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트러블 트래블: 서양에서 아시아인으로 존재하기, 첫 번째 [여행]

글 입력 2019.04.15 1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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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답이 없는 여행자다. 기본적으로 길치라 길을 잃는 건 일상이고, 워낙에 조심성이라고는 없는 성격인데다 술까지 좋아하니 가는 곳 마다 사건사고가 끊이지 않고있다. 게다가 물건을 잃어버리는 데는 선수라 행선지마다 내 흔적 하나씩 남기기 까지. 답이 없어도 어쩜 이렇게 없어서 어떻게든 한국에 돌아가는 길만 잃지 않고, 죽을 사건사고만 일으키지 않고, 내 오장육부만 잃지 않는 것을 목표로 여행을 다니고 있다. 그야말로 좌충우돌 천방지축 트러블 트래블.

하루하루가 아슬아슬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2개월 반 유럽여행을 계획했던 처음과 달리 8개월 가까이 여행을 지속중이다. 무엇이 그렇게 문제고, 또 무엇이 그럼에도 여행을 지속하게 만드는 걸까. 말도 많고 탈도많은 내 여행에 대해서, 거기서 깨달은 것들에 대해서 이야기 해보고자 한다.


서양에서 아시아인으로 존재하기


워낙 말이 많은 나이기에, 여행 중에서도 별별 사람들과 만나고 정말 수도 없이 많은 대화를 나눠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행 중에 가장 많이 들어본 말을 꼽아보라면...역 시 '니하오'가 되겠다. 조지아나 아르메니아처럼 상대적으로 덜 투어리스틱한 곳에 와서는 그 빈도 수가 많이 줄긴 했지만, 유명 관광지를 간다고 친다면 100미터도 안 되는 상점가를 걸으면서 최소 15번쯤은 들을 수 있다고 보면 된다. 내가 지나가기만 하면 경쟁적으로 외쳐대는 탓에 이쯤되면 내가 얼굴에 '니하오'라고 써붙이고 다니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까지 들 정도다. 이건 비단 상인들에게만 해당하지 않는다. 그냥 길을 걷는 와중에도 수많은 사람들이 아무 이유 없이 니하오를 외쳐대곤 한다.

그래서인지 지금까지 늘 새로운 나라에 갔을 때 감사합니다, 실례합니다 다음으로 배운 그 나라 언어는 '나 중국인 아니야!'였다. 아시아인들이 서양인들 인종 구분 못 하는 것처럼 당연히 서양인들은 아시아인들의 미묘한 차이를 구분해 내지 못하는 거 아니냐며, 왜 그렇게 기분 나빠하냐고 묻는 이들도 있었다. 왜 굳이 중국인이 아니라고 굳이 부정해야하냐고. 처음으로 이 질문을 마주했을 땐 당황했었다. 나도 생각해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여행을 다니는 내내 고민해봤다. (모두가 합심해서 니하오를 외쳐주는 덕에 지속적인 고민을 하는데 많은 도움이 됐다) 나는 왜 니하오를 들으면 기분이 나쁜 걸까. 혹시 나한테도 미묘한 중국인 멸시가 있는 게 아닐까. 그래서 그들이 나를 중국인으로 착각했다는 사실때문에 기분이 나빴던 건 아닐까.

결론은 아니었다. 사실 나에게 차별적인 시각이 아예 없다고는 할 수 없겠지만, 그럼에도 그건 근본적인 이유가 아니었다. 우습게도 내가 중국인이 아니라 말하면 대부분 사람들의 대답은 'where are you from'이 아니라 '곤니찌와'였는데, 이 또한 기분이 나빴으니 말이다. 그냥 길 가다가 눈만 마주쳤는데 길에서 뜬금없이 합장을 하면서 곤니찌와를 외쳐댔을 대도 마찬가지였고 말이다. 그렇다면 나는 왜 이렇게 '니하오'와 '곤니찌와'를 싫어하는 걸까. 답은 의외의 곳에서 나왔다.



아시아인이란 특이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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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국적의 사람들 중
유일하게 국적을 물음(?) 당하곤 한다


"니하오!"


터키에서였다. 터키 친구 두명과 프랑스 친구 한명과 함께 길을 걷고 있었는데 언제나처럼, 누군가 내게  니하오를 외치고 지나갔다. 평온하게 응 중국인 아니야~하고 대응해줬다. 기분은 나빴지만 별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나한테는 너무 일상적인 일이니까. 하지만 같이 있던 외국인 친구들에게선 격렬한 반응이 터져나왔다. 쟤 왜 저러는 거냐며, 너무 무례한 거 아니냐고. 그래서 무례한거 맞는데 나한테는 너무 일상적인 일이라고 하니까 더더욱 깜짝 놀랐다. 나는 그들이 깜짝 놀랐다는 것에 대해서 놀랐다. 인종을 떠나서 으레 외국 나가면 당연한 일이라 생각했는데, 아니었나?

그들이 해준 말은 놀라웠다. '하이, 헬로'하고 말을 걸어오려고 하는 경우는 있어도 특정 언어로 인사를 해오는 경우는 거의 없다는 것이다. 프랑스인 친구는 딱 한번 누군가 자기에게 '봉쥬르'하고 인사를 해오는 걸 경험했는데, 그조차도 당황스러웠단다. 터키인 친구는 저런 행각을 하는 무식한 터키인들때문에 자기가 다 나한테 미안하다고 말했다. 나는 그 모든 상황조차 당황스러웠다. 나한테 너무너무 일상적인 일이었는데, 이게 이들에겐 이렇게 놀라고 미안해하기까지 할 정도로 큰 일이구나. 그 경험을 통해 서양에서 모르는 사람이 뜬금없이 'hi'가 아닌 다른 인삿말을 외치는 게 '아시아인'에게 한정된 일이었다는 걸 깨달았다.

이러한 기시감은 외국인 친구들과 어울리면 어울릴 수록 강해졌다. 아르메니아에서는 스웨덴 친구와 이란 친구와 함께 어울렸는데, 아르메니아 사람들 기준에선 우리 셋 다 누가봐도 명확히 외국인의 외모를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이상하게 어딜가도 누굴 만나도 사람들은 내 국적을 제일 먼저 궁금해했다. 물론, 그 또한 'whre are you from'이 아니었다. "치나? 자폰? 필리피노?" 고맙게도(?) 내 국적을 물은 다음 차례대로 다른 사람들의 국적을 묻는 이들도 있는 가 하면, 내 국적만 알아내고서 만족했다는 듯 돌아서는 이들도 있었다. 대체 내 국적이 왜 그리도 궁금한 걸까. 왜 그렇게 나를 중국인이나 일본인으로 만들지 못해서 안달이 난 걸까. 내가 뭐라고.

이런 일들을 몇번 겪으면서 사람들이 니하오, 곤니찌와를 외치거나, 치나? 자폰? 이라고 당연스레 물을때 느꼈던 내 불쾌감의 이유를 깨닫게 됐다. 중국인 취급당하거나, 일본인 취급당하고 싶지 않아서가 아니라 단지 내가 아시아인이라는 이유만으로 평가당하고 판단당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들이 만들어놓은 틀 안에 맞춰지기 싫었기 때문이었다. 아시아인이라는 이유만으로 특이점이 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아무래도 서양국가 쪽에서는 아시아인이 상대적으로 적고, 그래서인지 보다 쉽게 스테레오 타입을 만드는 경향이 있다. 아시아인만 보면 대부분 니하오를 외쳐대는 이유는 동아시안은 대부분 중국인일 것이라는 스테레오 타입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 사람을 그 사람 개별로 존중하기보다는 중국인이라고 확 쉽게 치부해버리는 것이다. 그게 훨씬 쉽고 간단하니까.



참을 수 없는 모멸감의 가벼움


운전기사 석과 내 자리는 꽤나 거리가 있었음에도 그는 열심히 "치나"를 외쳐댔다

사실 상인들이 그러는 건 사실 어느정도는 이해가 가긴 했다. 인구 수로 따지면 정말 중국인들이 더 많기도 하고, 상인 입장에선 '니하오'에 기분 나빠하는 사람보다 귀를 기울이는 사람들이 많다면 던져볼만한 수 중 하나이니 말이다.(물론 존중적이지 않은 태도인건 자명하다)

더욱 큰 문제는 이해관계와 관련이 없는 일반인들이 그럴 때다. 아무런 이해관곅가 없는 데도 그렇다는 것은, 그런 생각과 태도가 그냥 몸에 배있다는 거니까. 누군가는 그게 훨씬 쉬우니까 그들에겐 당연한거 아니냐고 물을 수도 있다. 그냥 니하오나 곤니찌와에 기분 나빠하지 않으면 되는 거 아니냐고. 하지만 그냥 그렇게 넘기기엔 이러한 태도들은 훨씬 더 멸시적인 상황들을 만들곤 한다.

한번은 마슈르카라고 불리는 미니버스를 탔을 때였다. 타자마자 금액을 지불했는데 운전사와 돈을 받았던 사람 사이 의사소통에 문제가 생겼는지 운전기사가 내가 돈을 냈다는 사실을 몰랐었다. 나는 금액을 지불했고, 또 갈 길이 멀었기에 그냥 이어폰을 꽂고 창밖을 바라보고 있었는데 운전기사가 뭐라뭐라 외치는 게 느껴졌다. 하지만 내 귀가 트일만한 단어는 없었기에 다른 사람에게 하는 말이겠거니 하고 그냥 가만히 있었다. 그러다 분위기가 뭔가 이상해서 이어폰을 빼 보니, 운전기사는 나를 보면서 '치나! 치나! 치나!'를 외치며 손으로 돈 표시를 하고 있었다.

단지 아시아인이라는 이유로 중국인으로 치부당한 불쾌감이 앞섰고, 두번째로는 그가 나를 그런식으로 호명할 수 있던 이유도 내가 '아시아인'이기 때문이란 생각이 들어서 기분이 나빴다. 모멸감이 들었다. 분명 운전기사는 다른 사람에게 나를 가리키며 불러달라고 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외국인이나 아시아인을 불러달라고만 말했어도 그 차안의 모두가 나인걸 알았을 테니까) 만약 내가 아시아인이 아니었다면 그는 분명 다른 방식을 취했을 것이다. (그가 서양인을 보며 아메리카! 아메리카!라고 외쳤을 거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그러나 그는 그냥 쉬운 길을 택했다. 그가 의도적으로 아시아인이라고 무시하려했다고 생각하진 않지만, 멸시적인 태도가 있었음을 부정할 수도 없다.

거기다가 더욱 큰 문제는, 희소하기 때문에 '신기해'하기까지 한다는 것이다. 마치 동물원 원숭이를 보는 것 처럼. 신기하기에 뭐라고 말이라도 더 붙여보고 낄낄거리고 싶으니까, 자기가 아는 유일한 단어인 니하오나 곤니찌와를 외쳐보고 시작하는 것이다. 거기에 반응해주면 즐거워하고, 반응을 하지 않으면 그것 나름대로 자기들끼리 낄낄거리고. 같은 '사람'이라기보다 '신기한 생명체'쯤으로 보는 시각. 나는 길을 걸어다니는 다른 모든 사람과 마찬가지로 단지 행인1에 불과한데 아시아인이라는 이유 만으로 그들이 '쉽게 장난치고 인사할 수 있는' 존재가 된 것이다.

*

하나 하나에 분노하다보면 여행을 지속하기 어려울 정도로 자주 있는 일이라, 최근들어서는 크게 불쾌해하지도 않고 있긴 하지만 내가 이 모멸감에 익숙해졌다는 사실 자체가 서방국가에서 '아시아인'이 어떤 존재인지를 보여준다.

정착 생활을 한 것도 아니고, 고작 7-8개월 되는 시간 여행을 다녔을 뿐이지만. 그렇기에 더더욱 다양한 사람들을 만났고 다양한 곳을 가보았기에 (누군가와 대화하면서 스테레오 타입을 깨면 또 다른 이들을 마주해야했으니까) 뼛 속 깊이 느낀 '서양에서 아시아인으로 존재하기'. 더 이상 "아시아인"이란 꼬리표를 달지 않아도 되는 날을 바라본다.


[권희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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