양도 그 생각을 미리 했어야죠.”



길과 그의 제자였던 잉그리드 사이에 벌어진 내막을 알게 된 총장은 이 일로 대학의 명예와 이미지가 실추될 것을 염려하여 잉그리드가 대학 졸업을 하지 못하게 막는다.


사실 대학교수와 그 제자가 사랑을 나눈다는 것은 소설에서나 현실에서나 절대 윤리적인 일이라 말할 수 없다. 하지만 그럼에도 당시 잉그리드는 그것을 진짜 사랑이라고 믿었고 그녀가 쫓은 이 사랑은 너무나도 큰 희생을 그녀에게 요구하고 있다. 아이를 낳게되면 대학생활을 영영 못할 것이라 생각했던 총장에게 이렇게 되묻고 싶다. (만약 총장에게 새로운 아기가 생긴다고 가정한다면)



총장님, 얼마후면 새로운 아기가 태어난다고 들었어요. 당장 총장님이 학교를 떠나시면 남겨두고 온 업무 때문에 걱정되기도 하시겠지만 그건 어떻게든 돌아갈 거에요. 그러니 걱정마시고 이젠 집에 돌아가셔서 아기와 부인을 돌보는 일에 집중하시면 좋을 것 같네요. 그게 이제 총장님의 자리니까요.



그리고 이 말이 끝난 후 총장의 당황스러운 기색이 역력한 그 표정에 또한번 되묻고 싶다.


"총장님이 잉그리드에게 말했던 것처럼

 총장님께선 이 같은 일을

미리 생각하고 행동하셨지 않나요?"


여성이 아이를 가지면 모든 것을 다 희생해야 한다는 논리는 대체 어디서부터 시작된 것일까? 물론 아이의 엄마로서 아기를 돌봐야하는 일이 중요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아기를 돌보는 일은 엄마가 홀로 다 짊어지고 가야 할 책임도 아니고, 아기를 낳은 후 여성의 인생이 단지 결혼과 육아로 매듭지어지는 것은 더더욱 아니다.


총장의 논리에 따르면 성별을 떠나 생각해봤을 때 남자인 총장이 마주해야할 자리또한 가정을 돌보는 것이 돼버린다. 일주일뒤면 졸업할 잉그리드는 이같은 대처로 인해 자신의 한때 목표였을 대학학위도, 그녀의 남은 인생도 뿌연 안갯 속으로 사라지는 것을 지켜볼 수 밖에 없었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얼마나 이기적일 수 있을까?




잉그리드
내가 망쳐버렸다는 걸 알아.

내가 한 짓을 되돌릴 수 없다는 것도.

 난 멍청한 나쁜 놈이야.

하지만 당신을 사랑하는 나쁜 놈이야.

제발 날 떠나지마.



자신의 오랜 친구 루이즈로부터 '너는 네 인생을 후회하고 있지만 되돌릴 수도 없는 처지에 있고, 경제적으론 남편에게 의지할 수 밖에 없지. 그리고 아기 돌보는 일 외에는 할 일도 없으며 그런 일상이 매일 반복되지' 라는 독설을 들은 잉그리드.


이렇게 마음에 비수를 꽂은 옛친구의 말이 틀렸다는 걸 보이고 자신이 더 행복해질 수 있다고 믿었던 그녀는 집에 돌아가 남편을 찾는다. 하지만 그녀가 남편의 작업실에서 마주해야 했던 것은 자신의 상처를 보듬고 이야기를 들어줄 남편이 아닌, 다른 여자와의 바람을 피우고 있는 남편의 뒷모습이었다.


이 때 그녀의 마음이 철렁 내려앉으며 심장에 수 천개의 화살이 날아와 꽂혔던 것처럼 나도 충격을 뒤로 물릴 수 없었다. 소설 초반에 길이 준수한 외모와 재치있는 성격인데다 그가 쫒는 여자타입은 결혼할 상대이거나 그 이전 잠자리를 같이 할 여성이라는 내용을 보긴 했어도, 길에게 잉그리드는 결혼상대 혹은 그 이상의 가치를 가진 사람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따지고 보면 윤리적 관계에 어긋나는 사랑을 먼저 시작했던것도, 결혼과 아기에 대한 결정을 부추겼던 것도 길이었지만, 그는 자신이 저지른 행동에 대해 전혀 책임지지 않았던 사람이었다. 길이 잉그리드에게 남긴 저 편지를 보고 너무 어이가 없고 속에서 치밀러 올라오는 화 때문에 부들부들 거리며 책장을 넘길 수 밖에 없었다.


자신이 저지른 행동이 얼마나 잘못된 것인지, 결코 되돌릴 수 없는 길을 나아간다는 걸 이미 알면서도 그 행동을 저질렀고, 용서받길 구원하는 그의 모습은 차마 눈뜨고 볼 수가 없었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이같은 큰 상처를 준 자신을 용서해달라고 청하는 그 뻔뻔한 용기는 어디서 나오는 것이며, 잘못된 행동이라고 판단할 줄 알았던 이성적 논리보다 눈앞의 욕망을 절제하지 못한 그에게 잉그리드는 너무나 관대한 여성이었다. 이것이 결코 소설에 그치지 않는 다는 것을 잘 알고 있는 나로선 왜 요즘 여성들이 결혼에 대해 회의적인 지에 대해 일말의 의문도 제기할 수 없다.


누구보다 좌절스러운 상황 속의 잉그리드는 소설 속 어느 누구보다도 용감했던 여성이었다. 보통 잉그리드와 같은 상황에 처한 여성이었다면 당장 남편과 이혼하겠다고 집을 나오거나 심지어는 자신의 아이들까지도 버리고 오는 사람들도 많다. 하지만 그녀는 이러한 슬픔을 무덤덤하게 마주하고 편지에 헤아릴 수조차 없는 수많은 상처들을 하나 둘 써내려 간다.



당신은 날 이 집으로 데려와 자식까지 낳게 하고는 떠나버렸죠. 내가 성인이 되어 겪은 일들은 모두 당신 때문인데 당신은 나 혼자 헤쳐 나가라고 하네요.


하늘을 나는 법을 배우기도 전에 혼자 버려진 어린 새 같아요. 하지만 해변에서 나 혼자 이겨 냈다는 사실이 떠올랐어요. 날 구해 줄 당신도 그 누구도 필요하지 않았죠. 나 혼자 해낸거에요.



특히 여느 때처럼 새벽에 수영을 하러 나갔던 그녀가 갑작스런 물길의 소용돌이 때문에 죽을뻔 했지만 자신의 힘으로 목숨을 구한일, 그리고 도둑맞은 자신의 물건을 찾는 과정 속에서 큰 덩치의 남자를 자신의 힘으로 물리친 일을 보며, 그녀가 자신의 삶 속에서 용기를 찾을 수 있게 만들어준 작가에게 너무 감사했다.



잼병과 수선화를 가지고 들어온 첫 수업을 기억하나요? 당신은 학생들에게 가장 어둡고 비밀스러운 진실에 대해 물었죠. 지금까지 편지를 빌려 내 비밀을 이야기했네요.


이제 마지막 수영을 하러가요. 부표가 있는 곳까지. 아니 좀 더 멀리 갈지도 모르겠네요.



소설의 마지막에 접어들 때쯤 잉그리드는 이렇게 편지를 남기며, 절대 우리 아이들이 보면 안된다며 이편지를 비롯한 나머지 편지들을 발견하면 꼭 찢어서 태워버리라고 당부한다. 이렇게 마지막 편지를 남기고 잉그리드는 사라졌다. 그녀는 어디로 떠난 것일까? 길이 해안가에서 봤다고 주장하는 잉그리드는 정말 그녀가 맞았을까? 이를 확신할 수 있는 물증은 소설 그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다.


하지만 소설의 마지막 장을 덮으며 ‘잉그리드’라는 사람에 대해 더 알게 되었고, 소설 속에서 불행한 결혼생활 하에 포기해야 했던 그녀의 진짜 모습이 얼마나 빛났을지에 대해 상상해보게 되었다.


*

모든 사람들이 깊은 꿈 속에서 헤엄치고 있을 새벽에 홀로 잠들지 못하며 편지를 쓸 수 밖에 없었던, 아늑한 꿈 속이 아니라 차디찬 바다를 헤엄치며 그마저도 유일한 안식처라고 여겼던 잉그리드.


소설을 다 읽고 난 후 다시 표지 속의 그녀를 바라보면, 새벽 4시가 넘었는데도 책을 놓을 수 없었던 내 옆에서 그녀가 여전히 편지를 쓰고 있을 것만 같다. 자신의 마음을 제약 없이 온전히 품어줄 노란 노트를 앞에 둔 채.



[이소희 에디터]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등록번호/등록일: 경기, 아52475 / 2020.02.10   |   창간일: 2013.11.20   |   E-Mail: artinsight@naver.com
발행인/편집인/청소년보호책임자: 박형주   |   최종편집: 2024.03.29
발행소 정보: 경기도 부천시 중동로 327 238동 / Tel: 0507-1304-8223
Copyright ⓒ 2013-2024 artinsight.co.kr All Rights Reserved
아트인사이트의 모든 콘텐츠(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제·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