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가사로 바라보기 : 인간의 굴레에서 [도서]

인생의 양탄자
글 입력 2019.04.14 1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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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사로 바라보기 : 인간의 굴레에서

인생의 양탄자


Opinion 민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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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독서



오랜만에 책을 읽었다. 책을 읽지 않는다는 부담감이 나를 먼저 도서관으로 이끌었고, 의무감때문에 책을 읽고싶지는 않아서 중간에 포기하지는 않을 소설을 꺼내들었다. 서머싯 몸의 ‘인간의 굴레에서’는 이 영국 소설가의 자전적 소설로, 한 청년의 성장 과정을 담고 있다.


너무 사실적인 이야기라 정말 작가 본인의 이야기가 아닐까하는 의심이 드는 이 책은 처음부터 독자들을 잡아끄는 매력이 있지는 않았다. 이전에 이 작가의 ‘면도날’을 읽었을 때와는 다르게 계속 인내해가며 읽는다는 느낌이 강했다. 짧지않은 유년기부터 청년기까지의 인생을 2권에 걸쳐 모두 담고 있기 때문에 오히려 그것을 읽는 과정이 마치 그 시기를 살아가는 과정처럼 느껴졌다.




#2 여행



다리가 불편한 채로 태어난 주인공 필립은 어려서 부모님을 여의고 백부에게 의탁해 살아간다. 백부의 뜻대로 성직자가 되기 위해 학교를 다니던 중 넓은 세상을 보기 위해 독일로, 파리로, 런던으로 떠난다. 예술에 흠뻑 취해 살다가, 어쩔 때는 한 여자에게 빠져 살다가, 결국엔 인생을 살아나가기 위해 밑바닥에서부터 일하기까지 필립의 인생은 고행과 여행 그 중간쯤에 있었다. ‘여행’이라는 소재는 지금 내가 계획하고 있는 여행에 대한 생각에 윤곽선을 그려주었다. 그려진 윤곽선을 보고 나니 유럽 여행을 계획하고 있는 나는 앞으로 여행의 예고편을 본 게 아닌가 걱정했다.


걱정은 유럽에 대한 내 환상에서 시작했다. 내게 유럽은 어떤 이상향이었다. 언젠가 꼭 가봐야 할 곳, 예술의 성지, 미지의 사람들이 사는 곳 등의 생각으로 나는 어른이 되면 꼭 유럽에 가고싶었다. 그럼에도 어쩐지 두려웠다. 아직 내가 그곳에 발을 디딜 준비가 안되어 있다고 생각했고, 내가 유럽을 가장 잘 느낄 수 있고 경험할 수 있을 때 방문하고 싶었다. 남들 다 하는대로 다 다니는 곳으로 잠깐 발자국 찍고 오는 듯한 느낌을 받는 게 너무 싫었다. 지금도 등떠밀려, 지금 아니면 안 될 것 같다는 느낌으로 2달간의 여행을 계획하고 있지만 그런 부정적인 생각을 떨쳐 낼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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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 중 필립도 한 때 예술에 심취해 파리에서 산다. 예술가의 길을 이처럼 현실적으로 그린 소설이 또 있을까, 이 소설에서 재능이 없는 예술가들은 처참하게 그 꿈을 짓밟아 버리기도 하고 심지어는 죽음에 이르게도 한다. 우리가 예술이라고 부르는 것들 역시 인생의 굴레 안에 존재할 수밖에 없음을 냉철한 시선으로 보고 있다. 그 인생의 굴레를 예술로 굴릴 수 있는 사람은 전 세계에 필립도 자신이 재능이 없음을, 환상 속에서 몇 년을 살았음을 깨닫고 결국 인생의 굴레를 다시 굴리기 시작한다.


내가 유럽에서 느끼고 싶은 것들, 보고자 하는 것들도 환상일 수 있다. 꼭 가봐야 할 곳도, 예술의 성지도, 미지의 사람들도 사실은 내 마음 속에만 존재하는 것일 수 있다. 그래서 오히려 그 목적이 흐릿해지는 게 아니라 이 여행의 목적이 더 확실해졌다. 환상도 직접 보지 않으면 알 수 없기 때문에 환상 속으로 뛰어들기로 결정했다. 그리고 2달 간 이 책의 주인공처럼 그 환상을 깨고 인생의 굴레를 굴리고 싶다.




#3 결국 인생의 굴레에서



끊임 없이 인생의 존재 이유와 답을 찾으려는 필립은 파리에서 알고 지낸 어떤 선생에게 페르시아 양탄자를 선물로 받는다. ’인생은 페르시아 양탄자의 무늬’에 불과할 뿐이라는 조금은 허탈한 답은, 결국 인생의 굴레에서라는 책의 제목과 연결시켜 보면 잘 맞는 것 같다. 답을 찾기 위해 노력하는 게 아니라 우리 인생은 그저 무늬를 그려갈 뿐, 그 페르시아 양탄자에는 어떠한 의미도 담겨 있지 않다. 양탄자 무늬를 어떻게 짜야할지 고민해도, 결국 양탄자는 짜여질테니깐.


소설의 결말도 조금은 허무하게 그렇게 끝난다. 이게 끝? 이라는 느낌으로 결국 인생의 목적과 의미를 두지 않고 주인공은 삶 속으로 빠져든다. 삶 속으로 빠져든다, 라는 말이 역설적으로 느껴지지만 2권에 걸친 인생의 경험 이후에야 필립은 삶 속으로 빠져들 수 있었다. 아마 모든 어른들이 이런 경험을 겪었을까, 삶에 빠져든다라는 경험은 씁쓸하면서도 필연적인 느낌이 들 것 같다.


어쨌든 내가 아니면 책임질 수 없고 포기해버릴 수도 없는 삶. 막차가 끊겼을 때 길고 긴 터널을 혼자 터벅터벅 걸어가는 장면이 떠오른다. 어쨌든 내가 걸어가야 할 길처럼. 인생에 대한 책 중 가장 회색에 가까운 책을 읽고싶다면 이 책을 추천하고싶다. 인생의 회색을 받아들이는데 조금 도움이 될지도 모른다.



*



인생의 양탄자


인생은 터널 속을 꾸준히

걸어가는 것처럼

멈출수록 어둠은 한없이

나를 감싸오고 매혹하지


저 멀리 별처럼 밝아오는

출구를 향해서

하지만 가까워지지 않는

출구를 향해서


걷고 또 걸어도 난

알 수 없겠지

가끔은 뛰어도 난

알 수 없겠지


어쩌면 끝까지 모른 채

저 빛에 닿겠지

어쩌면 끝까지 모른 채

저 빛을 안겠지

 

어차피 가져가지 못하는

가방을 두고 가고 싶을 때도

가방 속에 뭐가 들어있을지

알 수 없을 때도


저 멀리 별처럼 밝아오는

출구를 향해서

하지만 가까워지지 않는

출구를 향해서


걷고 또 걸어도 난

알 수 없겠지

가끔은 뛰어도 난

알 수 없겠지


어쩌면 끝까지 모른 채

저 빛에 닿겠지

어쩌면 끝까지 모른 채

저 빛을 안겠지


어쩌면 끝까지 모른 채

저 빛에 닿겠지

어쩌면 끝까지 모른 채

저 빛을 안겠지


가사 민현





[손민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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