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더 페이버릿: 여왕의 여자 [영화]

매혹적인 욕망의 전쟁터
글 입력 2019.04.11 17:03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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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페이버릿: 여왕의 여자


영국의 여왕인 앤(올리비아 콜맨), 그리고 그녀의 오랜 친구 사라(레이첼 와이즈). 그들이 강한 권력으로 군림하고 있는 궁전에 몰락한 귀족 가문 출신 하녀 애비게일 힐(엠마 스톤)이 들어오면서 궁전은 새로운 변화를 맞이한다. 앤 여왕의 총애를 얻어 권력을 차지하고픈 사라와 애비게일의 싸움은 갈수록 치열해지는데…



 


감정을 얻기 위한 싸움



요르고스 란티모스 감독의 <더 페이버릿: 여왕의 여자>는 처음부터 끝까지 휘몰아치는 욕망의 전쟁터이다. 영화 전체를 아우르는 것은 앤 여왕의 마음을 얻어 권력을 차지하고픈 사라와 애비게일의 욕망이다. 궁정 암투를 다룬 작품은 많다. 이 영화도 그런 궁정 암투 영화 중 하나다.


하지만 이처럼 단 1분도 쉬지 않고 오로지 두 사람의 욕망이 빚어내는 대립을 동력 삼아 끝까지 달려가는 영화는 드물 것이다. 초반부 애비게일이 사라의 하녀로 승급되는 부분 외에는 둘 사이에 평화의 기류는 조금도 보이지 않는다. 그녀들은 승패가 결정되는 순간까지도 절대 그 싸움을 포기하지 않는다.

 

대립하는 두 인물을 다룬 대부분의 작품은 후반부에 접어들면 그 결과가 예측되고 그 예측대로 답이 나온다. 그러나 이 영화는 관객이 그 욕망의 전쟁에서 사라가 이기게 될지, 애비게일이 이기게 될지 끝까지 확신할 수 없게 만든다. 그 이유는 싸움의 목적이 누군가의 마음을 얻는 것이라는 것에서 나온다. 인간의 감정은 그 누구도 종잡을 수 없다. 절대 권력의 위치에 있는 앤 여왕의 감정 역시 관객에게 그러하다. 이 싸움은 그 미묘한 감정을 차지해야 하기 때문에 더 복잡하고 치열하고 결과를 예측할 수 없다.

 

처음 사라와 애비게일이 궁전에서 만났을 때 사라는 앤의 최측근으로서 절대 권력을 군림하는 상태였고 에비게일은 흙탕물 범벅인 몰골로 하녀 자리를 얻는 초라한 신세였다. 애비게일에 대한 사라의 멸시는 은근해서 더 노골적이었다. 그 장면에서 둘의 차이는 극명했다. 애비게일이 사라의 발끝조차도 따라잡지 못할 것처럼 보인다. 게다가 보통의 친구 사이를 넘어선 것처럼 사라에 대한 앤의 의존도를 보면 그 둘의 우정은 너무나 견고해서 그 누구도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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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애비게일은 단순히 우정인 줄만 알았던 그들의 사이가 성적으로 이어져 있다는 것을 알게 되고 자신이 앤 여왕에게 어필할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해낸다. 그 답은 사라가 앤에게 충족시켜주지 못하는 감정적 애착이다. 사라에게 비정상적인 수준으로 의지하는 앤 여왕의 모습을 보면 그녀의 마음속에 결여된 무언가가 있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그 결여의 상징물이 바로 토끼이다.


유산한 아이들 대신 그 아이들 수만큼 토끼를 키우는 앤 여왕. 토끼는 앤 여왕에게 잃어버린 아이들 그 자체였다. 하지만 사라는 그 토끼를 싫어한다. 토끼에게도 인사해달라는 앤의 부탁도 들어주지 않는다. 그녀는 앤과 토끼를 철저히 구분한다. 애비게일은 정반대로 토끼를 안아주는 것으로 시작한다. 사라에게 그토록 아껴달라고 부탁했지만 거절당했던 그 토끼를 말이다.

 

권력을 차지하기 위한 애비게일의 욕망은 마치 브레이크가 없는 폭주 기관차 같다. 토끼를 이용한 감정적 애착과 더불어 앤이 레즈비언이라는 것을 알고 자신이 지닌 젊은 육체로 그녀를 유혹하고 일부러 상처 나고 우는 모습을 보여주어 동정심을 유발하기까지 한다. 일개 하녀에 불과했던 그녀는 어느새 앤 여왕의 침실에 드나드는 사람이 되어버린다.

 

사라 역시 막강한 힘을 지닌 사람이다. 그녀는 똑똑하고 이성적이고 냉정하다. 그리고 사라의 제일 큰 강점은 앤과 가장 오랜 시간을 함께한 사람이라는 것이다. 사라에겐 애비게일은 없는 앤과의 추억이 있다. 그 지점이 너무나 크게 작용해서 나 역시도 끝까지 결국 사라가 이기게 되지 않을까, 하고 생각했다. 애비게일이 수를 써서 사라를 아예 궁전 밖으로 내몰았음에도 에비게일이 그녀가 여전히 두렵다고 말하는 감정을 이해할 수 있었다.

 

이처럼 치열한 싸움은 영화의 마지막 장면까지도 관객을 긴장하게 한다.




이토록 완벽한 여성 서사



페미니즘 담론이 사회의 화두로 떠오르면서 ‘문화예술에서 어떻게 여성을 다루는가.’가 중요한 문제가 되었다. 페미니즘을 접하고 나서야 많은 예술 작품이 지니고 있는 남성주의적인 시각이 보이기 시작했다. 주요 인물을 모두 남성으로만 하거나 얼마 없는 여성인물은 철저히 대상화시키는 작품들을 우리는 숱하게 봐왔었다. 칸 영화제 여우주연상에 빛나는 전도연조차 여성이라는 이유로 작품 활동에 제약을 받는다고 인터뷰를 통해 고충을 토로할 정도이다.

 

영화나 드라마에 여자가 많이 나오는 게 무슨 큰 의미냐고 물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질문은 문화예술이 지닌 영향력을 완전히 간과한 질문이다. 미디어가 여성을 지워버리고, 그나마 나오는 여성도 순종적이거나 성적 대상이기만 할 뿐이라면 아이들은 어떤 모습을 보고 여성의 모습을 학습할까? 여성 서사가 지닌 힘은 대단하다. 어린 시절 논술 수업에서 과거 코르셋(말 그대로 실제 코르셋)을 입어야 했던 유럽 사회에서 바지를 입고 싶었던 여자에 대한 책을 다뤘었다.


그리고 그 책은 어린 내게 ‘여자라고 꼭 치마를 입어야 한다고 말하는 건 안 좋은 것이구나.’라는 인식을 심어주었다. 한 권의 책이 지금의 나를 완성한 토대 중 하나가 된 것이다. 그렇기에 나는 여성도 남성만큼 이성적이고, 욕망이 가득하고, 강하다는 것을 메시지를 가장 효과적으로 전달할 수 있는 방법이 미디어라고 생각한다. 영화 <더 페이버릿: 여왕의 여자>는 그런 역할을 아주 멋지게 수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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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요 인물 세 명이 모두 여자인 것은 물론, 그 여성들이 사회가 요구하는 순종적인 여성상에서 완전히 부합하지 않다는 것, 그리고 남성 인물들은 철저히 대상화된다는 점이 인상적이다. 사라는 할리(니콜라스 홀트)와 대립할 때 눈 화장이나 고치라며 면박을 주고 할리는 친구 마샴(조 알윈)에게 남자는 예뻐야 한다고 말한다. 이 부분이 새롭게 다가오는 이유는 기존에 외모로 대상화되는 대상은 늘 여자였기 때문이다.

 

여성 인물들이 남성을 대하는 태도도 인상적이다. 사라가 남편을 대하는 모습, 애비게일이 마샴을 대하는 모습 모두 일관적으로 남성을 자신의 욕망을 실현하기 위한 도구로 보고 있다는 것을 나타낸다. 이 영화에는 우리의 유년 시절을 지배했던 백마 탄 왕자의 서사 속 착하고 수동적이며 예쁜 여주인공이 없다. 능동적이고 이기적이고 야망 있는 여자들만 있을 뿐이다.



 

모든 부분에서 뛰어난 완성도



<더 페이버릿: 여왕의 여자>는 걸작이다. 모든 것이 완벽한, 바늘로 찔러도 피 한 방울 안 나올 것 같은 영화다.


영화는 특정 대사를 장(章)의 제목으로 쓰는 구성은 처음부터 독특한 느낌으로 관객을 집중시키는 데에 성공한다. 카메라 구도, 음악 등 이 영화를 이루고 있는 모든 부분이 관객을 압도하는 분위기를 만들어내는 데에 기여한다.


이 영화의 분위기는 한마디로 위압감이라고 할 수 있겠다. 나는 그 위압감이 영화 속 인물들이 평범한 사람이 아니라 영국을 좌지우지 할 수 있는 인물이라는 것을 나타내기 위한 효과적인 수단이라고 생각한다. 영화의 거의 모든 이야기가 진행되는 공간인 궁전이 그 위압감을 가장 크게 느끼게 한다. 무척 공들인 티가 역력한 화려한 세트는 인물들이 그토록 애를 써서 얻고 싶은 권력이 얼마나 막강한 권력인지 드러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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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중에서도 가장 인상적인 건 배우들의 연기력이었다. 항상 냉정함을 유지하면서 감정적으로 폭발할 때는 폭발시키고 마는 사라 역의 레이첼 와이즈의 연기는 그 존재만으로 사라가 궁전에서 얼마나 중요한 인물인지 각인시킨다. 애비게일을 연기한 엠마 스톤 역시 대단하다. 그녀에게 오스카를 안겨주었던 <라라랜드> 속 연기도 대단했지만 개인적인 견해로는 이 영화에서의 연기가 더 뛰어났다. 오로지 신분 상승만을 목표로 달려가는, 욕망에 충실한 애비게일의 역할에 엠마 스톤의 연기력이 뒷받침되지 않았다면 애비게일에 대한 사라의 경계심이 이만큼 와 닿지 않았을 것이다.

 

위 두 인물의 연기도 좋지만, 올리비아 콜맨에 수상의 영광을 안겨준 아카데미의 선택은 옳았다고 본다. 올리비아 콜맨은 인간미 넘치지만 정신적으로 쇠약한 여왕의 모습을 완벽하게 표현했다. 초반 그녀는 정치는 뒷전이고 항상 사라의 관심에 목말라한다. 그 모습은 사라의 냉정함과 대비되어 그녀가 무능한 왕이라는 착각까지 하게 만든다. 마음속 큰 상처를 지니고 있고 다른 것에 의탁하지 않으면 그 상처를 이겨낼 수 없는 그녀는 몹시 유약한 사람처럼 보인다. 그래서 그런 그녀가 여왕의 면모를 보일 때 나는 내가 지금까지 봤던 앤의 모습은 무엇인지 혼란스러웠다. 올리비아 콜맨이 앤 여왕을 맡지 않았다면 영화가 이 정도 완성도를 갖게 되는 건 불가능했을 것이다.

 

최근 극장에서 본 영화 중 가장 뛰어난 완성도의 영화였다. 이 완벽한 영화를 많은 사람이 모르고 있다는 것이 안타깝게 느껴졌다. 극히 소수지만 아직도 이 영화를 상영하는 극장들이 있다. 많은 이들이 내가 느꼈던 영화에 대한 감탄을 느꼈으면 좋겠다.


 

[진금미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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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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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kcy4282
    • 저도 이 영화 재미있게 봤는데 반갑습니다! 요르고스 란티모스 감독의 <더 랍스터>도 정말 좋았습니다.
    • 1 0
    • 댓글 닫기댓글 (1)
  •  
  • 진금미
    • 2019.04.14 22:48:33
    • |
    • 신고
    • kcy4282<더 랍스터>도 꼭 봐야겠네요!
    • 0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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