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진보에 관한 작은 성찰 [도서]

글 입력 2019.04.20 00:05
댓글 0
  • 카카오 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 밴드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 플러스로 보내기
  • 글 스크랩
  • 글 내용 글자 크게
  • 글 내용 글자 작게


수정궁.JPG
'수정궁' 내부


1851년 영국 런던에서 열린 만국박람회는 당시 산업혁명의 중심이었던 영국의 눈부신 기술과 경제발전을 과시하고, 서구 물질 문명의 미래에 대한 낙관적인 환영을 제시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세계 각국의 예술품과 상품들, 산업혁명을 가능케 한 기계들, 그리고 이를 빛내 줄 오락예술은 관람객으로 하여금 물질 문명의 '신비함' 감탄하게 만들었다.

그 정점은 만국박람회의 건물 자체였다. 좌우 564m, 앞뒤 139m, 높이 41m에 달하며 주재료인 유리판이 총 18,000장인 이른바 '수정궁(Crystal Palace)'의 휘황찬란함은 기술에 대한 도취를 가중시켰다.

6개월 간 약 6백만 명 이상의 관람객을 끌어들이며 대성공을 거둔 만국박람회는, 인류의 전 지구적 화합과 유토피아에 대한 기대를 이끌었다. 이는 원거리 무역 사업을 하고 있는 산업 부르주아만이 가졌던 생각은 아니었다. 국제노동자협회, 일명 '인터내셔널'의 운동 또한 박람회를 '국제적인 교류'의 장으로 인식했다.

기술 발전이 곧 인간 역사의 진보를 의미한다는 실증주의적 사고방식에 어떠한 사람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던 셈이다. 축제같은 분위기에서 유일하게 찬물은 끼얹은 사람은 도스토옙스키였다. 그는 “만국박람회…사실 이 박람회는 놀랄만하다. 당신들은 전세계에서 몰려온 이 무수한 사람들을 하나의 무리로 통일한 무서운 힘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리고 이는 훗날 파시즘을 예언한 역사가 됐다.


역사와 문화.jpg
 

"맑스는 혁명이란 세계사의 증기기관차라고 말하였다. 그러나 아마도 상황은 완전히 다를지도 모른다. 아마도 혁명은 이 열차에서 여행 중인 인류가 비상 브레이크를 잡는 일일 것이다."

- 발터 벤야민


뉴턴의 시공간 개념은 우주를 하나의 단일하며 질적으로 동일한 공간, 즉 법칙에 의해 분해 가능하며 완전히 계산 가능한 양적인 공간으로 만들었다.

이후, 시간은 질적으로 동일하고 양적으로 분할 가능하며 그 내부는 비어있는 것으로 이해됐다. 이 생각에 따르면 과거, 현재, 미래의 시간은 동질적이며, 역사는 이러한 동질적인 시간을 관통하여 일직선상으로 흐르는 것이다. 즉, 역사는 '과거-현재-미래'라는 방향을 철저히 따르며, 누적된 과정의 양적 축적인 셈이 된다.

이러한 선형적 진보 사관은 '계급 없는 사회'를 역사의 최종목적으로 상정한 맑스주의와 일치했다. 카우츠키를 필두로 한 제2인터내셔널의 맑스주의자들은 기술 발전에 대한 실증주의적 사고를 받아들여, 자본주의로부터 더 고차적인 사회로의 진보를 기술 발전에 의한 일종의 자연법칙적 필연성으로 신봉하고 있었다. 이에 따르면 과거와 현재의 시간은 '혁명'을 위한 '예비 시간'이었다.

문제는 진보 사관이 다윈의 진화론과 맞물렸을 때 발생했다. 역사적 시간에서 '미래'를 최우선의 가치로 놓는다면, 그 이 전의 시간은 검토할 가치가 없는 열등한 것이 된다. 문명의 발전이 덜 이루어진 민족에 비해, 반대가 더 '진보한' 민족으로 여겨진다. 만국박람회의 제국주의적 성격에 노동자 계급이 반대하지 않았던 데는 이러한 논리가 숨겨져 있던 셈이다.

결국, 진보에 대한 낙관주의는 전쟁마저 혁명을 위한 시간으로 이해됐고 연속된 파시즘이 끝나고 나서야 반성이 이루어졌다.


벤야민.jpg
 

역사의 시선이 미래에만 가 있다면, 과거의 고통은 무의미하다. 인간의 고통을 읽어내지 못하고 앞을 향해 달려가는 것은 파국을 향해 돌진하는 것과 같다. 따라서 벤야민은 이에 맞서, '현재화'를 강조한다. '현재화'는 현재에 드러난 과거의 이미지를 읽어내는 것을 말한다. 그가 과거로 시선을 돌리는 이유는 억압받는 사람들, 고통받고 지배당하는 사람들, 문명의 과정에서 희생된 사람들을 응시해야 하기 때문이다.

거대한 승전비 앞에 희생된 이름 모를 병사들, 거대한 건축물을 만들려 동원된 병사들, 거대한 무역 이익을 얻기 위해 착취된 사람들을 응시하는 것. 그는 그 대상을 추모하고 애도함으로써 과거를 현재화하는 시도만이 그들을 지속적으로 억압하는 현재의 질서를 깨뜨리게 할 수 있다고 말한다.

아직도 밝혀지지 않은 역사 앞에서 "잊으라"고 말하는 목소리가 들린다. 이는 벤야민의 말을 더욱 숙연하게 느껴지게 만든다.





*
참고
한상원, 『앙겔루스 노부스의 시선』
에디투스, 2018


[이다빈 에디터]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등록번호/등록일: 경기, 아52475 / 2020.02.10   |   창간일: 2013.11.20   |   E-Mail: artinsight@naver.com
발행인/편집인/청소년보호책임자: 박형주   |   최종편집: 2024.03.28
발행소 정보: 경기도 부천시 중동로 327 238동 / Tel: 0507-1304-8223
Copyright ⓒ 2013-2024 artinsight.co.kr All Rights Reserved
아트인사이트의 모든 콘텐츠(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제·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