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착한 사람이 무슨 소용 있나요 [음악]

델리스파이스 '저도 어른이거든요'
글 입력 2019.04.14 04: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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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어렸을 적에 엄마 칭찬이 좋아서
말 잘 듣는 아이인 척했던 시간이 많았더랬죠
이젠 세월이 흘러 저도 어른이거든요
하지만 어릴 적 그 모습을 버리진 못했나 봐요

아 변명하려 했지만
착한 사람 착한 사람이 무슨 소용 있나요
내 감정조차 속여 온
거짓말쟁이 거짓말쟁이일 뿐일 걸요
그래요 그런 거죠

상처받기 싫어서 보험 드는 기분으로
그저 상냥하게 대한다면 알아줄 거라 믿었죠
돌려받기 위해서 베푸는 나의 친절은
오히려 상처를 줄 수 있다는 걸 그땐 몰랐어요

아 무얼 잘못한 거죠
착한 사람 착한 사람이 무슨 소용있나요
내 감정조차 속여 온
거짓말쟁이 거짓말쟁이일 뿐일걸요
이제는 난 몰라요

잘하려고 잘해 보려고 내 딴엔 노력한 건데
어쩌다 한번 불평으로
그랬구나 그게 너의 본 모습이었구나
이런 말은 너무해요
세상은 불공평해



언젠가 델리스파이스의 ‘저도 어른이거든요’라는 노래를 듣고 펑펑 운 적이 있다. ‘내 감정조차 속여 온 거짓말쟁이 거짓말쟁이일 뿐일 걸요’라는 가사가 화살처럼 심장을 콕 찔렀던 것 같다. 버스를 타고 가는 길, 남몰래 숨죽여 울었던 그 날은 그동안 외면했던 솔직함과 마주한 순간이었다.

 



착한 사람 콤플렉스, 그게 나예요


 

 착한 아이 콤플렉스(good boy syndrome): 타인으로부터 착한 아이라는 반응을 듣기 위해 내면의 욕구나 소망을 억압하는 말과 행동을 반복하는 심리적 콤플렉스를 뜻한다.

 

돌이켜보면 살면서 종종 착하다는 소리를 들어왔던 것 같다. 하지만 이러한 말을 들을 때마다 왠지 모르게 낯부끄럽기만 했다. 필자는 착한 사람이 아니라, 착해야 할 순간을 눈치 보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그렇다. 필자는 착한 아이 콤플렉스가 있다. 병적인 수준이니 ‘앓고 있다’가 올바른 표현이겠다.
 

왜 이 증상에 걸렸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그저 기억 속엔 늘 타인의 기분에 쩔쩔매던 필자의 모습만 남아있을 뿐이었다. 만약 상대가 기분 나빠 보이거나 차가운 말투로 말하면, 그 순간부터 필자에겐 혼란이 찾아왔다. ‘나 때문일까?’, ‘내가 뭘 잘못한 걸까?’, ‘그래, 내가 조금 전에 건넨 말 때문에 그런가 봐’, ‘내가 그렇게만 말하지 않았어도...’ 등. 대화하는 상대의 표정, 행동, 말투에 따라 매번 수만 가지 생각을 반복했다. 이는 인간관계에 대한 불안감으로 작용했고, 어느 순간부터 이런 생각들을 멈추기 위해서는 좋은 사람이 되는 수밖에 없음을 깨달았다.


여기서, 좋은 사람이라는 개념을 잘못 잡은 게 실수였다. 그저 남들에게 좋은 말만 하고, 무슨 이야기든 다 들어주는 사람이 좋은 사람이라고 착각해버렸다. 한 마디로 남의 비위를 잘 맞춰주는 게 좋은 것이라고 생각했다.

남들의 비위를 맞추는 일은 생각보다 어렵지 않았다. 좋은 소리든 기분 나쁜 소리든 허허실실 웃으면 그만이었다. 상대는 하고 싶은 말을 마음껏 할 수 있는 과감함과 자신감이 생겼으며, 필자는 상대의 기분에 대한 복잡한 고민을 거둘 수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상대방의 ‘너 정말 착하다’라는 말이 쾌감을 안겨주었다. 그 말은 필자가 좋은 사람이라는 것을, 인간관계를 현명하게 맺어오고 있다는 것을 증명해주는 듯했다. 그렇게 필자는, 늘 착하다는 말을 들어야 안심하는 사람이 되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또 머릿속이 복잡해지기 시작했다. 언젠가부터 사람들을 만나면 체내에 피곤함이 쌓이는 것 같았다. 감정소모를 하지 않기 위해 필자의 감정을 버린 탓일까. 언젠가부터 사람들과 함께 있을 때 비추어졌던 필자의 모습이 가식적으로 느껴졌다. 그리고 이러한 가식적인 느낌이 남들에게도 전해지는 것만 같아서, 사람들을 만나는 것이 더욱 자신 없어졌다. 그렇게 ‘착한 사람’이 되기 위해 애썼던 필자의 방식이 틀렸음을 깨달았다. 하지만 그런데도 착한 사람의 이미지를 벗어날 수 없었다. 여전히 이러한 이미지에 집착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델리스파이스, 저도 어른이거든요


 

 필자가 더는 착한 사람이 아닌 착한 사람에 집착하는 사람이었음을 알았을 때, 이 노래를 들었다. 델리스파이스의 ‘고백’이라는 노래가 좋아서, 가수의 다른 노래를 찾다가 우연히 알게 된 음악이다. 필자의 기분을 눈치챈 누군가가 작사한 것처럼 마음에 와닿는 가사들이었다. 이 노래는 필자에게 ‘공감’이었고, 한편으로는 ‘안심’이었다. 필자가 아닌 어떤 이들 또한 착한 사람에 아파하고 있었음을 알았기에, 노래를 들으면 안정제를 삼키는 기분이었다.

그리고 이 노래를 들으면서, 그동안 남들의 감정에 밀리기만 했던 ‘나의 감정’들을 차곡차곡 마음속에 담아두었다. 이는 많은 사람에게 어설픈 일이다. 남의 기분을 살피라는 말은 익숙하지만, 나의 기분을 살피라는 말은 생소하기 때문이다. 이처럼 착한 아이 콤플렉스는 나를 챙기는 것이 서툰 사람들의 성장통일지도 모른다. 자신의 감정도 소중하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 성장통을 극복하고, 진정한 어른으로 거듭날 수 있지 않을까.



[황채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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