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달나라에 사는 여인 [도서]

사랑이 삶을 바꿔줄 거라고 믿는 여인 이야기
글 입력 2019.04.27 1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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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들어서는 자기 계발서나 정보 위주의 글을 자주 읽었다. 바쁘게 지나가는 일상 속에서 조금이라도 내 삶이 나아지는 데 도움이 되는 읽을거리여야 시간을 투자할 가치가 있었다고 여겼던 것 같다.

퇴근길에 신분당선에서 강남역으로 환승하기 전에 그 엄청난 인파에 한숨을 쉬고, 어차피 환승 금액도 얼마 되지 않을 거, 중고서점을 들르게 된다. 그렇게 퇴근길의 여유라는 것을 잠시 즐기게 된다. 놀기 좋은 곳으로 알려진 강남이지만, 퇴근 시간에 직장인들도 꽤 보인다. 저마다 관심있는 책을 쌓아두고 읽기도 하고, 일반 책보다 5천원가량 저렴한 책을 사서 집으로 돌아가기도 한다.

처음에는 서점에서 책을 읽는 모습을 이해하지 못했다. 도서관이랑 다르게, 서점은 이윤을 내기 위한 곳이라 책을 잠시 살펴볼 정도면 되지, 왜 읽을 수 있는 좌석까지 제공하는 걸까? 한번 읽으면 굳이 사지 않을 것이라는 판단을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번 읽어도 사고싶은 책은 몇가지 있다. 나는 의외로 사랑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라서, '노르웨이의 숲'과 '오만과 편견'이 대표적으로 소장하고 싶은 책이다. 그리고, 이번에 아트인사이트 문화초대로 읽은 <달나라의 여인>도 오래오래 갖고 지나가다가 한번씩 읽어볼 책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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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이야기

사랑을 이야기하는 글은 많고, 한없이 비슷해지기 쉽고, 현실 같지 않고 황당하기도 하고, 그러면서도 공감되기 때문에 계속해서 찾아보게 된다.

엄청난 우연이 주는 사건에 의해서 두 사람이 만나서 사랑에 빠지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아 물론 그 전에 두 사람이 갈등을 겪는 경우도 있다. <달나라의 여인>은 1950년대의 2차 세계대전 때의 이야기인데, 그 정도 시대의 이야기에는 엄청난 부잣집과 가난한 집이 자연스럽게 등장하고, 부모에 의해서 하게 된 결혼, 사정상 하게 된 결혼 등 여러 가지 클리셰가 있어서 그걸 살펴보는 재미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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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나라에 사는 여인>은 노처녀가 될 때까지 결혼하지 못한 '미친 여자'가 그 여자의 집안에 빚을 진 남자와 결혼하게 되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특이한 점은 주인공을 '할머니'와 '할아버지'라고 말하는 방식으로 이야기가 진행된다는 점이다. 그 손자가 할머니에게 들은 이야기를 독자에게 전달해준다. 그런데도, '할머니는 ~라고 하셨다'라는 말투가 아니라 '할머니는 ~했었다'라는 말투로 이야기를 하는 독특한 방식이었다.

할머니의 삶은 사랑이라는 감정을 갈구하다가, 평생 사랑을 꿈꾸기만 하는 그런 삶이었다. 사랑 외에 아무것도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다. 정해진 시간에 일어나, 집안일을 하고, 물을 길어오고, 빵을 만들고, 키우는 동물에게 모이를 주는 일과를 전혀 좋아하지 않고, '사랑'이 자신의 삶을 바꿔주기를 바란다.

할머니는 젊은 시절에 무척 예뻐서 많은 청년의 환심을 샀지만, 그 시대는 여자가 쾌락을 드러내면 안 되는 때였다. 그래서 부모님과 주변 사람들에게 미친 취급을 당했고, 언제부터 미친 거였는지는 모르겠지만 정말로 미쳐버리게 된다. 수시로 동맥을 자르고, 머리카락을 모조리 잘라버리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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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피적 사랑

어느 정도 나이가 드니까, '사랑'이라는 감정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게 되는 것 같다. 20살 또는 그 비슷한 나이에는 사랑이 단순히 어떤 사람을 향한 뜨거운 감정이라고 생각했고, 꼭 행복한 결말로 끝나는 것이라고 여겼다. 그래서 사랑을 찾아 헤맸던 것 같다. 지루해지면 사람을 찾아 나서고, 또 사람을 사귀고, 그러다 보니 혼자가 되는 순간이 두려워지기도 했다.

그때는 몰랐지만, 애인이 생기거나, 내가 진짜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게 된다면 나의 부족한 점도 메워지고, 나의 지루한 하루가 좀 더 완전해지고 즐거워질 거로 생각했던 것 같다. 정작 괜찮은 사람을 만나게 되어도 나의 문제점을 이겨내지 못했기 때문에 늘 소극적이고 실패하게 되고 마는데, 그걸 상대방의 탓으로 미루고 말이다.

하지만 결국은 내가 해결해야 할 문제였다는 것을 갈등 속에서 깨닫게 된 것을 보면, 그것도 어쩌면 사랑이 가능하게 해주었던 것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은 든다. 아마 누군가와의 다툼과 지적이 없었다면, 절대 깨닫지 못했을 생각이었기 때문이다.

나의 문제를 해결해달라고 아무리 매달려도, 다른 사람은 나를 바꿀 수 없다는 사실도 오랜 시간이 지나야 알 수 있었다. 좀 더 내가 원하는 삶을 살기 위해, 좀 더 멋진 삶을 위해서 해야 하는 일은 맛있는 디저트를 매일 먹는 것도, 아주 멋진 사람과 데이트를 하는 것도, 돈을 모아 여행을 가는 것도 아니었다. 그냥 평범하게 살기 위해 진짜 말 그대로 노력하는 거였다. 평범하게 일어날 시간에 일어나고, 평범하게 아침밥을 먹고, 평범하게 일을 하거나 공부를 하는 그런 것을 연습해야 하는 거였다.

누가 그런 것을 못하냐고 하겠지만, 세상에는 그런 기본적인 것조차 결핍되어 하지 못하고 사는 사람들이 있다. 산다는 것은 누군가에게는 인식도 하지 못할 정도로 쉬운 거겠지만, 나에겐 지난 세월이 하루하루 의문투성이였다. 매일 저녁 생각했던 것 같다. 지금 죽어도, 살인마가 갑자기 나타난다고 해도 딱히 상관없을 것 같다고.

부족한 나의 하루, 결핍된 나의 일상, 아무리 해도 의미를 찾을 수 없는 삶에서 벗어나기 위해 꿈꾸는 현실 도피적인 사랑에 대한 환상은 결국 아무런 소용이 없다는 것. 그건 애정 결핍도, 섹스 중독도 아닌 그냥 '연습 부족'이라고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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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아버지와 재향군인

<달나라에 사는 여인>이 재밌는 이유는 정말 개성적인 인물들 때문이다. 인물 개개인에 대한 묘사도 뛰어나서 어떤 사람인지 상상하는 재미가 있는데, 할머니와 관련 있는 남자로 할아버지와 재향 군인이 나온다.

할아버지는 할머니의 남편이고, 재향군인은 할머니가 정말로 사랑했던 사람이다. 할아버지는 원래 아내와 가족들을 잃고 할머니와 결혼을 했지만, 사창가에 드나드는 사람이다. 일상생활에서는 할머니에게 정말 잘해주는 사람으로 나와서 가끔, 한 가지 결점과 치명적인 결점을 헷갈리는 자신을 발견할 때가 있다.

남편이 모든 게 완벽하고 잘 맞춰주는데 사창가에 간다, 라는 한 가지의 치명적인 결점이 있다면, 그건 절대로 남편이 설거지를 하고 나서 행주를 씻지 않는다, 라는 한 가지 단점과 같을 수는 없다. 그 시대에는 남자가 결혼해도 사창가에 드나드는 게 당연했을지는 몰라도, 그리고 아무리 자신의 마음 상처가 심해서 그런 행동을 한다고 해도 절대 용서받을 행동이 되지 못한다. 할아버지는 참 이상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든다. 사창가에 드나들 정도로 자신의 아내를 무시하는 사람이, 평소에 잘해준다는 것은 정말 이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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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는 그런 할아버지에게 맞춰주며, 사창가의 여자를 따라 하는 성관계를 해준다. 사냥감, 노예, 게이샤, 점심, 소녀, 뮤즈 등 여러 상황에 맞춰서 할아버지가 원하는 것을 하는 것이다. 할머니는 그런 상황을 별로 싫어하지 않는다. 그렇게 해서라도 할아버지가 사창가의 수많은 여자보다 자신이 가장 아름답다고 말해주기를 바랐다.

재향군인은 할머니가 유일하다고 말해주는 사람이었고, 꼭 껴안아주는 사람이었다. 할머니는 그와 함께하는 시간이 가장 행복했다고 말한다.

만약, 할아버지가 할머니를 꼭 안아줄 정도로 다정한 사람이고, 사창가로 발길을 끊을 정도로 다정한 사람이었다면 할머니는 꿈꾸던 사랑을 이룰 수 있었을까.

할머니는 글 중간중간에도 할아버지를 사랑하지 못했던 것이 슬펐다고 말했다. 누구에게라도 사랑받고 싶었지만, 자신이 원하는 사랑을 해주지 않은 상대는 사랑할 수 없었던 걸까. 옆에서 가장 안정된 사랑을 할 수 있는데 그렇게 할 수 없는 자신의 삶이 얼마나 슬펐을까.

*

그런 할머니가 신장 치료를 위해 갔던 온천에서 만난 재향 군인에게 사랑에 빠졌다. 그건 왜였을까?

첫눈에 반한다, 라는 흔한 말로 그 사랑을 설명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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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을 너무나 하고 싶었지만, 사랑을 할 수 없었던 한 사람의 이야기였다. 책의 뒷표지에는 신비와 열정으로 가득찬 아름다운 이야기라고 되어있었지만, 나는 이 책에서 아름다움보다는 좀 더 간절한 슬픔과 고독함을 읽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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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지수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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