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어른을 만드는 재료 [기타]

글 입력 2019.04.16 1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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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 = ?



어른이 된다는 건 뭘까. 생각해보면 나는 단 한 번도 내가 어른이라고 말하거나, 진정 그렇게 생각해 본 적이 없다. 고등학교, 중학교 시절에는 어른이라고 생각했던 나이가 되었지만, 아직 나는 스스로 어른이라 말하기엔 민망한 사람인 채다.


그때 당시에 나는 때마다 학교에 오는 교생 선생님들을 어른이라고 생각하였고, 지금도 그 사람들이 어른이라고 생각한다. 티비 드라마에 나오는 인턴 사원들이나,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바로 취업 전선에 뛰어든 사람들도 모두 어른이라고 생각했고 지금도 그렇게 생각한다. 그러나 달라진 점은 이제 그들이 모두 나의 친구이거나 좌우간 내 또래의 사람들이라는 점이다.


그러니까 어른이라는 건 나이를 먹는다고 되는 건 아닌 게 분명하다. 국어사전에 어른을 찾아보았을 때, 어른이란 명사, <1. 다 자란 사람, 또는 다 자라서 자기 일에 책임을 질 수 있는 사람> <2. 나이나 지위나 항렬이 높은 윗사람> <3. 결혼을 한 사람> <4. 한 집안이나 마을 따위의 집단에서 나이가 많고 경륜이 많아 존경을 받는 사람> <5. 남의 아버지를 높여 이르는 말>을 뜻한다.


결혼을 한 사람이 어른이라는 세 번째 뜻은 지금 시대에는 영 맞지 않을 것 같고 아무래도 가장 고개가 끄덕거리게 되는 뜻은 첫 번째 뜻인 자기 일에 책임을질 수 있는 사람이라는 의미다. 자신을 책임 질 수 있는 사람. 자신을 경제적으로 책임질 수 있는 사람. 내게는 어른이 자꾸만 그런 뜻으로 읽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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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직을 하게 된 친구에게 너 정말 어른 같다고 말한 적이 있다. 매달 꼬박 월급을 받고, 회사명이 적힌 명함을 가지고 있던 친구였다. 교생 실습을 나가게 된 친구에게 너 정말 어른 같아.라고 말한 적도 있다. 아이들을 가르치고 말끔한 정장을 입고 있던 친구였다.


그들은 모두 내게 이렇게 대답했다. 너도 어른이잖아. 그러나 나는 돈을 벌지 않고 있는데. 마지막으로 번 돈이라고는 벌써 몇 년 전에 그만둔 편의점 알바가 전부이니 (빈말이라고 할지라도) 누군가에게 어른 소리를 들으면 못 견디게 민망해지는 것이다. 그렇게 웅얼대며 변명하면 (마찬가지로 빈말일지라도) 이런 대답이 돌아온다. ‘돈 번다고 다 어른이냐.’ ‘돈 안 벌어도 어른이지.’


*


자본주의 사회에서, 스스로를 책임지기 위해 돈이 필요한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나를 오롯이 책임질 수 있다는 게 경제적으로 남에게 손을 내밀지 않는 것으로 전부일까? 돈이 많아도 전혀 어른스럽지 않은 사람들은 분명 많이 있다. 가난해도 존경받는 어르신들이 있고, 법적으로 미성년인 나이에 경제활동을 하지 않는 청소년들에게도 ‘어른보다 더 어른답다’라는 수식을 우리는 익숙하게 사용한다.


경제적인 독립뿐 아니라, 나와 내 주변의 사람들 사이에서 책임을 회피하지 않고 오롯이 최선을 다할 수 있는 사람이 정말 어른이라면, 결혼을 한 사람이 어른이라는 문장은 어쩌면 여기에서 이어지는 말 일지도 모르겠다. 결혼을 하거나 가정을 가진다는 것은 아내를, 남편을, 자식을, 부모를, 즉 내가 아닌 남을 책임져야 한다는 의미로 여겨질 수도 있으니까.


그러나 ‘어른 = 결혼을 한 사람’이라는 문장보다는 ‘어른 = 타인을 책임질 수 있는 사람’이라는 문장이 낫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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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왕자가 어른을 위한 동화라는 데에 공감할 수 없었던 어린 시절이 있었다. 노란 머리의 작은 소년이 다른 별에서 새를 타고 날아왔다는 이야기, 장미꽃과, 여우와, 노란 뱀과 대화하는 이야기가 어째서 어른들을 위한 이야기일까? 이 상상속에서만 일어날 법한 일들은 정말이지 어린 아이다운 이야기가 아닐까?


처음 어린왕자를 알았던 어린 시절, 나는 그렇게 생각했고 ‘어른들은 정말 이상해’라고 말하는 어린 왕자의 말에 절반의 공감과 절반의 의문을 가졌었다. 아름다운 집을 숫자로만 묘사하고, 시간을 아끼기 위해 갈증을 없애는 약을 만든다는 것은 확실히 이상하다. 그런데 어른들이 정말 그럴까? 너무 이상한 비약이 아닐까? 그런데 이제 와 생각해보니, 정말 그렇다. 나는 어느 정도 그런 어른이 되어있었다.


친구가 자취를 한다고 하면 그 집의 모양이나, 위치나, 전망보다도 보증금은 얼마이고 월세는 얼마인지 물었고, 길을 걷다 문득 이건 얼마 저건 얼마 추측하며 이야길 나눴다. 갈증을 없애는 약 까지는 아니더라도 잠을 자지 않아도 되는 약, 밥을 먹지 않아도 되는 약이 나오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하곤 했다. 어른들은 정말 이상하다고 생각하던 어린 왕자에서, 그 이상한 어른이 되어버린거다.


*


어린 왕자에 대해 이렇게 다시 생각하게 된 것은 얼마 전 낭독 뮤지컬 <어린 왕자>를 본 뒤였다. 극장을 나오며, 소설 어린 왕자를 꼭 다시 읽어보아야겠다고 생각했다. 결국 어린 왕자도 책임에 대해 이야기한다. 길들인다는 것은 책임을 가진다는 이야기이다. 여우는 사람들이 그것을 잊었다고 이야기한다. 그러니까 결국 남은 것은 진짜 어른이 아닌 이상한 사람들뿐이다.


어린 왕자가 어른들의 동화가 아니라 어른들을 위한 동화인 이유가 여기 있지 않을까. 어른을 만드는 재료가 그 무엇보다도 책임감이길, 그리고 모두가 그를 통해 어른이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김민혜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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