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트러블 트래블: 서양에서 아시아인으로 존재하기, 두 번째 [여행]

아시안 스테레오타입들
글 입력 2019.05.07 0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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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답이 없는 여행자다. 기본적으로 길치라 길을 잃는 건 일상이고, 워낙에 조심성이라고는 없는 성격인데다 술까지 좋아하니 가는 곳 마다 사건사고가 끊이지 않고있다. 게다가 물건을 잃어버리는 데는 선수라 행선지마다 내 흔적 하나씩 남기기 까지. 답이 없어도 어쩜 이렇게 없어서 어떻게든 한국에 돌아가는 길만 잃지 않고,  죽을 사건사고만 일으키지 않고, 내 오장육부만 잃지 않는 것을  목표로 여행을 다니고 있다. 그야말로 좌충우돌 천방지축 트러블 트래블.

하루하루가 아슬아슬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2개월 반 유럽여행을 계획했던 처음과 달리 8개월 넘게 여행을 지속중이다. 무엇이 그렇게 문제고, 또 무엇이 그럼에도 여행을 지속하게 만드는 걸까. 말도 많고 탈도많은 내 여행에 대해서 이야기 해보고자 한다.


트러블 트래블:
서양에서 아시아인으로 존재하기, 두 번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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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안'을 평가하는 다양한 색안경들, 스테레오 타입

 
러시아부터 유럽, 터키, 아르메니아, 조지아까지. '서양'이라 불리는 곳을 8개월째 여행하고 있다보니 자연스레 '동양'인에 대한 다양한 스테레오 타입들을 마주하고 있다. 개중엔 예상 가능했던 것들도 있었고 충격적인 것들도 있었다. 서양인들이 '한국인'에게 가지고 있는 스테레오타입들은 어떤 게 있는지 한번 풀어보려고 한다.



아시안은 그래


아시안에 대한 전반적인 인식은 대개 가족주의, 전체주의, 사회적 압박, 예의 등 하나의 선상에 있는 키워드들로 묶이곤 했다.

'아시아 여행객' 자체에 대한 가장 전반적인 인식은 '단체 관광'이었다. 아시아인들은 보통 단체로 다니잖아! 라는 인식. 아무래도 중국인 단체관광객들이 워낙 많고, 어딜 가든 그들이 그곳을 점령하다시피 하고 있는 경우가 많기에 굳어진 인식인 듯 하다. 한국인들과 일본인 단체관광도 중국에 비해 인구 수가 적을 뿐 많기도 하고 말이다. 단체로 관광와서 이 머나먼 땅까지 와서 굳이 '아시안 식당'을 찾고 굳이 같은 나라 사람들과만 어울리는 것. '트래블러'가 아닌 '투어리스트'. 이게 아시안 여행객에 대한 전반적인 인식이다.

이러한 인식은 비단 단체여행객에게만 적용되지 않는다. 개인 여행자에 대해서도 아시아인들은 끼리끼리 논다는 인식이 존재한다. 호스텔에서도 친구랑만 대화를 한다거나, 끼리끼리 노는 경우가 많았다는 식의 이야기들도 많이 들려왔다. 그래서인지 혼자 여행 아시안 백팩커를 보면 약간 신기해하는 시선도 존재한다. 여행 중에 아시안 자체는 많이 봤는데 혼자 여행 온 백팩커는 처음봤는 반응들. 특히 유럽에서 만난 여행객 중에서 이런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두 번째 스테레오 타입은, '예의 바르다'라는 것이다.(한국과 일본) 아무래도 서양보다 훨씬 더 예이를 중시하기도 하고, 자동적으로 숙여지는 고개 탓인듯 했다. 지금 여행을 다닌지 8개월쯤 됐음에도 감사하다거나, 미안하단 말을 할 때, 혹은 어른에게 인사를 할 때는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숙이게 된다. 차이가 있다면 한국에선 허리까지 숙였다면 이제는 고개를 까닥하는 정도로 발전했다는 것일까. 이곳에선 굳이 고개를 숙이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알고, 조심해야겠다고 생각을 하면서도 자동으로 나오는 것은 어찌 할 수가 없었다. 그런 내 모습을 보고 많은 외국인 친구들이 놀라거나 재밌어하곤 했다. 고개 숙이는 것 자체가 굉장히 아시안틱 하다고.

세 번째로는 트렌드에 민감하다는 인식이었다. 이 또한 중국을 제외하고 한국과 일본에 한해 있는 인식이었다. 무언가가 유행하면 모두가 우르르 따라 사고, 비슷하게 다닌다는 인식. 모두가 트렌드에 민감하기에 다같이 Fancy하다는 인식. 어떤 사람은 '한국여자들은 다 fancy한 줄 알았는데 너는 그렇지 않아서 한국인인 줄 몰랐다'라는 멍청한 소리를 하기도 했다. 당연히 저 소리는 멍청한 소리지만, 트렌드에 민감하다는 인식 자체는 부정할 수 없었다. 이러한 인식 또한 아시안의 단체주의 등에서 나온 듯 했다.

마지막으로는 사회적인 압박에 관한 것이었다. 가장 대표적으로는 '너네 일 완전 노예처럼 해야하고 자살율 높다던데?' 가 있다. 물론 전반적으로는 일본이 제일 심한 것으로 알고있고 한국은 그 다음쯤으로 알고있긴 했지만. 한국이 꽤 오랜기간 동안 OECD국가 내 자살율 1위였다는 사실에도 크게는 놀라지 않는 분위기다. 이 또한 공동체주의 등에서 비롯한 사회적 압박이 강하다는 인식에서 나온 것들이라고 하겠다.

위의 것들은 사실 정말로 '사실'이기도 하고, 어떤 것들은 실제 아시아 문화에서 비롯했기에 아시아의 문화를 이해하고자 하는 방식의 하나로 받아들일 수 있었다. 가장 전반적이면서, 가장 가벼웠던 스테레오 타입. 문제는 다른 곳에 있었다.



무의식적이기에 더 무서운 이름, 타자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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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안 눈'의 대표적인 이미지, 뮬란.
필자는 뮬란과 전혀 닮지 않았음에도
뮬란 닮았다는 이야기를 숱하게 들었다.
(사진 출처: 영화 뮬란 스틸컷)
 

아시아 사회의 전반적 특성에 기인한 스테레오 타입들도 있는가 하면, 아시아인에 대한 무지나 인식의 부족에서 나오는 스테레오타입들도 있었다. 사실상 무례하다고 까지 느껴지는 스테레오 타입들.

이런 스테레오타입 중 가장 흔한 것은, 아시안의 '눈'에 대한 거였다. 여행을 다니면서 눈에 관한 칭찬이나 질문, 장난을 얼마나 들은건지 감이 잡히지 않을 정도다. 사실 내 눈은 그렇게까지 소위 '아시안틱'한 눈이 아니라 생각함에도 사람들은 내 외모에서 가장 먼저 '눈'을 말하곤 했다. '너네는 항상 졸린 눈이잖아~'라는 가벼운 인종차별주의자나, '아시안의 눈은 왜 그렇게 생긴거야? 내가 어디서 읽기로는 일본 원자폭탄 이후에 그렇게 됐다던데!'라는 정말 말도 안되는 소리를 진지하게 했던 멍청이도 있는가하면. 정말로 악의가 없이 눈을 빛내며 '나는 아시안의 찢어진 눈이 너무 좋더라!'라고 칭찬을 하는 사람도 있었다.

심지어는 '나는 내 애기가 아시안 눈을 가졌으면 좋겠어서 아시안 남자랑 결혼하고 싶어!'라고 말하는 경우까지 봤다. 전자의 경우는 면박을 주면 됐지만, 후자의 경우는 본인 딴에는 정말 칭찬을 하고싶어서 하는 말이고 진심인게 느껴져서 뭐라고 대꾸해야할 지 감이 안 잡혔다. 상대가 정말 악의가 없었다는 것을 알기에 뭐라하기도 애매한 느낌.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러한 발언들이 기분 좋게 다가오지 않았던 것은, 아시안 전체의 특징을 '눈'으로만 잡는다는 것 자체가 아시안이 유럽에서 타자화됐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었다. 물론 다르기에 신기하고 매력을 느낄 순 있다. 하지만 그것과 '아시안 눈' 이라면서, 아시안의 외모를 눈으로만 특정짓고 그것으로만 말하려는 시도는 다르다. 비꼬는 것이든, 순수한 칭찬의 의미든. 자꾸 나를 '눈'으로만 설명하려드는 그 시도들 앞에서 나는 '권희정'이 아닌 '아시안'이 되었다.

두 번째는 음식에 관한 것이었다. '너네 개나 벌레도 먹는다며?', '너네 뭐든 다 먹어?'라는 질문들. 다양한 문화에 대한 순수한 궁금증이면 참 좋겠지만, 본인들은 스스로 순수한 궁금증에서 묻는다고 생각하겠지만 질문 뒤에 멸시와 역겹다는 인식이 섞여있음을 느낄 수 있었던 그 질문들. 사실 밀가루 고기(소,닭,돼지,양) 치즈 과일 등으로 크게는 정리가 가능한 서양음식과 달리, 아무래도 아시아쪽이 서양보다는 음식의 폭이 다양하기에 나오는 인식인듯 했다. 아시안 음식들이 서양인들에겐 '이상'하게 다가오는 점도 있는 듯 하고, 혹은 정말 전세계의 미각이라고 말할만큼 폭이 다양한 중국음식 때문인 것 같기도 하지만. 나를 시험하듯 물어보는 저 질문들에 웃을수 없었음은 자명하다. 함께 웃고 떠들고, '권희정'으로 대해지다가 한 순간 '너도 그 미개한 아시안 중 하나야?'는 식으로 시험당하는 듯한 기분이 들때는 모멸감까지도 느꼈다.



귀엽고 순종적인 아시안 여성?


지금까지 말한 수많은 스테레오 타입중에 가장 화가 났고, 가장 멸시적인 부분은 성별에 관한 것이었다. 첫 번째는 아시안 여자에 대한 환상이다. 여행 중에 만난 남자인 친구랑 약 한달을 어울렸는데, 그러다보니 자연스레 그 친구가 머물던 호스텔 주인과도 친해졌다. 그 친구는 다른 곳으로 먼저 떠나고, 따로 호스텔 주인과 어울리는데 호스텔 주인이 한 이야기는 충격적이었다. '내가 걔한테 한국은 너 따라서 꼭 가라고 했어. 얻을 수 있는게 많을 거라고. 아시안 여자들은 유럽 여자들과 다르게 남자를 더 섬길 줄 알고, 존경할 줄 알거든.' 일단 그 친구와 내가 그런 관계가 아니었던 것을 차치하고서라도, 호스텔 주인과 나도 꽤 많은 시간 함께 어울렸고 수많은 대화를 나눴음에도 그에게 나는 '남자를 잘 섬길 줄 알만한 아시안 여자'일 뿐이었다는 것이 충격이었다. 내 언행은 전혀 그렇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뿐만이 아니었다. 바르셀로나에서 한 가이드는 '자랑'이라고 '아시안 여자가 유럽 남자들 사이에서 인기가 많다'고 말했다. 아시안 여자들은 유럽 여자들과 다르게 헌신적이고 모성애가 강해서 가족을 잘 꾸려나간다는 인식이 있다는 것이다. 이것 자체가 말이 안 되는 스테레오타입인 것을 차치하더라도, 그들이 말하는 '유럽 여자'가 어떤 이미지인지는 자명해서 더더욱 불편했다. 자신을 사랑하고, 자신을 위해서 무언가를 하는 주체적인 여성들. 그런 여성들은 이기적이라 폄하하고, 그러기 위해서 아시안 여성들은 순종적이라며 고평가 하는 것이다. 실제 아시안 여성들이 자신 앞에서 어떤 모습들을 보여왔는지와는 상관없이.

이 멍청한 환상, 스테레오 타입은 깊이 들어갈수록 역겨워 지는데, 가장 단적인 예로는 성관계를 들 수 있다. 어떤 남자는 스킨십을 거부하는 내게 '너 지금까지 남자친구 아시안이었잖아. 서양인도 시험해보고 싶지 않아?'라고 물었다. 일단 그 '시험'이 무엇을 말하는지가 너무 분명히 보이는 데다가, 그 아래에 자기가 아시안 남자보다는 '잘'하거나 '클' 것이라는 인식이 섞여있음을 느낄 수 있어서 더더욱 견디기 힘들었다. 항간에 들리는 말로는 아시안 여성의 체구가 전반적으로 서양 여성보다는 작으니 그곳또한 더욱 좁을 것이라는 식의 인식도 어딘가엔 존재한다고 한다. 순종적이고, 자그마하고, 부드럽고, 귀여운. 자신들에겐 전혀 무해하고 성적으로든 뭐로든 헌신할 것만 같은 게 '아시안 여성'에 대한 스테레오 타입인 것이다.

*

물론 스테레오 타입을 만들지 않는 게 힘들다는 것은 알고있다. 스테레오타입을 만들고 일반화를 하면 많은 것들이 훨씬 정리하기 쉬워지니까. 나도 수많은 국가의 사람들을 만나면서 그들에대한 스테레오타입이 없었다고 한다면 거짓말이다. 나도 어떤 방면에서는 그들을 국적으로, 인종으로 판단하곤 했다. 지양하고자 노력하면서도 무의식적으로 그렇게 되곤 했다. 또 어떤 부분에선 스테레오타입화하는 게 오히려 그 나라의 문화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곤 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군가를 대할 땐 '어느 인종' '어느 나라'의 누구, 보단 그냥 그 사람으로서 대하는 게 더욱 옳은 방향 아닐까.

숱한 스테레오 타입들로 고통받으면서, 처음 사람을 만났을 때 "Where are you from"부터 묻던 습관을 바꿨다. where are you from따위 중요하지 않은 세상, 내가 '아시아인 여성'이 아니라 '권희정'일 수 있는 세상을 바라본다.


[권희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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