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금호아트홀 아름다운 목요일 클래식 나우 : 장 하오천 Piano

글 입력 2019.04.12 23: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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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초에 이어, 4월 중순에 접어들기 시작하는 목요일에 금호아트홀에 다녀왔다. 중국인 피아니스트 장 하오천의 무대가 예정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윤디 리같은 느낌의 연주자일지 아니면 랑랑이나 유자왕 같은 스타일의 연주자일지 궁금해서 그의 연주를 미리 들었던 나로서는 더더욱 이번 무대를 손꼽아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프로그램 구성조차도 너무나 매력적이었기 때문이다.




Programs


클로드 드뷔시 피아노를 위한 3개의 영상 제2집, L.120
Claude Debussy 3 Images for Piano, Set II, L.120
Cloches à travers les feuilles. Lent
Et la lune descend sur le temple qui fût. Lent
Poissons d'or (Goldfish). Animé


로베르트 슈만 피아노를 위한 유모레스크 B-flat장조, Op.20
Robert Schumann Humoreske for Piano in B-flat Major, Op.20
Einfach -
Sehr rasch und leicht -
Hastig -
Einfach und zart -
Intermezzo -
Innig -
Sehr lebhaft -
Finale


I N T E R M I S S I O N

피에르 불레즈 피아노 소나타 제1번
Pierre Boulez Piano Sonata No.1
Lent
Assez large, rapide


프란츠 리스트 피아노 소나타 b단조, S.178
Franz Liszt Piano Sonata in b minor, S.178
Lento assai - Allegro energico
Grandioso - Recitativo
Andante sostenuto - Quasi adagio
Allegro energico - Stretta quasi presto - Presto - Prestissimo - Andante sostenuto - Allegro moderato - Lento assai





먼저 첫 곡이었던 드뷔시의 영상 2집은 장 하오천의 부드러운 타건에서 시작되었다. 첫 곡인 잎새를 흐르는 종은 흐릿한 듯하면서도 명료한 색채 대비가 느껴지는 곡이다. 장 하오천은 그 느낌을 살리기 위해 첫 터치부터 아주 부드럽고 섬세하게, 그리고 다소 몽환적이기까지 한 분위기로 도입부를 꾸몄다. 페달링은 깊고 둥근 소리가 났고 타건은 매우 부드럽고 섬세해서 더더욱 원경과 근경의 이미지가 대비되는 아름다움이 극대화되었다. 2집의 첫 곡만 들어도 그가 자신있게 이 곡을 첫 곡으로 선곡한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이어지는 2곡 달은 황폐한 절 위에 걸렸네는 첫 곡보다도 더 정적이고 느릿한 느낌이 완연했다. 그러나 느리다고 늘어지는 느낌은 전혀 들지 않았다. 오히려 그 정적인 분위기를 이끌어가는 장 하오천의 섬세한 연주가 전율이 일게 만들었다. 드라마가 있는 것이 아니었는데도, 그가 만들어내는 부드러운 세계에 팔끝에서부터 심장을 향해 계속 전율이 일었다.


영상 2집의 마지막 곡인 금붕어는 2곡의 분위기에서 반전되어 금붕어가 민첩하게 유영하는 듯한 느낌을 극적으로 전달해주는 곡이다. 마치 빛에 반사되어 금붕어의 비늘이 반짝반짝 빛나는 것을 목도하는 것같이, 장 하오천은 생생한 색채감이 그려지는 연주를 들려주었다.


이어지는 두 번째 곡은 슈만의 유모레스크였다. 유모레스크는 가볍고 익살스러운 기분을 표현한 기악 소품을 이야기하지만 슈만의 유모레스크는 그가 겪었던 조울증의 양 극단이 고스란히 담긴 곡이기도 하다. 그러나 개인적으로는 그 양 극단의 감정들이 한 작품 속에 어우러지면서, 조에 가까운 그의 감정들이 아주 따스하게 와 닿는다고 느낀다. 그 대비되는 정서들은 슈만의 유모레스크가 가진 독보적인 매력인데, 특히 장 하오천은 그 대비되는 정서들을 오가면서 폭넓은 스펙트럼을 보여주었다.


익히 아는 것처럼, 유모레스크의 시작은 다소 잔잔하고 차분하게 시작되었다. 드뷔시를 연주할 때 볼 수 있었던 섬세함과는 또다른 의미의 섬세함이었다. 이어지는 단락들은 활기가 넘쳤다. 그러나 심오하면서도 침잠하는 울의 분위기로 빠져들어가기 시작하는 순간 장 하오천은 유모레스크에 담긴 서정성의 극을 보여주었다. 드뷔시든 슈만이든 그는 빠지는 부분 없이 잘 연주했지만 이 대목은 1부에서 그의 손끝이 가장 빛나는 대목이었다. 극적인 마무리까지 그의 연주는 시종일관 섬세하모가 힘의 조화로 전율이 일게 했다.


*


2부가 시작되었는데, 장 하오천은 무대에 홀로 서지 않고 한국인 통역과 함께 나왔다. 무슨 일일까. 혹시 프로그램을 바꾸는 건가. 무슨 일로 마이크를 잡은 건지 그가 말문을 열기 전까지의 짧은 시간동안 수많은 생각들이 지나갔다. 그는 한국어가 아닌 영어로 얘기하는 것에 위트있게 양해를 구하면서, 불레즈 소나타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장 하오천은 불레즈 소나타가 얼마나 강렬한 작품인지 관객들이 미리 알기를 원했다. 왜냐면 이 작품은 조성이 없는 현대음악 작품이기 때문이다.


20세기에 이처럼 기념비적인(장 하오천의 표현으로는 "Iconic") 작품이 드문데도 불구하고 콘서트홀에서 거의 연주가 되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한 그는 어쩌면 금호아트홀에서 불레즈 소나타가 연주되는 게 이번이 처음일 지도 모르겠다는 말을 덧붙였다. 충분히 그럴 수 있을 것 같았다. 장 하오천은 이처럼 멜로디가 없는 작품을 연주하게 되어 미안하지만 그래도 오늘 프로그램 중 가장 강렬한 작품이 될 수 있을 것이라 관객들에게 부연했다.


그리고 불레즈에 이어 리스트 소나타까지도, 그는 관객들이 같은 시각에서 즐겨주기를 바랐다. 흔히 낭만주의 소나타로 많이들 이해하는 리스트 소나타 B단조가 사실은 굉장히 아방가르드한 시기에 발표된 파격적인 작품이었다는 것을 다시금 강조했다. 그래서 장 하오천은, 불레즈에 이어 리스트를 들으면서 낭만주의적 풍미보다는 그 전위적인 느낌을 살려 듣기를 원했다. 프로그램을 처음 보았을 때 내가 예상했던 프로그램 선정 의도와 일치해서 새삼 뿌듯했다. 그런 부푼 마음을 안고 2부의 시작을 맞이했다.


불레즈 피아노 소나타 1번은 여리게 시작하지만 끝나는 순간까지 시종일관 온 몸에 긴장감이 타고 흐른다. 조성음악이 아닌 데다가 셈여림이 여리고 강한 게 예측불가한 수준으로 반복되어 나오기 때문이다. 그 강렬한 대비가 장 하오천의 손끝에서 나오기 시작하니 긴장하고 들으면서도 짜릿했다. 도대체 그는 이 곡을 어떻게 암보했을까. 공연장에 오기 전까지 이 곡을 들으면서, 당연히 악보를 보고 칠 거라 생각했다. 그러지 않은 그에게 두 번 놀랐지만. 정말 난해한 곡임에도 불구하고 매우 전위적인 연주여서 오싹하고도 재미있게 들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왜냐하면 이러한 무드에서, 장 하오천은 내가 이번 무대에서 가장 기대해왔던 리스트 소나타를 칠 것이기 때문이었다.


리스트 소나타 B단조. 불레즈 소나타 1번처럼 아주 여린 터치로 시작하는 이 곡. 장 하오천이 조심스럽게 첫 음을 두드리는 순간, 불레즈를 들을 때와는 또 다른 긴장감이 고조되었다. 그 뒤에 펼쳐질 세계를 알기 때문이다. 마치 태초의 그 원초적인 상태를 그려낸 것 같은 리스트의 이 작품. 리스트는 피아노 선율로 선과 악의 대비를 극명하게 담아냈다. 착한 것과 나쁜 것이라는, 단순한 단어로 표현하기에는 가볍고 선과 악이라는 표현으로는 너무 무거운 것 같으면서도 원초적인 상태에서 선과 악이 맞부닥뜨리며 생기는 그 대조는 이 작품의 특징이자 살려내기 어려운 포인트라고 생각한다. 기존에 이 부분이 만족스러웠던 연주는 윤디 리의 연주였다. 그가 프랑스에서 연주했던 무대는 그 원초적인 날 것의 상태와 대비가 극명하게 느껴지는, 날카롭고도 섬세한 연주였다.


그런데 장 하오천은, 이번에 내게 리스트 소나타 B단조의 새로운 기준을 제시했다. 그 엄청난 간극을 넘나들며 완급을 조절하는 그의 연주는 섬세함과 강렬함의 완벽한 조화를 이룬 연주였다. 이 대곡을 연주하면서 미스가 없었다는 게 그가 얼마나 세밀하게까지 표현하고 연주하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극적인 대비가 쌓이고, 주제의 재현에 이어 절정에 도달하여 휘몰아치는 템포로 낭만주의적인 풍미를 한껏 발산하는 장 하오천의 모습은 이번 리사이틀 전체를 통틀어 백미였다.


그 절정에서, 이제 그 원초적인 선악의 혼란을 넘어 그보다 더 높은 경지로 숭고하게 접어들게 만드는 장 하오천은, 실로 인도자 그 자체였다. 그리고 그 고양된 어느 경지에 잇닿는 순간 마치 시작했던 그 순간처럼 부드럽고 섬세하게, 아주 여린 소리로 이 모든 세계가 승화되었다. 마지막 타건이 심장을 치고, 장 하오천이 자리에서 일어나기까지의 그 여운과 전율은 정말, 그 어떤 말로도 표현할 수 없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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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어마어마한 본 무대를 마치고, 장 하오천은 뜨거운 박수를 받았다. 우선 내가 뜨거운 박수를 보낼 수밖에 없었다. 기대했던 것보다도 더 좋은 연주를 들어서 너무나 감동했기 때문이다. 윤디 리 이후로 꾸준히 지켜본 중화권 피아니스트가 없었는데, 이제는 장 하오천을 손꼽아 기다리게 될 것 같았다. 그런 그에게 보내는 화답의 박수를 너무 열심히 쳤는지 매일같이 끼고 다니던 반지가 끊어져버렸다. 얇은 반지이긴 했지만 그래도 금속 반지인데다 몇 년간 수많은 공연에 끼고 다녔는데 어떻게 이렇게 명을 달리 하는지. 새삼 내가 진짜 이번 무대가 마음에 들었나보다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뜨거운 박수세례와 환호를 받은 장 하오천은 세 곡의 앵콜곡을 연이어 연주했다. 드뷔시 프렐류드 중 8번 아마빛 머리의 소녀, 쇼팽의 강아지 왈츠 그리고 모차르트 소나타 10번의 2악장 순이었다. 세 곡의 앵콜곡만 들어도 장 하오천이 섬세한 연주에 잘 어울리고, 시기 상으로는 낭만 이후 시기가 잘 어울린다는 걸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


이번 금호아트홀 장 하오천의 무대는 계속 밀려드는 전율에 나 스스로도 놀랄 정도의 무대였다. 3주 전에 롯데콘서트홀에서 짐머만 리사이틀도 잘 다녀왔지만 그의 쇼팽 스케르초에 감탄하며 듣기는 했어도 전율이 일지는 않았는데. 물론 그건 홀 규모의 차이 그리고 좌석의 차이도 분명 있긴 있을 것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무엇인지는 정확히 몰라도 장 하오천의 무언가가 나를 정말 움직였다는 것이다. 말 그대로 Moved. 그가 나를 움직였고, 나는 감동받을 수밖에 없는 무대였다.


 
[석미화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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