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The100dayproject, 그 마지막은. [문화전반]

Day 45일차, 전체적으로는 5개월만에 도전 실패를 받아들이다
글 입력 2019.04.19 0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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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침차게 시작했던 프로젝트가 흐지부지 막을 내렸다. '와! 해냈다!' 를 외칠 만큼 뿌듯한 결말도 아니거니와, '이건 아니다', 혹은 '이번에는 시기가 맞지 않았다. 다음번에 좋은 기회로 다시 해야겠다' 말할 만큼 깔끔한 결말도 아니다. 오늘 하루만 건너뛴 거니까, 내일은, 모레는, 다음주에는 재개해야지 반복하다가 결국 아무것도 아니게 되어버린 참으로 뒤가 찜찜한 마무리다.

얼마전에 읽은 짧은 에세이가 떠올랐다. 성공 사례 보다는 실패 사례에 집중해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이유는 성공하기 위해 '해야 할 일'은 해나가는 과정에서 배울 수 있지만, '하지 말아야 할 것'은 실패해보기 전에는 알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도 내 도전이 실패한 이유에 대해서 생각해봤다. 완주하고 싶다는 미련이 들러붙어 쉽게 놓아주지 못했던 프로젝트를 떠나보내며, 부끄럽지만 이 또한 나의 성장을 위한 경험이라 믿고 기록으로 남겨보려 한다.



100일의 도전 프로젝트를 시작할 때


굉장히 설레고 들떠있던 기억이 난다. 슬슬 슬럼프에서 벗어나고 있는 것 같았고, 이대로만 하다보면 100일 뒤에는 놀라우리만큼 향상된 실력을 가지고, 어딘가에 그간의 그림들을 보여주며 이런 프로젝트를 진행한 적 있다는, 일종의 포트폴리오로 사용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마음만큼은 벌써 98일차쯤 온 것처럼.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조금 불안했다. 언제부터인지 모르게 스스로의 꾸준함에 대한 신뢰를 잃었던 나는, 그길로 100일 프로젝트를 내 인스타그램과 아트 인사이트에 공유하기로 했다. 나의 단순한 다짐은 믿기 어려워도, 공개적으로 프로젝트를 진행하면 의무감 때문에라도 완수해내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이 있었던 것 같다. 스스로에 대한 온전한 확신을 가지고 시작했다면 더 좋지 않았을까, 이제는 아무래도 소용없는 가정을 잠시 떠올려본다.



깔끔하지 못한 휴식


실패한 이유가 한 가지로 귀결되지는 않는다. 생각해볼수록 너무 많은 이유들이 떠올라 한숨 쉬다가, 글로 적어보면 빠르겠다 싶어서 펜을 꺼내들고 마인드맵 그리듯 이런저런 이유들을 써봤다. 그리고 그중에서 가장 내 명치를 세게 때린 건, '깔끔하지 못한 휴식'이었다.

어떤 날은 정말 도전을 이어가고 싶지 않은 날들이 있었다. 무엇을 그려야 할지도 모르겠고 내가 나아지고 있는지도 모르겠고, 그냥 쉬고 싶기만 한 날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런 날은 그냥 모든 걸 내려놓고 하루쯤 속편히 쉬는 게 나았을 것이다. '100 Days Project' 본부에서도 그렇게 말한다. 하루 정도 넘어가도 너무 걱정하지 말아요. 그리고 우리 함께 끝까지 해봐요! 이게 바로 나에게 필요한 마음가짐이었다. 그러나 성실함과 책임감의 무게에 짓눌려있던 난, 저 말을 핑계삼아 나를 둘둘 감싸면서도 마음속에서 불안감을 채 지우지 못했다.

이런저런 악몽을 꾸며 밤새 뒤척인 다음날은 몇 시간을 잤든 잔 것 같지 않게 몸이 삐걱거리고 쉽게 피로해진다. 휴식도 마찬가지다. 나는 죄책감 없이 나에게 휴가를 주고, 부채감 없이 일에 복귀하는 그 수위조절을 할 줄 몰랐다. 그리고 차곡차곡 쌓여가는 부채감은 나 자신에 대한 부정적인 관념을 덧씌우고 또 덧씌워갔다. 나는 왜 이렇게 핑계에 관대한 건지, 언제부터 내가 이렇게 불성실해진 건지, 정말 내 의지력은 이것밖에 안 되는 건지. 나는 정말 게으른 사람이구나, 내가 이걸 완수할 수 있을까, 해낸다고 해도 정말 뿌듯할까. 그리고 이 방해물은 시야를 가리는 데서 멈추지 않고 행동을 제약하고 의지를 깎아내려 결국 악순환의 늪에 빠지게 한다. 이게 바로 내가 도전을 미루는 횟수가 잦아지고, 불편한 휴식이 길어지다못해 결국 흐지부지 끝내버리게 된 가장 큰 이유다.



타인의 시선 의식


그리고 다음으로 큰 이유는 어찌보면 우리나라 사람들 중 정말 많은 수의 사람들이 앓고 있는 고질병이다.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고, 타인의 관점에 의거해 나 자신을 재단하는 버릇. 내 주위 사람들은 나를 무던한 편이라고 생각하고, 나 자신도 그렇게 남 시선을 많이 의식하지 않는 편이라고 여겼는데, 문득 돌아보니 꼭 그렇지만도 않았다. 이건 정말 꼭 집어 칼로 자르듯 분류할 수 없는, 그런 종류의 개념이다.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는 사람들이 모두 같은 분야에 대해, 같은 정도로 눈치를 보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나는 어떤 부분에서는 매우 둔감하기 때문에 얼핏 다른 사람의 눈치에 움츠러드는 일이 거의 없는 사람처럼 보이지만, 다른 어떤 분야에서는 정말 소심한 모습을 분명히 가지고 있다. 나는, 내 자질을 드러내보이는 데 있어서 타인의 인정에 매우 목마른 사람이었다.

어느 날은 그림이 정말 마음에 들게 잘 나왔고, 좋은 피드백도 많이 받았다. 그러면 그날은 기분이 좋지만, 그 다음날에는 어깨가 한결 무거워진다. 아. 어제 그렇게 괜찮은 그림을 그렸으면 오늘은 좀 더 잘 그려야 할 것 같은데 대체 뭘 그려야 하지? 무슨 재료를 쓰는 게 좋을까. 어떤 느낌으로, 어떤 스타일로 그리는 게 좋을까. 어제랑 비슷한 그림을 또 올리면 좀 그런데, 색다른 무언가가 없을까.

이런 부담감은 천천히 본질을 흐려갔다. 어느새 나는 '그림 연습' 대신에 매일 한 편의 '작품'을 올리고 그에 코멘터리를 달아야 한다는, 처음 의도와는 상당히 달라진 생각에 매여 있었다. 그리고 나는 방향도 목표도 잃은 채 매일 '오늘치 그림을 그려야 하는데...'하는 부담감을 무거운 돌처럼 양 발목에 묶고 수면 아래로 가라앉아 버렸다.



모호한 경계선과 불확실한 기대


100일의 도전을 하면서, 무엇을 그려야 할지에 대한 고민을 안 한 날이 드물 정도로 매일 그런 고민들을 했다. 그러다가 가끔 새로운 프로젝트가 떠오르곤 했는데, 결론적으로는 그것도 그림을 그리는 일이었다. 친구들의 초상화 혹은 일러스트를 그려서 선물하기 같은 것들. 그리고 떠오른 생각은, 이것도 어쨌든 그림을 그리는 일이니까 100일의 도전 프로젝트에 포함해도 되는 것 아닐까? 문제는 여기에서 비롯된다.

나는 이 선물을 서프라이즈로 전달하고 싶었다. 처음엔 하루만에 다 그릴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인원이 많아지니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그런데 SNS에 공유하고 나면 더이상 서프라이즈가 아니게 되기 때문에 업로드할 수도 없었다. 그러면, 다 그릴 때까지 업로드를 미뤘다가 선물하고 난 후에 한꺼번에 올리자! 정말 큰 판단착오였다. 그렇게 나에게 합법적으로 유예를 주고 나니 일의 진행속도는 더 늘어지기 시작했다. 어차피 한 번에 올릴 거니까.

아 오늘 그린 건 왠지 마음에 안 차는데 내일 새로 그려야겠다. 하루 또 건너뛰게 되겠지만 그래도 한 번에 올릴 거니까. 꾸준하게 하나씩 하기보다 한 번에 크게 하겠다는 포부를 위해 매일 미루고 미루는 모습이 지금 생각해보면 질 나쁜 도박에 빠진 사람과 다를 게 없다. 정말 큰 성공이란, 어느날 갑자기 생기는 게 아니라 하루하루 쌓여서 마침내는 산이 되는 거라는 걸 기억하고 있어야 했는데.

하루하루 눈에 보이는 결과들이 쌓여가는 건 나 자신의 자신감 상승을 위해서도 상당히 중요하다. 궁극적으로는 '그림연습'과 '실력향상'을 위해 이 프로젝트를 시작했던 나에겐, 작은 선 연습 하나라도 매일 하는 것이 좋아요를 많이 받을지도 모르는 멋진 그림 하나를 뚝딱 만들어내는 것보다 더 중요했는데. 프로젝트가 진행될수록 나는 그 사실을 잊어갔다. 그리고 그건 불확실한 어느날에 대한 기대를 안고 오늘을 흐지부지 넘기는 결과를 낳았다.



마지막이 항상 깔끔할 수는 없지만


지저분하고 부끄럽게 끝났다는 사실이, 그래서 다시는 아무것도 시작할 수 없는 이유가 되지는 않을 것이다. 나는 그렇게 믿는다. 이번 100일의 도전은 이렇게 마무리 지었지만, 나에 대해 생각해볼 시간을 가질 수 있었고, 많은 고민과 함께 교훈을 가져다주기도 했다. 이 일을 그저 단편적인 해프닝으로 넘기지 않고, 두고두고 나를 끌어주고 밀어줄 경험으로 삼아 다음에는, 그 다음에는 점점 더 나아진 나를 발견할 수 있도록. 이렇게 글을 쓰고 기록을 남긴다.


100프로젝트의 마지막.jpg
(미루고 미루며 중간중간 그렸던 프로젝트의 마지막)



류소현.jpg


[류소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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