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누가 불온한 데이터를 정의하는가 [시각예술]

글 입력 2019.04.11 0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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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국립현대미술관에서는 케케묵은 인습에 도전하고 당연하게 생각했던 것을 낯설게 보길 종용하는 전시를 자주 선보인다. 《올해의 작가상 2018》에서는 여성의 부재와 시간 개념, 과학 기술 등 당연한 섭리처럼 사회에 자리하는 개념이 폭력이 될 수 있음을 역설했고, 최정화의 전시 《꽃, 숲》에서는 일상에서 버려진 사물을 재료로 활용하여 예술과 비예술의 구분을 허무는 시도가 행해졌으며, 두 차례의 오피니언을 통해 다룬 《마르셀 뒤샹 전》에서는 기존의 예술 개념에 균열을 가한 뒤샹의 반예술 정신에 주목했다.

이 전시들에서 타파해야 할 것으로 취급되는 인습은 공통적으로 유형화를 통해 작동된다. 틀을 벗어나는 새로운 아이디어가 등장해도 이전의 방법으로 해석하고 기존의 유형으로 편입시키는 불성실함에서 비롯되는 유형화는, 유형에 속한 자들을 결집하고 유형에서 벗어나는 소수자들을 낙오시키며 차별의 도구로 기능한다. 전시들은 주로 유형화의 근거로 사회적 인식을 지목했는데, 대체로 정체가 모호하다. 가끔 정치 세력과 제도 등 구체적인 시스템을 지적하긴 했지만 궁극적으로는 시스템의 부품으로 기능하는 관객에게 해결책을 강구하게 하며 열린 결말을 제시했다. 누가, 어떤 수단으로 유형화를 하는지 그 원인을 분석하기보다는 유형화의 결과로 소외된 자들의 존재를 드러내고 각인시키는 식이었다.

지난 3월 23일부터 전시를 시작한 《불온한 데이터》는 유형화의 근거로써 ‘데이터’를 지목하며 명쾌하게 유형화의 주체를 드러낸다. 사적인 일상, 생각의 흐름, 인간관계 등 모든 것이 데이터가 되어 남고, 보존되며, 사용되는 데이터의 시대에서 그것이 어떻게 인류를 구분하며 누가 무엇을 위해 사용하는지 탐색한다. 방류된 순간 어디에서까지 사용되는지 행방조차 묘연해지는 데이터가 결국 누구의 손에 쥐어져 유형화를 작동시키는 권력의 도구가 되는지 다양한 아티스트와 함께 고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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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퍼 플렉스 <모든 데이터를 사람들에게>


‘불온함’이라는 수식어가 불러일으키는 사회사적 기억은 정치적 최면 아래 국민이 민주주의적 주체가 아닌 각종 검열의 대상으로 전락되었던 시대의 공포를 떠올리게 한다. 누구나 그 앞에서 민주적이며 평등할 수 있다고 착각하지만 실은 소유의 빈부를 분명히 가르며 이전의 종속 관계를 고착시키고 피지배자들을 감시하는, 미래적이나 퇴행적인 데이터의 이면을 암시하게 한다. 데이터를 불온하다고 한 이유보다 누가 데이터의 불온함을 명명하고 있는지가 더욱 궁금해지는 제목이다.

전시장의 입구 벽면 하나를 통째로 활용한 벽화로 전시는 시작된다. 수퍼 플렉스의 <모든 데이터를 사람들에게>는 덴마크어로 처음 제작되었으나 전시 측의 요청에 따라 다른 언어로 제작될 수 있어 이 전시에서는 한국어로 제작되어 선보여졌다. 거대한 크기와 뚜렷한 색으로 새겨진 글자로 구성된 벽화는 미술관 내 어디에서나 보일 만큼 눈에 띄는데, 상징 없이 문장만을 활용하여 배경지식 없이도 누구나 내용을 쉽게 파악할 수 있도록 제작된 벽화는 불균형하게 분배되는 데이터의 속성에 정면으로 도전하며 전시의 포문을 연다.



데이터를 사람들에게


전시에서 데이터는 크게 네 가지의 관점으로 다뤄진다. 데이터 자체를 가치중립적으로 바라보는 관점, 데이터가 불러올 미래를 바라보는 낙관론적 관점과 비관론적 관점, 그리고 그 두 가지를 동시에 다루며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하는 관점이다. 그리고 전시의 초입에 위치한 수퍼 플렉스의 벽화는 데이터의 속성을 간결하게 소개하는 첫 번째 관점에 서서 소재를 예고하고 관객들의 생각을 묻는다.

크리스 쉔의 <위상 공간>은 첫 번째 관점에 따라 데이터를 소개하는 또 다른 작품으로, 자동으로 움직이는 360개의 로봇 청소공을 오브제로 활용하여 공의 동선과 자유도를 실시간으로 스크린에 송출한다. 우주 공간 속 입자가 그렇듯 움직이는 공은 작은 점에 불과하지만 그 궤적은 데이터로 고스란히 기록되고 축적되어 공간의 형태와 역사를 표상한다. 작고 미미한 데이터가 굴러가고 서로 부딪치며 알 수 없는 움직임을 거듭하는 가운데 거대한 세계를 담게 되는 과정을 시각화하는 이 작품은, 간단한 조작으로 큰 결과를 얻어낼 수 있는 데이터의 효율성과 더불어 파괴력까지 가늠하게 한다.



어떤 유형에도 속하지 않는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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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첼 아라 <나의 값어치는 이정도(자가 평가 예술작품)>


레이첼 아라자크 블라스는 여기서 데이터의 파괴력에 주목한 비관론적 관점을 통해 데이터로 인해 작동하는 유형화의 폭력성을 지적한다. 레이첼 아라는 <나의 값어치는 이정도(자가 평가 예술작품)>에서 전시 관람객 수나 작가나 작품명이 언급된 횟수 등의 수치에 성별과 인종, 나이 등의 요소를 반영하여 산정한 가치를 화폐 단위로 환산하여 보여줌으로써 타율적인 기준으로 유형화되어 규정되는 가치를 과연 개인을 재단하는 기준으로 볼 수 있는지에 대한 의문을 제기한다.

자크 블라스는 생체인식기술이 특정 인종이나 질환을 가진 사람은 인식하지 못하며 동성애자의 외적 특징을 규정하는 연구에 쓰이기도 한다는 점을 발견하고 정치 집단이 주도하는 데이터 수집 과정에서 발생하는 차별을 밝힌다. 이에 저항하는 움직임으로 지역 주민의 얼굴 데이터를 합하여 정체를 알 수 없게 제작한 <얼굴 무기화 세트>를 선보인다. ‘합리적인’ 제도를 ‘편리하게’ 사용하기 위한 기술에 필연적으로 동반되는 유형화와 그것이 유형에 편입되지 못한 낙오자들에 대한 폭력을 가하는 과정을 여실히 보여준다. 보편의 생활을 편리하게 해줄 수단이라고 믿어졌던 데이터가 ‘불온한’ 권력의 도구로 변질되는 모습이다.



데이터의 민주화


반면 효율성에 초점을 맞춰 데이터의 순기능을 역설하는 낙관론적 관점도 제시된다. 하름 판 덴 도르펠사이먼 데니는 낙관론적 입장에서 데이터를 다루는데, 그 중에서도 블록체인 기술에 주목하여 기술적 유토피아를 꿈꾸는 작품을 선보인다. 하름 판 덴 도르펠은 본인이 운영하는 현대미술 갤러리 ‘레프트 갤러리’의 소개 영상 <레프트 갤러리 설명자>를 통해 블록체인으로 저장된 미술품을 가상 화폐로 매매하는 시스템을 설명하며, 사이먼 데니의 <블록체인이란 무엇인가?>는 누구나 접근 가능한 블록체인 기술이 데이터를 관리하는 중앙 체제 없이도 정보 교류를 가능하게 하여 진정한 민주화를 불러올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렇다면 불균형과 불평등으로 점철된 데이터의 불온함을 해결할 수 있는 것은 카피레프트든, 블록체인이든 결국 데이터의 소유 개념 자체를 무화시키는 것인가? 자칫 공산주의적 사고로 비칠 수 있는 이러한 견해가 낙관론자들이 제시하는 궁극적인 방향은 아닐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데이터의 불온함을 해결할 수 있으며, 낙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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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대한 답을 역설적으로 비관론적 관점을 제시한 다른 작품에서 찾을 수 있었다. 차오 페이는 정해진 구역을 벗어나지 못하고 제자리를 맴도는 자율주행로봇 <룸바 01&02>를 통해 경제 및 기술 등 물질적인 부문에서 눈부신 도약을 이룬 중국이 소통의 부재로 인한 사회적 갈등으로 발전의 한계를 맞닥뜨리고 있는 현실을 폭로한다.

김웅현은 영상 작품 <밤의 조우>를 통해 미래에 고립된 인류를 상상하여 아무와도 대화할 수 없는 상황의 공포를 연출한다. 이들은 모두 데이터와 데이터를 활용하는 기술의 급속한 발전이 가져온(가져올) 현실을 비관하지만, 공통적으로 민주적인 소통과 대화의 부재 상황을 드러내어 비관적 상황에서도 우리가 필요로 해야 하는 것이 무엇인지 암시한다.

포렌식 아키텍처김실비는 데이터에 대한 상반된 관점을 종합하여 새로운 해결방안으로써의 데이터의 민주화를 구체화한다. 포렌식 아키텍처는 정치집단의 강제이주 및 철거에 맞서는 지역민들과 협력하여 역사적·지리적 데이터를 수집하여 진실을 규명하고 그 과정을 담은 다큐멘터리 형식의 비디오를 상영한다. 여기서 무력이 된 데이터는 강자의 입장에서 약자를 탄압하는 수단이 되기도 했지만 동시에 약자를 변호하는 도구가 되기도 한다. 김실비는 영상 작품 <금융-신용-영성 삼신도>를 통해 인류의 역사를 변형시킨 세 가지의 신기술을 소개하면서 태곳적부터 변함없이 이어지는 가치의 불변성을 피력한다.

이들은 모두 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역동적인 대화를 '불온한 데이터'의 대안으로 제시한다. 포렌식 아키텍처의 프로젝트는 선진적인 데이터 기술과 지역의 역사와 경험을 체화한 주민들 간 대화가 없었다면 성과를 내지 못했을 것이며, 김실비의 작품에서 조명되는 가치들 역시 기술의 발전과 별개로 소통에서 비롯되는 신뢰가 없었다면 지금까지 이어져 오지 못했을 것이다. 더불어 여기서는 과거와 현재 간의 대화가 갖는 가치도 발견할 수 있다.



누가 불온한 데이터를 정의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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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데이터를 불온하게 하는 것은 데이터의 속성이 아닌 대화의 부재다. 데이터는 전시가 다루는 첫 번째 관점이 함의하다시피 가치중립적이다. 문제는 데이터의 쓸모를 충분히 의논하지 않고 데이터 그 자체의 효용성에 의존하는 오만한 태도이며, 더 나아가 그것을 권력의 수단으로 사용하는 이기적 욕심이다. 시대의 발전에 따라 조성된 정보의 바다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 누구나 정보를 취할 수 있는 광장이 성립되었다고 미루어 짐작하는 이 시대의 집단적 착각을 생각해보면 이러한 결론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편리함을 위해 취사 선택된 데이터들은 결국 '불편한' 세상을 만들어버렸다.
 
이번 전시는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열린 여타 전시들과 다르게 관객에게 책임을 떠넘기지 않는다고 했지만 결국 불온한 데이터는 대화하지 않는 우리에게서 나온다는 결론이 도출된다. 그러나 대화를 위해선 누구나 평등한 데이터와 함께 참여할 수 있는 공론장이 필요하며, 그 공론장은 개인의 힘으로는 만들어질 수 없는 것도 사실이다. 분명히 제도적 및 정치적 노력이 필요하며 그것은 대화의 원천을 차단하는 불온한 잣대로 남용하듯 '불온'을 규정한 한국의 뒷걸음질을 떠올려보면 더욱 급진적으로 행해질 필요가 있다. 누구나 쉽게 유형의 바깥에 위치할 수 있고, 쉽게 불온한 데이터가 될 수 있는 곳에서 우리는 쉽게 운용되는 데이터의 편리함에 끊임없이 불편해 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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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현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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