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그럼에도 살아간다 - 연극 비엔나 소시지 아채볶음

글 입력 2019.04.15 10:15
댓글 0
  • 카카오 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 밴드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 플러스로 보내기
  • 글 스크랩
  • 글 내용 글자 크게
  • 글 내용 글자 작게



KakaoTalk_20190415_092841682.jpg
 


진흙탕 같은 삶 속에서 행복을 쟁취하기 위한 고군분투. 삶 속에서 느껴지는 현실과 이상의 괴리는 늘 너무도 크다. 현실은 참 각박하다. 삶에 생채기를 내고 멍을 들게 한 사람들과의 관계, 그 힘들고 괴로운 환경을 극복하기보다 휘둘리고 지쳐가는 자신, 회복되지 않은 상태로 삶을 지탱하지만 이내 터져버린 댐처럼 무너지는 노력. 폭력처럼 다가온 일상은 또다른 폭력을 낳고 자신을 어그러뜨린다.

연극 비엔나 소시지 야채볶음의 세 주인공은 이런 힘겨운 삶을 버텨내는 청년들이다.


어머니가 물려주신 가게를 접고 새 출발을 시작하려 하는 재영, 이런 재영의 곁을 지키려는 순박한 인상의 성진, 재영의 동생으로 캐나다로 떠날 준비를 하고 있는 재희까지. 그들에게 삶은 폭력 그 자체다. 늘 폭력을 휘두르며 왜곡된 가장의 권위를 지닌 아버지와 함께한 재영과 재희, 이 둘은 그 영향인지 각자의 삶 속에서 일그러진 모습을 보인다.


재영은 삶에서 오는 허무함을 잊으려는 양 나쁜 남자라도 붙잡고 살아왔으며 재희는 자신의 성정체성을 숨기고 현재의 삶에서 도피하려고 애쓴다. 자신의 삶을 대할 때 정반대의 태도를 취하지만 과거의 영향력 속에서 괴로워함은 같다. 그리고 성진은 이 두 남매의 관계에 깊이 얽히게 돼 갈등을 고조한다. 바보같을 정도로 착한 사람이라 믿어 결혼을 결심한 재영과 달리 재희가 겪은 성진은 전혀 다른 이였던 것이다.


군대에 있을 당시 좋은 선임이었던 성진은 재희가 동성애자임을 알고 폭력과 희롱을 일삼는 모습을 보였다. 성진은 자신이 지금까지 학교와 사회에서 폭력의 희생자로 자라왔기 때문에 그와 같은 이상행동이 일어났던 거라며 재희에게 거듭 용서를 구한다. 재희는 재영과 성진의 결혼을 반대하고 행복을 꿈꾸던 모든 것이 풍비박살난 상황이지만, 재영은 성진을 보듬는다. 그리고 이 사이에서 어릴 적 재희가 아버지와 재희에게 양보하느라 먹지 못했던, 그리고 성진이 재희에게 억지로 먹이려 한 기억으로 더이상 먹지 못하게 된 '비엔나 소시지 야채볶음'이 묵직한 상징으로 작용한다.



비엔나_사진3.JPG
 

이처럼 힘든 삶 속에서 문제를 해결하는 방식은 놀라울 정도로 각기 다르다. 출생부터 시작된 폭력이 자신의 성장 과정을 점철했다는 것을 비로소 깨달은 재영은 착한 성진을 만나 푸드 트럭을 하며 새롭게 살아가려 한다. 재희는 자신을 힘들게 한 기억으로 가득한 한국을 떠나 캐나다로 도피하려 애쓴다. 자신의 누나가 가게를 정리하고 받은 돈을 사용해서. 한편 성진은 폭력을 휘둘러온 세상에 자신의 바보다움으로 맞서려 하나, 동네를 지키기 위한 시위에 나가 상대방에게 엄청난 상처를 입히고 피투성이가 되어 돌아온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재영과 재희 사이 감춰졌던 진실이 드러난다.


폭력적인 아버지를 재영이 방파제에서 밀어버린 것이었으며, 그리고 어머니는 사실 가족이 좋아하던 비엔나 소시지 아채볶음에 독을 조금씩 풀고 있었다는 것이다. 아버지만 먹던 소시지를 재영이 먹기 시작한 순간부터 어머니는 독을 타지 못하게 됐고, 지금까지 소시지를 먹지 못했던 것이 마치 '가부장적인 아버지와 어머니의 아들 편애'에서 비롯된 거라 조장해온 분위기는 순식간에 반전된다. 마치 아무 일어 없었다는 듯 살해 계획을 말하는 분위기는 굉장히 짜릿하고도 희극적이다. 어쩌면 재영은 그 누구보다 자신의 삶에 도사린 문제를 적극적이고 투쟁적으로 해결하고 있었던 걸지도 모른다.

인정과 회피, 해결책을 재차 제시하는 다양한 삶의 모습이 공존하지만 한 가지는 꼭 같다. 재영과 성진의 푸드트럭, 그리고 재희의 캐나다는 마치 이루어질 수 없는 꿈처럼 저 멀리에 있다는 점. 반드시 이 곳을 탈출해 새로운 삶을 살겠다 다짐하지만 빈 메아리처럼 다짐하는 말만 맴돈다. 꿈과 목표라고 불리우는 묵직하고 의미 깊은 것들이 극의 결말로 향할수록 한없이 가벼워진다. 인생의 목표라는 것은 어느새 습관같은 말이 된다. 바닥에 굴러다니는 먼지처럼 쾌쾌한 냄새까지 나는 그 말의 감각이 너무도 적나라해 조금쯤 민망해진다. 삶을 너무도 솔직하게 그려낸다.

묵직하고 아픈 내용을 다루고 있지만 그리 괴롭지만은 않다. 절벽 끝에 서있던 듯 위태롭던 일상은 시간이 흐를수록 잊혀져가거나, 혹은 무뎌져가거나, 때로는 서로 맞춰가고 상처를 핥아가며 살아간다. 그럼에도 함께 살아간다. 이 모든 아픔과 고통은 '관계'에서 비롯된 것이지만 그 누구도 이 '관계'를 놓지 못한다. 싸우고, 상처 입히고, 절망하지만 그 속에서 다시 서로를 향한 치유를 얻는다. 사실 치유라는 말은 너무 거창할지 모른다. 그냥 만신창이가 된 서로의 얼굴을 보며 너도 참 힘들구나, 하는 것이다. 그들은 결국 다시 비엔나 소시지 야채볶음을 먹을 수 있게 되었을까? 삶의 민낯이 드러난 흥미로운 연극이었다.


비엔나 소시지 야채볶음_포스터 JPG.jpg
 

[신은지 에디터]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등록번호/등록일: 경기, 아52475 / 2020.02.10   |   창간일: 2013.11.20   |   E-Mail: artinsight@naver.com
발행인/편집인/청소년보호책임자: 박형주   |   최종편집: 2024.04.19
발행소 정보: 경기도 부천시 중동로 327 238동 / Tel: 0507-1304-8223
Copyright ⓒ 2013-2024 artinsight.co.kr All Rights Reserved
아트인사이트의 모든 콘텐츠(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제·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