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새로운, 그리고 여전히 살아있는 햄릿의 이야기: 연극 - 함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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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말은 정말 다시는 하고 싶지 않았는데 정말 다시는 뱉고 싶지 않았는데 이번에는 어떻게든 이 말을 안 하려고 했는데 인생이라는 무대에 섰다면 누구도 피해 갈 수 없는 대사래. 사느냐, 죽느냐, 그것이 문제로다."
- 연극 <함익>의 대사 중 일부
서울시극단에서 이번에 올린 공연, <함익>은 너무나 유명한 작품인 셰익스피어의 햄릿을 바탕으로 창작한 극이다.
존경하는 문장가인 셰익스피어의 대표작이자 좋아하는 고전 중 하나인 햄릿의 재탄생이라는 점 만으로도, 이 작품에 대한 나의 궁금증과 기대감을 높이기엔 충분했다. 그렇게 기대감을 가지고 본 연극 <함익>은 기대보다 더 새롭고 흥미롭고 묵직한 감상을 나에게 던져 주었다.
재벌 2세 함익은 영국에서 비극을 전공하고 돌아온다. 마하그룹의 외동딸로서 지성과 미모를 겸비한 그녀의 일상은 화려하다. 상류층 인사들과의 사교모임, 남자친구 필형과의 근사한 데이트 등 누가 봐도 완벽한 삶을 누리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녀의 내면은 고독한 복수심으로 병들어 있다. 자살한 엄마가 아버지와 새엄마에 의해 살해되었다는 의심을 20년 가까이 버리지 못하고 있으면서도 아버지의 폭력적인 권위에 맞서 말 한마디 제대로 못한 채 가면을 쓴 인형으로 살아왔던 것이다.복수와 일탈을 꿈꾸면서 숨 막히는 온실 속에서 생기 없는 꽃으로 살아가던 그녀는 그룹 산하의 대학교 연극학과 교수로 부임한다. 그리고 《햄릿》 공연의 지도를 맡게 된 함익 앞에 복학생 연우가 나타난다. 파수꾼 '버나도' 역을 맡은 연극청년 연우와의 만남은 외형만 화려했던 함익의 고독한 내면을 조금씩 흔들기 시작하는데….여자 햄릿 '함익'의 섬세한 내적 갈등과 고독한 모습은 그동안 셰익스피어의 <햄릿>을 통해 내가 집중해 보지 못한 햄릿의 '고독'에 대하여 많은 생각을 하게끔 해 주었다.
특히, 함익의 연극학과 수업 중 햄릿의 섬세한 심리와 고독에 대해 이야기하는 연우와 이를 보고 자기도 모르게 그에게 집중하는 함익의 모습은 여자 햄릿 '함익'의 섬세하고 복잡한 심리를 응축적으로 잘 보여준 장면 중 하나였다. 우리 모두에게는 햄릿처럼, 또 함익처럼 각자만의 고독이 존재한다.
극에서의 함익은 우리 모두의 고독에 대해 온몸으로 보여주고 있었다. 이러한 고독에 대한 영리한 접근에 더해, 미니멀리즘한 세트의 영리한 이용과 감각적인 조명, 그리고 적재적소에서 각자의 역할을 다하는 앙상블은 <함익>을 보다 더 섬세하고 흥미로운 극으로 만들어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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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흥미로운 요소들 중, 나는 반전된 성별의 햄릿의 이야기라는 것에 집중할 수 밖에 없었다. 여자 햄릿이 겪어온 사회와 환경은 남자 햄릿의 세계와는 또 달랐을 것이다. 때문에 여자 햄릿 '함익'의 서사는 우리가 알고 있는 남자 햄릿의 서사와는 분명히 다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함익에게서 묘하게 햄릿과 너무나도 비슷한 모습들을 발견하곤 했다. 함익이 보여준 갈등과 심리는 햄릿과 분명히 다르면서도 하나로 통하는 듯해 보였다. 극을 보는 내내, 나는 이 부분이 굉장히 흥미로웠다. 극작에 대한 관심이 커진 요즘, 고전의 재창작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곤 한다.
그 과정에서, 고전에 등장하는 프로타고니스트와 안타고니스트를 비롯해 다양한 등장인물들의 성별을 반전시키면 어떠한 재해석이 나오게 될까라는 궁금증이 커졌다. 그리고 연극 <함익>은 이러한 나의 궁금증에 대하여 한 가지의 보기를 보여준 듯 했다. 이를 통해 성별을 바꾸면 완전히 새로운 이야기라 나올 것이라는 나의 생각이 너무나도 일차원적인 생각이었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여자 햄릿 '함익'의 이야기는 새롭지만 또 햄릿이 지닌 근본적인 고민과 갈등을 포함한 이야기였다.
이렇게 연극 <함익>은 햄릿에서 비롯된 새로운 인물들과 이야기를 통해 고전작품 햄릿 속에 있던 이야기를 되살려낸 작품이다.극이 끝난 뒤 무대 위에 남은 함익을 구두를 보니, 햄릿 속에 있던 한 이야기가 다시 살아남과 동시에 우리 모두에게 존재하는 햄릿 또한 살아나는 듯 했다.함익- 서울시극단 정기공연 -일자 : 2019.04.12 ~ 04.28시간평일 오후 8시토 오후 3시, 오후 7시일 오후 3시(월 공연없음)장소 : 세종문화회관 M씨어터티켓가격R석 50,000원S석 30,000원A석 20,000원주최(재)세종문화회관주관서울시극단관람연령만 13세이상공연시간100분
[윤소윤 에디터]<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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