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사랑을 상상하는, 달나라에 사는 여인

글 입력 2019.04.25 18:32
댓글 0
  • 카카오 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 밴드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 플러스로 보내기
  • 글 스크랩
  • 글 내용 글자 크게
  • 글 내용 글자 작게



달나라에사는여인_1쇄_자켓_앞표지_도서출판잔.jpg

짧지만 재밌는 책 한 권을 읽었다. 화자인 손녀의 관점에서 30살 전후부터의 할머니의 인생을 묘사한 책이다. 책에는 4대에 걸치는 가족사의 이야기가 나온다. 주인공은 적극적인 사랑을 갈구했던, 사랑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여기는 할머니 아니 한 여성의 이야기이다. 소설의 배경은 1940대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이탈리아 남부 지방이다.


 

1. 줄거리



그녀의 인생은 결혼 전후, 재향군인과의 만남 전후로 나뉜다.


결혼 전 그녀는 상대방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자신의 맘에 드는 남자를 적극적으로 기다리는 여성이었다. 낯 뜨겁고 정열적인 사랑의 시를 썼기 때문에 청혼하려는 남자들이 도망갔다면서 증조할머니는 할머니를 때리고 또 때렸다는 내용이 나온다.


그리고 1943년 5월 할아버지가 마을에 도착한다. 그 당시 그는 가족을 잃고 홀아비가 되어 할머니네 마을로 피난을 온 상황이었다. 미친 여자라고 소문이 난 할머니를 증조할아버지가 강제로 결혼을 시킨다. 한 달 내내 울면서 거부 의사를 밝혔지만 결국 그 둘은 결혼을 한다. 그러나 서로를 사랑하지 않았기 때문에 할아버지는 사창가에 다니고, 침대에서는 완전히 남매처럼 지낸다.


그러다가 할머니가 창녀들에게 돈을 쓰지 말라며 관계를 허락하는데 그래도 침대에서는 서로 등을 돌리고 남매처럼 잠을 잔다. 임신을 하지만 할머니의 신장결석이 악화되어 유산이 계속되자 1950년에 할머니는 혼자 결석을 치료하러 이탈리아 중부 도시 온천마을로 향하게 된다.


그리고 그곳에서 재향군인을 만난다. 그 역시 신장결석 때문에 왔으며 한쪽 다리를 잃고 목발에 의지했어도 차림새는 매우 세련된 사내로 묘사되어있다. 그 모습을 바라보면서 할머니는 혼자 설레는 감정을 느끼며 아주 상세히 그를 기록하기 시작한다. 이 둘은 조금씩 친해지면서 서로의 마음을 털어놓는 사이로 발전한다. 재향군인의 가족사는 전쟁으로 얼룩져있었고, 그는 할머니에게 피아노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 둘의 깊은 사랑은 점점 뜨거워졌다.




2. 할머니가 바라는 사랑은?



온천에서 돌아온 후 할머니는 임신을 했고 어렵게 아이를 낳게 된다. 그 아이에게 피아노를 배우게 하기 위해 광적으로 노력한다. 그녀는 평생을 재향군인을 그리워한다. 할아버지의 무심함과는 다르게 재향군인은 늘 친절하게 그녀에게 의견을 묻고 감정을 표현하고 깊은 대화를 나누는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잠자리에서도 마찬가지였고. 넘치는 사랑이 할머니에게 필요했다.


책에 이런 말이 나온다.



할머니도 눈물을 흘리기 시작하며 쾌락을 드러내선 안 된다고 배웠는데, 어쩌면 그래야 하는 게 맞는 것 같다고 말했다. 할머니 인생에서 유일하게 잘한 일이 할아버지와 결혼한 건데 그때는 할머니가 쾌락에 무관심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면서 할아버지에게 용기를 내어 자신을 정말로 좋아하는지를 물어봤지만 헛웃음을 한 번 짓고 대답하지 않았다고 한다. 할머니가 바라는 쾌락이란 성적으로도, 감정적으로도 솔직하게 드러내고 표현하는 것을 말하는 듯하다.



재향군인처럼 자세히 설명해 주는 일은 결코 없을 테고, 남편에게 평생 그토록 원하는 말, 세상에 당신뿐이라는 말도 들을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 남자, 재향군인을 좋아하는 만큼은 아니었다. 세상 그 무엇보다 그 남자가 좋았다. 그에게는 아무것도, 심지어 결석을 배출하느라 함께 소변을 보는 일도 부끄럽지 않았다. 평생 달나라에 사는 여자 같다는 말을 들었는데, 드디어 같은 달나라 남자를 만난 것 같았다. 그것이 할머니가 오래전부터 그리워한,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일이었다.



하지만 당시의 여성이 이토록 적극적이라는 사실에 남자들이 오히려 부담스러워했음을 알 수 있었다. 아니 지금도 연인에게 재잘재잘 이야기해주고 관심을 가져주며, 적극적으로 사랑을 표현하는 남자들이 많지는 않다. 책의 할머니는 감수성이 매우 풍부한 여성이고 사랑을 위해서 모든 것(가족까지도)을 버릴 듯한 의지를 보여준다. 그녀가 재향군인을 다시 만났더라면 정말로 사랑을 위해서 모든 걸 내던졌을까? 그건 모르는 일이다. 추억은 항상 미화되어 기억되니까.




3. 상상하라



화자가 자신의 친아버지가 실은 재향군인이 아닐까 하는 의심을 한다. 그도 그럴 것이 온천 마을에서 돌아오고 9개월 후에 자신의 아빠가 태어났기 때문이다. 책의 반전은 바로 이 마지막 부분에서 드러난다. 할머니의 광적인 사랑에 대한 집착은 지나친 상상력과 상실에 대한 부족한 마음에서 나온다는 것을 말이다. 중요한 무언가가 없다는 말을 하는 할머니의 마음속 공허는 사랑으로만 채워질 수 있는 것이었다.


달나라에 사는 여인은 한 여성의 예민하고 풍부한 감수성이 잘 묻어나는 책이었다. 사랑에 대한 마음이 광적으로 표현되기 전에 그녀는 글을 썼다. 할머니는 예민한 감수성을 주체하지 못하고 표현해야만 하는 예술가였던 것이다. 이러한 여성이 가부장적인 사회에 눌려서 자신을 표현하지 못했으니 미치지 않을 수 있었겠나 싶었다. 책은 풍부한 예술성과 상상력을 가졌던 한 여인의 일대기를 서술하면서 마지막으로 이렇게 이야기한다.



상상을 멈추지 마세요



할아버지의 표현방식도, 리아 여사의 표현방식에도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 결국 개인의 감정 표현도 사회적 분위기와 개인의 경험에 의해서 결정된 생존 방식의 하나였던 셈이다. 그리고 할머니가 그토록 찾던 사랑은 동시에 바로 곁에 있었다는 것을 암시해 주는 듯했다. 물론 그 사랑이 말로 표현되었다면 더 좋았겠지만, 평생 내 옆을 지켜주는 할아버지의 든든한 모습에서 진한 사랑의 여운을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다. 사랑은 다양하게 표현될 수 있다.


지금도 일상에서 얼마나 많은 예술적 감수성들이 묻히고 있을까 생각해보았다. 그나마 요즘 같은 시대에서 맘껏 나를 드러내고 표현하고 살 수 있어서 참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 책이었다.



*



달나라에 사는 여인
- MAL DI PIETRE -


지은이 : 밀레나 아구스(Milena Agus)

옮긴이 : 김현주

출판사 : 도서출판 잔

분야
소설 / 외국소설 / 이탈리아 소설

규격
130×195(mm) / 페이퍼백

쪽 수 : 116쪽

발행일
2019년 04월 15일

정가 : 12,500원

ISBN
979-11-965176-6-3 (03840)



[최수진 에디터]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등록번호/등록일: 경기, 아52475 / 2020.02.10   |   창간일: 2013.11.20   |   E-Mail: artinsight@naver.com
발행인/편집인/청소년보호책임자: 박형주   |   최종편집: 2024.04.26
발행소 정보: 경기도 부천시 중동로 327 238동 / Tel: 0507-1304-8223
Copyright ⓒ 2013-2024 artinsight.co.kr All Rights Reserved
아트인사이트의 모든 콘텐츠(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제·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