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마음에 스민 핏자국 - 세번째 살인 [영화]

글 입력 2019.04.16 13: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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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영화는 내게 좋은 듯 아리송한 미온수같은 영화다. 아직 맛을 알아가는 중인 슴슴한 평양냉면 같기도 하다. 메세지는 좋지만 늘 개인적인 아쉬움이 있었다. 많은 이들이 예찬했던 영화 역시 음, 좋기는 한데 이렇게 뜨뜻미지근하게 끝나는 것인가 싶었다. 전개를 따라가면서 이제 달궈질 준비를 하다가 임계점에도 이르지 못하고 찬물에 빠진 것 같았다. 대신 뒤는 질척거리지 않고 깔끔했지만 아쉬웠다. 혹시 모르지, 너무 자극적이고 드라마틱한 것에 익숙한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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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와중에 본 <세번째 살인>은 가장 마음에 들었던 영화다. 법정에서 재판을 하고, 살인사건이 나오는 영화 중에 이렇게 뜨겁지 않은 영화가 있었던가. 미디어에서 그려지는 법, 정의, 재판은 실제로 보면 아주 덤덤할 것이다. 마음이야 뜨겁지 않겠냐만은, 글쎄, 마음도 뜨거울까? 업이 되다 보면 놀라지도 않고, 새롭지도 않고, 당황하지도 않게 될 것이다. 당사자의 마음은 뜨거울지 몰라도 이를 행하는 이들의 마음 역시 뜨거울까? 그런 기대는 한 수 접어둔지 오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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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빛만 봐도 범인인 줄 알았지


마음에 든다. 차갑고 모호하다. 분명 의도했을 것이다. 차가운 영화는 되려 머리를 뜨겁게 하고, 모호한 전개와 결말은 더 고민에 빠뜨리게 한다. 그도 그럴게 꽤 단순해보였다. 30년 전 사람을 죽였던 미스미. 일하던 공장 사장을 죽였다고 자백을 했다. 지갑도 훔쳤고. 검찰에선 강도살인죄라고 보고 이렇게 되면 보나마나 사형감이다. 변호사 시게모리는 이미 얼추 진행된 이 사건을 맡았다. 사형을 받지 않기 위해 적어도 강도는 아니었다고 볼 전략을 짠다. 진실보다는 재판의 전략 상 우리에게 유리한, 그럴듯한 맥락을 이용하는게 좋다. 그래야 성과가 된다. 설사 그걸 내가 믿지 않고 있더라도, 상대방이 상처를 입을지라도 어쩔 수 없는 것이다. 그냥 다 된 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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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단순하지 않았다. 먼저 피고인 미스미. 희한한 건 피고인의 말과 태도가 좀 왔다갔다한다는 점, 그가 공장사장의 시체를 불태우고 남긴 십자가 모양. 의미를 부여하자면 많은 이야기가 숨겨져 있는 것이었다. 여기서 궁금해지는 것이다. 그가 변덕을 부릴 때 다른 사람 같았다. 순하게 잘못을 인정하는 듯하다가 날이 서서 죽여도 마땅한 놈에게 왜 미안하냐고 차갑게 묻기도 했다. 그 중에 무엇이 그의 본심이었을까? 게다가 피고인은 심판자를 부러워했다. 사람의 목숨과 운신할 자유를, 재산과 시간을 결정하는 판사를 무척 부러워했다. 그가 사건 현장에 남긴 십자가가 심판이라면 그는 누구를, 혹은 무엇을, 어떻게 심판하고자 했던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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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도, 살인 혐의를 쓴 피고인도, 참숯구이처럼 타버린 시체도 영화 속에서 가장 무서운 존재가 아니었다. 제일 기억에 남는 건 눈짓으로 오가는 '법조계의 한 배를 탄 뱃사공들'이었다. 사건은 분명 원점으로 돌아갔다. 쟁점이 달라졌다. 미스미가 자백이 거짓이라 한 것이다. 자백이 사실이 아니라면 강도살인죄의 댓가로 사형죄에 처할지를 다루지 말아야 했다. 그가 범죄자가 아니라면 다른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다시 시작해야 했다. 그러나 그들은 그럴듯하게 그 문제를 오늘 한꺼번에 다루기로 했다.

담당 판사가 좀 바쁜 모양이다. 본인이 바쁘지만 대의적으로는 '소송경제'를 위해서다. 과도하게 시간을 허비해서는 안 되니까. 우린 모두 바쁜 사람들이니까. 그 시간에 사건을 하나 더 맡아야지. 같은 말이 머릿속을 스쳐갔다. 판사는 곤란한 표정을 지으며 제안했고, 한 마디 하려던 검사는 잠잠해졌고, 변호사도 말없이 수긍했다. 어지간한 공모와 다를 게 없었다. 거기에 담담한 한마디가 흘러나왔다. 어차피 그래도 결과가 바뀌진 않을거라고 생각한거라고. 우리는 한 배를 탄 법조계 사람들이라고.

이럴 때 법을 교양으로 아는 사람들은 '무죄추정의 원칙'에 어긋난다며 외칠지도 모르겠다. 그러면 이들은 뭐라고 말할까. 우리는 우리가 일할 때 늘 맞는대로 처리하냐고 되물을지도 모른다. 아, 좀 애매하게 아니다 싶은데 그래도 위에서 하라고 하고 여태까지 그래왔고, 전임자가 그랬고, 그렇다고 완전 아니다 싶은 건 아닌 것. 그런 거 투덜거리면서도 하지 않았냐고 말이다. 법조계를 탓할 것만은 아니라고. 게다가 우리는 전문가인데 아무렴 자네들보다 알면 알지 않겠냐고. 수긍하든 그렇지 않든 중요한 건 지켜보게만 될 확률이 높다. 우리는 그런 힘도, 자리도, 자격이 없다. 누군가를 심판하는 과정에 우리는 배심원 정도로 눈을 뜨고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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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에는 인간, 삶과 죽음, 심판에 대한 고민이 드러난다. 먼저 인간. 인간은 얼마나 불완전한 존재인지, 인간의 본성은 선천적, 후천적인 것 중 어디에서 결정되는지. 인간이 인간스러운 면모 중 하나는 완전하지 않으면서 완전함을 끊임없이 추구하는 것이다. 다른 동물들이 자연의 섭리라며 받아들이는 것들을 늘 궁금해하고 도전했다. 무언가를 죽이고 죽는 것은 자연스럽다. 동물들은 소중한 것을 잃으면 화를 내며 힘으로 상대에게 복수한다. 그러나 인간은 다른 길, 심판을 선택했다.

혹자는 무서워서 그렇다고 한다. 힘이 없어서, 죽음도, 끝없는 복수가, 세상에 대한 공포가 무서워서 말이다. 어쩌면 우린 동물과는 다르다는 그 우월감과 믿음 하나 때문은 아니었을까. 지능이 높고 두발로 걷는 하드웨어적인 차이점 말고. 동물과 우리의 차이는 윤리와 도덕이라는 소프트웨어에 있는 것이 아니냐며. 우린 손에 피를 묻히지 않을 것이고, 유구한 역사와 변화, 발전을 이뤄 내고, 힘보다는 남다른 이성으로 교양있게 처신해야하는 것이 아니냐면서 말이다.

이유가 무엇이든 우리는 대신 심판해줄 이들을 고르기로 약속했다. 가장 극단적인 결과인 사형이 눈에 띄기 마련이다. 요즘엔 사형보다는 무기징역을 선호되는 편이다. 징역 100여년이 넘게 선고되는 것 보면 그게 사형과 뭐가 그리 다른가 싶지만 일단 당장 끊어내지는 않는다. 멈칫했을 것이다. 우리 중 누군가에게 생명을 끊을 만한 권리가 있는가, 자기도 모르게 태어난 이를 세상에서 없애 버릴 수 있는가, 그런 중요한 문제에서 실수가 있었다면 돌이킬 수 없는 것 아닌가 싶은 고민 때문에. 실제로 많은 실수로 억울한 사람들이 삶을 잃었다.

우리가 아무리 선하고 뛰어나고, 상대가 아무리 잘못을 했다고 해도 마음 한 켠이 찜찜하다. 다같이 죽이기로 합의되면, 죽어 마땅하니까 죽이면 그건 살인이 아닌가? 혹은 두 손에 피를 묻히지 않으면 살인이 아닌가? 심판은 늘 옳은 것도 아니었고, 하다못해 늘 최선인 것도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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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선악은 선천적으로 결정되는가. 변호사 시게모리의 아버지는 피고인의 첫번째 살인을 재판했던 담당 판사였다. 그는 그 때 피고인에게 큰 벌을 내리지 않았다. 당시의 분위기가 사회가 사람의 선악에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하는 분위기였기 때문이었다. 사실은 그 놈은 죽었어야 한다고 아버지는 되뇌었다. 그 놈처럼 태어나지 말았어야 하는 사람이 있다는 판사의 말이, 자신 역시 태어나지 말았어야 한다고 죽고 싶었다고 말하는 피고인 미스미의 말. 죽어 마땅한 사람이 없다는 신입 변호사의 말은 외마디처럼 흩뿌려지고 이에 반대하는 변호사 시게모리의 말까지 한데 모인다.

스스로가, 혹은 누군가 죽어 마땅하다는 입장이 다수였다. 신입도 머지 않아 그리 변할 것이다. 태어나지 말아야 할, 죽어 마땅한 사람은 없다던 생각이 언제 그랬냐는듯. 전문가의 염세적인 직업병처럼. 말하면서도 씁쓸해진다. 금을 긋는 것이다. 나는 그런 인간과 다르다고. 죄를 저지르는 인간과, 그 실수를 반복하는 인간과, 날 때부터 그런 인간과 나는 다르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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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이 무엇이었는지 어차피 당사자가 아니면 완벽히 알 수가 없다. 심판의 한가운데에 있는 사람들은 당사자가 아니다. 그들은 사실 남들보다 많은 정보와 지식을 갖고 있을 뿐이며, 그들은 이 일의 담당자일 뿐인 것이다. 단순해 보이는 사건에 진실 같아 보이는 것들이 가닥가닥 숨어 있다 막바지에 나왔다. 죽은 공장사장이 생각보다 '못된 놈'이었던 것이다. 누군가의 남편이자 아버지는 한쪽 다리를 저는 딸 사키에를 성폭행하고, 출처를 모르는 밀가루로 제품을 만들어 납품하는 사람이었다.

딸은 그래서 아빠가 죽기를 내심 바라던 차였고, 미스미가 아버지를 죽인 건 그 사실을 알고 자기 대신 죽여준 것이라 생각한단다. 새삼 그녀의 아버지는 운이 좋지 않은가. 누군가 그를 죽였기에 그를 희생자로 기억될 것이다. 그가 아주 못된 일을 저질렀어도 그는 이미 죽었다. 죽음이 그의 죄와 진실을 안고 사라졌고, 그의 못된 행적은 몇몇을 제외하고는 알지 못한다.

설상가상으로 피고인이 갑자기 자신의 자백을 번복했다. 누굴 위해서인지도 알 수 없다. 자신 혹은 고통받은 피해자의 딸 때문인지. 애당초 그가 자백하지 않았으면 이렇게 진행되지 않았을텐데 아무도 자신을 믿지 않는다며 하소연을 한다. 이제와서 믿음을 논한다. 그는 자신의 목숨을 걸고 실험하는 걸까? 과하긴 하다. 변호사도 검사도, 피고인도, 뒤늦게 성폭행 사실을 털어놓으려 하는 딸도. 준비가 되지 않았거나 너무 늦었거나, 진실인 척 하는 거짓을 말하는 수도 있다. 영화 마지막에 이렇게 안개를 듬뿍 흩어버리면 어쩌자는 건가. 그걸 지켜보는 변호사의 흔들리는 눈동자만큼이나 이 모습을 스크린에서 보는 내 눈동자 역시 흔들렸다. 물론 나는 그의 진심도 잘 모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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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 순서상 세 명이 죽었다. 명수로 보면 피고인이 과거에 죽였던 못된 조폭 2명, 이번에 죽은, 역시 못된 공장사장 1명. 총 3명이다. 제목이 세 번째 살인인 건 세 명의 살인과는 다르다고 본다. 건수로 보는 조폭, 공장사장, 그리고 곧 죽을 피고인 본인이 좀 더 적절해보인다. 세번째 살인, 피고인을 죽게 하는 사람, 살인자는 한두 사람이 아니다. 그게 첫번째, 두번째 살인과 가장 다른 점이다.

이번 살인은 심판을 시행하는 이들과, 심판을 당하거나 지켜보는 이들 모두 해당된다. 전자는 그를 사형에 처한 판사와, 기소한 검사와, 막지 못한 변호사. 후자는 살인 여부에 대한 입장을 바꾸며 스스로를 곤란하게 만들었던 피고인, 죽였는지는 알 수 없지만 분명하게 살의가 있었던 공장사장의 딸 사키에, 그걸 지켜보면서 의견을 냈던 배심원들. 죽음에 대한 책임이 자연스럽게 흩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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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의 무게를 느끼는 건 영화 속 포스터의 세 명, 미스미, 시게모리와 사키에 뿐이다. 세 명 모두 얼굴에 튄 핏자국을 닦는 듯한 행동을 한다. 공장사장의 피는 이 세명의 얼굴에 묻었을 수도 아닐 수도 있다. 그러나 세 명의 얼굴에 공통적으로 묻을 피는 미스미의 것이다. 미스미의 얼굴에는 사형이 집행될 때 스스로의 피가 묻을 것이다. 시게모리는 재판이 끝나고 그는 살인자가 된 것처럼, 얼굴에 피가 튀긴 것처럼 얼굴을 문지른다. 싸이코패스인지, 우발적 범죄자인지, 누명을 쓴 사람인지 모르지만 곧 교도소 창가 너머의 미스미의 진심을 이제서야 보려고 애쓴다.

얼마 남지 않은 온기로 그를 이해하기 위해서. 자신이 생각하는 진실, 아버지의 죄를 말하지 못했던 피해자의 딸 사키에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혹시나 그녀가 그 말을 했다면 미스미가 죽지 않았을지도 모른다면서. 그 날 집에 돌아오는 길에, 혹은 집에서 거울을 보며 그녀 역시 오른쪽 뺨에 보이지 않는 핏방울을 문질렀을 것이다. 핏자국은 지워지지 않는다. 이미 마음에 흔적도 없이 스며들었기 때문에.


[장지원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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