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의미와 사고, 그리고 개인 [문화 전반]

조지 오웰의 <1984>와 의미, 그리고 언어
글 입력 2019.05.03 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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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교 4학년의 중간고사 기간이 끝이 났다.

언제나 그랬듯이 벚꽃의 꽃말은 '중간고사' 였고, 시험기간에는 벽만 봐도 재미있었다. 이 '지옥같은' 시험기간이 끝나고, 나에게 남은 것이 하나 있다면 그건 학점도, 성취감도 아닌 '의미는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라는 질문 하나였다.

나는 주로 시간표를 짤 때 다른 학우들의 강의평가를 참고해서 어떤 강의를 들을지 결정하는 편이다. 나에게 '의미'에 대한 질문을 던져준 이 교양 수업도 처음에는 단순히 '예쁜' 시간표를 위해서, 또 다른 사람들이 듣길 잘했던 '인생 강의'라고 해서 수강신청을 했다.

그리고 한 학기의 절반이 지난 지금, '의미'에 관해 논하는 이 수업은 나에게 꽤 큰 '의미'를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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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미'라는 단어를 들었을 때 가장 직관적으로 떠오르는 단어는 '언어'일 것이다. 언어는 사람들 간의 의사소통을 가능하게 하는 상징이다. 친구와 대화를 할 때에도, 보고서를 제출할 때에도, 내가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모두 언어라는 상징을 통해 매개된다. 언어는 실재하는 대상이나 눈에 보이지 않는 생각들과 감정을 표현한다. 이 말은 곧 언어는 '실재' 그 자체가 아닌 이를 대신해 보여주는 것이기 때문에 본질 그 자체를 온전히 담아내지는 못한다. 오히려 자의적으로 만들어진 사회적인 약속이라고 보아야 한다.

기호학자 퍼스는 기호, 특히 언어 기호를 표상체, 해석체, 대상체라는 개념을 통해 설명한다.  표상체는 '실재'를 나타내는 무언가이다. 예를 들어 실제로 존재하는 꽃을 상대방에게 전달하기 위해 말로 '꽃'이라고 하거나 글로 쓴 '꽃'을 의미한다. 해석체는 이 표상체가 머릿속에서 해석된 것을 말하며, 퍼스에 따르면 기호의 해석은 사회적 약속에 따라 즉각적으로 해석되는 것이 아니라, 각 개인에 따라 새로운 의미가 만들어진다고 설명한다. 같은 사회적 규범과 약속을 공유하는 사람들내에서도 의미 해석의 차이가 발생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언어는 개인들 간의 소통에서 사용되며, 사회적으로 자의성을 가지는 상징이지만 사람마다 구체적인 해석 내용에서는 차이를 보인다. 여기서 생기는 질문은 "언어가 인간의 사고에 영향을 주는가?"이다. 인간은 태어나 '언어'를 통한 사회화와 문화 습득의 과정을 통해 한 사회의 구성원으로서의 요건을 갖추기 때문이다. '빅 브라더'로 유명한 조지오웰의 소설 <1984>는 이 질문에 대한 작가의 생각을 담고 있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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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주의 사회의 디스토피아적인 미래를 그린 소설로 잘 알려진 <1984>에서 왜 언어가 등장하는지 의아할 수도 있다. <1984>는 '빅브라더'라는 존재가 가상의 전체주의 국가 오세아니아를 사람들의 욕구 억제와 전쟁의 공포 등을 이용해 사람들을 억압적으로 통치하는 사회 속에서 주인공 '윈스턴'이 이 체계에 의심을 품지만 결국 체제에 순응해 굴복하고 마는 과정을 그린 소설이다.

빅브라더는 '텔레스크린'이라는 장치를 각 당원들의 집에 설치하여 개인을 감시하고, 국경에서의 전쟁을 강조하여 자신을 전쟁의 위협으로부터 보호해주는 존재로 상정한다. 또한 '골드스타인'이라는 체제에 반하는 인물을 극도로 악하게 묘사하고 각종 사상 교육, 세뇌 교육을 실시함으로써 철저히 체제 복종적인 인간을 만들어 낸다.

오세아니아는 '신어' 사전을 편찬한다. 신어는 기존의 영어에서 불필요한 낱말을 삭제하고, 축약어 등을 통해 사람들의 사고를 편협하게 만드는 것을 그 목적어로 한다. 독재 체제에 위협이 되는 '자유'와 같은 단어는 사용할 수 없도록 만들고, 포괄적으로 '좋다'라는 의미를 가지는 good이나 excellent와 같은 말들은 하나만 남기고 모두 삭제한다.

국가는 이렇게 언어와 이 언어를 사용해 사적인 기록을 하는 행위를 통제하는 방식으로 자신들의 힘에 위협을 줄 수 있는 요소들을 제거하고, 한 개인의 주체성을 사라지게 만든다. 오세아니아의 독제 체계 아래에서 독창성과 창조성을 가진 개인은 없다. 모든 개인은 빅브라더가 지배하는 전체주의 사회회를 구성하는 하나의 부속품으로 귀결될 뿐이다. 조지오웰의 <1984>는 이렇게 언어가 인간의 사고와 행동에 미치는 영향을 잘 드러내고 있는 소설이라고 할 수 있다.

다시 처음의 질문으로 돌아가보자. "의미는 어떻게 만들어 질까?" 정답을 내릴 수 없고, 다양한 견해가 존재하는 질문이지만 분명한 것은 의미가 '언어'를 통해 매개되는 순간 우리는 구조적인 영향력을 받을 수 밖에 없다는 사실이다. 우리가 의미와 언어를 자연스러운 것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의심하고 다시 사고하는 순간 우리는 더욱 풍부한 의미로 가득 찬 세상에서 살 수 있다.


[김수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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