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을 사는 사람들] 세계로 중국 미술의 문을 열어젖힌 컬렉터, 울리 지그

글 입력 2019.04.16 2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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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 아트바젤에서 만난 중화권 미술계 선구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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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홍콩 아트바젤이 얼마 전 3월 31일에 막을 내렸다. 아트바젤(ArtBasel)이란 해마다 개최되는 국제 아트페어, 즉 전세계의 수많은 갤러리들이 한곳에 모여 각자의 작품을 전시하고, 컬렉터들에게 판매하는 행사이다. 1970년 스위스 바젤에서 처음으로 시작된 이 행사는 미국 마이애미(2002년), 홍콩(2013년)으로 확대되었고, 이제는 3월 홍콩, 6월 바젤, 12월 마이애미 스케줄로 고정되어 세계 각지의 미술 관계자들과 애호가들은 해마다 비행기를 타고 아트바젤 투어를 한다. 올해 홍콩 아트바젤은 VIP 오프닝 포함 3월 27일부터 3월 31일까지 열려 미술인들의 발길을 모았다.

 

아트바젤 홍콩에서는 전시뿐만 아니라 관람객을 위한 다양한 프로그램을 준비했는데, 그 중 하나가 바로 미술계의 주요 인사들을 초청해 한 주제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는 컨버세이션(Conversation) 프로그램이다. 이번 아트바젤의 첫 번째 컨버세이션은 지금은 세계적인 위상을 차지하는 중국미술이 급부상하기 시작했던 1990년대의 현장에 대해 존슨 창, 울리 지그와 같은 주요 중국미술계 선구자들이 대화하는 자리로 구성되었다. 홍콩에 방문하기 전 홍콩 아트마켓에 관해 여러 자료를 접하며 그들의 이름을 숱하게 들었던 나는 설레는 마음으로 컨버세이션을 관람했다.



YouTube - Art Basel Hong Kong 2019 Conversations full ⓒArtBasel

왼쪽부터 Antony Dapiran(사회자), Chang Tsong-zung, Dr. Claire Roberts, Uli Sigg, Karen Smith


 

존슨 창(Chang Tsong Zung, 1951~)울리 지그(Uli Sigg, 1946~)에 대한 간단한 설명을 하자면, 둘 다 중국이 사회적으로나 문화적으로 격동의 시기를 보내던 때에 아무도 주목하지 않았던 중국 미술을 세상에 알리고자 노력한 인물들이다. 존슨 창이 중국인으로서 자신이 차린 한아트TZ 갤러리를 통해 중화권 미술을 서구권을 비롯한 전세계에 알린 갤러리스트라면, 울리 지그는 스위스인으로 우연히 중국에 오게 되어 중국 예술가들에게 관심을 가지게 된 후, 몇 십년간 그들의 작품을 수집하고 연구하고 있는 컬렉터다.


 


울리 지그, 중국미술 컬렉팅의 선구자


 

아트바젤 전시장 현장을 누비는 울리 지그는 온화하고 소박한 모습이었지만 그가 어떤 컬렉터인지를 알고 있는 이들에게는 특별한 아우라가 느껴졌을 것이다. 그는 2020년 개관을 목표로 한창 공사가 진행 중인 홍콩 엠플러스(M+) 미술관에 경제적, 미술사적으로 굉장한 가치가 있는 중국 미술 컬렉션을 기증한 것으로 큰 화제가 되었다. 30여 년간 수집해온 컬렉션 중 그가 기증하기로 발표한 1463점의 작품은 아이웨이웨이, 쩡판즈, 장샤오강과 같은 주요 작가들의 작품을 포함해 1억 7000만 달러(한화 약 1946억 원) 상당에 달한다. 그러나 그의 컬렉션 기증이 놀랍고 대단한 진짜 이유는 바로 그 자체만으로 중국 격동기 미술의 흐름을 고스란히 보여줄 수 있는 완성도의 컬렉션이라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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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체 한 개인이 어떻게 그 정도 수준의 컬렉션을 가질 수 있었을까? 그것도 중국인이 아닌 먼 유럽에서 온 스위스인이 말이다. 울리 지그와 중국 미술과의 인연은 1970년대 말, 그가 다니던 엘리베이터 회사(쉰들러)의 중국 합작법인을 설립하기 위해 중국으로 떠나던 것에서 시작되었다. 당시 외국 기업이 거의 들어서지 않은 미지의 땅이었던 중국에서 지그는 중국인들과 직접 부딪히고, 여러 정치 사회적 상황을 고스란히 겪으며 중국 내 해외 기업 진출의 모델을 구축해나갔다. 그러면서 중국의 예술가들과 그들의 작업을 접하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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쉰들러 중국지사 부회장 시절의 울리 지그.

in the documentary directed by Michael Schindheim

 


그러나 그가 본격적으로 중국 예술가와 교류하며 그들의 작품을 수집하게 된 것은 10여 년이 지나 그가 스위스 대사로 임명되어 중국에 다시 돌아오게 되면서였다. 지그는 스위스 대사관에 걸려 있던 스위스 출신 미술가들의 작품이 중국인들에게 큰 감흥을 불러일으키지 못한다는 것을 알고, 그것들을 중국 현대미술 작가들의 작품으로 교체하기 시작했다. 당시에는 중국인들조차도 중국의 현대미술을 접할 기회가 없었기 때문에 울리 지그가 대사로 있던 시절의 스위스 대사관은 사실상 최초의 중국 현대미술관이 되었다.

 

그는 중국 미술 컬렉팅에 있어서 상당히 진지한 태도를 가진 인물이었다. 단순히 투자 목적이나 취향에 맞는 작품을 몇 개 사들인 것이 아니라, 오랜 기간 중국 미술을 연구하면서 당대 중국 사회를 시각화한 중요한 작품이라 판단되면 가격이나 작가의 유명도에 상관없이 작품을 꾸준히 수집했다. 그것은 어떤 사명감이었을까? 중국인은 물론 외국인들 중에서도 중국의 미술을 알아보고 제대로 수집하는 컬렉터가 거의 전무했던 시절, 지그는 그대로 두면 중국의 미술이 “사라질까 두려웠다”고 느꼈다고 한다.


만약 울리 지그, 존슨 창, 카렌 스미스와 같은 선구자들이 없었다면 당시 중국의 현대 예술가들의 활동이 제한되었을 것이고, 훗날 그 시대를 바라보는 우리의 시각 역시 제한되었을 것이다. 그래서 그의 컬렉팅은 “미술이 시대를 반영하고 시대의 철학과 사고를 시각적으로 보여주는 산물”이라는 신념을 담대하게 실행한 이상적인 본보기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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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li Sigg, in the documentary directed
by Michael Schindheim
 



아이웨이웨이와의 인연


 

지그는 대사관 일이 끝나고 나면 밤 10시가 넘어서도 예술가들의 스튜디오를 돌며 방문했다고 한다(그는 우스갯소리로 이 세상 모든 예술가들이 대부분 늦게 일어나 작업을 시작하기 때문에 자신이 시간을 맞추어 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다 아이 웨이웨이(艾未未, 1957~)를 만났다. 아이 웨이웨이는 중국의 대표적인 반체제 아티스트로, 중국 정부에 대한 신랄한 비판을 예술로써 표현하며 현재 세계적인 영향력을 미치는 예술가다. 그의 스튜디오에 울리 지그가 찾아간 것은 아이 웨이웨이가 뉴욕에서 공부하며 개념미술을 작업을 하다 갓 돌아온 시점이었다. 지그가 그의 스튜디오에서 수 천년된 중국 도자기에 ‘코카콜라’ 로고를 그려넣은 작품을 보고 마음에 들어 하자 아이 웨이웨이는 그 작품을 주었다고 한다. 그렇게 두 사람의 인연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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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 the book Ai Weiwei(2016)

by Hans Werner Holzwarth

 


지그는 중국 작가들의 작품을 적극적으로 수집한 컬렉터였을 뿐만 아니라, 작가들과 다른 예술계, 문화계 인사들을 연결시켜 그들에게 기회를 열어주기도 했다. 전설적인 큐레이터 하랄드 제만(Harald Szeeman, 1933-2005)은 1999년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중국 작가 20여 명을 핵심적인 위치에 전시했는데, 그때 그가 자문을 구하고 아이 웨이웨이를 소개 받은 것도 바로 울리 지그를 통해서였다. 그 파격적인 전시는 중국 미술에 대한 세계인의 관심을 집중시킨 계기가 되었다. 또 2008년 베이징 올림픽 주경기장을 건축한 스위스 건축가 자크 헤르초크와 피에르 드 뫼롱(Jacques Herzog & Pierre de Meuron)와 아이 웨이웨이를 연결시켜 그를 올림픽 경기장의 아트컨설턴트로 참여시킨 것 또한 울리 지그였다. 그래서 웨이웨이는 지그가 자신을 만들어준 ‘메이커(maker)’라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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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WEIWEI, Dropping a Han Dynasty Urn, 1995
three gelatin silver prints ⓒArtAsiaPacifi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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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친구 아이 웨이웨이의 작업에 참여한 울리 지그

 



 


울리 지그는 1997년 중국의 유망 작가에게 주는 중국현대미술상 CCAA(China Contemporary Art Awards)를 제정하고, 지금까지도 중국의 젊은 작가들의 작품을 수집하고 연구하는 일을 계속하고 있다. 국가와 문화를 초월한 미지의 세계에 선뜻 뛰어들어 그것을 발굴하고 아카이빙하는 작업을 십 수년째 계속하고 있는 그의 탐험가적 정신에 경외감을 느낀다. 그리고 어떠한 신념을 가지고 그것을 누구도 알아주지 않았을 때부터 많은 사람들이 주목할 때까지 흔들리지 않고 밀고 나간 그의 모습도 닮고 싶다. 이제는 컬렉터보다는 ‘연구자’로 불리기를 원하는 지그. 미술계에 그와 같은 컬렉터들이 조금 더 많아지기를 기대한다. 울리 지그가 중국 미술의 문을 열어젖히는 데에 일조한 것처럼, 누군가 우리가 미처 보지 못했던 새로운 예술의 문을 열어줄지도 모른다.


 

“그는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화산과 같은 사람이에요.

겉으로는 잠잠하지만, 사실은 아주 활동성이 넘치죠.”


- 리타 지그(울리 지그의 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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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 웨이웨이가 자신을 모델로 한

조각 작품 옆에 앉아 있는 울리 지그.

The real Uli Sigg hangs out with an Ai Weiwei rendition of Uli Sigg.

Photo by Bild: PD. From the Neue Zurcher Beitung,

a German-language Swiss newspaper.

 


참고자료

책 <아트마켓 홍콩>, 박수강, 주은영 지음, 아트북스, 2015년.

다큐멘터리 The Chinese Lives of Uli Sigg, directed by Michael Schindheim, 2017.

중앙SUNDAY – 중국사 퍼즐 맞추듯 미술품 사 모으는 남자 Uli Sigg

Seoul Art Guide 칼럼 - (27)승강기 팔러 갔다가 중국 그림 2,000점 수집한 울리 지그, 남들은 ‘컬렉터’라지만 내 목표는 ‘연구자’

YouTube - Art Market Talk | ArtAsiaPacific at 25 | Early Days: The Chinese Art Market in the 1990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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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현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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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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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샤프위의포뇨
    • 중국 팝아트 작가 수업을 들은 적이 있는데 서양 미술가와는 다른 독특한 매력이 있더군요. 아이웨이웨이를 비롯한 중국의 현대 작가들이 중국의 탄압을 피해 이렇게 성장할 수 있는 배경에 울리 지그가 있었다니 신기합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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