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나는 내일, 어제의 너와 만난다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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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 내게 가장 좋아하는 영화 장르가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명칭이 정확하지 않을 수 있지만) '타임리프 물'이라고 답할 것이다.
대표적인 '타임리프 물' 작품으로는 '인셉션', '어바웃 타임', '시간을 달리는 소녀', '너의 이름은'이 있다. '타임리프', '타임슬립', '타임워프' 등 시간의 제한을 없앤 다양한 명칭의 장르가 있지만, 어찌 됐건 이 모두를 포함하여 '시간 여행'을 주제로 한 판타지물을 좋아한다는 뜻으로 받아들여주면 좋겠다.
'타임리프 물' 중 '시간을 달리는 소녀'의 한 장면이러한 장르의 영화를 좋아하는 이유는 단순하다. 현실에서는 절대 할 수 없는 일들이 당황스럽지 않게 행해지는 모습이 재밌고, 신기해서. '엥?'이라고 생각할 수 있는 일들이 전혀 오버스럽지 않게, 심지어는 포근하게 다가오니까.
어렸을 적 만화 '도라에몽'을 보면서, 도라에몽 주머니 속에 있는 물건 중 단 하나만을 가질 수 있다면 그건 반드시 '어디로든 문'이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원하는 곳으로, 원하는 시간으로 갈 수 있다면, 그리고 그곳에서 원하는 것을 할 수 있다면, '대나무 헬리콥터'가 없어도, '동면 캡슐'이 없어도 더할 나위 없이 행복할 거라고 생각했다.
지금도 이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그러나 예나 지금이나, 나를 포함한 모두가 꿈꾸는 타임리프가 유독 두 사람에게만큼은 너무나도 가혹하다. 영화 '나는 내일, 어제의 너와 만난다'. 이토록 슬픈 '타임리프 물'을 다시 만날 기회가 있을까.
엇갈림 속 찬란했던 30일
20살의 '타카토시'는 버스 안의 '에미'를 보고 그만 넋을 잃고 만다. 지금이 아니면 다시는 볼 수 없을 것만 같은 '에미'의 번호를 묻기 위해 '타카토시'는 '에미'를 따라 버스에서 내린다. 소심한 그의 성격도 바꾸어버린 '에미'의 모습은 너무 사랑스러웠지만, 어딘가 모르게 슬퍼 보인다. 휴대폰이 없다는 '에미'에게 '타카토시'가 묻는다.
'우리 내일 또 만날 수 있을까?'
그러자 '에미'가 대답한다.
'응. 내일 보자'
이 말을 듣고 기뻐하며 발걸음을 옮기는 '타카토시'와 그 모습을 바라보며 발을 떼지 못하는 '에미'의 모습에서 사실상 이 영화는 정점을 찍는다. 연애소설과 로맨스물에서 가장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 장면은 단연 이별의 순간이다. 그렇기에 영화를 보기 전엔 이 장면이 사실상 영화의 클라이맥스인지 알 수 없었다.
앞으로의 흐름에 필요한, 소위 말하는 '운명적인 만남의 순간'이라고만 생각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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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짐작했을 수도 있겠다. 영화는 남자의 시간과 여자의 시간을 거꾸로 뒤집은 채 그 속에서 운명적으로 겹치는 단 30일간의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다시 말해, 한날한시 두사람에게 선사된 추억은 한 사람에겐 첫 만남이, 다른 한 사람에겐 이별의 순간이 된다.
'내일 보자'라고 이야기하는 '에미'의 내일엔 '타카토시'가 없다. 그러나 '타카토시'의 내일엔 설레는 두 번째 만남을 기다릴 '에미'가 있어서, '에미'는 이별의 순간 '타카토시'를 위해 애써 미소를 짓는다.
두 사람의 시간이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음을 안 이후로부터, 영화에서 살랑살랑 불어오던 봄 내음을, 꽃향기를 더 이상 맡을 수 없었다. 보름 뒤면 헤어질 서로를 더 온전히 담아내고자 기를 쓰는 두 사람을 응원할 뿐이었다.'힐링'을 겨냥하지 않았기에 더 '힐링'되는
영화 후반부에는 '에미'와 처음 만나는 '타카토시'의 모습을 다시 한 번 보여준다. 30일간 몇 번이고 헤어짐을 준비해왔지만 '내일 볼 수 있냐'라는 '타카토시'의 한 마디에 '에미'는 무너지고 만다. '에미'의 내일엔 '타카토시'가 없기 때문에. 그리고, 언젠간 '타카토시'의 내일에도 '에미'가 없을 테니까.'나'의 내일이, '너'의 어제가 된다. 그렇기에 한 사람은 앞으로 나아가지만, 다른 한 사람은 앞으로 나아갈 수도, 그렇다고 뒤로 갈 수도 없어 그 자리에 멈춰 서있다.함께 '오늘'을 맞이할 수 없는 사람이 이 세상에는 얼마나 많을까. 누군가는 예기치 못한 이별을 겪지만, 누군가는 예견된 이별을 기다린다. 가족, 친구, 연인, 혹은 강아지와의 이별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그 끝을 알고 시작하는 일, 혹은 견뎌내는 일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보여주기에, 영화도, 예기치 못한 삶도, 그리고 예견된 삶마저도 그 자체로 찬란한 것이 아닐까.
[김민지 에디터]<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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