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예술이 삶이 되고, 삶을 예술로 바꾼 세 명의 작가 [시각예술]

나혜석, 프리다 칼로, 니키 드 생팔을 만나다
글 입력 2019.04.15 2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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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소개하고 싶은 작가는 총 세 명이다. 부조리한 사회의 현실, 정신적 혼란, 개개인이 품고 있는 고통 등을 예술로 승화시킨 멋진 작가들이다. 바로 나혜석, 프리다 칼로, 니키드 생팔이다. 처음 이 셋 작가를 각각 마주했을 때, 세상에 안주하지 않는 모습에 반했다. 불합리함을 느끼고 이에 대해 끊임없이 목소리를 낸 그들의 용기가 무척이나 멋있게 느껴졌다. 한편으론,  그들이 느껴왔을 아픔을 생각하니 마음이 불편하고 아리기도 했다.


그래서 이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 글을 써내려가고 싶었다. 그들의 이야기를 다시금 수면 위로 올려 이 글을 읽는 사람들의 마음에 짙은 인상을 남기고 싶었다. 그 어떤 글과 말보다 진한 예술이라는 매체로 각자의 삶을 뚜렷이 담은 세 작가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1. 나혜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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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의 아내가 되기 전에 내 자식의 어미이기 전에 첫째로 나는 사람인 것이오"



한국 최초의 여성 서양화가이자 문인이다. 상류층에 태어나 예술가적 자질을 순탄히 살릴 수 있었다. 그녀는 친오빠의 영향을 받아 일본 유학길을 떠났고 서양화에 대한 안목을 더욱 넓히며 역량을 키워나갔고 조선 미술의 역사에 획을 긋는 사람으로 거듭났다. 또한 문인으로서 <경희>(1918), <어머니가 된 감상기>(1922), <이혼고백장>(1934) 와 같은 글을 쓰며, 조선 사회의 가부장적 사회를 꼬집었다.


그녀는 서구 사회를 여행하며 그녀가 사는 세상의 문제를 고찰하는 시간을 가졌다. 삶에 대한 방식, 남녀 공존의 방식, 여자로서의 삶, 예술가로서의 삶 등을 고민하며 많은 깨달음과 영감을 얻었다. 그 이후, 그림과 글로 꾸준하게 자신의 목소리를 내던 그녀는 남편과 아이들에 대한 문제로 심신이 병들어 갔고 고독하게 삶을 마무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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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화상>, 1928



작품 <자화상>이다. 얼핏 봐도 나혜석의 이미지와는 조금 거리가 있어 보인다. 큰 눈과 코는 서양 여성을 떠오르게 한다. 이 작품을 그렸을 때, 작가는 세계 여행 도중 프랑스 파리에 체류 중 이었다. 조선 사회보다 비교적 평등하고 개방적인 서구 사회의 여성들을 보며 부러움을 느꼈고 이들을 자신의 위에 덮어 그렸다.


작품의 분위기는 어둡고 우울함이 가득 느껴진다. 힘없는 눈빛과 무표정은 좌절에 빠진 주인공을 나타내는 것 같다. 그녀가 자화상을 이토록 우울하게 표현한 이유에 대한 추측은 다양하다. 가부장 사회 속에 살아가는 여성을 표현했다는 추측, 이혼을 앞둔 씁쓸하고도 고독한 심경을 담아냈다는 추측까지 다양하다. 차가운 심해 같은 푸른 배경과 자신이 될 수 없는 가면과 같은 서구적 외관은 그녀의 내적인 공허함을 더욱 텅 비어보이게 만든다.




2. 프리다 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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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적인 것은 없다. 모든 것은 바뀌고, 모든 것은 움직이고, 모든 것은 회전하고, 모든 것은 떠오르고 사라진다.”



프리다 칼로는 멕시코 출신의 유명 화가이다. 6세 때 소아마비로 다리가 쇠약해졌고, 18세엔 교통사고로 척추, 다리, 자궁을 크게 다쳤다. 사고로 인한 정신적 육체적 고통을 겪은 그녀는 홀로 고통과 싸워야 했다. 정치에 관심이 많았던 그녀는, 멕시코 문화운동과 관련해 벽면에 프레스코 벽화를 그리는 디에고 리베라를 만나게 된다. 그리고 그의 영향으로 프리다 칼로는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남편 디에고의 문란한 생활, 세 번의 유산, 수차례의 수술은 그녀의 신체를 망가뜨렸다. 그러나 그녀의 정신은 무너지지 않았다. 내재된 강인한 힘과 의지가 돋보였고 이는 곧 그녀의 작품에 그대로 나타났다. 어떠한 장애물도 그녀를 넘어뜨릴 수 없었음을 느낄 수 있다.


여성으로서의 삶 그리고 정치에 대한 신념을 예술로 표현한 멕시코의 대표적 여성 작가 프리다 칼로. 그녀의 죽음 이후 1970년대 일어난 페미니즘 운동은 세계가 그녀를 다시 주목하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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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처 입은 사슴>, 1946


화살을 맞아 피를 흘리는 사슴, 부러진 나뭇가지, 암갈색의 어두운 숲이 보인다. 이는 자신의 환경적 한계, 신체적 한계를 의미하는 것임을 추측할 수 있다. 여성으로서의 주체적 삶을 살아가지 못하는 현실 그대로를 냉정히 표현했다.

뒤편엔 일반적인 천둥의 의미인 위기, 위험의 느낌보다 희망의 느낌이 난다. 어두운 숲속을 헤매다 천둥소리라는 희망적 돌파구를 들은 프리다 칼로를 표현한 것 같다. 그녀는 천둥소리를 듣고 넓고 푸른 바다로 향했을 것이다.

암흑 같은 숲 안에서 화살을 맞은 사슴의 표정은 이성적이며 오히려 우리를 정확히 응시하고 있다. 아픔에 굴하지 않고, 절망에 휩싸이지 않는 그녀의 정신이 느껴진다. 주어진 운명을 받아들이고 자신에게 내재된 희망을 믿고 전진한다. 이와 같은 프리다 칼로의 예술은 여성들에게 정신적 지지가 되어주고 있고, 고통스러운 환경에 굴하지 않는 든든한 지주의 역할을 해주고 있다.




3. 니키 드 생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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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아주 어렸을 적부터 권력은 남자들에게 있다는 사실을 알았고.. 그 자유를 내 것으로 만들기로 결심했다.”



니키 드 생팔은 독창적 스타일을 구축한 누보 레알리즘의 대표 작가이다. 보수적인 가톨릭 집안에서 태어나 전통적이고 순종적인 여성성을 강요받으며 자라왔다. 가족에게 성적 학대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사회가 원하는 여성의 틀에 갇혀있어야만 했다. 결혼 후, 규정된 엄마의 역할에 적응하지 못했고 우울증에 시달리게 되었다. 외롭고 힘든 유년기와 청년기를 그녀는 20대에 예술로 자신의 고통을 승화하며 분노를 표출했다.


그녀는 고통에 정면으로 대응하는 ‘슈팅 페인팅’을 처음으로 선보였다. 분노를 삼키지 않고 직접적으로 표현함으로써 처한 현실과 남성에 대한 증오심을 치료하였다. 예술가로서 활동하며 만난 다양한 사람들을 통해 니키는 상처를 극복해나갔고, 예술의 힘을 나누며 대중에게 위로를 건네기도 했다.


작품 ‘나나’시리즈를 구상하며 자신감 있고 행복한 여성상을 표현해 나갔다. 그녀의 작품이 모아져 있는 타로 공원이 정식 개관한 1998년 이후, 플라스틱 독성으로 죽음을 맞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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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샘의 나나 : 백색의 춤추는 나나>, 1971/1992


‘나나’시리즈는 니키 드 생팔의 명성을 드높인 작품이다. 여성의 대상화를 거부했던 생팔은 일반적인 여성의 판단 기준을 지웠다. 작품에 눈, 코, 입과 표정은 드러내지 않았고, 늘씬하고 조신한 모습이 아닌 풍만하고 역동적인 모습을 드러냈다. 또한 형형색색의 밝은 컬러를 입은 나나는 유쾌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이는 사회의 상징적 질서 안에서의 여성의 위치를 묻는 동시에, 관념적인 미의식을 뒤집는 질문을 하고 있는 것이다.


사회가 여성에게 요구하는 억압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게 생팔은 끊임없이 예술로 외쳤다. 자유로움을 꿈꿀 수 있고, 기쁨의 에너지를 표현할 수 있고, 주체적인 삶을 살아갈 수 있음을 모든 이에게 전하고 있다. 그리고 거대한 나나는 누군가가 기댈 수 있는 따뜻한 안식처의 느낌이 든다. 자신과 같은 아픔을 겪는 사람들에게 든든한 지지자가 되어주겠다는 생팔의 의지가 느껴진다. 각양각색의 ‘나나’시리즈는 생팔의 삶과 가치관이 고스란히 전해진다.


*


나혜석, 프리다 칼로, 니키 드 생팔을 만나보았다. 이 세 작가의 공통점은 여성으로 살아가며 마주하는 사회적, 개인적 문제들에 대해 목소리를 냈다는 것이다. 목소리의 주요 수단은 ‘예술’이었고 예술은 이들의 고통을 승화시켜주었고, 사회에 비판적 메시지를 남겼으며, 믿고 기댈 수 있는 버팀목의 역할을 해주었다.


남성 중심적 사회, 억압된 여성성 강요, 가까운 가족과 연인으로부터의 신체적/정신적 폭력으로부터 벗어나려 했던 세 작가의 용기는 나의 마음을 뒤흔든다. 열어보면 고통스럽기에 일부로 외면했던 것들이 많았다. 나의 힘으로 바꿀 수 없는 것들이 너무나 많다고 여겼고, 어디서부터 잘못됐는지 가늠 조차 할 수 없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그러나 세 작가의 강인한 정신은 바위에 계란치기라고 생각해 애써 현실을 회피했던 과거의 나를 되돌아보게끔 만든다.


예술이 삶이 되고, 삶을 예술로 바꾼다. 이 세 작가의 인생과 염원을 이렇게 한 문장에 함축시키며 글을 마무리 해본다.



[고지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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