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을 사는 사람들] 미술계의 두 외길 인생

#8 존 카스민과 데이비드 호크니
글 입력 2019.05.05 0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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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월부터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열린 <데이비드 호크니 展>의 인기가 꾸준하다. 전시 초반에는 전시장에 입장하려면 번호표를 받고 대기해야 했을 정도로 최근 몇 년 간의 전시들 중에서 이례적인 반응이다. 이런 인기는 호크니 자체의 유명세 덕분이기도 하지만, 지난 11월에 있었던 미국 크리스티 경매에서 호크니의 <예술가의 초상(두 사람이 있는 수영장)(Portrait of an Artist(Pool with Two Figures), 1972)>이 살아있는 작가의 작품 경매가의 최고치를 갱신했던 일의 영향도 클 것이다. ‘살아있는 가장 비싼 작가’라는 타이틀을 가진 인물의 한국 최초 대규모 회고전이라는 사실이 전시에 기대감을 모았고, 실제로 전시 구성과 작품 구성이 기대를 실망시키지 않았던 괜찮은 전시였다는 게 개인적인 의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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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Bigger Splash, 1967. ⓒtate
 


전시의 하이라이트는 단연 데이비드 호크니(David Hockney, 1937~)의 대표적인 수영장 시리즈 중 하나인 <더 큰 첨벙(A Bigger Splash, 1967)>이었지만, 그의 성적 정체성에 대한 고민과 독특한 미감이 드러나는 영국왕립예술학교 재학 시절의 초기작들도 인상적이었다. 그 와중에 그의 초기 작품세계에 대한 설명 중 ‘존 카스민’이라는 이름이 눈에 띄었다. 그는 영국 왕립학교 재학 시절의 호크니에게서 일찍이 가능성을 발견하고, 호크니 생애에서 주요한 아트 딜러가 되었던 인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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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vid Hockney and John Kasmin, 1965. ⓒjohnkasmin


한 인터뷰에 따르면, 존 카스민(John Kasmin, 1934~)은 호크니의 ‘영혼’과 ‘뻔뻔함’이 마음에 들어 그의 아트 딜러가 되었다고 한다. 카스민은 ‘Young Contemporaries’라는 전시에 걸린 호크니의 <인형 소년(Doll Boy, 1960)>을 보고 처음으로 그 그림을 구입했다. 겉으로는 소심하고 낯가리는 듯 보이는 호크니의 겉모습과는 달리 그의 그림에서는 장 뒤뷔페와 래리 리버스의 화풍에서 영향을 받은 듯한 패기가 느껴졌나 보다.


카스민은 당시 미국 색면추상화파에게 빠져있어 사실 호크니는 자신이 생각하는 주요 인물은 아니었다고 회고했지만, 어찌되었건 카스민은 미대생 호크니의 전시에서 그를 처음으로 알아본 인물 중 하나이며 이후 지속적으로 호크니가 마음껏 작품 활동을 해나갈 수 있도록 홍보하고 도와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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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oll Boy, 1960. ⓒdavidhockneyfoundation

 


어린 아티스트의 뻔뻔한 영혼에 끌려 그를 돕게 되었다고 말하는 것에서부터 느껴지듯 카스민 또한 예사로운 아트 딜러, 갤러리스트는 아니다. 아버지에 의해 학교에서 자퇴하고 공장에서 일하던 그가 갤러리 일을 시작하게 된 일화가 있다. 런던 소호의 갤러리를 운영하던 빅토르 무스그레이브라는 인물을 만나 갤러리에 관심을 갖게 된 카스민이 빅토르에게 갤러리에게 일하게 해달라고 조르자 빅토르는 처음엔 거절했는데, 카스민이 빅토르의 아내와 하룻밤을 보낸 사실을 알게 된 빅토르는 마침 당시 다른 여자와 바람을 피우던 중이라 카스민이 자신의 아내의 관심을 돌려주는 대가로 갤러리 일을 하게 해주었다는 것이다. 이런 웃지 못 할 사건으로 인해 예술계에 뛰어들게 된 카스민은 이후 말보로 갤러리에서 큐레이터로 일하게 되었는데, 특히 호크니를 비롯해 자신이 추천하는 예술가들을 갤러리 관장 측에서 좋아하지 않자 그는 결국 말보로 갤러리를 나와 자신의 갤러리를 직접 차리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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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hn Kasmin, Victor Musgrave,

and unknown woman, circa 1957.

ⓒNationalPortraitGalleryLondon

 


그가 차린 갤러리의 형태는 당시로서는 꽤 파격적인 것이었다. 조명이 환한 전시장 중앙에 있는 하얀색의 널찍한 전시공간은 오늘날의 관객에게는 특별할 것 없는 모습이지만, 벽에 걸린 장식적인 그림들에 익숙했던 당시 관객들에게는 낯선 것이었다. 갤러리를 그런 형태로 만든 것은 카스민이 선택했던 작가들의 작품 특성에 최대한 맞추기 위해서였다. 카스민의 작가들 중 하나인 앤서니 카로(Anthony Caro)의 커다란 강철 조각 작품을 전시하려면 그런 공간이 필요할 수밖에 없었다.


사실 지금이야 카로의 작품이 예술사적으로 높이 평가되고 있지만, 당시에는 집에 두기도 애매한 그런 작품을 사고자 하는 이들은 흔치 않았을 것이다. 잘 팔릴 작품이 아닌데도 그것을 위한 전시 공간을 크게 마련했다는 점은 “단지 돈을 벌기 위함이 아닌, 최고의 작품과 최고의 명성과 최고의 공간을 갖춘 최고의 갤러리를 만들고자” 했던 그의 신념을 증명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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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vid Hockney at the John Kasmin gallery

1966. getty images.

 


이 갤러리에서 호크니는 1963년 자신의 그림을 처음으로 전시했고, 이후로도 수차례 이곳에 자신의 그림을 걸었다. 그는 젊은 나이에 빠르게 유명해진 흔치 않은 작가였다. 얼마 후 호크니는 카스민을 따라 처음으로 로스앤젤레스를 여행했고 후에 그곳에 정착하기 시작하면서 화창하고 다채로운 로스앤젤레스의 색감을 담은 그의 대표 시리즈들을 제작하게 되었다. 정적인 화면과 컬러풀한 색채가 묘하게 조화를 이루는 로스앤젤레스의 수영장 시리즈들은 1965년 카스민의 갤러리에서 처음으로 대중에게 소개되었다.


 




카스민이 1970년대에 자신의 갤러리를 정리하게 되면서 호크니와의 직접적인 연결고리는 끊어졌지만, 그가 호크니를 일찍이 발굴하고 그에게 여러 인생을 바꿀 기회를 제공한 만큼 카스민과 호크니의 이름은 지금까지도 함께 회자되곤 한다. 사실 호크니와 카스민은 닮은 점이 있다. 주류의 흐름을 따라가기 보다는 자신의 길을 묵묵히 간다는 점이다.


미국의 추상표현주의가 절정에 달하던 1960년, 70년대에 호크니는 오히려 구상*에 계속해서 파고들었다. 모델링을 통한 세밀한 인물과 풍경의 묘사는 물론, 물과 유리와 같은 ‘투명한 것’을 묘사하는 것 또한 거듭해서 연구했다. 그 결과가 바로 지금까지도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수영장 시리즈와 두 인물 초상화 시리즈이다.


*구상 미술은 현실세계에 존재하여 눈에 보이는 여러 대상을 사실대로 묘사하는 미술이다. 형이상학적인 순수한 관념을 표현하는 기하학적인 추상 미술과 반대되는 개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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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 the Studio December 2017, 2017. ArtBasel.



이번 서울시립미술관 전시에서도 확인할 수 있듯, 그는 이미 1970년대에 자신만의 화풍을 완성하고 절정에 이른 후에도 다시점 회화, 추상 그리고 판화와 사진의 영역까지 다양한 장르와 매체를 넘나들며 실험을 거듭했다. 그의 작품은 이미 세계 유수의 미술관에 전시되어 있지만, 사진 기술과 회화를 결합한 그의 독창적인 최신작들은 여전히 아트 바젤과 같은 미술 시장의 최전선에서도 맹활약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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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hn Kasmin and David Hockney. ⓒjohnkasmin



카스민 역시 데이비드 호크니를 비롯해 케네스 놀란드, 모리스 루이스, 앤서니 카로 등 자신이 믿고 존경하는 작가들의 작품을 흔들리지 않고 꾸준히 밀고 나갔던 갤러리스트이자 아트 딜러였다. 그가 말보로 갤러리에서 일하던 시절에는 관장이 호크니를 인정하지 않자 사적으로 호크니의 작품을 팔아주기도 했고, 자신의 갤러리의 주요 후원자와 취향이 맞지 않아 결국에는 갤러리 문을 닫게 되기도 했다. 그는 자신의 직감과 이끌림에 충실했고 40년간 그의 길을 걸었다. 테이트에서 열린 영국 현대미술 25년간의 아티스트 회고전에 포함된 작가들 중에 카스민과 직간접적으로 연관되지 않은 인물이 없다는 것이 그의 외길 인생을 반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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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ohn Kasmin. agefotostock.

 


예술 분야에서의 진로를 계획하면서 이런저런 생각이 많이 드는 요즘, 호크니와 카스민처럼 그저 어떤 길을 부단하게 걷다보면 어느 순간 무언가를 이룰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생각도 든다. 인터뷰에서 카스민은 이렇게 말한 바 있다.

 

“요즘 이브 클레인 전시를 준비하는 가고시안 갤러리에서는 내가 이브 클레인을 아는 사람 중에 유일하게 살아있기 때문에 내게 공짜 저녁을 사줘요. 당신이 중요한 기억을 가진 생존자이고, 질문에 기꺼이 답할 의지가 있다면 이런 일이 생긴답니다.”

 

우스갯소리지만, 최소한 ‘중요한 기억을 가진 생존자’가 될 수 있었던 그의 충실한 삶에 경외감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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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자료


[채현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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