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 : 제주도 편 [여행]

내가 나고 자란 곳에 친구가 찾아온다는 것
글 입력 2019.05.03 0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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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으로 ‘육지’사람들 사이에 섞인 건 고등학생 때 참가한 독도 캠프였다. 여성가족부의 지원 아래 전국의 청소년들이 탐방의 기회를 얻는 프로그램이 있는데, 나는 그중 3박 4일 일정으로 독도를 탐방하는 프로그램에 참여했다. 기후 사정 상 독도에 입도하진 못해 울릉도만 열심히 돌아다녔던 그 캠프에서 내가 제일 크게 깨달은 건 제주도에 대한 육지 사람들의 환상이 매우 크다는 사실이었다. 전국의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한 캠프답게 아이들의 출신지는 서울, 대구, 부산 등 다양했다. 그리고 거기에 제주에서 온 내가 있었다.

 

“고향이 제주도야? 그럼 정말 안녕하수꽝이라고 인사해?”

“평소에 친구들이랑 한라봉 따면서 놀아?”

 

등의 조금 장난기 섞인 질문 세례들이 황당했지만 재밌기도 했다. 내가 사는 곳이 정말 신비로운 곳이라는 사실을 실감할 수 있어서 그 질문들을 즐기기도 했다. 물론, 그때의 순박한 호기심은 나를 포함한 그들이 자유롭게 여행할 수 없는 미성년자라서 가능한 일이었다. 언제든지 자유롭게 여행을 떠날 수 있는 성인이 된 주변 사람들에게 내가 살고 있는 곳은 환상 속 미지의 곳이 아니다. 오히려 나보다 더 그들이 제주도에 대해 잘 아는 경우도 많다.

 

거기에 내가 태어나고 자란 애월읍이 최근 몇 년 사이 SNS를 통해 대표 관광지로 떠오르면서 내 추억의 공간은 이제 나만의 공간이 아니게 되었다. 지인들의 SNS에 우리 집 근처 풍경 사진이 올라오는 것도 흔한 일이 되었다. 내가 없는 여행에 담긴 내 추억들을 보며 반가움과 동시에 이제 나의 집은 사람들에게 더 이상 신비로운 곳이 아니겠구나, 하는 조금의 아쉬움도 느꼈다.

 

그러나 친구와 함께한 3박 4일 제주도 여행은, 예능 프로그램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처럼 자신이 살고 있는 곳에 친구가 찾아온다는 것은 비록 내 공간이 널리 알려졌다고 해도, 그 공간이 간직한 나의 추억은 온전히 나만의 것이라는 사실을, 이것을 친구에게 알려주는 일이 얼마나 재밌는 일인지를 알려주었다.



 

추억의 공간을 공유한다는 것


  

내가 육지 사람들과 소통하면서 가장 놀랐던 것은 그들이 가진 ‘바다’에 대한 로망이었다. 집에서 창문을 통해 볼 수 있을 정도로 바다가 익숙한 나로서는 미디어 속 바다를 보며 기뻐하는 사람들의 모습에 쉽게 공감할 수 없었다. 그러다 직접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나서야 누군가에게 바다란 쉽게 볼 수 없는 존재라는, 그 당연한 사실을 알게 되었다.

 

완벽한 내륙 지역인 대구에서 나고 자란 내 친구도 마찬가지였다. 친구에게도 제주도의 바다는 낭만의 대상이었다. 그렇다 보니 자연스럽게 우리들의 관광 코스도 바다를 중심으로 이루어졌고, 그 코스의 시작점으로 우리 집과 가까운 한담 해안도로를 선택했다.


 

한담해안로.jpg
 

 

한담 해안도로와 가장 잘 어울리는 단어는 단연 힐링일 것이다. 이전엔 아무도 몰랐던 이곳이 갑자기 제주도의 대표적인 힐링공간으로 떠오른 것은 ‘무한도전’에 등장한 이후부터였다. 나는 바로 그 주변에 살고 있기에 순식간에 일어난 변화를 직접적으로 체감할 수 있었다.

 

지금은 전국에서 온 관광객들로 가득한 그곳은 사실 나에게는 관광지이기 이전에 하굣길이었다. 유난히 걷는 걸 좋아했던 중학생의 나는 하늘이 맑은 날, 고민이 많은 날, 여유를 즐기고 싶은 날 등 여러 가지 이유로 걷고 싶을 때면 버스 대신에 두 다리로 하교했고 그때 걸었던 길이 바로 한담 해안도로였다. 그리고 그 하굣길엔 항상 옆에서 천천히 바다로 스며들어가던 붉을 빛의 태양이 있었다.

 

해안도로를 더 걷다 보면 나오는 아주 작은 모래사장은 한때 내 여름방학의 대부분을 보낸 곳이다. 그 작은 모래사장엔 아무런 고민도 없던 시절, 시간이 무한하다고 느꼈던 그 시절에 매일같이 물놀이한 어린 내가 있었다. 중학생 시절 내가 가장 좋아했던 공간을 함께 보며 나 혼자 간직했던 옛 추억을 다시 꺼내는 일은 마치 친구가 존재하지 않았던 내 과거로 친구를 초대하는 것 같았다.

      

한담엔 지나간 과거뿐만 아니라 예전과 달라진 현재도 있었다. 그 현재는 급격히 상승한 인기에 따라 생겨난 수많은 카페와 음식점의 형태로 나타났다. 한담 주변에 20년 가까이 살아왔음에도 대부분 내가 가보지 못한 곳이었다. 모두 최근 몇 년 사이에 생겨난 곳이기 때문이었다. (그 최근 몇 년 동안 나는 서울에서 생활했다.) 친구와 검색을 통해 알아본 음식점과 카페에서 바다 풍경을 바라보며 시간을 보냈다. 처음 가보는 음식점과 카페에 있으면서 한담에 새로운 형태의 추억이 만들어지고 있음을 느꼈다.


 


가족과 친구, 어색하고 소중한 만남


 

내가 살고 있는 애월읍과 서귀포 관광지들은 제법 멀리 떨어져있다. 비행기까지 타고 날아온 관광객들에겐 그 거리는 아무것도 아니겠지만 원래 고향에 가면 행동반경이 좁아지는 법이므로 내가 제주시를 벗어나는 일은 거의 없다. 그렇지만 이번 여행에서만큼은 좁디좁은 행동반경을 벗어나야겠다고 생각했다.

 

첫 번째 날을 모두 한담에서 보낸 우리는 두 번째 날의 아침이 밝자 친구의 제안에 따라 (친구가 제안하기 전까지 알지도 못했던) 중문 관광단지에 위치한 숨비정원으로 향했다. 더할 나위 완벽한 날씨에 찾은 숨비정원은 맑은 하늘, 그 하늘을 담아 더 새파란 바다, 그 주변에 피어 있는 유채꽃의 풍경을 담고 있었다.


 

숨비정원2.jpg
 

 

끊임없이 지난 추억을 꺼냈던 첫날과 달리 둘째 날의 여행은 새로운 경험에 대한 감탄의 연속이었다. 존재하는 줄도 몰랐던 정원을 둘러본 뒤 돔베 고기를 파는 한 식당을 찾았다. 너무나 맛있었던 돔베 고기와 고기국수를 지나 후식으로 제주도 스타벅스에만 먹을 수 있는 현무암 케이크까지 먹으면서 제주도에 처음 온 관광객이 된 기분을 200% 만끽했다.

 

중문 관광단지에서 보낸 시간도 행복했지만 두 번째 날 일정의 핵심은 다른 곳에 있었다. 바로 친구에게 우리 언니와 조카를 소개해주는 것이었다. 친절하게 직접 차를 몰고 우리를 데리러온 언니는 시내의 분위기 좋은 양식점에서 차를 멈췄다.

 

어린 시절엔 친구를 만나는 것은 그 친구의 가족까지 만나는 것을 의미했다. 자유롭게 놀 수 있는 공간이 제한적이었기에 어쩔 수 없이 집에서 모일 수밖에 없었고 그 안엔 항상 가족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 시절 친구의 가족들은 친구만큼이나 친숙한 존재였다.

 

하지만 그것은 모두 옛날이야기다. 고향을 떠나 서울 생활을 시작한 지 4년이 넘어가는 지금, 제주도에 있는 가족과 서울에 있는 친구가 만나는 것은 아주 희귀한 일이다. 그런데 친구가 내 고향에, 우리 가족이 사는 곳에 와준 덕분에 그 만남이 실현된 것이다.

 

자리의 주인공은 단연 2살짜리 내 조카였다. 언니가 딸을 낳고 아기 사진을 보낸 순간, 나는 바로 흔히들 말하는 조카바보가 되었다. 인생 처음으로 누군가의 이모가 된 나는 신나서 여러 사람들에게 자랑했다. 그 중 내 자랑을 가장 많이 받아줘야 했던 사람이 바로 제주도로 온 내 친구였다. 그래서 내 조카는 친구에게도 언니도 알 정도로 친근한 존재가 되었고 그렇게 언니의 제안에 따라 만남이 성사된 것이다. 1초도 가만히 있는 법을 모르는 조카의 재롱은 우리들을 끊임없이 웃게 만들었다. 서로를 알아가는 대화가 계속해서 이어졌고 특별한 만남은 화기애애하게 끝을 맺었다.

 

성인이 된 이후에 친구를 가족에게 소개할 날이 오리라고는 전혀 예상치 못했었다. 오랜만에 친구네 집에 놀러가던 어린 시절로 돌아간 기분이 들었다. 돌아가는 차 안에서 언니와 친구가 나누는 대화를 들으니 성인이 된 이후에 만난 친구가 고향 친구처럼 느껴졌다.



 

점점 끝나가는 여행


 

제주도에서의 세 번째 아침을 맞은 우리는 우도에 가기 위해 먼 길을 떠났다.

 

서울에서 알게 된 지인들이 내게 제주도 여행에 대해 조언을 구하면 내가 항상 하는 말이 있다. ‘렌트카로 여행할 것.’ 서울의 지하철에 익숙해진 이에게 버스로만 이루어진 제주도의 대중교통 체제는 답답함 그 자체이다, 게다가 유명한 관광지는 모두 시외에 있기 때문에 대중교통으로 제주도를 돌아다닌다는 건 곧 엄청난 불편함을 무릅쓰는 일이다. 그리고 그 일을 우리가 하고 있었다. 면허가 없는 나와 면허가 있지만 없는 것과 마찬가지인 친구에겐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자동차로 가도 먼 길을 오로지 버스를 이용해서 꾸역꾸역 이동한 우리는 긴 여정 끝에 우도에 발을 디뎠다.



우도.jpg
 

 

우도에 도착한 뒤 점심을 해결하자 돌아가는 배를 탈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셔틀 버스로 이동할 시간도 부족했던 우리는 결국 걸어서 바닷가를 산책한 뒤 땅콩 아이스크림을 먹고 서둘러 돌아가는 배에 올랐다.

 

이미 어릴 때부터 우도에 몇 번 와본 나는 그 짧은 관광이 크게 아쉽지 않았다. 하지만 친구는 나와 다르다. 이전에 와본 적도 없었고 나처럼 언제든지 쉽게 다시 찾을 수도 없을 것이다. 애써 제주도까지 온 친구가 실망할 까봐 마음이 불편하던 차에 친구는 태연하게 자신은 여유로운 여행이 좋다며 나의 아쉬움을 달래주었다. 친구의 말에 그제야 우도의 여러 곳을 모두 봐야한다는 조급함에서 해방되었다. 나는 가보지 못한 검멀레 해변에 대한 미련을 지우고 당장 눈앞에 펼쳐진 아름다운 서빈백사에 집중했다. 목적지를 가지 못했다는 아쉬움이 파도에 씻겨나가는 것 같았다.

 

관광하는 시간보다 이동시간이 더 길었던, 그래서 더 여운이 길고 다시 올 날을 기약하게 되었던 우도 관광도 무사히 끝나고 나와 친구는 함께 많은 대화를 나누며 마지막 밤을 보냈다.


 

 

다시 친구를 보내며



우리 집에서 3분 이내의 거리에 위치한 곽지과물해변을 둘러보는 단조로운 일정으로 마지막 날을 보냈다. 여행 내내 쉬지 않고 꺼내서 더 이상 나오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 내 추억은 마지막까지 끊임없이 쏟아졌다. 몇 시간만 지나면 친구가 제주도를 떠난다는 사실이 아쉬워서 더 열심히 추억을 공유했다.

 

열심히 3박 4일 일정을 달려온 우리는 어느새 마지막 장소, 제주국제공항에 도착했다. 비행기 시간은 코앞으로 성큼 다가왔고 나는 하는 수 없이 열심히 손을 흔들며 친구를 보냈다. 친구가 완전히 내 시야에서 사라지자 지난 3박 4일의 일들이 꿈처럼 느껴졌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여행에서 찍은 사진들을 보며 내 인생의 한 페이지에 소중한 경험이 채워졌음을 느꼈다.

 


“먼 곳으로부터 친구가 찾아오니, 어찌 기쁘지 아니한가.”


- 논어



[진금미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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