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6펜스의 세계에서 달에 대해 생각하기 [공연예술]

소설과 뮤지컬 <달과 6펜스>
글 입력 2019.04.09 14: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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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과 6펜스




사, 오 년쯤 전에 잠깐 민음사 세계문학 전집을 모으고 싶었던 적이 있었다. 스무권도 채우지 못하고 그만두었지만, 그때 당시엔 간간히 중고서점을 들르는 날마다 한권씩 구매하고는 했던 것 같다. 당시에 읽었던 책 중 ‘거미여인의 키스’, ‘페스트’ 그리고 ‘파리대왕’은 지금까지도 아주 좋아하는 책 중에 하나다. 물론 책장에 줄지어 꽂아둔 뒤, 거의 펼쳐보지 않은 책들도 있는데 그중 하나가 바로 ‘달과 6펜스’다.


그 뒤 내가 이 책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도 잊고 살았다. 그러던 중, ‘달과 6펜스’라는 제목의 극이 올라온다는 사실을 알았다. 창작 뮤지컬 <달과 6펜스>가 서머싯 몸의 소설 <달과 6펜스>를 원작으로 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뮤지컬은 소설과 당대 예술가들의 삶에서 영감을 받아 새롭게 창작된 것으로, 두 작품의 내용과 담겨진 의미는 판이하게 다르다.


두 작품을 모두 아는 사람이라면 어쩌면 그 ‘다름’에 더 흥미를 느끼게 될 지도 모르겠다. 나의 경우, 극을 먼저 보고 후에 책을 읽게 되었는데 너무나도 다른 인물들이 살아 숨쉬는 탓에, 후반에 가서는 극의 인물과 책의 인물을 전혀 동일시 할 수가 없었다. 아마 그 반대의 경우였어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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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달과 6펜스



서머싯 몸의 <달과 6펜스>는 찰스 스트릭랜드라는 인물의 전기 형식으로 쓰여있다. 이 이야기의 서술자는 자신이 경험한 그와 그를 경험한 또 다른 사람들의 증언들을 빌려 이제는 죽은, 천재 화가 스트릭랜드의 삶을 쫓는다. 언뜻 따분하고 재미없는, 평범한 증권 중개인이었던 스트릭랜드는 어느날 갑자기 무언가에 홀린 듯, 가족을 포함하여 자신을 둘러싸고 있던 모든 사회적인 것들을 버리고 화가가 된다.



나는 그림을 그려야 한다지 않소. 그리지 않고서는 못 배기겠단 말이요. 물에 빠진 사람에게 헤엄을 치는 찰 치고 못 치고가 문제겠소? 일단 헤어나오는 게 중요하지. 그렇지 않으면 빠져 죽어요.


- p69



그는 자신을 멸시하는 사회의 눈초리도, 가난도, 몸의 고통도 심지어는 자신의 죽음에도 초연하다. 그가 바라는 것은 그림을 그리는 것 뿐이다. 그는 말하자면 달이다. 사회의 밖에 있는 사람이니 사회의 시선도, 어떤 윤리관도 중요하게 적용하지 않는다. 그는 칸트의 정언명령을 듣고도 돼먹지도 않은 헛소리라 대꾸하는 사람이다. 그런 그의 고약한 성품은 그를 신이 내린 천재라기 보다는 악마에 홀린 난봉꾼에 가까워 보이게 만든다.


그런 그의 천재성을 유일하게 알아보는 자가 바로 더크 스트로브다. 스트로브는 많은 이야기 속의 범재들이 그렇듯, 자신은 천재가 아니나 천재를 알아보는 놀라운 심미안은 가지고 있는 사람이다. 스트로브는 스트릭랜드가 천재라는 이유로 그를 극진히 대해주나 결국 스트릭랜드로 인해 인생의 큰 비극을 마주한다. 그럼에도 스트릭랜드는 전혀 가책을 느끼지 않는 태도를 보인다.


스트릭랜드의 그림에 대해 자세히 묘사되지는 않지만, 몇몇 서술들은 고갱의 그림을 연상시킨다. 이후 타히티로 건너가 자연 속에서 자연과 그곳 토박이들의 모습을 그리며 여생을 보내는 그의 모습에서 역시 고갱이 떠오른다. 병들어 죽어가는 몸으로 자신의 집 사방에 벽화를 그려 넣는 모습에서는 개인적으로 고야의 검은 집 연작이 떠오르기도 했다. 물론 스트릭랜드의 벽화는 그토록 절망과 음울로 가득 차 있지는 않았을 것이다.


소설 속 스트릭랜드가 달이라면 우리가 사는 세상은 6펜스의 세상이다. 우리 주변에는 이상의 지향점 없이 살아가는 스트로브 같은 사람도 있고, 사회적인 시선을 위해 말을 꾸밀 줄 아는 스트릭랜드 부인 같은 사람도 있고, 육체적 열망을 위해 사는 블란치 같은 사람도 있다. 동시에 그들은 ‘좋은‘ 사람들이다. 그들은 남을 돕고, 예의 바르고, 맡은 일에 성실하다.


작가는 이 글을 통해 세속적인 우리의 사회상과 인간들의 모순을 낱낱이 드러내고, 또 그와는 동떨어진 예술이라는 낭만적인 판타지를 심어준다. 하지만 세속과 예술을 정말 대조할 수 있을까? 무엇이 예술을 예술로 만드는 것이며, 예술가는 태어나는 것일까, 만들어지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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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달과 6펜스 포스터



창작 뮤지컬 <달과 6펜스>는 어쩌면 동명의 소설보다 예술이라는 세계를 더욱 가까이, 현실적으로 들여다본다. 예술지상주의 시리즈 1탄이었던 ‘광염소나타’에 이어 2탄으로 제작된 이 작품은 전작과 마찬가지로 사회적인 상식과 윤리를 뛰어넘어 극단적으로 예술에 심취한 인물의 삶을 그린다.


무대 위에 등장하는 네명의 인물은 서로 다른 예술세계를 가지고 있고, 그로 인해 갈등한다. 갤러리에서 일하고 있는 k는 결코 예술 혼자서는 예술이 될 수 없다고 이야기하고, 사회적으로 인정받고 교육받은 예술가인 유안은 예술의 독립적인 가치를 인정하지만 그를 위한 교육의 필요성 역시 인정한다. 사회적인 시선들을 멸시하며 이상향의 그림을 그리기 위해 분투하는 모리스는 예술의 독립적인 가치를 인정하는 것은 물론 교육의 필요성을 부정한다.


그가 말하는 예술은 자유이고 단순한 것이고, 세상에 던지는 비웃음과 충격이다. 유안의 집에서 네 사람이 각자의 가치관을 이야기하는 곡인 <불쾌한 테이블>에서 이러한 차이가 잘 드러나는데, 그 사이에서 유안의 아내인 미셸은 모리스와 함께 자유로서의 예술을 노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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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출처 : 뮤지컬 달과 6펜스 공식 트위터



네 인물 중 나의 시선을 잡아끈 것은 미셸이었다. 그녀는 모리스와 마찬가지로 예술이 가진 생명력과 자유를 긍정한다. 그녀는 어쩌면 모리스와 달에 대해 가장 먼저 파악한 사람일지도 모른다. 언제나 시간에 맞춰 움직이고, 스스로 정물화처럼 말라간다고 표현하는 그녀이지만, 그녀가 감춘 그녀 내면에는 자유에 대한 갈망과 파괴적인 생명력이 존재한다. 그녀는 달을 갈망하는 6펜스, 예술의 자유에 다가가고 싶은 세속에 묻힌 사람이다, 결국 그녀의 달은 떠오른다. 달은 달을 알아보는 법이다.


그녀의 대사와 그녀의 몸짓은 마치 서머싯 몸의 소설 ‘달과 6펜스’에서 여성을 다루는 방식을 자못 비판하는 것처럼 느껴지기까지한다. 전시회의 ‘뮤즈’ 그림들을 마음에 들지 않아 하며 그러한 그림들에서 모두 똑같은 자세를 한 대상화된 여성들을 불쾌해하는 그녀의 태도는 여성을 대상화하고 정형화해 표현하는 지나간 수많은 예술들을 비난하고 있는 것만 같다.


그녀는 수동성에 대해 저항한다. 모리스는 그녀를 그리지만, 그녀는 그림의 대상이 된 것이 아니다, 그녀는 그림 안에 살아있다. 그녀가 자신의 그림을 스스로 덧칠하고, 혹은 망쳐버리고 떠나는 행위는 세상 속에서 어쩔 수 없이 말라가던 수동성에 대한 저항으로 느껴졌다. 그녀가 가진 이야기는 부족하지만, 그녀가 보이는 행동은 강렬하다. 내게 미셸은 달이 되어 떠났다.
 


인간의 의지는 모자에 달린 베일 같아서, 끈에 매여있으면서 사방에서 불어오는 바람에 펄럭인다.



모리스와 유안의 그림은 둘이 하나가 되었을 때 비로소 완성되었다. 책장 속의 스트릭랜드는 예술을 불태웠지만 무대 위의 모리스는 자신을 불태웠다. 원하던 예술을 그려내고 말았을 때 찾아오는 것은 허무일까 성취일까? 아무튼 예술은 남았고 그것들은 생전 모리스가 전혀 관심을 두지 않았던 대중들의 환호를 받는다. 그 모습을 보는 것은 조금 이상한 기분이었는데, 결국 그 성공과 가치를 가시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대중의 환호 뿐인가라는 생각이 든 탓이다.


극장을 나오며 이런 생각도 들었다. 모리스가 이루고자 했던 그림과 과거 k가 좋아하던 유안의 그림 중 어느 것이 더 나은 것이라고 감히 말할 수가 있을까? 유안이 모리스를 맹목적으로 쫓으며 자신의 예전 화풍과 삶을 버려갈 때, 케이는 뒤돌아서 말한다. 너도 누군가의 여섯번째 손가락이었노라고, 그의 그림 역시도 누군가에겐 적어도 한 사람에게는 달의 뒷면이었을 것이고 누군가에게는 진정한 예술이었을 것이다.


*


'가장 좋은 예술은 무엇일까'라는 질문 만큼 대답하기 힘든 것도 드물 것이다. 예술가와 예술을 떼어놓고 봐야 할까? 예술은 윤리의 잣대로 판단되어서는 안 되는가? 대중의 사랑과 외면은 예술의 가치를 결정하는가? 예술에 좋고 나쁨을 판가름하는 기준은 무엇일까? 결국 예술은 그 누구도 닿을 수 없는 먼 곳에 있는가? 하나의 종착지가 있는가? 쉽게 대답하기 어려운 질문이다.


사실 관련 분야에 깊은 관심을 두고 있는 사람이 아니라면 깊이 생각하지 않을 만한 주제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 두 작품, 소설과 뮤지컬 <달과 6펜스>는 우리에게 이러한 질문들을 던진다. 그리고 이에 대해 생각해보는 것은 분명 우리를 이루는 수많은 고리들 중 하나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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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혜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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