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미 히피 로드] 칠레의 푸콘 02 – 지구엔 아름다운 사람들이 무수히 많이 존재한다.

글 입력 2019.04.21 0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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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레의 푸콘 02 – 지구엔 아름다운 사람들이 무수히 많이 존재한다.



글 - 여행작가 노동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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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바로와 친구들의 공연은 손님들로부터 엄청난 환호를 받았다. 기분이 좋아진 레스토랑 주인이 약속한 공연료의 2배를 줬다. 공연이 끝난 다음날, 여러 통의 전화가 왔다. 그날 레스토랑을 찾은 손님은 레코드사와 음반산업 관계자들이었다. 그들은 알바로의 노래를 사겠다고 했다. 알바로는 노래만 팔수는 없다며 반드시 자신이 노래하고 친구들이 연주해야 한다고 대답했다. 알바로의 대답에 음반사가 포기했다. 그러나 한 레코드사만은 협상을 멈추지 않았다. 칠레에서 가장 영향력이 큰 음반사였다. 최후통첩이 왔을 땐 알바로가 샤워를 하던 참이라 파트리쇼가 전화를 받았다. 받아 적은 내용은 이랬다.


‘아마추어 연주자들로 녹음할 수는 없음. 알바로가 직접 노래하는 것까지 양보. 24일까지 연락바람. 제안을 수락한다면 25일 차를 보낼 테니 산티아고로 올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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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트리쇼가 받아 적은 메모를 본 날부터 친구들은 알바로가 미래를 선택할 시간을 주기 위해 저녁이 되어도 알바로의 집을 찾아가지 않았다. 25일 저녁이 되었다. 거리에서 악기를 연주하고, 길에서 공예품을 팔던 친구들. 다들 일을 마치고 저마다 알바로 집 앞을 하릴 없이 지나갔다. 로베르토가 지나갈 때도, 소라나가 지나갈 때도 알바로 집의 불은 꺼져 있었다. 밤 9시가 되어 트럼펫을 가방에 넣고 귀가하던 파트리쇼도 습관적으로 알바로 집 앞까지 오고 말았다. 불 꺼진 채 적막한 집. 파트리쇼는 혼잣말을 했다.


“떠났구나, 알바로. 잘 가게”


파트리쇼는 돌아서며 알바로의 노래를 휘파람으로 불렀다. 그때였다, 알바로의 집에 불이 켜진 건. 파트리쇼가 문을 두드렸다. 길 건너편에서 파트리쇼의 거동을 지켜보던 카를로스가 친구들에게 문자메시지를 날렸다. ‘알바로 집에 불이 켜졌어!’ 친구들이 하나, 둘 알바로 집으로 모여들기 시작했다. 집안으로 들어서자 알바로는 기타를, 파트리쇼는 피아노를 치고 있었다. 사랑방에 모여든 친구들은 말없이 의자 하나씩을 차지하고 앉았다. 궁금해 못 참겠다는 듯 소라나가 입을 열었다.


“왜 산티아고로 안 떠났니?”


2초간 침묵이 흐르고


“하하하, 지금 이곳에서 행복한데 뭘 찾아 어디를 간단 말이니?” 알바로가 대답했다.


“너도 그렇지 않니?” 알바로가 되물었다.


“....응!” 소라나가 대답했다.

“나도!” 카를로스가 대답했다.

“나도!” 로베르토가 대답했다.

“나도!”

“나도!”


대답과 함께 친구들이 주섬주섬 각자의 악기를 꺼내 알바로와 파트리쇼가 연주하던 음악 속으로 들어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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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스토랑에서 알바로와 친구들의 연주를 들으며 내가 상상한 뮤지컬 영화다. 그러나 이 이야기가 모두 상상의 이야기는 아니다. 알바로가 건넨 ‘거부할 수 없는 제안’으로 푸콘의 친구들과 어울려 보내던 토요일, 비야리카 호숫가 나무에 기대어 자작곡을 부르던 알바로를 나는 카메라로 촬영을 했더랬다. 기타를 치다가 알바로가 물었다.


“로, 나를 촬영해서 어디에 쓰려고 그러니?”


“뮤직비디오를 만들어서 유튜브에 올리려고, 네가 아주 유명해질지도 몰라.”


“그건 안 돼.”


“왜?”


“난 내 삶이 달라지길 바라지 않아. 지금 이대로의 내 삶이 좋으니까!”


밤 10시가 넘어 공연이 끝났다. 우린 다시 저마다 악기를 챙겨들고 버스에 올랐다. 알바로의 집에선 우리만의 파티가 기다리고 있었다. 콘서트를 보고 다음날 난 떠나기로 되어 있었다. 알바로의 거절할 수 없는 제안에 대비해 이번엔 버스표까지 미리 사둔 참이었다. 작별을 아쉬워하는 친구들이 포도주를 연거푸 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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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하는 대로 술을 마시다 보니 취기가 돌았다. 찬바람을 쐬러 집 밖으로 나왔다. 현관 앞에선 흰둥이가 꼬리를 쳤고, 뜰 한구석엔 갓 태어난 아기 고양이와 어미 고양이가 갸릉거렸다, 알바로가 챙겨주는 사료를 먹다가 눌러앉은 길멍이와 길냥이였다. 알바로는 자기 식비 보다 오가는 동물들을 먹이는데 돈이 더 든다며 웃곤 했더랬다. 등 뒤에서 인기척이 났다. 파트리쇼였다. 그는 옆에 서서 스페인어도 영어도 아닌 이상한 말을 중얼거렸다.


“You are Good Freind...I Know...No Solo Bolivia...No Solo Peru..No Solo Chile..Todo Mundo Welcome You. Your Corazon...Differente.”


파트리쇼가 비야리카 화산을 향해 했던 말의 의미는 무엇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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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들이 모두 집으로 돌아간 후 정든 침대 위에 누웠다. 그리고 잠들기 직전, 나는 알게 되었다. 푸콘에서 내 여행의 기록이 깨지고 말았다는 것을. 당신도 알고 있는가? ‘내가 만난 가장 아름다운 사람들’에 대한 기록이 깨어질 때마다 차오르는 벅찬 기쁨을.


지구엔 아름다운 사람들이 무수히 많이 존재하고 있었다.






위 글은

<남미 히피 로드>

(2019년 4월 15일 발간)의 일부입니다.






노동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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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부터 2년간 '장기 체류 후 이동 Long stay & Run'하는 기술을 연마한 후, 한국과 다른 대륙을 2년 주기로 오가며 '장기 체류 후 이동'하는 여행기술을 평생 수련하고 있는 여행가.


EBS세계 테마기행 여행작가. <길 위의 칸타빌레>, <로드 페로몬에 홀리다>, <길 위에서 책을 만나다>, <푸른 영혼일 때 떠나라>, <세계 배낭여행자들의 안식처 빠이>를 세상에 내놓았다.


남아메리카를 떠돌며 전직 방랑자였거나 현직 방랑자인 자매, 형제들과 어울려 보낸 800일간의 기억. 방랑의 대륙으로 자맥질해 들어갔다가 건져 올린, 사금파리 같은 이야기를 당신 앞에 내려놓는다.



[박형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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