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운명을 믿으시나요? [영화]

영화 [500일의 썸머] 리뷰
글 입력 2019.04.18 2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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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은 가정의 달, 수많은 웨딩 마치가 열리는 달이기도 하다. 쇼핑몰들은 앞다퉈 결혼식 하객룩을 선보이고 하객들은 매주 주말 다른 사람의 결혼식에 자리를 빛내기 바쁘다.


결혼식 주례사에는 대부분 서로가 평생의 동반자임을 약속하는 맹세를 담고 있다. 혼인 서약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앞으로 남은 인생을 이 사람과 함께하겠다는 약속을 형식적으로 치르는 것이 결혼식이고 법적으로 동의하는 것이 혼인신고다. 결국 흔한 말로 누군가의 남편, 아내가 된다는 것은 상대방과 사랑의 약속을 하고 그것을 지켜나가는 일이라고 할 수 있다.


일상 속에서 우리는 수많은 약속을 하고 가끔은 그중 몇 개를 깨버리기도 한다. 우리는 그 약속에 대해 누구든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도 또 언제든 깨질 수 있다는 것도 잘 알고 있다.


그런데 사랑하는 사람과의 결혼을 약속으로 단정 지으려니 무언가 탐탁지 않다. 사랑하는 사이라는 건 약속으로 결속된 사이가 아니라 이루어질 수밖에 없는 운명이라 믿었는데 말이다.




그 500일의 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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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기 평범한 남자 톰과 보통 여자 서머가 있다. 톰은 썸머에게 첫눈에 반해 그녀의 모든 것에 의미를 부여하기 시작했다. 웃는 모습, 귀여운 무릎, 목에 난 점, 웃음소리까지 톰은 그녀가 주는 모든 느낌에 걷잡을 수없이 빠져들었다. 운명처럼 그들은 같은 회사에 근무하며 똑같은 노래를 좋아했고 공통 관심사가 많으니 톰이 그녀를 운명이라고 생각하게 된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다.


정확히 500일 동안 톰은 그녀를 사랑했고 그녀에게 버림받아 아파했다. 영화 <500일의 썸머>는 톰의 시점에서 썸머를 사랑하고 그녀 때문에 아파하는 연애의 시작과 끝을 사실적으로 보여준다. 갑작스러운 그녀의 이별 통보 그리고 결혼 소식은 그녀를 운명의 상대라고 확신했던 톰에게 청천벽력 같은 소식이 아닐 수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썸머는 톰과 만나면서 진지한 관계는 싫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다.


연애는 좋지만 더 이상 깊은 관계는 싫다는 그녀의 말에 동의하고 만남을 시작한 것은 톰이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톰은 썸머에게 자신의 존재를 확인받고 싶어 한다. 모든 사랑하는 사이가 그렇듯 상대방에게서 확신을 얻지 못하면 그 관계의 신뢰는 깨지기 십상이다. 그랬던 그녀가 자신에게는 쉽게 이별을 고하고 다른 남자와 결혼이라니.


영화는 이대로 끝나지 않는다. 그와 그녀는 예전에 함께 찾았던 장소에서 우연히 다시 만난다. 그곳에서 유부녀가 된 썸머는 아직 실연의 상처가 남아있는 톰에게 이렇게 말한다. 



"그냥 그렇게 됐어."


"어느 날 아침에 일어나 깨달았어."


"너랑 만날 때는 몰랐던걸."



운명론을 믿었던 톰에게 이별을 고하고 썸머는 네가 아닌 다른 사람과 운명임을 깨달았다고 말한다. 그리고 톰은 다시 제 인생을 살아간다. 늘 그렇듯 어찌됐든 삶은 흘러가는 법이니까.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톰이 새롭게 면접을 보러 간 회사의 로비에서 'Autumn 가을'이라는 여자를 만나 스스로 우연을 운명으로 바꾸면서 끝이 난다.



톰이 배운 것이 있다면

누구도 위대한 우주의 이치를

거역할 수 없다는 것이다.


우연, 그것은 우주의 이치다.

그보다 위대한 건 없다.


톰은 기적은 없다는 것을 배웠다.

운명 같은 건 존재하지 않는다.


정해진 건 아무것도 없으므로.



그는 이제 깨달았고 확신이 생겼다. 그래서 그의 1일은 여름이 지나간 자리에 가을과 함께 다시 시작한다. 그의 지난 500일은 운명이라 믿었던 썸머와의 만남이었고 앞으로의 나날은 붙잡고 싶은 우연을 모아 제 의지로 새롭게 시작하는 만남이 될 것이다. 사랑하는 사이는 그들이 운명이라서 그렇게 될 수밖에 없었던 것이 아니라 단지 그 우연한 만남을 붙잡는 노력이 있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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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명론을 믿던 아니던 누군가와의 결혼은 약속의 일종이고 우리에게 남은 것은 그것을 지켜내려는 노력과 의지이다. 썸머가 톰이 아닌 다른 사람에게서 운명을 느꼈듯 운명은 한 쪽만의 판단으로 결정되는 것도 아닐뿐더러 애초에 정해진 것도 아니다. 우연을 가장한 노력만이 당신이 운명이라고 믿고 싶은 상대와 이루어지도록 도와줄 것이다. 다른 것은 아무것도 장담할 수 없다.


때문에 영화 속에서 톰과 헤어지고 다른 남자와 결혼을 택한 썸머는 나쁜 여자가 아니라(물론 톰에게는 그렇게 느껴질 수 있다) 그저 그녀가 톰에게 쏟았던 노력이 톰이 그랬던 것보다 덜 했을 뿐이고 톰이 느꼈던 운명적인 충동을 그녀 역시 다른 사람에게 느꼈던 것뿐이다. 그걸로 다른 설명은 필요 없다. 톰은 또다시 다른 사람과 우연히 만날 것이고 사는 동안 또 다른 누군가에게 마음을 빼앗길 것이다.


과거 우리는 모두 누군가에게 톰이었고, 썸머였고 또 가을이었다. 영화 속에서 이들처럼 현실에서도 가만히 앉아서 운명을 기다리는 것보다 우연한 만남으로 인연을 만드는 편이 당신의 삶을 훨씬 다채로운 색으로 채우는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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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요빈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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