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동심 속 세계로의 여행, 잠자는 숲 속의 미녀 [공연예술]

국립발레단의 잠자는 숲 속의 미녀
글 입력 2019.05.02 06:31
댓글 0
  • 카카오 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 밴드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 플러스로 보내기
  • 글 스크랩
  • 글 내용 글자 크게
  • 글 내용 글자 작게



국립발레단 <잠자는 숲속의 미녀>



크기변환_1KakaoTalk_20190502_035650049.jpg
 


차이코프스키의 3대 발레인 ‘백조의 호수’, ‘잠자는 숲 속의 미녀’, ‘호두까기 인형’ 중 잠자는 숲 속의 미녀가 국립발레단의 제178회 정기공연으로 예술의전당에서 화려한 막을 열었다. 뒤늦게 공연정보를 접하게 된 나로선 정기 티켓오픈 시간을 놓쳤음에도 불구하고, 이후 3층석의 오픈 덕분에 너무나 감사하게도 이 공연을 볼 행운을 잡을 수 있었다.


특히나 감사했던 것은 이러한 높은 수준의 문화공연을 대학생 할인을 제공받아 단돈 10000원의 가격에 향유할 수 있다는 점이었다. 공연이 끝난 후 내가 지불했던 티켓의 값이 부끄러워질 정도로 국립발레단의 발레는 많은 이들에게 감동을 선사해 주었다.


‘잠자는 숲 속의 미녀’가 특히 내게 인상 깊었던 이유는 우선 아주 옛날의 시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어릴 적 카세트테이프에서 흘러나오는 동화를 벗삼아 꿈나라로의 여행을 시작했던 나에게, 오로라공주가 물레에 찔리게 되는 절망적 순간은 언제나 어린 나의 마음을 들었다 놨다 했던 기억으로 여전히 선명하기 때문이다. 동심 속에서 헤엄치던 내가 어느새 크나큰 세상의 바다로 나오게 된 지금, 이번 발레공연은 남다른 의미를 지니는 것 같았다.




이보다 더 화려할 수 있을까?

눈을 한시도 떼지 못하게 만드는 무대연출




14.jpg
 


국립발레단의 잠자는 숲 속의 미녀 공연이 관객의 마음을 사로잡은 결정적 이유는 바로 화려한 무대연출이지 않을까싶다. 공연에 등장하는 모든 배우의 의상 하나하나에도 섬세함이 넘쳐흘렀고, 그 의상들이 만들어내는 색의 아름다운 조화는 말할 것도 없었다. 또한, 무대에 등장하는 소품들을 본 후에는 감탄의 경지의 최고점에 도달한 듯한 느낌이 들었다.



13.jpg
 
 

극 장면의 전환에 따른 무대커튼의 활용, 오로라 공주가 잠든 반달모양의 꽃으로 수놓아진 관, 그리고 동화의 몽환적 느낌을 더욱 실감나게 하는데 일조했던 무대 가장자리를 가득 메운 나뭇가지들까지. 이러한 무대연출의 화려한 요소는 내가 공연을 보고 있는 관객이 아닌, 동화 속의 한 인물이 되어 3인칭 시점으로 그들의 이야기를 훔쳐보는 듯한 느낌이 들게 만들었다.


의상과 소품, 배경, 그들이 만들어낼 조화까지 세심히 고려한 것이 느껴지는 이 무대를 보며 공연을 준비한 모든 분에게 경의와 존중을 표하지 않을 수 없었다.




마녀가 이렇게 매력적이어도 되는가? 남자 마녀 ‘카라보스’



15.jpg
 


특히 이번 잠자는 숲 속의 미녀 공연이 인상 깊었던 점은 마녀 역할을 남성 무용수가 맡았다는 점이다. 강렬한 등장을 시작으로 카라보스는 이번 무대에서 상당히 비중 높은 역할이었던 것 같다. 그가 보여주는 생생한 표정 연기와 손가락 하나까지 혼을 담은듯한 안무는 그의 존재감을 압도적으로 부각시켜주었다.


또한, 공연 중 그가 무대의 검은 커튼과 한몸이 되어 무대 전체를 장악하는 듯한 효과, 장면의 전환점과 마지막 마무리에서의 등장, 그리고 거대한 검은 천을 활용하여 마법의 시각적 효과를 멋지게 연출했던 장면들. 이 모두는 카라보스가 등장할 때마다 반가운 미소가 반사적으로 나올 정도로 그에게 푹 빠지게 만들어 주었다.



2019012909360813909_1548722168.jpg
 


잠자는 숲 속의 미녀를 모티브로 한 영화 ‘말레피센트’에선 안젤리나 졸리가 마녀 역을 맡았는데, 이 영화를 볼 때도 느꼈던 것이 마녀가 단순히 ‘악’만을 상징하는 절대적 존재라고 보긴 어렵다는 점이다. 영화에서 마녀가 오로라에게 저주를 걸었던 이유도 결국 자신이 공주의 탄생을 축하하는 파티에 초대받지 못했다는 사실에 대한 서운한 마음, 즉 악의 기운보단 인간의 본성으로부터 나온 것이었다. 이후에도 그녀는 공주가 위기에 빠질 때마다 항상 곁에서 무심한 듯 지켜주고, 나중에는 공주에게 저주를 걸었던 자신을 원망하며 진심어린 눈물을 보이기도 한다.


국립발레단에 나온 마녀 ‘카라보스’는 비록 안젤리나 졸리가 연기한 마녀처럼 따뜻한 면이 부각되진 않았지만, 우리가 악할 것이라고 여기는 마녀의 이미지를 대변하진 않는다. 오히려 마녀도 우리 인간과 같은 감정을 가지고 있다고 속삭이는 것처럼 보인다.


우리가 악이라고 이미 잣대를 그은 것이 어쩌면 마냥 해로운 것만은 아닐 수도 있다는 점을 시사하는 것일까? 절대적 악이란 본디 존재하지 않는 것을 의미하는 것일까? 여러 측면에서 마녀 역할을 보며 악에 대한 나름의 깊은 고찰을 해볼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발레공연을 풍부하게 만드는데 일조한 그 외 요소들



발레공연은 무언극으로 진행되며 무용수들은 오직 음악에 따른 그들의 안무와 연기로 관객들과 소통한다. 특히 라일락 요정이 카라보스로부터 공주를 지켜내는 장면은 아직까지도 인상 깊었는데, 그 이유는 웅장한 음악의 등장에 따른 요정의 절제력을 동반한 안무 덕분이라고 느꼈다. 또한, 국립발레단 단원들의 화려한 발레기술들은 때론 관객들에게 감탄의 경지를 선사하기도 했고, 때론 아찔함으로 그들의 심장을 애태우기도 했다.



크기변환_1KakaoTalk_20190502_035326041.jpg
 


빨간 모자와 늑대, 장화신은 고양이, 알리바바와 4보석들 등 여러 동화들이 함께 등장하여 이번 발레공연의 스토리를 훨씬 풍부하게 만들어 주었던 점도 흥미로웠다. 공연을 볼 당시, 알리바바와 4보석들을 연기한 무용수들의 아름다운 의상과 각자의 발레동작에 감탄하긴 했지만 그들이 이 역할을 맡았는지는 잘 몰랐다. 하지만 나중에 다른 관객들의 후기를 찾으며 알게 된 후 너무나 반가웠고, 동시에 기억 속에서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그들과 다시 재회할 수 있어서 기쁨을 감출 수 없었다.




현장 오케스트라의 멋진 활약과 함께한 무대



이번 잠자는 숲속의 미녀 공연은 현장 오케스트라와 함께 진행되었기 때문에 더욱 생생하고 긴장감 넘치는 무대였다. 차이코프스키의 발레음악을 감상할 수 있었던 점도 너무 행복했고, 오케스트라가 만드는 아름다운 선율과 리듬, 박자에 자신의 몸을 맡긴 무용수들의 역량도 정말 대단했다.


한때 법률가였던 차이코프스키가 이렇게 훌륭한 발레음악을 만들어 냈다는 점은 아주 놀라웠고, 특히 안무가 창작되기 전 오직 그의 상상력만으로 이처럼 신비로움이 가득한 작품들을 창작했다는 사실은 또 한번 나에게 감탄을 안겨주었다.


나의 동심 깊은 곳을 여행하다 어느새 성인이 돼버린, 내 마음속 거대한 바다 속에서 잠시 길을 잃었던 잠자는 숲 속의 미녀와 여러 동화들. 그 작품들이 있었기에 어릴 적의 나는 잠자는 시간이 기다려질 만큼 행복했고, 또한 지금의 나도 옛 기억 속의 나를 회상하며 행복에 젖어들 수 있었다.


그 동화를 우리들에게 더욱 아름답게 전해주는 무용수들과 무대준비에 힘쓴 모든 분들, 그리고 결정적 요소인 발레음악을 작곡한 차이코프스키와 이를 연주한 오케스트라 단원들이 있었기에 동화가 재현되는 아름다운 장면을 마음 속 깊이 담을 수 있었다. 공연 후 커튼콜 무대에서 그들이 관객에게 건네는 인사는 그 자체로도 우아함으로 빛나고 있었고, 그들의 인사에 나 또한 감사와 존경의 마음으로 살포시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었던 황홀한 밤이었다.



크기변환_1KakaoTalk_20190502_035718177.jpg
 

[이소희 에디터]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등록번호/등록일: 경기, 아52475 / 2020.02.10   |   창간일: 2013.11.20   |   E-Mail: artinsight@naver.com
발행인/편집인/청소년보호책임자: 박형주   |   최종편집: 2024.04.15
발행소 정보: 경기도 부천시 중동로 327 238동 / Tel: 0507-1304-8223
Copyright ⓒ 2013-2024 artinsight.co.kr All Rights Reserved
아트인사이트의 모든 콘텐츠(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제·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