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밤이 느리게 가는 서점, 책방 "뒷북" [문화 공간]

청주 운리단길, 심야책방 <뒷북>
글 입력 2019.04.26 2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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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이 느리게 가는 서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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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일과를 마친 뒤 마주하는 밤은 고요하다. 몸의 긴장이 풀릴 때 쯤 책 한 권을 집어들고 느리게 활자를 읽는다. 차 한 잔으로 편안함을 더하면 바쁘게 지나갔던 낮 시간은 압축된 꿈처럼 느껴진다. 여기, 그 공간이 갖고 싶어 책방을 연 사람이 있다.

청주 운천동에 위치한 책방 ‘뒷북’은 저녁 5시부터 밤 12시까지 연다. 책방 주인이 직장에서 퇴근 한 뒤 서점을 열기 때문이다. ‘뒷북’의 의미는 하루라는 시간에 국한되지 않는다. 시간이 오래 지났지만, 꼭 읽어봤으면 하는 책들로 북 큐레이션이 돼 있다. ‘고전’이 사라진 시대에 과감히 그 의미를 되짚는 책방인 셈이다.

따라서 책방엔 느림의 미학이 곳곳이 담겨있다. 오래 전에 읽고 누군가에게 ‘아, 이 책 꼭 선물해줘야지’라고 생각했던 고전이 신간에 휩쓸리지 않고 있으며, 시간을 두고 읽어야만 이해할 수 있는 책들이 놓여 있다. 매력적인 촌스러움은 주인의 마음을 닮았다.

무거운 책만 있는 것은 아니다. 퇴근 후 여유를 되찾아줄 가벼운 독립출판물과 가벼운 에세이, 여행 책도 발견할 수 있다. 특히 여행 책은 책방 한 쪽에 크게 자리하고 있다. 여행을 좋아하는 책방 주인이 붙여 놓은 세계 지도와 도시의 사진, 여행 티켓과 스탬프 등은 지친 하루 끝에 여행 가고 싶은 마음을 달래준다. 나중에 여행을 갈 것이라는 ‘보장된 행복’은 소파에 앉아 책을 통해 구체화된다.

 

처음 본 사람과 즐기는 ‘씨네나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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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달에 두 번, 저녁 8시엔 지나간 영화를 상영하는 ‘뒷북 심화반‘이 있다. 결코 죽지 않는 ’고전‘의 힘은 영화에서도 이어진다. 나이 듦에 따라 달리 느껴지고, 대중적이진 않으나 깊은 의미를 담고 있는 영화를 함께 보고 대화를 나눈다.

<당갈>, <스틸 라이프>, <로마>, <컨택트> 등 책방 주인이 사람들과 깊게 고민하고 싶은 영화가 선정되면, 서로 접점이 없는 사람들이 모여 다양한 이야기가 펼쳐진다. 밤에 혼자 영화보는 것 같은 조용한 시간과 공간에서, 사람들은 편안한 마음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는다.

필자가 본 영화는 <스틸 라이프>였다. 영화의 주제는 고독사였다. 관계는 가벼워지고, 유대 또한 느슨해지고, 각자도생의 삶이 펼쳐지는 현대 사회에서 심심치 않게 발견하던 뉴스였다. 영화는 죽음의 순간에 다가온 ‘외로움’보다 삶과 죽음을 전반적으로 고민할 거리를 던져주었다.

삶을 어떻게 살 것인가도 중요하지만, 인생에서 준비하지 못한 채 마주하는 죽음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 것인가. 다소 심오하고 마주하고 싶지 않은 주제였지만, 그럴수록 더욱 고민해야 하는 생의 문제임을 책방 주인을 비롯한 우리 모두가 느꼈다.

20대인 내가 주목했던 포인트는 ‘죽음’보다 ‘삶’이었다. 예컨대 나는 이것 저것 될 수 있는대로 해보고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앞섰다. 하지만, 나를 제외한 사람들은 모두 평균 40대에 가까워 보였다. 사람들의 생각은 ‘죽음’에 맞춰져 있었다. 죽은 이후의 내 모습을 생각하며 장례 방식을 고민하고, 타인의 죽음을 받아들이는 태도를 고민하곤 했다.

또한 혼자 죽는 데에 대한 어떤 상상력도 발휘되지 않는 나와 달리, 사람들은 이에 복잡한 심경을 느꼈다. 내가 그간 책이나 영화를 통해 바라 본 죽음과 실생활에서 느끼는 죽음에 차이가 있음을 깨달았다.



늦은 밤은 삶을 생각할 시간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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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차와 함께 대화를 끝내고 집에 왔다. 자정을 향해가는 그 순간, 나는 당장의 내일이 아니라 삶에 대해 생각함을 느꼈다. 일상 속에 나의 저녁은 내일만을 준비하기 위한 시간이었다면, 그 날의 자정은 과거에서 미래까지 생각하는 시간이었다. 반복적인 일상의 쉼도 매우 중요하지만 일주일에 한 번, 비움이 아니라 채움으로 마무리 하는 하루가 있다면 삶에 에너지는 더해질 것이다. 그것이 설령 ‘뒷북’친 생각이라면, 이왕 책방에서 함께하는 것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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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dalay_books


[이다빈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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