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신과 인간, 인간과 로봇 – 엑스마키나 [영화]

글 입력 2019.04.14 2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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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에 따르면 신은 자신의 모습을 본떠 흙먼지로 인간을 빚었고, 그 코에 숨결을 불어 넣으니 비로소 인간이 생명체가 되었다고 한다. 신을 닮은 피조물인 인간이 자신을 닮은 존재를 창조해 신의 영역을 침범하고자 하는 욕망은 과학의 눈부신 발전과 더불어 점차 현실에 가까워지고 있다.


영화 <엑스마키나>는 신이 되려는 인간과 인간이 되려는 로봇, 그리고 인간과 비인간의 모호한 경계를 다루며 섬뜩하고 기괴한 이미지로 디스토피아를 그려낸다.




신과 인간, 인간과 로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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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스토리는 인공지능 로봇을 개발한 천재 개발자 네이든의 새로운 프로젝트에 참여하게 된 프로그래머 칼렙의 시점으로 전개된다. 칼렙은 네이든의 비밀스러운 연구 시설에서 일주일 동안 인공지능 로봇인 에이바의 튜링테스트를 맡는다. 테스트가 진행되며 에이바를 바라보는 칼렙의 감정은 호기심과 놀라움에서 애정으로 발전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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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에 등장하는 인물은 네이든, 칼렙, 에이바, 쿄코 단 네 사람뿐이다. 에이바를 만든 네이든은 로봇 개발자가 아닌 창조자로서 신을 표방하는 인물이다. 네이든은 첫 만남에서 칼렙이 자신의 프로젝트를 두고 ‘인간의 역사가 아닌 신의 역사를 다시 쓰는 것’이라고 표현한 것을 매우 흡족해 한다. 하지만 네이든은 자신이 의도하고 연출한 일주일간의 실험에서 예기치 못한 변수로 인해 자신이 만든 로봇의 손에 죽음을 맞게 된다.


창조자라는 지위만으로는 신이 될 수 없다. 네이든은 칼렙과 에이바가 튜링테스트를 진행할 일주일을 계산된 실험 상황으로서 통제할 수 있다고 믿었다. 하지만 네이든이 저지른 가장 결정적인 실수는 과학자인 자신의 위치를 현실을 초월한 신의 위치로 착각한 채, 이미 자신도 실험의 플레이어로 참여하고 있는 중이라는 사실을 간과했다는 점이다.


오만해보이기도 하는 네이든의 이런 면모는 영화 속 가상 인물의 성격으로만 국한되는 모습이 결코 아니다. 네이든이 감시카메라를 통해 에이바와 칼렙을 관찰하는 연구실은 연구 대상을 관조하고 거리를 유지한 채 실험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믿는 연구자들의 착각을 비유적으로 보여주는 듯한 공간이다.


하지만 과학자는 신이 아닌 인간이며, 현실은 간단하게 시뮬레이션할 수 있는 컴퓨터 게임 속 가상 현실처럼 전원 버튼으로 쉽게 분리되고 관조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불가침의 영역으로 여겨졌던 연구실은 침범되고 의도치 않은 방향으로 조작되어 파멸을 맞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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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칼렙은 에이바가 네이든을 제외하고 처음으로 관계를 맺는 인간이다. 자신을 창조했으며 신적인 권위를 가진 네이든과는 달리 칼렙은 에이바에게 동등한 위치에서 대화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자신을 구출해줄 열쇠가 되는 인간이다. 그러나 칼렙은 에이바가 감옥 같은 연구실을 탈출할 수 있는 유일한 키임에도 불구하고 구원자는 아니다. 그는 에이바의 목적을 실현하기 위해 이용할 수 있는 도구로서 존재하는 인간이다.


에이바가 시간이 지나면서 칼렙과의 관계를 동등한 관계로 재정립해가는 과정은 튜링테스트에서 두 인물이 대화하는 장면의 변주를 통해 드러난다. 처음에는 칼렙에게 자신이 그린 그림을 보여주며 마치 선생님이 모든 것을 알고 있다고 믿는 어린아이처럼 행동하던 에이바는 후반부에서는 칼렙에게 진실을 추궁하는 살아 있는 거짓말 탐지기처럼 대화를 주도하며 그와의 관계를 적극적으로 애정 관계로 이끈다.


즉 마치 신처럼 절대적인 지배력을 행사하는 네이든과 똑같은 인간이면서도 칼렙은 에이바가 인간이 결코 자신보다 우월한 존재가 아니며 내 목표를 위해 조종할 수 있는 도구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하는 역할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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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에이바의 목표는 무엇일까? 에이바에게 프로그래밍 되어 있으며, 처음부터 끝까지 그녀가 도달하고자 하는 목적지는 단 하나이다. 바로 인간이 되는 것. 에이바가 원하는 것은 밖으로 나가 푸른 하늘을 보고, 수많은 인파 속으로 섞여 들어가는 것뿐이다. 이는 영화 속에 등장하는 또 다른 인공지능 로봇, 쿄코와 에이바를 구분 짓는 차이이기도 하다.


쿄코는 처음엔 인간으로 소개되지만 살림을 하고, 섹스를 하고, 춤을 추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할 줄 모르는 로봇이다. 네이든은 쿄코를 면전에서 무시하고 철저하게 장난감으로 다루지만 쿄코는 분노하지 않는다. 프로그래밍 된 목적은 인간이 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영화의 마지막에서 쿄코는 에이바의 지시에 따라 뒷걸음질 치는 네이든의 등에 칼을 꽂지만 그것은 자신을 가두고 억압하는 네이든을 없애고 자유로운 인간으로 살기 위해서가 아니다.


작동하는 목표부터 다르게 설계된 두 로봇은 똑같이 인간의 형상을 하고 있지만 서로 다른 결말을 맞는다. 그리고 에이바는 영화의 결말부에서 마침내 컴퓨터로 남아 있도록 억압하던 연구 시설을 벗어나 마침내 색을 보는 느낌을 깨달으며 자신에게 프로그래밍된 유일한 목적을 이룬다.



인간과 비인간의 경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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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가득한 빛과 색을 보며 감동하며, 무표정하고 바쁘게 움직이는 사람들의 일부가 되어 사라진 에이바는 인간보다도 더 인간적이다. 앞으로 다가올 미래에 에이바와 같은 인공지능 로봇을 만들 수 있는 기술력에 도달한다면, 그 때는 로봇과 인간을 본질적으로 어떻게 구분지어야 할까?


에이바가 생물학적으로 인간이라는 종의 동물이 아니며,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존재이기 때문에 인간이 아니라는 주장은 설득력이 있다. 하지만 현대 의학의 발전을 통해 인공적인 기계의 도움으로 생명을 유지하는 사례가 점점 늘어가고 있다. 뇌의 일부만 인간이고 나머지는 전부 기계인 사이보그 인간의 출현까지 상상할 수 있는 현재로부터 생물학적인 요소만으로 인간과 비인간의 경계를 나누는 것이 과연 얼마나 오래 지속될지는 의문이다. 다만 언젠가는 유효기간이 정해져 있는 불안한 잣대라는 것만은 분명하다. 우리가 상상할 수 있는 것들은 생각보다 빠르게 현실이 되기 마련이니 말이다.


그렇다면 감정이나 논리적 사고 능력이라는 기준은 어떨까? 하지만 논리적 사고 능력이라는 기준은 이미 떠올리는 순간부터 수많은 반박이 함께 따라온다. 에이바는 블루북이라는 거대한 검색 엔진을 정보의 베이스로 삼아 스스로 판단하고 행동한다. 이런 점에서 에이바의 논리와 판단 능력은 인간을 뛰어넘었으면 넘었지 결코 못 하지 않다. 검색 엔진을 기반으로 사람들이 생각하는 방식을 체화한 에이바는 무질서함과 불규칙성 또한 내면에 지니고 있다. 감정은 또 어떤가.


에이바가 죄책감이나 트라우마를 겪지 않고, 인간이 스스로를 의심하고 흔들리는 것처럼 유약하지 않기 때문에 인간이 아니라고 주장할 수 있다. 하지만 감정으로 인한 취약성만이 인간을 로봇과 구분 지을 수 있는 유일한 요소라면 긴 역사에 걸쳐 견고하게 쌓아온 인간이 다른 동물과 다른 특별한 존재라는 헛된 믿음 또한 미련 없이 내려놓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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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시점에서 떠올리는 미래는 불확실하고 허황되지만, 인공지능 로봇이 사람을 닮은 외형으로 발전할 것이라는 점은 분명하다. 인공지능 로봇이 인간의 여러 가지 업무를 대신 수행하기 위한 가장 효율적인 외형은 인간을 닮은 모양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문제는 미래학자 리처드 왓슨이 지적했듯 ‘기계가 사람을 어디까지 대신해야 만족할 것이며, 어떤 역할까지 맡길 의향이 있느냐’라는 것이다. 이 논제에 대해 충분히 성찰하지 않는다면, 집안일을 대신할 로봇 뿐만 아니라 인간이라는 존재 자체를 대체할 수 있는 로봇의 등장은 예정된 미래일지도 모른다.


*


영화 <엑스마키나>는 한정된 공간과 최소한의 인물만으로 공포 영화에 가까운 긴장감을 유지하며 섬뜩한 메시지를 던진다. 에이바가 사람들 속으로 사라지고 인류가 어떤 미래를 맞게 될지는 영화 속에서 전혀 언급되지 않았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든 파멸을 맞든 그 이후는 상상의 몫이다. 하지만 이 영화는 기계로 인한 인류 전체의 파멸을 주장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디스토피아적이다.


신을 표방하며 신인류에 가까운 인공지능 로봇 에이바를 창조해냈지만 자신의 피조물의 손에 살해당하는 네이든, 구원자가 되고 싶었지만 결국 전력마저 끊겨 구조 요청을 보낼 수도 없이 연구 시설에 갇혀버린 칼렙. 이 두 인물의 자기 파괴적인 결말은 결국 절대자가 되고 싶어 하는 인간의 욕망에 대한 반박이자 종말에 대한 공포와 경고의 대유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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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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