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사랑의 유토피아, 달나라 - 달나라에 사는 여인

"상상을 멈추지 마세요."
글 입력 2019.04.26 1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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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는 칼리아리와 바다 그리고 나무와 벽난로, 말똥, 비누, 밀, 토마토, 따끈한 빵 냄새가 뒤섞인 고향을 참 좋아했다.



때는 1940년대, 2차 대전이 한창이었던 이탈리아 남부. 욕망과 육체적 사랑은 금기시되다시피 하던, 아직은 구시대적 가치관이 잔재한 20세기 중엽.

‘달나라에 사는 여인’ 속 주인공 ‘할머니’는 꽉 막힌 집안에서도 사랑을 꿈꾸며 젊은 시절을 보낸다. 그런 할머니에게 구애한 남자가 꽤 있었지만, 어느 순간부터 그들의 발걸음은 끊긴다. 할머니의 부모님은 딸이 천박해서 그런 거라며 딸을 나무라고 손찌검까지 하기에 이른다. 그랬던 할머니 앞에 폭격으로 가족을 잃은 ‘할아버지’가 나타나고, 부모님의 강요로 둘은 결혼을 하게 된다.

여기까지만 읽으면 이 책이 평범한 전쟁 러브스토리처럼 보이지만, 사실 ‘달나라에 사는 여인’의 진가는 후반부에 나온다. 평생을 동반했던 사랑에 대한 기갈이 극적으로 해소되던 순간, 동시에 거짓말처럼 병이 낫던 순간, 그 꿈같은 순간들이야말로 할머니의 진짜 인생이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그리고 그 순간들이 이 책의 몽환적인 분위기와 사랑의 갈증을 단적으로 드러낸다.



욕망을 단죄하던 시절



할머니가 낯뜨거운 내용을 암시하는 정열적인 사랑의 시를 썼기 때문에 청혼하려던 남자들이 떠났으며, 딸이 본인뿐 아니라 온 가족의 얼굴에 먹칠을 하고 다닌다는 소문을 들은 것이다. 증조할머니는 할머니를 때리고 또 때리면서 “이 사탄! 사탄 같은 것!”이라고 소리쳤다. 그리고 할머니를 초등학교에 보내 글쓰기를 가르친 날을 저주했다.



젊은 시절, 할머니는 자신의 성적 욕망과 애정에 대한 욕구를 감추지 않았다는 이유로 부모님께 학대에 가까운 벌을 받는다. 할머니는 그저 사랑을 하고 싶었을 뿐이고, 그 갈증과 욕구를 구태여 숨기지 않았을 뿐인데 종국에는 ‘미쳤다’는 소리까지 듣고 만다. 정말 할머니는 미쳤던 것일까. 사실, 정숙하지 못한 할머니를 ‘미쳤다’는 말로 단죄했던 것은 아닐까.

작품은 처음부터 끝까지 손녀의 시각으로 서술된다. 그렇기에 할머니의 이미지는 더욱 몽환적이고 환상적일 수밖에 없다. 마치 먼 옛날의 이야기를 하듯이, 마치 전설이나 신화를 전하듯이 소설은 할머니의 인생을 담백하게 관조하듯 꾸려져 있다. 할머니가 정말 재향군인을 진심을 다 해 사랑했던 것인지, 아니면 그 모든 게 한낱 환상일 뿐이었는지 확언할 수 없다. 단지 할머니가 재향군인을 만나 행복했다는 것, 그리고 그 환상을 기쁘게 즐겼다는 것 정도만 유추할 수 있을 뿐이다.

사실 그거면 된 게 아닌가 싶다. 할머니가 원했던 것은 사랑이었다. 그것이 육체적 사랑이든 정신적 사랑이든, 남편과의 사랑이든 타인과의 사랑이든, 아무튼 할머니는 평생 사랑을 갈구했다. 그리고 재향군인과 만나 애정을 느꼈다. 이 단순한 사실 자체가 할머니에게는 평생을 버티게 할 단 하나의 기억이 되었을 터다. 욕망을 느낀다는 죄목으로 벌을 받아야만 했던 시절을 지나 자기 자신에게 솔직해질 수 있는 순간을 맞이했다는 것만으로도 그에게는 큰 행복이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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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나라는 어디에 있을까



그에게는 아무것도, 심지어 결석을 배출하느라 함께 소변을 보는 일도 부끄럽지 않았다. 평생 달나라에 사는 여자 같다는 말을 들었는데, 드디어 같은 달나라 남자를 만난 것 같았다. 그것이 할머니가 오래전부터 그리워한,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일이었다.


책을 읽으면서 내내 가졌던 의문이다.

“도대체 달나라는 무슨 의미지?”

마지막 장을 넘기며 생각했다. 할머니는 어디에 머물렀던 사람이었는가를. 어디에 머무를 때 가장 편안했는지를. 그의 집은 어디였을까를.

젊은 시절, 할머니가 그리워하고 갈구했던 달나라는 결국 사랑과 애정이 충만한 유토피아였다.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고 오롯이 누군가를 사랑할 수 있는 유토피아에서 평생 사랑을 나누는 것이 할머니의 바람이었다. 유토피아가 그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 이상 세계인 것처럼, 할머니의 달나라도 일생 가닿지 못할 거리에 위치해 있었기에 사람들은 할머니를 보며 ‘달나라에 사는 여인’이라 칭했던 게 아닐까 싶다. 어릴 적 그의 이웃들이 할머니더러 미쳤다며 손가락질했던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정말 할머니는 미쳤던 것일까. 정말 할머니는 허구적 사랑에 빠져 혼자 속앓이를 했던 것일까. 재향군인의 마지막 편지에서처럼 할머니는 그저 달나라를 꿈꾸며 자신만의 유토피아를 그려냈을 뿐이다. 실제이든 실제가 아니든, 할머니는 달나라에서 행복했다. 이 사실 하나로 충분하다.


부인의 글 이야기로 돌아가죠. 상상을 멈추지 마세요. 부인은 미치지 않았어요. 누가 부인에게 상상의 나래를 펴는 일이 부적절하고 사악하다고 해도 믿지 마세요. 글을 쓰세요.






도서 정보

제목: 달나라에 사는 여인(원제: MAL DI PIETRE)
분류: 소설 / 외국소설 / 이탈리아 소설
지은이: 밀레나 아구스(Milena Agus)
옮긴이: 김현주
출판사: 도서출판 잔
발행일: 2019년 4월 15일
판형: 130×195(mm) / 페이퍼백
페이지: 116쪽
정가: 12,500원
ISBN: 979-11-965176-6-3 03880 / CIP제어번호: CIP2019012038



줄거리

이야기를 들려주는 화자의 할머니는 젊은 시절부터 사랑에 목마른, 성적 욕망이 가득한 여인이었다. 청혼하는 남자가 꽤 있었지만 어느 순간부터는 아예 방문이 뜸해지더니 발길을 끊었다. 증조할머니는 딸이 천박해서 그런 거라며 나무라고, 딸이 음란한 시를 썼다며 손찌검까지 했다. 그런 할머니 앞에 폭격으로 가족을 잃은 할아버지가 나타나고, 결국 둘은 부모님의 강요로 결혼한다. 두 사람은 내외하면서도 육체적 사랑에는 부끄럼이 없었다. 한편 할머니는 평생 동안 앓아 온 신장결석을 치료하기 위해 찾아간 온천에서 같은 병을 가진 재향군인을 만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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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지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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