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view] 너와 나의 페미니즘 - 환희, 물집, 화상

연극 '환희, 물집, 화상' 프리뷰
글 입력 2019.04.19 20:27
댓글 0
  • 카카오 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 밴드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 플러스로 보내기
  • 글 스크랩
  • 글 내용 글자 크게
  • 글 내용 글자 작게


환희물집화상-포스터.jpg
 

'페미니즘 붐'이라 부를 수 있을 만큼 사회 곳곳에서 억눌려 있던 여성의 목소리가 쏟아져나온 지 5년째다. 아무것도 변하지 않은 것 같다가도, 돌아보면 많은 게 변했다. 이제 '페미니즘'이라는 단어에 욕을 하든 지지를 표하든 단어 자체가 생소한 사람은 없을 것이다. 문화예술계에도 시대 변화에 응답하듯 여성이 주인공이 되어 여성의 이야기를 하거나, 사회의 성차별을 이야기하는 작품이 조금씩 늘어나고 있다.


'페미니즘 연극'이라 불리는 <환희, 물집, 화상>은 그중에서도 특별하다. 이야기 속에서 자연스럽게 페미니즘을 다루는 대다수 작품과 달리 아예 '페미니즘 강연'을 전면에 내세운 일종의 '렉처 퍼포먼스'이기 때문이다. 연극은 여성학 교수인 캐서린이 그의 친구인 가정주부 그웬과 그의 베이비시터 에이버리를 상대로 페미니즘 강연을 하며 벌어지는 일들을 담는다.


환희물집화상_공연사진(c극단8월_김희지)4.jpg
 


<시놉시스>


대학원 룸메이트였던 캐서린과 그웬은 졸업 후 서로 다른 길을 선택한다. 캐서린은 더 큰 꿈을 위해 런던으로 떠나고, 고향에 남은 그웬은 결혼을 해 가정을 이룬다. 시간이 흘러, 유명 학자가 된 캐서린은 어머니 앨리스의 심장발작 소식을 듣는다. 문득 불안과 외로움을 느낀 캐서린은 안식년을 맞아 고향에서 어머니와 함께 지내길 결심한다.

고향으로 돌아온 캐서린은 그곳에서 페미니즘 강의를 시작하지만 강의를 신청한 이는 그웬과 그녀의 베이비시터인 에이버리 둘 뿐, 전업주부로써 현재 자신의 삶을 부정당하고 싶지 않은 그웬과 자신의 욕망에 솔직한 에이버리는 수업마다 열띤 토론을 벌인다. 그들과 함께 토론하던 캐서린은 문득 자신이 정말 원했던 삶이 무엇인지 고민에 빠진다. 수업이 진행될수록 서로 갖지 못한 것들에 대한 교감을 느낀 캐서린과 그웬은 결국 위험한 자리 바꾸기 게임을 시작하기로 하는데…


페미니즘을 둘러싸고 다양한 논의가 오가는 모습은 낯설지 않다. 우리나라 역시 2015년부터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강남역 살인사건, 미투운동, 불법촬영 규탄시위 등 여러 굵직한 사건을 거치며 페미니즘 외부에서는 물론이고 내부에서도 다양한 이야기가 오갔다. 그 과정에서 새롭게 등장한 담론이나 변화한 내용도 많다.

가장 대표적으로 떠오르는 게 '탈코르셋 운동'이다. 페미니즘이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기 시작한 2015년 무렵에만 해도 '탈코르셋 운동'은 거의 거론되지 않았다. 그때는 오히려 화려한 외모와 입담으로 성차별주의자에게 '사이다'를 날리는 '쎈 언니' 이미지가 페미니스트들 사이에서도 더 매력적으로 다가오곤 했다. 그러나 2017년 말부터 '탈코르셋 운동'이 대두되며 여성의 꾸밈 뒤에 '노동'이라는 단어가 붙기 시작하고, 꾸밈노동을 하지 않은 자신의 모습을 SNS에 올리며 '탈코인증'을 하는 사람들이 생겨났다.

이러한 변화가 불과 2년 사이에 일어났다는 걸 생각하면 페미니즘 담론이 변해 가는 속도를 체감할 수 있다. 탈코르셋 운동은 하나의 예시일 뿐이다. 지금도 페미니즘을 둘러싼 여러 가지 논의가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어느 것이 옳고 그름을 떠나 분명한 것은 페미니즘이 매우 유동적인 담론이라는 점이다.


환희물집화상_공연사진(c극단8월_김희지)62.jpg
 

2015년 이후 빠르게 변하는 우리나라의 페미니즘 담론 속에서 나 역시 많은 변화를 겪었다. 페미니즘을 알아가던 초반에는 다른 사람들을 만날 때 답답함을 많이 느꼈다. 내 눈에는 모든 게 부조리한데, 왜 사람들은 생각을 바꾸지 않는 건지 의아했다.

지금와서 고백하지만 그 이면에는 약간의 지적 허영심도 있었던 것 같다. 거대한 감정 덩어리 같아서 이리저리 잘 휩쓸리던 나의 페미니즘은 시간이 지나며 조금씩 언어로 설명할 수 있는 논리가 되어가는 중이다. 페미니즘에 대해 '나만의 생각'을 가질 수 있도록 노력하며, 나는 페미니즘이 모두에게 동일하게 적용되는 공식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는다. 페미니즘을 접하고 그 필요성을 느낀다고 해서 모두가 같은 방식으로 생각하고 행동할 수는 없다.

변하는 속도도, 모습도 제각각이다. 어쩌면 누군가는 연극에 나오는 그웬처럼 여성이라고 할지라도 페미니즘의 필요성을 그다지 느끼지 못할 수도 있다. 너와 나는 다른 사람이고, 그러므로 너의 페미니즘과 나의 페미니즘도 같지 않은 것이다.


환희물집화상_공연사진(c극단8월_김희지)55.jpg


페미니즘이 모두에게 다르게 적용된다는 것을 잊을 때, 페미니즘은 페미니스트를 검열하는 수단이 되기도 한다. 최근에 인터넷 상에서 그런 경우를 종종 본다. 물론 성평등과 여성해방을 이루고자 하는 페미니즘의 기본 목표에 반대하는 안티페미니스트는 구분할 필요가 있다. 하지만 페미니스트라고 밝힌 사람들을 하나 하나 검열하고, 거기에 어긋나는 부분만을 지적하며 당신은 페미니스트가 아니라고 규정해서 얻는 것은 무엇일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페미니즘이 수학 공식과 같아서 옳은 것과 틀린 것 두 가지 답만 존재한다면 차라리 편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인간이기에 옳다/그르다로만 완벽하게 결론 내릴 수 없는 문제에 자주 직면한다. 페미니즘의 역사와 이론을 아는 것은 중요하지만, 그것만으로 세상을 바꿀 수는 없는 이유다. 이론에 앞서 그 이론을 이해하고 행동으로 실천하는 사람들이 필요하다. 그러므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이론을 칼처럼 벼려 사람을 엄격하게 재단하는 것이 아니라 이론을 도구 삼아 성평등과 여성해방을 원하는 사람들이 함께 나아갈 수 있는 길을 모색하는 것이라 믿는다.


환희물집화상_공연사진(c극단8월_김희지)96.jpg
 

<환희, 물집, 화상> 속 세 인물은 수업을 통해 어떤 결론에 도달할 수 있을지, 캐서린과 그웬은 어떤 선택을 할지 궁금하다. 결말만큼 궁금한 건 제목의 의미다. 관련 없어 보이는 단어의 나열은 페미니즘이 각자의 삶에 다르게 적용되는 모습을 보는 것 같기도 하다. 좀처럼 잡히지 않는 세 단어에서 나는 '불'이라는 공통어를 연상했다.

불은 불일 뿐이지만, 누군가에게는 환희이며 다른 누군가에게는 물집의 원인이 될 수 있고 또 다른 누군가에는 화상이라는 상처를 준다. 관련 없어 보이는 단어의 나열은 페미니즘이 각자의 삶에 다르게 적용되는 모습을 보는 것 같기도 하다. 연극을 다 보고 난 다음에는 왜 이 연극의 제목이 '환희, 물집, 화상'이 되었는지 나름의 깨달음을 얻을 수 있으면 좋겠다.





<환희, 물집, 화상>

산울림소극장
4월 17일(수) ~ 5월 5일(일)

평일 8시 / 주말 6시
월요일 공연 없음
*5월 1일 노동자의 날 8시 공연



김소원.jpg
 

[김소원 에디터]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등록번호/등록일: 경기, 아52475 / 2020.02.10   |   창간일: 2013.11.20   |   E-Mail: artinsight@naver.com
발행인/편집인/청소년보호책임자: 박형주   |   최종편집: 2024.04.19
발행소 정보: 경기도 부천시 중동로 327 238동 / Tel: 0507-1304-8223
Copyright ⓒ 2013-2024 artinsight.co.kr All Rights Reserved
아트인사이트의 모든 콘텐츠(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제·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