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모두가 우산을 쓰기까지 - 디디의 우산

글 입력 2019.04.26 2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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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사건 5주기를 맞은 지난 4월 16일, 어느 정치인이 SNS에 쓴 글이 파장을 일으켰다. ‘세월호 징하게 해 먹는다.’ 논란이 일자 그는 글을 삭제했다. 그러나 세월호를 바라보는 미성숙한 시선이 남긴 상처는 사라지지 않았다. 많은 것이 바뀌어도 바뀌지 않은 것들이 있다는 사실의 뼈아픈 재확인이다.

세월호 사건에 대한 추모는 유독 ‘지긋지긋하다’는 반응이 많다. 세월호를 추모하는 방식이 ‘기억’으로 규정된 이상 그 반응은 아마 오래도록 잔류할지도 모른다. 잊지 않음과 잊지 않음에 느끼는 지긋지긋함의 대립이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세월호 사건을 과거에 밀어둔 채 단순한 비극의 한 장면으로 치부하는 것은 세월호를 ‘잊지 않는’ 방식으로 온당하지 않다는 것이다.

사건을 잊지 않고 끊임없이 ‘징하게’ 현재로 끌어오는 것이 추모의 방식으로 선택된 이유는, ‘잊는 것’이 세월호를 침몰시켰으며 그마저 잊어버리는 순간 또 다른 세월호가 침몰하리란 걸 모두가 깨달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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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를 잊지 않는 방법은 다양했다. 노란 리본을 다는 것처럼 작지만 상징적인 행위부터  매주 토요일 광장에 나가 촛불을 들어 책임을 묻고 진상규명을 요청하는 것, 체계적인 수사를 위해 서명하는 것, 하다못해 매년 4월 16일에는 조금 가라앉은 마음으로 있는 것조차도. 내가 여기 남아 기억하고 있다는 사실을 각자의 방식으로, 각자의 관심으로 표현했다.

창작을 통해 세월호 담론을 확장시키려는 문화예술계의 움직임도 활발했다. 이번 글에서 다룰 《2019 세월호 ‘제자리’》 역시 그 움직임의 일환으로, 세월호 5주기를 맞아 혜화동 1번지 7기 동인을 주축으로 세월호 참사뿐 아니라 현재에도 이어지고 있는 사회적 참사를 어떠한 시선으로 봐야 하는지 연극을 통해 모색하고 기억에 동참한다.


공연기간

제목

공연단체

연출

4.4-14

겨울의 눈빛

잣프로젝트

이재민

4.18-28

디디의 우산

쿵짝프로젝트

임성현

5.2-12

아웃 오브 사이트

엘리펀트룸

김기일

5.23-6.2

바람없이

0set프로젝트

신재

6.6-16

어딘가에, 어떤 사람

프로젝트그룹쌍시옷

송정안

6.20-30

더 시너(The Sinner)

래빗홀씨어터

윤혜숙

7.4-7.7

장기자랑

4.16가족극단 노란리본

김태현



4월 18일부터 28일까지 상연되는 《디디의 우산》은 동명의 연작소설집에 수록된 황정은 작가의 두 작품, <d>와 <아무것도 말할 필요가 없다>를 엮어 만든 연극으로 서로 다른 인물들의 서로 다른 삶이 세월호 사건에서 탄핵정국으로 이어지는 일련의 상징적 혁명을 기점으로 교차되어 하나의 이야기로, 더 나아가 모두의 이야기로 승화되는 과정을 그린다.

원작에서 나눠졌던 이야기는 작은 연극 공간 속에서 더욱 밀도 있게 합쳐져 이것이 너와 나의 보편의 이야기라는 주제의식을 강렬하게 드러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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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 일상 속에서 갑자기 소중한 사람을 잃어버리고 죽음 이후 달라진, 어딘가는 제자리로 돌아온 삶을 살아가는 d의 이야기와 1996년의 연세대부터 2014년의 세월호, 2016년 촛불탄핵까지 다양한 사회적 사건을 겪으며 혁명의 가능성을 탐색하는 김소영과 서수경의 이야기는 비슷한 듯 다르게 교차된다.

d와 dd, 김소영과 서수경은 지극히 평범한 이들이며 둘의 만남 역시 지극히 평범한 계기로 시작된다. d와 dd는 낙뢰를 함께 본 경험을 매개로 우산을 빌려주고 다시 돌려주는 과정에서, 김소영과 서수경은 “나 너 알아”라는 첫 대화로 틔어진 연락을 통해 특별한 인연을 매직 시작한다. 큰 불만 없이, 있어도 삼키며 성실히 삶을 이어나간다. 그렇게 그들은 평범한 죽음을 목격하게 된다.



“내동댕이쳐졌다.”


dd의 덧없는 죽음을 이야기하는 대목에서 d는 이렇게 말한다.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특별한 존재인 dd의 죽음은 잔인하리만큼 특별하지 않았다. d가 이를 깨닫게 되는 것은 그가 사물의 부재와 인간의 부재를 비교하는 장면에서 드러난다.

인간은 사물과 달라서 기억으로 부재를 극복할 수 있다는 말로 홀로 남은 자신을 위로하다, 무력한 삶의 낭떠러지에서 그 말의 헛됨을 미루어 판단하고 비관한다. dd는 사물과 다르지 않아서 그가 남긴 신발이나 우산처럼, 없으면 없는 거다.

김소영과 서수경이 세월호의 죽음을 마주하는 2014년 4월 16일 역시 아주 평범하다. 여느 때와 같이 평범하게 살아가던 그날 배가 침몰하는 모습을 지켜보며 전원 구조라는 속보를 보고 희망을 가졌다가, 오보라는 소식에 낙담했다가, 진전되지 않는 구조 소식에 좌절한다.

아마 5년 전 그날 대부분의 대한민국 국민이 그렇게 세월호를 맞닥뜨렸을 것이다. 그때의 절망감과 허무감은 한순간에 ‘내동댕이쳐진’ 어떤 것들에 대한 감정이었다. 몰랐던 것의 발견이 아닌 알았던 것의 표출이라는 사건의 본질이 확인되자 허무감은 배가되었다.

이야기는 이렇게 평범한 이들이, 죽음마저 평범한 것을 대면한 이들이 ‘혁명’이라는 비범한 광경을 마주하는 부분에서 전환된다. 그 곳은 2016년 말의 광화문이었다. 사랑하는 사람은 왜 함께 오지 않았냐는 질문에 ‘하찮아서’라는 비관적인 대답을 되뇌던 d는 ‘하찮은’ 사람들이 만들어낸 혁명과 직면한다.

함께 오지 않은 이유였던 ‘하찮음’은 누군가는 돌아와야 할, 누군가는 새로이 모색해야 할 자리로 나아갈 작고도 거대한 원동력이 될 수 있음을 깨닫는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특별한 만남의 지극히 평범한 시작이었던 dd의 우산이 필요함을 자각한다.


“모두가 돌아갈 무렵엔 우산이 필요하다”

- 디디의 우산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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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의 이야기에서 모두가 함께 겪은 상실의 감각이 마무리 지어졌다면 김소영과 서수경의 이야기는 거기서 한 발 더 나아가 평범함이 만들어내는 혁명에서도 누락되는 사람들의 존재를 떠올린다. 여성, 그리고 동성애자인 그들은 당연한 차별의 대상이다.

1996년의 연세대에서도, 20년이 지난 2016년의 광화문에서도 그들은 평범한 시민의 이상에서마저 탈각됨을 느낀다. 빛나는 민주주의의 산실로 평가되는 광장에서도 주인이 되지 못한 국민이 여전히 존재함을, 모두가 똑같은 목적을 갖고 똑같이 싸운다는 허상의 물결 속에서 발견한다.

극은 2017년 3월, 대통령 탄핵이 결정되었을 당시 발표되었던 판결문이 d와 김소영, 서수경에 의해 읽히면서 끝난다. 각종 책임을 물을 수 없다는 허무한 문장이 가득한 판결문에서 그들은 혁명의 미완성을 확인한다. 광장을 메운 승리감과 그 사이를 비집고 들어오는 절망감 속에서 dd가 조용히 읊조린다. 모두가 돌아갈 무렵엔 우산이 필요하다고.

그들이 판결문에서 느꼈던 절망감은 3년이 지나도록 반전되지 않았고 비는 아직도 내리고 있다. ‘모두가 돌아가지’ 못한 상황에서 필요한 우산이란 무엇일까. 관객에게 묻듯이 인물들이 객석을 오롯이 바라보며 극은 끝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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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은 일종의 새드엔딩으로 끝나지만 희망적인 훗날을 암시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억하기 위해, 잊지 않기 위해, 제자리를 탐색하기 위해 극을 보러 온 4월 19일의 관객들에게 그 희망의 열쇠가 쥐어지는 듯 보였기 때문이다. 잊지 않고 d에게 되돌려준 dd의 우산처럼, 그렇게 평범하게 시작되어 특별하게 번진 인연처럼 희망도 그렇게 지펴진다. 더 나아가 평범함에서도 탈락되는 이들에게 우산을 씌워주는 이 극처럼 담론은 다양한 층위로 확장되어야 한다.

모두가 우산을 쓰기까지, 언제가 될진 모르겠지만 비가 그칠 때까지. 평범한 모든 이들을 위하여 ‘징하게’ 씌워주어야 한다. 사물처럼 인간도 없으면 없는 거라면, 없어진 자리가 침식되지 않게 모두가 힘써야 할 것이다. 그게 내가 생각하는 제자리로 돌아오지 못한 이들을 기억하는 방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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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현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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