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도서]

혼자도 결혼도 아닌, 조립식 가족의 탄생
글 입력 2019.04.13 1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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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에서 가장 역동적인 시기인 20대에 혼자 산다는 건 꽤 재밌다. 비좁은 공간이라도 자기만의 둥지를 틀었다는 기쁨과 자유는 공간의 불편함을 잊게 만든다. 하지만 나이가 들수록 점차 쾌적하고 안정적이며, 편의적인 공간을 원하기 마련이다. 퇴근 후 마주하는 원룸은 가사 노동에 대한 압박만을 더한다. 혼자 사는 공간에 '우렁각시'는 없고, 더 넓은 공간은 한국 사회에서 부동산으로 돈 좀 만진 분들이 허락해주지 않는다. 집을 넓히기 위해서 할 수 있는 선택은 대출이다. 하지만 금전을 호탕하게 다뤄본 적이 없는 사람이 홀로 빚을 감당하는 건 두려운 일이다.

누군가와 이 짐을 덜면 어떨까? 예컨대 나와 비슷한 처지에 있는 사람과 돈을 나누어서 집을 구입한다면(빌린다면)? 어느 정도 믿을 만한 경제력을 가지고 있는 사람 둘이 돈을 보태 집을 나눠쓴다면, 분명 주거 조건은 나아질 테다. 무려 부엌과 거실이 분리되고, 일 하는 공간과 쉬는 공간이 나뉠 것이다. 하지만 공간을 나눈다는 건, 생활 곳곳에서 갈등이 발생함을 암시한다. 물질 뿐만이 아니라 정신마저 공유하며 사는 삶은 진득한 사랑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아니라면 유지되기 힘들지 않을까?

이런 나의 고민 끝에 사람들은 결혼이 답이라는 의견을 내놓는다. 한국 사회에서 유일한 사적 공동체는 '가족'이라 여겨지는 탓에 그 이외의 방식은 거의 논의되지 않는다. 다른 공동체가 공식적으로 존재할 수 있는 기회를 주지 않는 것도 문제지만, 아예 상상력을 불가능하게 해버리는 것은 권력이라는 말로 밖에 설명할 수 없다. 20대인 내가 비혼 하겠다고 말하면 따라붙는 말들이 그러하고, 나의 빈곤한 상상력이 그러하다. 다 큰 성인 두 명이 꼭 드라마틱한 사랑이 있어야만 같이 살 수 있나? "내가 결혼 안 해봐서 아는데"라며 호탕하게 웃어줄 사람은 없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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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내가 원하는 책이 있다. '싱글' 여성 둘이 함께 사는 이야기를 담은 책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는 결혼 이외에 함께 사는 삶을 보여준다. 저자 황선우와 김하나는 같은 고향, 같은 학교, 같은 단과대며 나이도 한 살 밖에 차이나지 않는다. 비슷한 배경 때문에 둘은 오랜 지인같지만, 사실 트위터를 통해 알게 된 사이다. 황선우는 잡지 <W Korea>의 피처 에디터였는데, 김하나는 그의 박식함과 센스에 반해 팔로우한 사람 중 한 명이었다. 처음 오프라인으로 만난 이후 1차 와인, 2차 맥주, 3차 위스키를 곁들여가며 이야기할 정도로 둘의 이야기는 끊이지 않았고, 같이 영화나 전시도 보고 술을 마시고 음악을 들으며 친해졌다.

둘의 만남만큼 동거가 낭만적일 순 없다. 함께 산다는 것은 서로의 다른점을 발견하는 것이다. 황선우는 맥시멀리스트이고 김하나는 미니멀리스트다. 황선우의 화장실엔 샴푸, 린스, 컨디셔너, 클렌저, 보디클렌저, 보디스크럽, 보디로션, 보디버터, 비누, 핸드솝, 팩, 코팩 등 모든 물건이 평균 다섯 개씩 있었다. 평균이 다섯 개라는 건, 보디클렌저만 다섯 개정도 있다는 것이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나. 그럼 집이 물건으로 가득 찰텐데'라는 생각은 정답이다. 그의 옷장엔 옷이 너무 많아 행거가 부러지고, 냉장고 문을 열면 떨어지는 물건을 인사로 받아야 한다. 김하나는 내적 눈물을 흘리며 이 시를 온몸으로 이해했다고 한다.


사람이 온다는 건 / 실은 어마어마한 일이다. / 그는 / 그의 과거와 / 현재와 / 그리고 / 그의 미래와 함께 오기 때문이다. / 한 사람의 일생이 오기 때문이다.

- 정현종, <방문객>에서


차이는 갈등을 가져오지만, 재미로 보답한다. 황선우는 한식, 양식을 가리지 않고 놀이하듯 요리하는 만능 요리사다. 김하나는 황선우가 요리한 것을 맛있게 먹은 뒤, 정리의 달인 답게 깨끗이 뒷정리를 한다. 황선우는 물건이 고장나면 새로운 것을 사는 소비요정이면, 김하나는 고쳐 쓰는 금손이다. 같이 살면서 발생하는 교환 가치는 혼자 할 수 없던 일을 해결해 주고, 이해 불가능한 부분이라 여겼던 모서리는  부딪치고 깎여 삶에 뜻밖에 도움이 되기도 한다. 예컨대 일단 주문하는 황선우의 성격 덕에, 김하나는 여러 책을 읽으며 팟캐스트를 준비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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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증으로 혼미하던 수술 당일, 그리고 바이털 사인을 체크하는 새벽마다 잠귀 밝은 동거인은 좁은 간이 침대에서 웅크리고 있다가 나보다 먼저 발딱 깨어 필요한 것들을 챙겨주곤 했다. (중략) 그리고 나는 간병인의 역할을 훌륭하게 수행했던 동거인이 나의 주보호자로서 베풀어준 가장 큰 부분을 잊지 못할 것이다. (중략) 가장 무력하고 약해졌을 때 내가 사라지지 않게, 또 최선을 다해 나로 돌아갈 수 있게 단단히 붙잡아주었다."


저자들의 재밌는 글 솜씨로 유쾌하게 책장을 넘기다 보면 두 사람의 관계가 무거워짐을 느낀다. 이 정도면 가족이 아닌가, 생각이 든다. 아니, 가족이지 않을까? 누군가와 평생 함께 하겠다는 영속적인 선언은 분명 아름다운 일이다. "하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한 사람의 생애 주기에서 어떤 시절에 서로를 보살피며 의지가 될 수 있다면 그것 또한 충분히 따뜻한 일"이다. 나의 생활이 건강하게 유지될 수 있는 동거인이 있다면, 그는 나의 주보호자이지 않을까?

하지만 우리 사회는 아직도 저출산을 강조하며 기존의 '이성애부부'를 유일한 가족 모델로 상정하고 있다. '가족'이 인간 공동체가 유지될 수 있는 형태라고 생각한다면, 굳이 배타적인 범주만을 가져야할까. 사회 재생산과 개인의 행복을 높일 수 있는 방법이 한 가지이진 않을 것이다. 저자 가족의 분자식 W2C4(여자 둘, 고양이 넷)대로 살아도 행복하고 책임감 있게 살 수 있다. 못 믿겠다면, 이 책을 읽어 보시라. 저자 덕에 없던 창의성도 생겨날테니.




[이다빈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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