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view] 피해자다움에 대하여, 7번국도 [공연]

글 입력 2019.04.14 2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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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피해자다움에 대해 생각해본 적이 있는가. 나는 미투 운동의 열기가 뜨거웠던 작년, 이 물음을 부끄럽지만 처음으로 가까이 마주하고 답을 고민하기 시작했던 것 같다. 그러다 울컥 눈물이 나올 뻔하기도, 화가 나서 주먹을 세게 쥐기도 했다. 도대체 ‘피해자다움’이 무엇이고 과연 어떤 모습이어야 하기에 다수의 언론과 대중들은 피해자의 모습에 이토록 집착스러운 태도를 보이는 것인지 많이도 답답했다.

 

미투 운동을 단적인 예로 들어보면, 사건의 발단에서부터 피의자의 범행 사실까지 피해자 혹은 그 주변인의 인터뷰를 시작으로 언론에 사건이 공개된다. 예전보다 많이 나아졌다고는 하지만, 가해자의 악의적인 범행 사실과 신상보다도 피해자의 당시 행색과 사회적 지위, 사생활과 관련된 부분들은 차례로 샅샅이 더 중요하게 포커싱 되어 세상에 알려졌다.


그리고 용기 내어 피해 사실을 알린 그들에게 옭아매진 것은 다름 아닌 피해자 프레임, 정말 어이없게도 ‘순결한’이라는 단어가 따라붙은 ‘순결한 피해자 프레임’이었다.


사실이 이렇다 보니, 이후에도 여전히 진행 중인 미투 운동을 바라볼 때에나, 다른 어떤 사건의 피해자들에게 이목이 집중될 때에도 나의 머릿속에는 ‘피해자다움’이라는 단어가 계속 물음표로 떠올라 괴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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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번국도 연습사진 (c)이강물

 


<시놉시스>

강원도 속초, 7번국도 위. 동훈의 택시에 군복을 입은 주영이 오른다. 그는 얼마 전 공장에서 일하다 죽은 초등학교 동창에 대한 이야기를 꺼낸다. 이름조차 기억하지 못하는 그 동창의 죽음을 두고, 주영은 안 좋은 소리만 늘어놓는다.


이 낯선 군인 아저씨의 말을 듣고 있는 동훈은 바로 그 죽은 초등학교 동창의 엄마다. 동훈은 오늘도 경기도 수원의 공장 앞 1인 시위를 위해 집을 나선다. 하지만 남편인 민재는 동훈을 막아서고, 시위에 함께했던 용선은 피켓을 내려놓는다.


주영이 동훈의 택시에 다시 오른다. 이 낯선 택시 기사님은 주영에게 말한다. 이제 시위 나가는 것을 그만뒀다고. 때가 됐나 보다고.


 

‘삼성 백혈병 사건’과 ‘군 의문사’를 다룬 이번 작품은 “우리 사회가 강요하는 ‘피해자다움’은 무엇인가?”에 관한 질문을 던진다. 공연 속에 등장하는 인물은 가상이지만 그들이 마주하고 있는 죽음만큼은 사실에 가깝다. 작품은 사건의 무게를 증폭시키거나 대책 없이 삶을 아름답게 포장하지도 않았으며, 인물 사이의 갈등, 충돌, 변화를 있는 그대로 드러낸다.


피해 당사자를 비롯해 피해자의 가족, 피해 가족의 사이 등까지 여러 층위에 존재하는 갈등을 외면함으로써 우리 사회에 팽배한 ‘피해자다움’은 더욱 견고해져 피해자를 다시 압박해왔던 사실에 주목했다.

   

필자는 하나의 예로 미투 운동에 대해 이야기했으나, 피해자다움의 범위를 조금 더 넓혀보면 이는 더욱 오랜 시간 동안 단단하게 그들의 삶을 조여왔음을 이 연극을 통해 어렴풋하게나마 알 수 있을 것 같다. <7번 국도>는 피해자들이 집단적으로 활동하지 않고 영웅화하지도 않으며, 관객이 특정 인물을 주인공으로 받아들여 하나의 서사만을 좇도록 하지도 않는다. 그저 극 중의 피해자들이 겪는 사건과 갈등의 양상을 통해 그들의 현실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우리의 삶에 투영시키기를 바라는 것 같아 보인다.


연출진의 다음의 말을 곱씹어 보며 나는 이제 그들의 의도를 조금이나마 짐작하고서 그동안 간접적으로나마 경험했던 사회적 참사를 아프지만 돌이켜본다. 그리고 그들이 말하는 피해자다움의 강요에 대해 스스로 물음을 던져본다.


“우리 사회가 강요하는 ‘피해자다움’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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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번국도 연습사진 (c)이강물

   


“사회적 참사를 겪을 때마다 우리는 피해자들이 사회적 영웅으로 부상되기를 바라지만 사실은 피해자들이 싸우기로 결심하거나 멈추기까지가 더 치열한 싸움이 된다.” (배해률 작가)

 

 “이 길에 서 있는 사람들의 조용한 싸움을 정직하게 담아내고 싶다.” (구자혜 연출)


    




7번국도
- 남산예술센터 2019 시즌프로그램 -


일자 : 2019.04.17 ~ 04.28

시간
화, 수, 목, 금 19시 30분
토, 일 15시

장소 : 남산예술센터 드라마센터

티켓가격
전석 30,000원

주최
서울특별시

주관
서울문화재단
여기는 당연히, 극장

관람연령
만 13세이상

공연시간
90분





여기는 당연히, 극장


여기는 당연히 극장.jpg


우리가 늘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것에 대한 질문, 그리고 연극은 무엇이 되어야 하는가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 젊은 작업자들의 협력체이다. 여기는 당연히, 극장은 앞으로도 연극을 통해 새로운 개념을 생산하고 배치하는 작업을 기쁘게 지속할 수 있기를 바란다. 그리고 그 움직임이 동시대의 현실과 환상에 조응하며, 다른 한편 그것을 기꺼이 내파 할 수 있는 힘으로 생동하기를 바란다.





[차소연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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