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기다림의 묘미, 펜팔 [기타]

펜팔만이 가진 아름다운 감성
글 입력 2019.05.06 1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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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10년간 해외 펜팔을 해왔고, 펜팔을 하면서 정말 많은 다양한 것들에 대해 알게 되었다. 펜팔은 내가 해봤고, 현재진행형으로 지금까지도 해오고 있고 또 잘 알고 있는 것이기도 하다. 사춘기를 더불어 내 일생에서 큰 부분을 차지한 펜팔 친구들 덕분에 지금의 내가 가진 음악, 영화, 드라마, 책 취향 등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고도 할 수 있다.

인터넷의 발달로 펜팔 전문 사이트나 손쉽게 SNS 등으로 간단하게 이메일이나 메세지를 교환하며 교류 하기도 했지만, 나는 기다림의 묘미가 있는 아날로그적인 감성이 좋아 그 친구들과 편지를 주로 많이 주고받았다.



해외 펜팔을 시작하게 된 계기


중학교 시절 같은 반 친구의 권유로 시작하게 되었다. 그때만 해도 영어에 관심은 많았지만 영어를 잘 구사하지는 못했다. 솔직히 말하자면 영어 교과서에 실린 기본 중에서도 기본적인 표현(How are you? I'm fine, thank you) 구사하기 정도에서 그쳤다. 어쨌거나 그 친구와 함께 '해외 펜팔 친구를 구하자'라는 장대한 목표 아래 인터넷에서 펜팔 사이트를 뒤져 몇 개의 사이트에 계정을 만들고 짧은 영어 실력으로나마 최선을 다해 이메일을 썼던 기억이 난다.

덕분에 영어 공부를 본격적으로, 열심히 공부하는 것에 결정적인 동기부여가 되었다. 처음에는 손으로 직접 편지 쓰는 것도 꽤 부담스럽고 한글로 한번 썼다가 그걸 영어로 번역해서 쓰곤 했기 때문에 번거롭고 힘들었지만 지금은 그냥 앉은 자리에서 영어로 편지 6-8장은 기본으로 쓰게 되었다.



해외 펜팔을 하면서 느꼈던 점들


펜팔 친구의 사고관이나 취미, 일상생활뿐만 아니라 친구가 속한 문화, 언어, 세계사 전반에 대한 것들에 관심을 가지고 지식의 지평을 넓힐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된다.

예를 들어 펜팔 친구의 고향이 라트비아라서 친구가 주말마다 고향으로 기차를 타고 간다. 하지만 나는 그 나라에 대해 생소하다. 펜팔 친구의 고향이 정확히 어디에 위치해있는지, 어떤 언어를 쓰는지, 어떠한 역사를 가지고 있는지, 무엇으로 유명한지 자연스럽게 그 국가에 대한 궁금증이 생기기 마련이다. 그래서 나는 이 나라에 대해 알아본다.

라트비아는 북유럽에 있는 공화국이며 공식 명칭은 라트비아 공화국이고, 북쪽은 에스토니아, 동쪽은 러시아, 남쪽은 리투아니아와 접해 있다. 18세기 때부터 러시아의 식민지였던 역사를 가지고 있다. 후에 1991년 소련 8월 쿠데타 실패 후에 독립을 인정받았다고 한다. 언어로는 라트비아어와 러시아어를 많이 사용한다, 등의 지식을 얻을 수 있다.

다양한 국가에서 나와는 다른 환경, 다른 사람들, 다른 취향, 다른 사고관을 가진 사람들과 소통하면서 나 자신을 성장시킬 수 있는 좋은 동기가 되었다. 서로가 좋아하는 음악/영화/서적 장르를 추천해주며 '내가 좋아하는 것'의 스펙트럼을 더 넓힐 수 있었다. 서로가 적극적으로 영향을 끼치고, 영향을 받으면서 교류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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펜팔을 하면서 일상이 조금씩 달라질 수도 있다. 작년 가을쯤의 나는 밖에 나가는 것도 너무 귀찮고 주말이면 그냥 방에 콕 박혀서 인스타그램으로 동물 사진이나 보고, 유튜브로 음악 좀 듣다가 영화 보고 졸리면 잠들고 하는 의미 없는 생활을 이어갔는데, 주기적으로 이메일을 주고받는 러시아 친구와 일상을 이야기하다가 내가 '여긴 아직 맑은 날씨고 그렇게 많이 춥거나 하진 않은데 밖에 나가는 게 귀찮고 사람 만나는 것도 귀찮다'라고 얘기했는데, 그 친구가 '그러지 말고 밖에 나가서 붉게 물든 아름다운 낙엽들도 보고 햇볕도 쬐고 멋진 가을 날씨를 만끽해봐! 왜 이런 아름다운 날들을 낭비하려는 거야? 여긴 벌써 영하로 기온 내려가고 밖엔 눈이 쌓여서 너무 추워. 거기 날씨 너무 부럽다'라고 썼다.

그래서 뭔가 나름의 격려이자 긍정적인 의미로의 채찍질이 된 것 같았다. 친구의 이메일을 보고 난 후, 나는 속는 셈 치고 오랜만에 밖에 나가서 걷고 방 안에서만 있었다면 절대 몰랐을 티 없이 맑은 날씨를 만끽했다. 근처 아트 갤러리도 가서 좋은 작품들을 감상하니 기분도 좋아지고 쓸모 있게 시간을 보낸 것 같아서 자괴감도 한결 덜어졌다.

나는 본래 걱정과 불안이 굉장히 심하다. 항상 불안해하고 긴장하고 다른 사람들이랑 눈 마주치는 것, 대화하는 것도 힘들다. 그래서 어느 날은 펜팔 친구에게 매사에 너무 불안해서 힘들다고 얘기한 적이 있다. 감정 기복이 마치 롤러코스터처럼 좋았다가 안 좋아졌다가 한다고. 그러자 그 친구도 '아, 나도 네가 불안감에 대해 표현한 것에 대해 너무 공감한다, 나 역시 그렇다'면서 서로 자신을 괴롭히는 그 불안한 감정에 대해서 깊이 이야기하고 개인적인 경험을 공유하면서 뭔가 더 비워지는 느낌을 받았다.

그리고 내 주위의 가까운 지인들에게 할 수 없었던 이야기를 툭 터놓고 쓰면서 객관적인 시선에서 그 친구가 해주는 말들이나 조언, 생각을 읽으면서 머릿속에 정리가 되기도 하고, 다각도로 생각할 수도 있었다. 새로운 영감을 얻기도 하고 색다른 목표를 세우기도 하면서 좀 더 부지런해지기도 했다. 힘들고 지친 하루를 보내고 우체통을 봤을 때 펜팔 친구의 야무진 손끝이 깃든 편지 한 통이 와있으면 그날 하루의 피곤함과 스트레스는 한 번에 다 날아가는 쾌감이 참 좋다. 그 소소한 기다림과 두근거림이 굉장하다.



'매리와 맥스'




마지막으로 펜팔을 소재로 한 작품을 하나 소개하고 싶다. 실화를 기반으로 한 스톱모션 애니메이션 영화, '매리와 맥스'가 펜팔만이 가진 묘미를 잘 드러냈다. 이 영화를 보면서 굉장히 공감이 많이 갔다. 실제로 2009년에 있었던 인터뷰에서, 작가 겸 감독인 엘리엇은 작품 속 맥스의 캐릭터는 20년 넘게 편지를 주고받던, 아스퍼거 증후군이 있고 유대인이었던 뉴욕의 펜팔 친구로부터 영감을 받은 것이라고 밝혔다.





매리와 맥스

(Mary & Max)


2009년 호주의 스톱모션 애니메이션 작품.


아담 엘리엇 감독 작으로 시나리오 각본까지 맡았고 필립 세이모어 호프만, 토니 콜렛, 에릭 바나 등이 목소리를 연기했다.


줄거리는 호주 멜버른에서 사는 8살 소녀 메리와 뉴욕에서 사는 아스퍼거 증후군을 가진 44살 유대인 맥스가 우연히 펜팔 친구가 되면서 일어나는 일들을 그린 작품이다.


2009년 6월 안시 국제 애니메이션 영화제에서 안시 크리스탈 상(최우수 작품상)을 받았고, 2009년 11월 아시아 태평양 영화제에서 장편 애니메이션 작품상을 받았다.



손으로 직접 쓴 편지를 교환하는 펜팔을 하다 보면 '기다림'에 대해 의연해진다. 1분, 1초가 급박한 현대인들은 조금이라도 답장이나 주문한 물건이 늦으면 굉장히 조급해한다. 카톡을 하면서 친구의 답장이 1시간이라도 늦으면 왜 이렇게 답장이 느리냐고 묻고, 천천히 손으로 직접 쓰는 편지는 쓰기도 보내기도 귀찮고 느리다며 우체통은 점점 사라지고 있다. 하물며 결혼식 청첩장까지 디지털로 보내는 시대에 살고 있다.


펜팔은 모든 것이 급박하게 바뀌는 시대에 사는 우리들에게 기다림이라는 미덕을 가르쳐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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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초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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