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성실하고 다정한 사람의 피아노, 장하오천 단독 콘서트

금호아트홀, 4월 11일
글 입력 2019.04.22 2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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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목요일에 열린 장하오천의 피아노 단독 공연을 관람했다. 우연히도 금호아트홀에서 채 한달도 전에 솔로 바이올린 공연을 보았는데, 작은 공연장인만큼 연주자의 숨소리까지 들을 수 있어서 굉장히 색다른 경험이었다. 피아노 솔로 공연을 보는 것이 꽤나 오랜만이라서 조금 긴장되기도 했지만, 랑랑의 뒤를 이을 중국의 피아니스트라는 설명에 적잖은 기대를 안고 공연장을 찾았다.

금호아트홀은 예술의전당 IBK홀보다도 훨씬 작고 아늑하다. 목재 디자인이라서 공연장에 들어가자마자 노란색 따뜻한 빛에 먼저 마음이 동한다. 전반적으로 실내악에 최적화된 공연장이다. 단차가 거의 없다시피해서 공연자가 보이지 않을까 걱정할 관객들도 있겠지만, 사실 어느 각도나 공연자가 잘 보이는 정도의 거리다. 울림이 무척 풍부한데 문제는 관객석에서 나는 소리도 무척 풍부하게 들린다. 관객에 대한 이야기는 뒤에서 더 자세히…

장하오천의 지인인지 혹은 팬들인지, 공연장에는 중국인 관객이 많았다. 한국 공연장에서 이렇게 많은 외국인 관객의 비율을 본 것은 수 년 전 체코대사관 교류 공연 이후 처음인 것 같다. 물론 한국인 관객이 더 많았지만. 좌석이 꽤 앞쪽이었고 게다가 왼쪽이었다. 피아노 공연은 공연자의 등쪽에 앉는 걸 선호한다. 세심한 손놀림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손이 보이지 않을 때에는 그의 손을 상상하는 재미도 있지만 기왕이면 보는 편이 더 좋다. 최고의 좌석에서 관람을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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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곡은 드뷔시의 피아노를 위한 3개의 영상 제2집, L.120이었다. 드뷔시하면 모두가 생각하는 그 곡, ‘달빛’밖에 모르지만 이 곡도 충분히 달빛 같은 곡이었다. 섬세하고 유려한 터치가 돋보였고 특히나 한 음 한음 동그랗고 아름답게 빚어내려는 노력이 느껴져서 더 감동적이었다. 조금은 들떠있는 관객들을 차분히 가라앉힐 수 있는 곡이었다.

다만 관객들이 쉬이 가라앉지 않았다. 관객들은 끊임없이 기침을 했다. 기침을 하는 건, 정말 생리적인 현상이라서 어쩔 수가 없지만 그날은 조금 심했다. 앞서 말했듯 굉장히 작은 공연장인데 울림이 좋아서 공연장 전체가 잘 울리는데, 조용한 곡을 연주한 초반 두 곡에서 정말 끊임없이 사람들이 기침을 했다. 앞줄에 앉은 외국인 남자 관객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의 표현이 왠지 ‘한국 사람들 관람 문화가 이따위라니’라는 건방짐으로 보여서 불쾌하기도 했지만, 그날은 내가 듣기에도 조금 심했다.

하지만 기침이 얼마나 참을 수 없는 것인지 알기에 너무 안타까웠다. 기침이 나와서 밖으로 나가자니 우당탕탕 하는 것이 더 안좋은 것 같고, 그렇다고 참자니 죽을 것 같고. 그런 상황이니까 사람들도 기침을 하는 것이었겠지. 나 또한 그랬던 기억이 있다. 이번 공연에서도 기침이 나오려는 순간이 있었는데 정적 사이를 피아노로 조금씩 메우는 듯한 느낌의 부분을 연주하고 있어서 죽을 힘을 다해 참았고, 맥박이 빨라지고 호흡이 조금 가빠졌지만 겨우 크게 소리를 안낸 채로 넘어갈 수 있었다. 여튼 결론은, 많은 관객들이 1부 내내 기침을 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관객들 덕에 많은 사람들은 인상을 찌뿌렸고 말이다. 연주자도 전부 느끼고 있었을텐데. 참 안타까운 상황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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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뷔시의 곡이 끝나고, 슈만의 유모레스크가 이어졌다. 이전 곡에 비해서 생각했던 것보다 역동적이었다. 슬픔과 기쁨이 교차하면서 감정의 진폭을 읽을 수 있는 곡-이라고 사전에 알고 가서 그런지, 낭만 음악의 전형답게 다양한 표현방식과 표현법을 볼 수 있어서 즐거웠다. 아티스트가 음악으로 표현하고자 하는 감정과 의미가 관객에게 전달된다는 느낌은 매번 신기하고 놀랍다. 장하오천의 표정을 볼 수는 없었지만 그는 온몸을 써가면서 곡의 변화를 표현했다. 분명 표정의 변화도 컸으리라.

1부 쉬는 시간이 끝나고, 장하오천이 마이크를 잡고 등장했다. 응? 마이크? 놀랄 틈도 잠시, 장하오천 뒤로 통역사가 등장했다. 장하오천은 서울에 오게 되어 영광이고, 서울의 관객들을 다시 만날 수 있어 기쁘다고 말했다. 그리고 원래 아티스트는 음악으로 모든 것을 전달해야하지만 꼭 하고 싶은 말이 있어서 부득이하게 마이크를 잡았다고 양해를 구했다. 그 태도가 무척이나 성실하고 진중하게 느껴졌다. 앞과 같은 설명이 없었다면, 비뚤어진 마음으로 그가 다소 과하게 친절하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르겠다.

그는 3번째 곡, 불레즈의 피아노 소나타 제1번과 리스트의 피아노 소나타 b단조, S.178에 대해 이야기했다. 불레즈는 현대음악 작곡가이자 지휘자로, 현대음악 연주단체 앙상블 앵테르콩탕포랭을 조직하기도 했다. 그는 불레즈가 지금보다 훨씬 더 주목받아야할 작곡가이지만 잘 연주되지 않음에 아쉬움을 표하며 이 곡을 선곡했다고 말했다. “이 곡에는, 여러분의 기대와 희망과는 달리 멜로디가 전혀 없을 것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곡이 가지는 의미와 가치가 큽니다” 유머있게 말을 전한 그는, 이어 리스트의 피아노 소나타 b단조의 선곡 이유까지 함께 풀어놓았다.

불레즈의 곡이 절대 연주되지 않는 곡이라면, 리스트의 곡은 가장 자주 연주되는 곡 중 하나라는 것이다. 그러나 리스트의 곡도 당대에는 굉장히 아방가르드하고 진보적인 곡이었다며, 이 곡이 지금은 익숙할 수 있겠지만 당시에는 굉장히 색다른 시도였음을 생각하고 불레즈와 연결해서 들어주면 좋겠다고 전했다. 이렇게 친절한 설명이라니! 클래식 전문가들은 아쉬움을 느꼈을지 모르지만 나는 아니었다. 오히려 굉장히 고마웠고, 그 덕에 난해한 2부도 잘 감상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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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레즈의 곡은 충분한 경고 이후에도 조금 당황스러웠다. 멜로디의 부재 때문이었다. 이런 음악은 어떻게 작곡하는 걸까, 그리고 어떤 의미를 두고 작곡하는 걸까. 예술의 의미가 아름다움에 없다면 어떤 가치에 있는 걸까? 혹은, 아름다움은 무척 주관적인 개념이므로 몇몇 사람들에게는 이 음악이 아름답다고 느껴지는 것일까? 다시 한 번 음악과 수학의 관계에 대해서 생각하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그리고 나의 당황스러움과 별개로 장하오천은 무척이나 열정적으로 그 곡을 표현해냈다. 어떤 감정이나 의미를 담아내지 않더라도 저렇게 곡 하나하나에 열정을 담아 전달할 수 있다는 것이 놀라웠다.

리스트의 곡은, 설명을 듣고 나서 그런지 몰라도, 굉장히 진보적으로 느껴졌다. 오히려 달콤하다거나 로맨틱하다기보다는 꽤나 실험적인 곡으로 느껴졌다. 치닫는 감정의 폭도 그렇고, 음계도 그랬다. 생각해보면 낭만음악을 칭하는 ‘로맨틱’과 내가 평소 이해하는 ‘로맨틱’은 꽤 다른 것 같다. 낭만음악의 로맨틱은 자유분방함, 감정의 폭의 자유로움이라면 내가 생각하는 로맨틱은 라비앙로즈의 분위기다. 리스트의 피아노 소나타는 무척 격정적이었다. 연주가 끝난 뒤 장하오천은 수건으로 땀을 닦아냈다. 관객들은 그의 열정적인 연주에 박수를 아끼지 않았고, 그는 여러 곡의 앵콜로 화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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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물다섯 이후의 얼굴은 자신이 만든다는 이야기를 믿는다. 관상이 사이언스라는 이야기는 최근 꽤 회자된 이야기기도 하다. 장하오천은 무척 성실하고 다정한 사람 같았다. 올곧고 심지굳은 다정함이었다. 가치있다고 생각하는 음악은 반드시 소개하는 사람이면서도, 그의 선택으로 인해 혼란스러워할 관객들의 감정까지 헤아려주는 사람. 좋은 사람의 멋진 피아노를 볼 수 있어 기뻤다.


[김나연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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