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유쾌한 페미니즘 연극 - 환희, 물집, 화상

새로운 길 위에 있는 우리 모두에게 용기를
글 입력 2019.05.09 0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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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REVIEW *** 
연극 <환희, 물집, 화상>


환희물집화상-포스터.jpg
 

<시놉시스>

대학원 룸메이트였던 캐서린과 그웬은 졸업 후 서로 다른 길을 선택한다. 캐서린은 더 큰 꿈을 위해 런던으로 떠나고, 고향에 남은 그웬은 결혼을 해 가정을 이룬다.  시간이 흘러 유명 학자가 된 캐서린은 어머니(앨리스)의 심장발작 소식을 듣고 고향으로 돌아온다.

그곳에서 캐서린은 페미니즘 강의를 시작한다. 강의를 신청한 사람은 친구 그웬과 그웬의 베이비시터 에이버리 둘 뿐. 그들과 함께 토론하던 캐서린은 자신이 원했던 삶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한다. 수업이 진행될수록 서로 갖지 못한 것들에 대한 교감을 느낀 캐서린과 그웬은 역할 바꾸기 게임을 시작하기로 한다.


다양한 문화예술계에서 페미니즘 서사가 다뤄지는 것은 언제나 반갑다. 여성의 이야기를 다루기 때문에 더 공감하고 몰입해 감상할 수 있는 작품이 많아졌고, 그동안 알지 못했던 여성들, 담론들에 대해 알아가는 것도 즐겁다. 책이나 학술지가 아니라 문화예술 작품을 통해 좀 더 많은 지식과 시각을 갖출 수 있게 되어 좋기도 하다.

연극 <환희, 물집, 화상>은 시놉시스를 통해서 알 수 있듯이 페미니즘을 주제로 하는 연극이다. 페미니즘을 주제로 한 연극들 중 페미니즘 이론을 중점적으로 다룬 연극이기에 좀 더 관심이 갔던 연극이다.


환희물집화상_공연사진(c극단8월_김희지)44.jpg
 


이론과 학술적인 측면을 집중적으로 다루기에 조금 무거운 내용이 아닐까 걱정했지만 연극은 내 예상과 달리 매우 유쾌했다. 고향으로 내려온 캐서린이 친구 그웬과 그웬의 에이버리를 대상으로 페미니즘 강의를 하면서 연극은 본격적으로 전개된다. 그웬은 대학동창 던(던은 캐서린의 옛 연인이기도 하다)과 결혼해 두 명의 아이와 함께 살고 있고 에이버리는 그웬의 집에서 아이를 돌보도록 고용된 베이비시터이다.


대학을 중퇴한 뒤 전업주부로써 가정에서 육아와 집안일을 담당하는 그웬, 거침없는 발언과 자신의 욕망에 솔직한 에이버리, 그리고 여성학자인 캐서린은 수업시간마다 열띤 토론을 벌인다. 그들은 서로 다른 가치관으로 인해 때론 거세게 대립하기도 하는데 그들이 대립이 특히 두드러지는 부분은 남녀평등헌법수정안(ERA)을 다룬 수업시간이다.

남녀평등헌법수정안(ERA)은 성별에 상관없이 모든 미국 시민에게 동등한 법적 권리를 보장한다는 것을 골자로 한다. 이에 대한 찬성측은 자유주의 페미니스트인 베티 프리단이 대표한다. 베티 프리단은 생물학적 특성이 인간의 정체성을 규정할 수는 없다고 주장하며 많은 여성들의 자아실현 욕구가 육아나 가정노동으로 인해 단절된다고 말했다. 이 주장은 극 중 캐서린의 의견이기도 하다.

반면 이미 결혼해 가정을 꾸리고 있는 그웬은 이 주장에 반발하며 필리스 슐래플리의 주장을 제시한다. 극우정치활동가인 필리스 슐래플리는 남성과 여성은 생물학적으로 다르기 때문에 주어진 역할도 다르다고 주장했던 인물이다. 때문에 남자는 가정에 돈을 벌어오고 여자는 가정을 돌봐야 한다고 말한다. 여성의 역할이 곧 가정을 이루고 아이를 낳아 기르는 역할이라는 것이다.

캐서린과 그웬은 이 부분에서 언성을 높여 대립하다가 자신의 현실을 돌아보게 된다. 그웬은 가정과 아이를 돌보는 것에 만족한다고 생각하고 있었지만 이루지 못한 학업과 대학시절 자신의 꿈에 대해 생각해 본다. 캐서린은 독신인 삶에 그동안 딱히 불평하지 않았지만 고향에 돌아와 옛 연인인 던을 만나게 되면서 가정을 꾸리고 정착하고 싶다는 생각을 갖게 된다.

다시 만난 던에 대한 사랑이 끓어오르기 시작한 캐서린은 그웬에게 새로운 제안을 제시한다. 제안은 바로 역할 바꾸기인데, 뉴욕에 있는 캐서린의 아파트에 그웬이 거주하면서 학교를 다니고 자신은 고향에서 던과 함께 가정을 꾸리는게 어떻겠다는 것이다. 말도 안되는 제안이지만 그웬은 이내 수락하고 던이 캐서린의 집에서 동거를 하며넛 역할이 바뀐 둘의 생활이 시작된다.

처음 역할을 바꾸고 둘은 만족하는듯 싶었다. 그웬은 뉴욕과 캠퍼스의 활기에 신이 났고 캐서린은 던과 밤새 영화를 보며 마치 대학시절 연애하던 과거로 돌아간 느낌을 받는다. 하지만 이내 그웬이 대학생활에 지쳐 집에 돌아오고 던 역시 나태했던 과거로 돌아가고 싶어하며 집으로 돌아가면서 역할 바꾸기 놀이는 끝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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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의 마지막에서 던이 떠나간 뒤 허탈한 캐서린, 남자친구에게 이별을 통보받은 에이버리, 그리고 캐서린의 엄마 앨리스는 캐서린의 거실에 모인다. 쓸쓸하고 공허한 분위기를 달래기 위해 앨리스의 제안으로 샴페인을 한 잔씩 마시게 되는데, 각자 건배사를 외치면서 이 위로주는 축배로 변한다.

건배사의 마지막, 앨리스의 대사로 인해 뭉클한 마음이 들었는데, 앨리스는 가정을 버린 대가는 자유라고 말한다. 캐서린과 에이버리는 사랑을 잃은 줄 알았지만 자유를 얻은 것이다. 캐서린은 던에게 제안했던 학회를 에이버리에게 가자고 제안하고 에이버리는 그 제안을 흔쾌히 승낙한다. 둘은 성장과 연대를 함께 했고, 새로운 담론들을 만들어 나갈수도 있을 것이다.

앞서 언급한 베티 프리단이 가장 중요하게 주창한 것은 여성의 선택이다. 여성에게 이제 결혼은 더이상 필수조건이 아닌 선택에 불과하다. 여성이 원하는 언제든지 경제활동을 할 수 있고, 경제활동이 가능한 사회가 되어야 한다. 가부장제 사회에서 벗어나 선택의 자유와 주체성을 갖는 것. 이게 바로 진정한 여성 해방이라고 생각한다. <환희, 물집, 화상>은 가부장제에서 갈등하던 여성들의 해방과 연대를 다뤘다. 극의 마지막에서 잔을 부딪히며 활짝 웃던 세 여성의 표정이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것 같다.


[정선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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