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외로움이 바람처럼, 햇살처럼 우리를 찾으면 [문화 전반]

글 입력 2019.05.01 14: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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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지 마라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살아간다는 것은 외로움을 견디는 일이다.

공연히 오지 않는 전화를 기다리지 마라. 

- 정호승 <수선화에게>


정호승 시인의 <수선화에게>라는 시의 첫 부분이다. 중학교 때부터 속으로 곱씹었다. 외로워서, 울고 싶어서, 오지 않은 연락을 기다리다가 그랬을 것이다. 받아들이는 데 일반화만한 게 없다. 유명한 시다. 사람은 다 외로우니까, 모든 게 다 외롭다니까 한결 마음이 가벼웠다. 외로움은 나에게 사소한 곳부터 찾아왔고 그저 시구를 주문처럼 외우며 얼른 지나가기를 기다려야 했다. 그럴 땐 내 모습이 꼭 회전문 같다고 생각했다. 문 틈 사이로 많은 사람들이 오고 가지만 지나쳐갈 뿐 남아있는 사람은 많지 않았다. 사람들이 그렇듯 외로움도 그렇게 지나가길 바랐지만 안타깝게도 자주, 오래, 남아있었다.

외로움. 첫인상은 씁쓸한 담배연기 같지만 자주 만나다 보면 내겐 어딘지 모르게 달콤쌉싸름하다. 적당하면 좋지만 과하면 고통스럽다. 한 단어로 표현한다면 ‘유비쿼터스(ubiquitous). 오랜만에 듣는 단어지만 이것만한 게 없다. 언제든 어디서든, 어떤 조건에서든 가능하다. 만만치가 않다. 이겨 먹을 생각은 하지 않는게 좋다. 나는 한 생을 살고 가면 그만이지만 외로움은 못되게 보면 바이러스처럼, 좋게 보면 인간의 역사를 따라 함께 했다. 온 세상의 반 절, 혹은 모든 사람이 다 사라지고 딱 한 사람만 남아도 외로움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생명력이 강하다.

외로움에게서 배운 점. 비스무리한 다른 감정과 헷갈리게 되는 경우가 무척 많다는 것이었다. 먼저 외로 움을 홀로 있는 것으로 착각하는 경우가 있다. 예로 들면 우리가 너무나 잘 챙기는 ’자본주의적‘ 외로움이 한 몫 한다. 만들어진 외로움이라고 해도 무방하겠다. 둘 이상을 위한 행사가 정말 많다. 발렌타인데이, 화이트데이, 빼뺴로데이, 크리스마스, 주변 사람들의 기념일 선물과 이벤트 자랑, 하다 못해 음식점 커플 세트마저! 남들은 최소 둘 이상인데 나만 혼자면 마음이 아주 허전해지는 게 이상한 일도 아니다.

그건 외로움이라기보다 상대적 박탈감에 가깝다. 그런 행사나 경험을, 온기를 함께 할 존재가 있으면 좋겠지만 혼자라는 이유로 ‘자격’이 없어서 즐기지 못하는 박탈감. 막상 완벽하게 혼자인 경우는 많지 않다. 행사를 챙기려고 들면 할 수 있다. 사람과 마주치는 일이야 있을 것이고 소중하고 가까운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홀로 있는 것이 예전보다는 긍정적으로, 보편적인 이미지를 품게 되었다. 혼자여도 외롭기는 커녕 만족하는 사람들도 많다. 혼자 놀고, 먹고, 사는 것은 얼마나 편리한 세상이 되었나. 정말 좋은데 어디다 표현하고 자랑하기가 힘들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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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이 그렇게도 좋냐 멍청이들아!

두 번째는 주기적으로 찾아오는 외로움. 주로 계절적인 요인이 많다. 봄, 가을에 유독 심한 경향이 있다. 여름은 타는듯이 덥고, 겨울은 얼어죽을 듯이 추워서 외로움을 생각할 시간이 상대적으로 적은 모양이다. 옛 시조처럼 두 마리 새만 봐도 ‘저기 저 꾀꼬리는 암수 서로 정다운데 서러워라 이내 몸은’ 같은 자조적인 어투가 떠오른다. 조상님, 알고 계십니까. 당신의 외로움이 저의 외로움과 같은 부류라는 사실을요. 역사를 뛰어넘는 외로운 동지가 탄생했다.

봄엔 꽃구경 때문인지 유독 커플이 많아 보인다. 커플이 아니라서 외롭다는 건 늘 맞는 말은 아니다. 혼자 있다 보니 외로움이 잘 느껴질 수는 있다. 하지만 홀로 있든, 둘이 있든, 여럿이 있든, 언제든 외로울 수 있다. ‘커플지옥솔로천국’ 이라고 케케묵은 얘기를 하고 다닐 거라면 ‘커플도 헤어지면 끝, 외로움의 만병통치약 아냐’라거나 ‘군중 속의 고독은 뭐라 설명할거냐’는 말로 막아버리자. 대체로 밤 잠 설치는 몽글거리는 외로운 느낌은 계절이 지나가면서 좀 덜해진다. 속칭 계절을 타서 그런 걸로.

세 번째는 상황이 일으키는 외로움. 별별 일이 다 일어난다. 평온하게 살고 싶지만 내 마음을 누가 여기저기서 노 젓듯 젓거나, 심하면 거품기로 마구 뒤집어 놓는다. 화가 나고, 두렵고, 괴롭고 상처받을 때 손쉽게 외로움이라는 이름표를 붙이게 된다. 이 모든 게 아무도 나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해서, 외로워서라고 생각하면 편하다. 다른 사람들에게 말하기에 외로움은 괜찮은 감정이다. 화났어, 무서워, 보다는 외로워 정도는 다독이거나 킬킬거리고 넘어갈 수 있다. 분노나 두려움은 전하기엔 부담스러운 감정이다.

하지만 다른 사람은 몰라도 우리는 숨어있는 우리의 진짜 감정을 확인해 볼 필요가 있다. 떠올리기도 싫게 짜증나지만 파헤쳐 보는 것이다. 감정을 러시아의 전통인형 마트로슈카라 상상해보면 어떨까. 마트로슈카를 하나씩 벗기면 끝에 가장 작은 인형조각이 들어있다. 그렇게 스스로의 감정의 표면을 벗겨보는 것이다. 그 끝에 진짜 감정이 무엇이었는지 확인할 수 있다. 그 곳에 외로움이 있다면 정말 외로움 때문이다. 그러나 대체로 끝엔 다른 친구가 서있다. 내 경우에는 속상함, 두려움 같은 다른 감정일 때가 아주 많았다. 먼 길 돌아 만나게 되는 감정의 이름표는 새롭다. 그러나 습관적으로 또다시 우리는 '외롭다'라는 말을 쓴다. 외롭고 싶었던 적은 없었지만 외로움이 주는 감상엔 젖고 싶었던 모양이다. 나쁘진 않다. 비련의 주인공 같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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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우화가 떠오른다. 바람은 나그네의 외투를 여미게 하고 햇볕은 외투를 벗게 한다는 이야기. 외로움은 그런 면에서 바람이자 햇볕이다. 마음이 외투라 하면 외로움은 스산한 바람처럼 외투를 단단히 여미게 할 것이다. 어차피 사람은 외로움을 벗어날 수 없으니 체념하는 것이다. 다른 사람이 있든 없든 결과가 똑같으니 부질없는 기대를 하지 않겠다고 말이다. 물론 그런다고 바람을 피할 순 없다. 온 몸에 스며드는 한기로 그에 틈을 비집고 들어온다.

반대로 외로움은 급하게 외투를 벗고 싶어지게, 그래서 어떻게든 벗어나게 만들기도 한다. 곁에 누군가를 두고, 만나면서 허전함을 채우는 것이다. 그 김에 외로움도 덜고 좋은 사람을 만난다면 다행이지만 햇살은 때로 살갗을 벌겋게 태울 수도 있다. 만난 사람에게도, 스스로에게도 더 큰 상처를 안겨줄 수도 있다. 상대는 나에게 진심이었을 수도 있다. 지금 지친 마음에 속아 상대에게 모질게 대할 수도 있다. 이렇게 소홀하면 안된다고 생각하면서 고칠 수가 없는 건 상대를 볼 여유가 없기 때문이다. 나만 보기에도 벅차니까. 모두에게 못할 짓이다.

외로움이 바람처럼, 햇살처럼 우리에게 찾아온다면 고민해보자. 마음을 여밀 것인가, 잔뜩 열어 젖힐 것인가? 객관식이 아니니 나의 추천도 덧붙이겠다. 바람이든 햇살이든 시원한 나무그늘이나 추위, 더위 다 막아주는 실내만한 게 없다. 어떤 식으로 외로움이 찾아와도 안전할 수 있게 스스로에게 멋진 그늘이나 공간을 만들어주자. 우리에게 외로움이 계속 찾아오는 이유는 우리가 우리 스스로를 외롭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나를 아끼다보면 어떤 외로움이든 오래 머물기 어렵다. 어떻게 챙길지는 좀 고민이다. 슬프고 화나고, 속상할 때 부랴부랴 털고 일어나야겠다고 독촉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혼자든, 여럿이든, 봄이든 가을이든, 좀 힘든 일이 있든 그렇지 않든 내가 가장 아끼고 사랑하는 사람이나 대상이라고 생각하고 느긋하게 바라보자. 여유롭게 멀찍이 떨어져 구경하면서 차나 물 한잔 하시라. 언제 그랬냐는 듯 바람은 멈추고, 해는 저물지 않겠나.


[장지원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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