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사랑이 스쳐가지 않은 한 사람 - 달나라에 사는 여인

그녀의 사랑은 어디에 있을까
글 입력 2019.04.28 23: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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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여인이 온몸으로 사랑을 갈구했으나
사랑은 한 번도 그녀를 스쳐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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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나라에 사는 여인>
밀레나 아구스 지음 / 김현주 옮김


책을 읽기 전에 잠시 제목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달나라에 사는 여인이란 무슨 의미일까. 평범하지 않다는 것, 다수가 아닌 눈에 띄는 소수, 어딘가 다른 구석이 있는 사람이란 뜻이겠다. 책 소개를 보면 여성에게 성 엄숙주의가 강요되던 시절, 남자에게 열렬히 구애하던 한 여인의 이야기 같은데 이미 흔하고 익숙한 소재이다.

정숙함이 요구되던 시절 적극적으로 육체적 사랑을 구하는 여성의 이야기는 파격적이지 않다. 하지만 사랑은 저마다 다른 모습을 하고 있다. 그래서 기대감을 가지고 책을 펼쳐들었다.



손녀가 들려주는 할머니의 이야기


책은 소녀가 할머니에게 들은 이야기를 전달하는 방식이다. 사랑 이야기인데 당사자의 감정이 직접 드러나는 게 아니라 제 3자를 거친다는 점에서 다소 의아했다. 분량이 짧은 만큼 감정선이 세세하게 다루어질 수 없는데 주요인물의 감정이 바로 전달되지 않았다. 사랑을 이야기하고 이해하기엔 어려운 방식이 아닌가 싶다.

더불어 할머니가 손녀에게 이런 이야기를 해도 되나 싶었다. (...) 재향군인은 할머니에게 아주 잘했다고, 사창가에서 아무리 높은 값을 치러도 할머니 같은 여자는 만난 적이 없다고 칭찬했다. 는 대목과 이후로 이어지는 레퍼토리(잠자리 쇼)가 할머니 시점에서 서술되었다면 모를까 손녀를 통해 저런 이야기가 전달되니 전혀 궁금하지 않은 남의 사생활을 알게 된 기분이었다.

낯 뜨거운 내용의 정열적인 사랑의 시를 쓴 할머니를 매질하는 증조할머니, 자해를 하고 머리카락을 자르고 우물에 뛰어드는 할머니, 사창가에 드나드는 할아버지, 세상사에 관심 없는 예술가 아빠, 언제나 아버지와 함께인 어머니 그리고 부자인 친정과 연을 끊고 혼자 아이를 키우며 힘들게 살아 여유라곤 찾아볼 수 없는 외할머니. 모든 인물의 캐릭터가 분명하고 강했다.

누구를 주인공으로 삼아도 이야기가 진행될 수 있을 정도로 설정은 탄탄했다. 이 과정에서 서술자인 ‘나’는 제외되어있다. 철저히 서술자의 역할을 수행하다 마지막에 가서야 이야기의 실체를 발견하게 된다.



달나라에 사는 여자



"그리고 할머니는 미친 게 아니라 그저 하느님이 한결같이 평범한 여성이 만들고 싶지 않은 때 시적 영감이 떠올라 특별하게 창조한 피조물이라고 말했다."

"평생 달나라에 사는 여자 같다는 말을 들었는데, 드디어 같은 달나라 남자를 만난 것 같았다. 그것이 할머니가 오래전부터 그리워한,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일이었다."

"부인이 지어낸 우리 둘 사이의 사랑이 감동스러웠고, 그 내용을 읽으면서, 뻔뻔한 것 같지만, 그 사랑이 사실이 아니라는 게 안타까웠어요."


할머니는 사랑을 꿈꿨으나 한 번도 가진 적이 없었다. 할아버지를 사랑할 수 있었으면 좋았겠지만, 할아버지를 사랑하지 못했고 자신이 원하는 사랑을 받지 못했기에 결핍이 더 두드러졌을 수도 있다. 사람이 하는 일은, 사랑이 하는 일은 더더욱 마음처럼 움직여주지 않는다.

정말 좋은 사람임에도 사랑이 다가와주지 않고, 좋은 사람이 아니란 걸 알면서도 마음이 끌린다. 원하는 사람과 서로 같은 감정을 주고받을 수 있다면 좋을 텐데 이따금 예상치 못한 마음과 사람이 등장하기도 한다.



사랑을 경험한 여인, 리아



내 기다림이 창백한 겨울빛에 부끄러워하며 지내다가 봄의 푸른 두드림에 불안스럽게 잠에서 깬다. 내 기다림은 부끄러움을 모르는, 초조하지만 달콤한 노란 미모사 속에서 당신을 이해하지도, 스스로를 이해시키지도 못하고 있다.


내가 이 책에서 가장 매력을 느낀 건 외할머니인 리아였다. 가정이 있는 목동의 아이를 임신하고도 목동의 가정을 깨뜨리고 싶지 않아 임신 사실을 알리지 않은 채 도망쳤다. 가진 것이 없어 가정부로 일했고, 아이를 키우면서 고등학교 졸업장을 받았고, 사무원이 되어 집도 사게 되었다. 가족에게 용서를 구했지만 결혼도 하지 않은 딸이 임신하였단 사실에 가족들은 리아를 창피해했고, 미워했다.

친아버지를 알고 싶던 리아의 딸은 엄마의 친정을 찾아갔으나 알게 된 것은 친정에선 이미 죽은 사람이 되어있는 막내 리아와 이모의 입을 통해 들은 리아가 썼던 시였다. 리아에게 사랑의 댓가는 가혹했다. 로맨스가 있던 젊음이 한순간에 사라지고 척박한 삶만 남았다. 가진 모든 것을 뒤로하고 아이를 선택했다. 아내가 있는 목동과 밤을 함께 보냈다는 점이 이해가 잘 안 가지만, 책 속 인물 중 사랑을 혹독하게 경험한 건 리아뿐이었다.



달나라 여인의 상상속 사랑


책이 영화화 되었다는 홍보 문구와 기대감을 일으키는 제목에 비해 내용은 대단하지 않았다. 혹시 영화가 각색이 잘되어 칸에 노미네이트 된 건 아닐까 잠시 생각하기도 했다. 유난스러운 사랑도, 격렬한 사랑도 없었다. 진정한 사랑을 꿈 꾼 한 사람의 이야기를 생각했는데 정서적으로 불안해보이는 여성이 ‘진정한 사랑’에 집착하는 모습이 그려졌다.

그래도 한 번은 사랑이 그녀에게 닿은 줄 알았는데 사랑은 상상 속에 있었다. 달나라에 사는 여인은 그토록 바라던 사랑을 하지 못하고 돌아갔다. 아니, 이젠 잘 모르겠다. 왜 그녀가 그토록 사랑을 바랐는지. 그녀가 원하던 사랑이 세상에 존재할 수는 있었는지. 그녀에게 사랑이란 도대체 무엇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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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나라에 사는 여인
(MAL DI PIETRE)


지은이: 밀레나 아구스(Milena Agus)

옮긴이: 김현주

분량: 116쪽

정가: 12,500원

출판사: 도서출판 잔

발행일: 2019년 4월 15일

판형: 130×195(mm) / 페이퍼백

ISBN: 979-11-965176-6-3 038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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