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맛과 멋이 있는 도쿄 건축 산책

글 입력 2019.04.30 1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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맛과 멋이 있는 도쿄 건축 산책


2019년 4월, 2주간 유럽으로 신혼여행을 다녀왔다. 제법 다녀온 유럽여행이지만, 혼자가 아닌 둘이 되니 여행의 경계는 한층 더 넓어지고 깊어졌다. 여행의 이유가 단지 관광이 아닌, 안목을 더한 둘의 여행이 되었기 때문일까? 같은 공간을 다시 바라보는 재생의 시간이었다. 갔던 박물관을, 미술관을, 거리를 배회하며 스쳤다. 시선이 지날 때마다 무언가를 다시 움켜쥔 기분이 들었다. 아마도 내가 놓친 건 지나간 청춘의 후회일 수도 있고, 앞으로 놓쳐서는 안 될 무언가 일 수도 있겠다 싶었다.

유럽에서 눈길이 간 건 ‘벽’들이었다. 단단하게 나와 너의 경계를 구분짓는 벽, 건물과 건물, 골목과 골목, 도시와 도시, 국가와 국가, 그리고 너와 나. 자아와 타인의 경계처럼 오랜 시간 견고하게 쌓인 벽들은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는 듯 하였다. 한국에 와서도 줄곧 벽 생각을 했다.

유럽과 한국의 벽은 많이 달랐다. 콘크리트로 급히 쌓아 올린 한국의 벽들은 바벨탑의 현대판 같았다. 그렇게 여행을 복기하고 있을 즈음, 파리 노트르담 대성당이 화재로 무너졌다. 생생한 현장 소식이 인터넷에 소개된 건 달무리 차던새벽녘이었다. 아직 시차 적응이 덜 된 탓에 두눈을 껌뻑이고 서성이던 까마득한 시간, 오래 시간 세계문화유산으로 사랑 받던 역사의 건축물이 한 줌의 재가 되었다.

불과 이주일 전, 운 좋게 원형의 모습을 본, 화마에 휩싸인 성당의 잔해에 허탕해 하는 여행자의 기분을 뭐라고 설명해야 할까? 잘 모르던 건축이지만, 건축이 남 겨주는 감정적이고 심리적인 잔상은 무엇인지 알 것만 같았다.


오래 살아온 집에는 상처가 있다.
지워지지 않는 벽지의 얼룩처럼
온갖 기억들이 집 여기저기에 들러붙어 있다.

- 64페이지, 김영하, 여행이 이유 중


최근 김영하 작가의 여행의 이유를 읽었다. 그 중 기억에 남던 글귀는 바로 ‘오래 살아온 집’이었다. 오래 살아온 집에는 인간의 감정, 희로애락이 모두 담겨 있다. 인간의 숨결과 살결 모두, 그 공간에서 태어나고 사라진다. 집은 우리가 거주하는 주거 형태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우리가 일하는 일터, 쉼터, 지나가는 모든 터가 집의 영역에서 살아 숨쉰다.

건축은 맛과 멋이 살아 있다. 허풍을 떨거나 좀처럼 농을 하지 않는다. 보여지는 그대로 아름다움을 보여준다. 그 미가 시간의 흐름에 때가 탈 수도 있고, 혹은 조금은 바라질 수 있지만, 원형의 미는 그대로다. 일상의 흐름 속 우리가 마주하는 모든 건축이 그러하지만, 그 중에서도 많은 이들에게 존경 받고, 보존 가치가 있는 건축들은 단연 돋보이는 존재다.

<맛과 멋이 있는 도쿄 건축 산책>을 만난 것도 바로 이쯤이다. 허무하게 타버린 성당을 바라보고, 하늘로 치솟은 부동산 가격처럼 고층 빌딩들을 속절 없이 바라볼 때, 이 책을 펼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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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적인 건축가들의 손길로 태어난 도쿄의 명품 건축물 25곳을 소개한 이 책은 그저 단편적인 공간 소개에서만 끝나지 않았다. 여행과 산책 등 여성 취향의 소재로 글을 쓰던 저자 가이 미노리의 특유의 감각은 그 곳에서 먹고 마실 수 있는 먹거리 소개로 재치 있게 풀어냈다.

건축물은 건물의 외형에서 끝나지 않는다. 계단과 층간, 의자와 소품, 정원과 풍경까지 모든 것을 어우르는고 있다. 저자의 디테일한 관찰이 고스란히 책에 담겨져 있다. 건축물은 미술관, 박물관, 백화점, 대학교, 도서관과 맥줏집, 인형극장까지 다양하다. 몇 번의 도쿄 여행을 다니면서 몰랐던 이색적인 건축물들을 마주하니, 다음 도쿄여행지의 위시리스트가 더해졌다. 특히 디저트를 좋아하는 독자라면, 건축물 내부 카페와 레스토랑을 방문하길 권해 본다.

이 책을 읽으면서 두가지 궁금증이 들었다. 첫째, 서양 문물을 유연하게 받아들인 일본의 건축 세계관이었다. 최근 유럽을 다녀와서 그런지, 일본의 근대식 건축물에서 보여지는 유럽식 건축은 마치 일본에서 먹는 유럽식처럼, 그들만의 문화와 스타일로 잘 풀어낸 점이 인상적이다. 같은 양식이라도, 건축가의 가치와 철학에 따라 모양새와 쓰임새가 달라지는 법, 책에서 만난 건축물들은 각자 특유의 색감과 색채를 지닌 하나하나 그 의미를 지니고 있었다.

둘째, 도쿄의 명건축이 있다면, 서울의 명건축은 무엇일까? 누구나가 아는 남대문과 경복궁을 얘기해야 할까? 한국인의 시선에서 바라보는 한국의 건축물 중, 백화점과 우체국, 역사를 자랑스럽게 소개할 만한데가 얼마나 있을까? (물론 내 지식의 한계가 여기까지이기에, 잘은 모르지만, 그리 많지 않을 것이라는 예감이다) 세우고 허물고 부수는 건축의 형태가 아닌 그대로를 지키고 아끼는 마음은 어디에서 찾아야 하는 걸까? 그리고 나는 일년간 아빠와 한 우리술 양조장 여행이 이 물음에 조금의 답이 되어주지 않을까 싶었다.

전국 900개 가까운 막걸리 양조장은 그 지역에서 사랑 받은 가옥 형태가 많다. 역사적으로 가양주로 시작한 술의 역사는, 우리가 숨 쉬고 살붙이던 집에서 시작하였다. 집에서 공장이 되고, 식당이 되고, 양조장이 되는 근현대사를 지나며, 양조장 또한 살아 있는 건축물이자 문화 유산이 되었다. <맛과 멋이 있는 한국 건축 산책>이라면, 그 중 양조장 특집이라면 자랑스럽게 소개할 만한 우리의 건축물을 글로 쓰고 싶다. 다음 여행으로 미식과 건축이 있는 도쿄로 산책을 하러 가고 싶다.





맛과 멋이 있는 도쿄 건축 산책
- 미식과 건축이 있는 도쿄 여행 -


지은이 : 가이 미노리

옮긴이 : 강태욱

출판사 : 시그마북스

분야
일본여행
건축교양/건축이야기

규격
148*210*17(무선)

쪽 수 : 214쪽

발행일
2019년 04월 15일

정가 : 14,000원

ISBN
979-11-89199-83-8 (13980)





[오윤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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