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나를 제로(0)로 만드는 상쇄적인 사랑 [영화]

글 입력 2019.04.11 2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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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내가 좋아하는 배우 장국영이 나왔던 영화 ‘해피투게더’를 보았다. 평소에도 장국영 배우의 눈빛을 좋아했는데 이번 영화 덕분에 양조위 배우의 매력까지 알게 되어 두 배로 그 여운에서 못 헤어 나오고 있다. 영화 ‘해피투게더’는 98년도 영화로 유명 홍콩배우 장국영과 양조위가 주인공으로 출연한다. ‘해피투게더’는 보영(장국영)과 아휘(양조위)가 아르헨티나를 배경으로 사랑을 나누는 아름답지만 슬픈 여운이 짙은 영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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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난 집안을 배경으로 둔 보영은 불안정한 성향을 지녔다. 행복해하다가도 화를 내기 일수이고 아휘와 헤어져있는 상태에서도 다른 애인들을 만나고 다닌다. 반면 아휘는 아르헨티나에 온 이후로 우직하게 한곳에 머물러 있다. 보영과 헤어지지만 않았다면 더더욱 한곳에 오래 머물러있었을 것이다.


이과수 폭포를 함께 보러 가자고, 아휘와 보영은 약속했었다. 그 약속이 이루어진 순간만을 상상하고, 그들만의 이상, 이과수 폭포가 흘러내리는 조명을 보면서 보영은 내내 설레었을 것이다. 그렇지만 중간에 잠시 보영과 헤어지게 되었고 아휘는 새로운 숙소에서 지내며 아휘답게, 성실하게 살아간다. 탱고 노래가 나오는 바에서 호객행위를 하는 일도 하고, 레스토랑에서 요리도 하고, 정육점에서 일도 한다.


이렇게만 봐도 아휘와 보영은 달라도 너무 다른 존재이다. 그 둘을 보고 있자면 사랑에서만큼은 극단적으로 다른 것이 어쩔 땐 더 잘 맞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아니 사실, 잘 맞다기보다는 서로 강하게 이끌려 한다는 표현이 맞을 것 같다. 마치 자석의 N 극과 S 극처럼 양 극단이 만나면 정 반대인 존재임에도 불구하고 서로를 끌어당기니까. 아휘와 보영의 관계는 서로 다른 만큼 이끌려 하고 상처 주고, 사랑하는 그런 관계였다.


그렇게 우직한 아휘와 불안정한 보영은 아휘가 일하던 탱고 바에서 다시 재회한다. 불안정하고 자유로운 보영은 그 순간에서조차 다른 애인과 눈을 마주치며 아휘의 속을 뒤집어 놓는다. 그리고 그 자유로운 보영은 마음대로 날아와 아휘의 속을 뒤집어 놓는 걸로도 모자라 어느 날엔가 불쑥 상처투성이로 술까지 취해 아휘의 집 문을 두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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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랑 만난 걸 후회 해?’


‘그걸 말이라고 해?

네 얼굴 보기 전에는 안 그랬는데

지금은 후회돼 미치겠어!'


‘우리 다시 시작하자.’



끝내는 것도 시작하는 것도 마음대로인 보영과 끝내는 것도 시작하는 것도 망설여지는 아휘는 그렇게 다시 만난다. 그 와중에 상처투성이가 된 보영은 아휘의 집에서 오랫동안 머무르게 되는데 덕분에 불행인지 다행인지 밖으로 나돌아다닐 수가 없게 된다. 그런 보영을 지극정성으로 간호하는 아휘의 얼굴에서는 이상하리만치 행복과 비슷한 생기가 돈다.


출근해서도 짬이 나면 통화하는 아휘를 보며 주방 동료 ‘장’은 통화 상대방이 분명 애인일 것이라 확신한다. 통화 말투나 내용에서 애정과 관심이 흘러넘치니 모를 수가 없겠지만 말이다. 그렇게 아휘는 영화 속에서 독백한다. 사실 그의 손이 낫지 않기를 바랐다고. 아픈 그와 함께 있을 때가 가장 행복했기 때문이라면서. 아휘는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의 날개가 부러져 자유롭지 못한 상태였을 때 가장 안심이 되는 사랑을 했다.


그 말은, 자신이 가장 사랑했던 보영과 만나는 기간 동안 늘 불안했다는 것이다. 보영은 몰라도 아휘만큼은 자기 자신을 불안하게 만들고, 안정감을 갉아먹는 사랑을 한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보영은 몸이 좋아진 후 얼마 안 있어 마치 습관처럼 훌쩍 떠난다. 보영과 헤어지고 많이 괴로워하던 아휘에게 동료 장이 술을 마시며 말을 건넨다. 얼마 후 지구의 끝이라는 곳에 갈 것이라고. 그곳에 너의 슬픔을 묻어주겠노라 녹음기를 건넨다.



‘네 목소리를 여기에 녹음해.

너의 슬픔을 땅 끝에 묻어줄게.’



아휘는 자신의 슬픔을 소리 없는 울음으로 대신했다. 아휘는 소리 없는 울음을 녹음기에 녹음하였다. 그리고 보영과 만날 때 이야기하던 그들의 이상, 이과수 폭포를 찾아간다.



‘이과수 폭포에 도착하니

보영 생각이 났다.

슬펐다.

폭포 아래 둘이 있는 장면만

상상해 왔기 때문이다.’



아휘는 우직하고 변화가 드문 사람이다. 그 말은, 다시 말해, 그는 한 번 변화하고 자리를 잡게 되면 다시는 그전으로 돌아가기 힘든 사람이다. 소리 없는 울음을 다른 나라에 묻었고, 이과수 폭포를 혼자 여행했다. 아휘는 이제 보영에게 돌아가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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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보영은 다르다. 습관처럼 훌쩍 떠난다면, 다시 습관처럼 훌쩍 돌아올 사랑이다. 아휘가 보영을 만나면서 안정감을 갉아먹는 사랑을 했다면, 보영은 아휘를 만나면서 안정감을 부풀리는 사랑을 했다. 보영은 돌아올 곳이 있기에 안정감을 부풀리며 자신다움을, 충만한 자유를 만끽하는 사랑을 했다. 모순적이지만 그것이 보영에게는 안정적인 사랑이었을 테니까. 그리고 그것을 뒤늦게 깨달은 보영은, 아휘가 없는 아르헨티나의 텅 빈 안식처에서 그의 담요를 끌어안고 흐느껴 운다. 그리고 고향에 가기 전 대만에 들린 아휘는 자신의 우직한 마음을 새롭게 뿌리내릴 인연을 암시하며 영화의 끝을 마무리한다.


서로가 상쇄되며 만나는 이 사랑은 아휘와 보영 둘 모두에게 평생 잊을 수 없는 기억일 테지만 아휘에게 만큼은 자신의 뿌리가 흔들릴 정도로 괴롭고 아픈 사랑이었다. 감정이입이 되는 것 또한 보는 이의 경험과 주관이 담겨있기에 –장국영을 좋아하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내가 더욱 아휘를 눈여겨본 걸지도 모르겠다. 그런 아휘가 이제는 자신의 본연인 우직함을 존중받고 안정감을 부풀릴 수 있는 사랑을 했으면 좋겠다. 더 이상 아휘가 스스로가 제로가 되는, 상쇄적인 사랑은 많나지 않길 빈다. 비록 그 사랑이 더 강렬하고, 잊지 못할, 어쩔 수 없는 끌림이 흘러넘치는 사랑이라 하더라도. 인생에 한 번으로 족하다고 이야기해 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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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아영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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