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살아갈 수밖에 없는 삶에 대하여, 연극 "7번 국도"

글 입력 2019.04.30 1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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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7번 국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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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석 충돌이다. 삶을 송두리째 바꿔 놓는 거대한 사건이 밀려온다. 그런데도 피해자를 제외한 주변은 변한 게 아무것도 없다. 특히 국가 혹은 기업과 같은 거대한 힘과 맞서 싸우는 일은 위협 그 자체다. 이들이 가하는 폭력은 개인에게는 너무나도 치명적이다. 연극 <7번 국도>는 삼성 반도체 백혈병 사건과 군 의문사 사건이란 개인이 거대 권력에 맞서 싸우는 과정을 지난하게 그려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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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위에서 마주하는 피해자들의 삶



연극은 강원도 속초, 7번 국도 위 어딘가에서 시작한다. 어디론가 떠나려는 주영은 택시운전사 동훈의 택시를 탄다. 소소한 이야기가 오간다. 이내 주영은 공장에서 일하다 죽은 초등학교 동문에 대한 이야기를 꺼낸다. 이름조차 알지 못하는 동문에 대한 소문은 주영에게 있어 부정적이다. 낯선 군인의 이야기를 잠자코 듣는 운전사 동훈은 의문의 죽음을 맞이한 동문의 어머니다.

 

택시 안에서 주영과 동훈의 대화는 삼성 반도체 백혈병 사건으로 이어진다. 대학에 가서 공부를 계속 했더라면, 딸아이가 사고를 당하지 않았으리라 믿는 동훈의 바람은 명문 대학을 다니는 주영의 현실과 상반된다. 동훈에게 주영은 부족할 것 없는 군인으로 비친다.

 

택시 운전을 하면서 벌이를 유지하는 동훈은 경기도 수원의 공장을 찾아 1인 시위를 계속 한다. 아무도 관심을 가지지 않고, 누구도 도와주지 않는다며 동훈을 말리는 민재다. 그러면서 함께했지만, 더 이상 함께 목소리를 외치지 않는 용선을 떠올린다.

 

길이 끝나는 곳에서 또 다른 길이 시작된다. 작품의 초반부는 삼성 백혈병 사건을 중심으로 한다. 그러나 부족할 것 없어 보이던 주영도 사실은 군에서 가혹행위를 당한 사병이었다는 사실이 드러나기 시작한다. 각자의 무게를 짊어지고 길을 걸어가던 이들은 서로를 마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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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현을 통해 실재를 이야기하다



연극 <7번 국도>의 무대 구성은 단출하다. 고장 난 자동차와 부품들이 가지런히 놓여있다. 놓여있는 부품들 사이를 지나서 배우들은 무대 앞에 선다. 배우들의 연기는 대화라기보다는 발악에 가깝다.


내가 이만큼 힘들고 답답하니 나의 억울함을 들어달라는 외침으로 다가온다. 같은 공간에 있는 인물들은 서로를 보지 않는다. 이 모든 것은 피해자로 살아가는 삶의 단면이니 관객들이 이를 보고 이해해달라는 메시지로 전달된다. 작품은 재현이란 방식을 통해서 실재하는 세계를 담아내고 있다.

 

일반적으로 시간은 과거에서 현재로 흐른다. 하지만 사건의 소용돌이에 휩쓸리게 되는 순간, 시간은 고정된다. 모든 시간은 사건 발생을 향해 흐르기 시작한다. 과거, 현재, 미래라는 보편적인 시간성은 파괴되어 오로지 사건 발생과 해결이란 측정 불가능한 시간만 존재한다. 그렇기에 피해 당사자가 아닌 이들이 보았을 때 피해자들은 언제나 그 시간에 머물러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들은 그 누구보다 사건으로부터 달아나길 원하는 이들이다. 누구에겐 과거의 것에 불과하지만 그들에게는 언제나 현실인 비극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어떠한 노력도 마다하지 않는다.

 

개인이 마주하는 일상의 충돌에 대한 상흔의 크기는 각기 다르다. 그렇기에 용선, 기주, 동훈, 주영, 민재의 시간 또한 다르게 흐를 수밖에 없다. 동훈에겐 발악이지만, 민재에겐 미련이다. 주영에게는 미안함뿐이지만, 기주는 닿는 데 까지 노력하려는 마음뿐이다. 등장인물 사이의 갈등과 충돌, 변화는 피해 집단 사이에서 일어나는 균열을 의미한다. 사건 앞에서 각자의 시간은 다르기에 일어나는 지극히 자연스러운 현상이지만 당사자가 아닌 제 3자의 시선에 피해자는 언제나 오합지졸인 것처럼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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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해자의 삶, 다르게 흐르는 시간성



서로 다른 시간성으로 인해 일어나는 아이러니함은 피해자를 향한 맹목적인 동정을 의미하는 게 아니다. 같은 사건을 마주하면서도 서로 다르게 흐르는 시간을 보면서 당사자 사이의 문제를 당사자만의 문제로 한정시키지 않고 우리가 마주하고 있는 현실임을 알린다.


으레 피해자들은 지나치게 감정적이고, 피해 의식에 찌들어 있다는 통념적인 사고방식을 벗어나고 그러한 전형성으로부터 멀어지는 것이 연극 <7번 국도>가 던지는 물음이다. 과연 우리는 피해자의 삶을, 사건으로부터 멈춰버린 피해자의 시간을 올바르게 직시할 수 있을 것인가.

 

동훈은 계속 1인 시위를 할 것인지, 기주는 마침내 주영을 온전히 보내줄 수 있는지. 연극 <7번 국도>는 막을 내렸지만, 남겨진 이들에 대한 물음은 여전하다. 피해자, 피해자의 가족, 피해자 가족의 사이, 피해자끼리 등 피해 집단 속에 있는 여러 층위의 존재들이 있다. 그럼에도 사회는 ‘나의 일’이 아니라고 피해자로 단순화시킨다. 강요받은 ‘피해자다움’은 공감과 혐오의 아이러니한 공존을 야기한다. 연극 <7번 국도>는 당연하다 생각해온 당연하지 않은 시선에 대하여 경각심을 일깨워주는 작품으로 다가온다.



사진출처

남산예술센터 이강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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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번 국도

- 남산예술센터 2019시즌프로그램-


기간

2019년 4월 17일(수)-4월 28일(일)


작  배해률


연출  구자혜


출연

권은혜 박수진

이 리 전박찬 최요한


무대   장 호


조명  김형연


사운드  목소


의상  우영주


주최/주관 

(재)서울문화재단

여기는 당연히, 극장


제작

남산예술센터

여기는 당연히, 극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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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다선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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