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사랑’이라는 감정의 불가항력 - 달나라에 사는 여인

달나라에 살았던 여인. 그녀에게 사랑은 무엇이었나.
글 입력 2019.05.04 1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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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에서 할머니는 하느님께 왜 이렇게 불공평한지 물었다. 어째서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우며 인생에서 겪어볼 만한 고통인 사랑을 알지 못하고, 새벽 4시에 일어나 집안일을 한 뒤 밭에 나가 일하고, 그 따분하기 짝이 없는 수예 교실에 나가고, 머리에 물동이를 이고 샘까지 가서 마실 물을 길어 오고, 열흘에 한 번씩 빵을 만드느라 밤을 꼬박 지새우고, 우물에서 두레박을 끌어올리고, 닭에게 모이를 줘야 하는지 물었다. (p11)”



사랑이란 뭘까. 항상 궁금했다. 으레 사람들이 말하곤 하는 ‘사랑’이라는 감정은, 무엇으로부터 비롯되고 어떤 상태라 말할 수 있는 걸까. 그것이 우정과는 어떻게 다른 것이며, 얼마나 압도적이고 강렬한 감정인지. 사실 이 단어의 의미를 하나로 정의내리기란 불가능에 가까울 것이다. 몇 마디 말로 점철된 문장이나 구절 안에 이 단어에 담긴 무게감을 온전히 드러낼 수 없다. 나는 항상 이렇듯 사랑이 무엇인지에 대한 판단을 유보해왔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화자의 조모가 드러내는 사랑의 깊이는 내게 그저 맹목적으로 다가왔다. 그녀가 재향군인에게 애정을 쏟았던 데에는 특별한 이유가 없었다. 그저 그였기 때문에, 그여야만 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남편을 향한 감정도, 비록 시작이 자발적이진 않았을지라도—어쨌거나 사랑에 ‘가까운 것]이었을 거라 생각한다. 재향군인을 향했던 그것과는 성격과 목적이 달랐겠지만.

 

처음부터 끝까지 책을 붙잡으며 <타당한 명분>을 찾아보고자 노력했지만 헛된 시도에 불과했다. 나의 시도가 실패할 것이라는 사실은 책장을 넘긴 지 얼마 되지 않았을 적부터 직감했다. 그렇다고 해서 온전히 욕구와 충동만이 현존하는 사랑도 아니었다. 굳이 이름을 붙이자면 그녀의 사랑은 ‘필연적인 맹목’이자, ‘필연적이지 않았던 타협’이라고 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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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그녀의 남편 (1)


 

그녀가 원해서 지금의 남편을 남편으로 맞이한 건 아니었다. 억지에 가까웠다. 마음이 동하지 않은 결혼생활은, 당연한 사실이지만 행복과는 거리가 멀다. 결혼생활 바깥에서 행복을 찾을 순 있겠지만, 적어도 ‘결혼생활’이라는 틀 안에서는 행복을 기대할 수 없다. 그녀의 삶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사랑 없이> 육체적인 쾌락이 주를 이루었던 그녀와 남편의 관계는, 서로가 서로를 수단으로 여기는 것처럼 보였다.

 

남편이 자주 드나들었던 사창가에서 만난 여자들. 그 여자들이 남편과 나누었던 성관계를 재연하고, 그의 요구를 들어주고. 그러한 아내를 남편은 칭찬했다. 소설의 초반부에 그녀와 남편이 서로를 대했던 모습들이, “정상적인” 부부관계라 보긴 분명히 어려웠다. 쾌락으로 물든 그들의 얼굴은 묘하게도 슬퍼보였다. 남편과의 결혼을 원하지 않았던 그녀는 남편이 원하는 모습으로 그와 성관계를 맺고, 쾌를 나누었다. 남편은 만족했고, 만족하는 남편을 보며 그녀 역시 만족했다.


왜? 그녀는 남편을 사랑하지 않았음에도, 왜 그와 지속적으로 육체적인 교감을 나누었는가. 육체와 육체로부터 비롯되는 쾌와 사랑의 형태는 어떻게 다른지 의문이 들었다. 다른 것은 알겠는데 그 이유는 찾기 어려웠다. 아이러니한 일이었다. 어쩌면 재향군인이 아닌 남편을 첫 소제목에 언급한 이유도, 그녀와 남편 사이에 존재했던 불가사의한 부부관계가 마음에 걸렸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나름대로 결론을 찾아보고자 노력했다. 해답 말고 결론을.



 

2. 그녀의 남편 (2), 그리고 재향군인 - ‘사랑’이라는 이름을 붙임으로써.


 

소설의 중반부부터 그녀는 재향군인에게 맹목적인 애정을 퍼붓는다. 그를 처음 만난 순간부터, 운명이 그렇게 정해 놓은 듯이 그녀는 열정적으로 그를 <사랑하기> 시작한다. 그녀는 군인을 만나기 시작한 시점부터 ‘사랑’이라는 단어를 남발한다. 그와 만나는 매순간이 그녀에겐 사랑으로 가득 차있다. 마치 자신의 전부인 것처럼, 그가 자신의 인생을 구원해줄 누군가라고 생각하는 것처럼 재향군인을 향한 그녀의 감정은 순간순간이 절박함으로 색칠되어 있었다.


그녀는 그로부터 정신적인 사랑을 갈구했다. 자신도 한 인간으로서 존중을 받을 가치가 있는 사람이라고, 인정을 받고 싶어 했다. 군인은 그녀의 마음을 알기라도 하듯 그녀를 만날 때마다 <사랑이 가득 찬> 말로 그녀를 달래 주었다. 그녀는 마치 달나라에 사는 여인 같았다고, 손녀는 말했다.

 

재향군인과의 만남에도 육체적인 관계가 동원되었다. 심지어 재향군인은 그녀에게, 자신이 지금껏 사창가에서 만난 그 어떤 여자들보다도 훌륭하고 아름다운 사람이라 말했다. 그녀는 자신이 사창가의 여자들보다 얼마나 성관계를 잘 할 수 있는지 군인 앞에서 자랑하기도 했다. 남편과의 관계와 마찬가지로, 군인을 향한 사랑에도 여전히 육체적인 쾌락이 공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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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재향군인을 만나는 동안 그녀의 입에서는 끊임없이, 지금껏 사랑을 갈구해왔다고. 자신은 사랑을 한 번도 받아본 적이 없었다며—그야말로 그녀가 찾아왔던 진정한 사랑이라 말한다. 그렇지만 굳이 왜 그 재향군인이어야만 했는가, 이유는 나오지 않는다. 앞서 말했던 것처럼 단지 그였기 때문이었다. 사실 그와 맺었던 관계와 남편과 맺었던 관계가 표면적으로 다른 차원의 관계인지는 의문이 든다. 군인도 사창가를 드나들던 사람이었고, 남편도 사창가를 드나들던 사람이었다. 단지 차이점은 군인을 향한 감정은 그녀 스스로가 ‘사랑’이라고 칭했다는 것이고, 남편을 향한 감정에는 그런 칭호를 붙이지 않았다는 것뿐이었다.

 

남편도 재향군인이 그랬던 것처럼, 분명히 그녀를 존중해주는 모습이 보였다. (사창가에 드나들었던 윤리적인 문제를 외면하는 것은 전혀 아니다.) 그녀가 신체적인 질환으로 고통을 받았을 때, 밤을 새가며 병간호를 해주던 사람은 남편이었다. 그리고 그녀에게 아름다운 옷을 사준 사람도, 그녀가 발을 헛디뎌 넘어짐으로써 그 옷이 망가졌을 때도—그녀를 보살핀 사람은 남편이었다. 진정으로 그녀가 도움이 필요한 순간에, 그녀의 곁에 있었던 사람은 그녀가 그토록 열렬하게 사랑한다고 외쳤던 재향군인이 아니었다. 그녀도 남편에게 고마워했고, 둘은 항상 잠에 들 때마다 서로를 향해 잘 자라는 인사를 잊지 않았다.

 

그렇지만 그녀는 남편을 사랑하지 “않았다.” 정말이었을까? 단지 ‘사랑’이라는 이름을 말로써 붙여 군인과의 관계에 스스로 언어적인 의미를 부여했을 뿐. 그러한 사람이 남편이 아니었을 뿐, 그녀가 가지고 있었던 감정의 깊이는 남편에게나 재향군인에게나 똑같지 않았을까, 이런저런 상상을 해 보았다.



"하지만 그녀가 그 남자, 재향군인을 좋아하는 만큼은 아니었다. 세상 그 무엇보다 그 남자가 좋았다. 그에게는 아무것도, 심지어 결석을 배출하느라 함께 소변을 보는 일도 부끄럽지 않았다. 평생 달나라에 사는 여자 같다는 말을 들었는데, 드디어 같은 달나라 남자를 만난 것 같았다. 그것이 할머니가 오래 전부터 그리워한,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일이었다."



  


3. 감정의 불가항력


 

하지만 그녀가 그토록 열정적으로 사랑했던 재향군인의 존재는 허구에 불과했다. 극 후반부에서, 그녀가 죽은 후에 재향군인이 그녀에게 남긴 편지가 발견되며 재향군인과의 사랑 이야기가 사실이 아니었음이 드러난다. 그녀를 사랑했던, 그리고 그녀가 사랑했던 재향군인은 사실 눈앞에 없는 존재였던 것이다. 그녀는 자신의 감정, <진정한 사랑>을 하고 싶다는 욕구를 소설의 초반부터 끝까지 드러냈다. 그래서 군인이 나타났을 때 비로소 사랑이 시작되었다고 기뻐했다. 그러나 재향군인은 그녀가 만들어낸 환상에 불과했다. 그녀의 욕망을 허구의 현실로 드러내기 위한 사람이었을 뿐이었다.


왜 그녀는 재향군인을 스스로 지어내야만 했는가. 자신의 옆에 남편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남편이 사실은 '상상 속의' 재향 군인이 자신에게 그래주었던 것처럼 비슷한 형태로 사랑을 베풀어주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그녀는 육체적인 쾌락만이 공존하는 관계에서 환멸을 느꼈기 때문에 재향군인을 만들어낸 게 아니었다. 남편을 사랑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자신이 <사랑>할 대상은 남편이 아니었다. 이는 불가항력적인 차원의 것인가 보다.


결론을 찾기 시작한 처음부터 이미 해답이 나온 문제였다. 감정의 화살표는 자신이 제어할 수 없었다. 그녀의 화살표는 다름 아니라 현실의 재향군인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자신이 사랑해야만 했던> 재향군인으로 돌아갔다. 그것이 그녀에겐 비극이자, 어찌 보면 구원이었다. 그녀를 달나라로 인도해줄 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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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밤에는 꼭 원작 영화와 함께 새벽을 보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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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소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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