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우리에게 이미 찾아온 SF [도서]

<SF, 포스트휴먼, 오토피아> 를 읽고 난 후의 단상들
글 입력 2019.05.08 2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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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장르라는 말을 들었을 때 맨 처음에 떠오른 생각은 ‘마이너하다’였다. 그도 그럴게 문학작품에서의 SF장르는 기성 현대 문인들의 작품에서 흔하게 접할 수 있지 않았으며, 소설에 환상적 요소가 많이 첨가되더라도 현실에 기반을 두고 있기 때문에 결국에는 현실로 돌아와 상식 선에서 우리가 이해할 수 있는 일상의 결말로 끝났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책을 다 읽고 SF장르를 공부할 수록 느끼는 것은, 결국 SF라는 장르 또한 현실에 기반을 두고 있으며 그 안에서 하나의 개연성을 갖추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SF장르는 이미 현실에 성큼 다가와 있는 미래이자 우리의 상상력을 통해 미래를 구현할 수 있다는 점에서 미리 온 미래라고 저자가 표현하지 않았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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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창기에 그것은 SF라는 말 그대로 소설의 형태에 국한되는 경우가 많았지만, 미디어의 변화를 거치며 현재는 과거와는 사뭇 다른 양상을 보이고 있다.


영화의 등장 이후, SF 장르는 대중들과 본격적으로 소통하기 시작하였고 최근에는 현대적 미디어와 결합하여 그 영역을 점차 넓히고 있다. 소재에 있어서도 이는 마찬가지다. 과거 외계인과의 만남, 우주여행, 인간 복제, 초능력, UFO 등에 천착했던 SF 장르는 20세기 후반 들어 본격적으로 새로운 소재를 탐색하기 시작하였다. 로봇, 신종 질병, 시간 여행 등이 바로 그것이다. SF가 하나의 하위 장르로 굳건히 자리매김하고 두터운 마니아층을 보유할 수 있었던 이유 또한 바로 여기에 있다. SF 장르는 끊임없이 새로운 소재를 발굴하고 거기에 과학적 상상력을 덧입혀 진화를 거듭하고 있다.


그리하여 문학작품 속에서도 SF가 등장할 때, 기존의 것을 답습하지 않고 보다 새롭고 창의력 있는 소재들을 채택해 작품에 녹여내고 있다. 이를테면 메리 셸리 <프랑켄슈타인>에서는 그 시대에서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개연성 있고 창의력 있는 소재들이 많이 등장했다. 과학 기술의 발달과 인간의 욕망이 합쳐져 죽은 사람을 되살리고, 그것이 괴물이 되어 인간을 해치며 살아가는 존재가 되기까지의 여정을 개연성 있게 그리고 있는 것이다. 현대에서 역시 ‘인조인간’이나 ‘인간의 욕심이 만들어낸 괴물’이라는 소재는 많이 등장하지만, 원형은 현대의 프로메테우스, 즉 ‘프랑켄슈타인’ 속 괴물에서 크게 벗어나지는 못하고 있다.


이에 작가들은 인간의 기술이 고도로 발달했을 때의 미래 세계, 즉 우리의 미래에는 과학 기술이 발달해 억압당한 채 살아갈 것이라는 이야기를 그린 작품들을 많이 집필했다. 조지 오웰 <1987> 역시 과학기술이 고도로 발달한 시대를 그리고 있으며, 한국의 현대 작가 중 SF작가로 이름을 알린 사람은 조현 작가를 꼽고 싶다. 그는 <클라투행성통신>으로 웹진문지문학상을 수상했고, 2012 황순원문학상 수상후보에 오르기도 했다. 소설 속에서는 자신이 클라투 행성 통신의 특파원이라고 소개하는 주인공이 등장한다. 여기서 클라투행성통신은, ‘이미 천 년 전에 원자력 시대를 넘기고 지금은 이를테면 자연친화적인 문명을 구가하고 있는 별’이며 ‘생계를 위해 노동에 종사하는 시절은 내연기관 시대나 화폐경제체제와 함께 종식되고 이제는 누구나 생의 의미를 탐구하며 인생을 살아가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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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속에서 등장하는 ‘클라투행성’은 말하자면 본 저서에서 소개하고 있는 오토피아이며, ‘미래소년 코난’에서 다루고 있는 원시적인 공동체주의와 자연으로의 회귀를 모토로 하고 있다. 또한, 미래에서 온 인물을 현대에 접목시키기 위해 ‘평행세계’ 개념 역시 반영했다. ‘자신이 기분 내키는 대로 지어내는 모든 운명들은 무한에 가까운 평행우주에서 실제로 존재할 수 있는 어떤 개연성의 사건이라는 것을.’ 이라는 대사를 통해 작가는 독자들로 하여금, ‘가능성’이라는 것, 즉 ‘가능한 일인가에 대한 물음과 그에 대한 답’을 서술한다. 이를 통해 SF장르에서 작가가 어떻게 독자를 설득시키는지에 대한 갖가지 시도들을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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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더 나아가 나는 저서에서 가장 흥미롭게 읽었던 ‘미래소년 코난'에 대해 논하고 싶다. 작품을 분석하는데에 있어서 두 가지 관점으로 바라볼 수 있는데, 반영론적 관점과 문화사회학적 관점이 그것이다. 문학작품은 현실을 거울처럼 반영하므로, 작품이 만들어진 시대를 고려해서 읽어야 한다는 관점이 바로 반영론적 관점으로, 미래소년 코난 역시 멸망 이후의 새로운 세계, 즉 포괄적인 의미에서 SF로 들어올 수 있는 내용에 대해 다루고 있다. ’미래소년 코난'은 단순히 오토피아 사회를 그린 작품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작품이 산업사회의 과열기에 창작되었다는 점, 그리고 어린이를 대상으로 창작된 애니메이션이라는 점 등을 고려해 다양한 관점에서 해석이 가능한 작품이다.


미래소년 코난은 멸망한 세계의 갈등이자 새로운 세대의 시작을 다루고 있는 작품이다. 코난의 전 세대, 즉 코난 할아버지의 세대는 미래의 세계를 배경으로 하고 있으며, 엄청난 문명과 과학기술의 발전을 이룬 세계에서 살던 세대였다. 지구 속 인류는 가공할 무기로 인한 전쟁으로 모든 대륙이 바닷속으로 가라앉은 미래의 지구를 배경으로 하고 있으며, 소수만이 살아남아 하나의 섬에 정착했다.


괴력을 가진 소년인 주인공 코난과 궁극적인 태양 에너지의 비밀을 알고 있는 과학자 라오 박사의 손녀 라나가 인더스트리아의 독재자 레프카의 세계 정복 야욕을 막기 위해 벌이는 모험으로 구성되어 있다.


당대 원작자인 미야자키 하야오가 말하고 있는 미래세계는 ‘과도한 경쟁과 과학기술의 발전의 악용으로 인한 파멸과 환경오염’을 우려하고 있다. 지극히 사회주의적인 성향을 내포하고 있는 이 애니메이션은 하이하바 섬으로 대표되는 농촌 공동체와 인더스트리아로 대표되는 기계 문명 사회의 대립, 과학문명의 오용으로 인한 암울한 미래, 원시 공동체에의 동경 등을 그려내고 있다. 어린이용 애니메이션으로 받아들이기에는 상당히 많은 이념들과 가치관이 공존하고 있는 애니메이션인 것이다. 당대에 과학기술의 발전과 본격적인 산업사회로 들어서면서, 문명기술의 발전에 있어서 윤리의식과 후세대에 대한 고려와 대책이 없다면 그것은 파멸을 불러올 것이라는 이념은 우리 세대에 줄 수 있는 하나의 메세지로 다가오는 듯하다.


문화사회학적 관점은 미디어를 당대의 문화와 사회학적 의미에 비추어 생각해 볼 수 있는 관점이다. 이 작품을 문화사회학적 관점으로 바라봤을 때는 인물들과 상징성에 대하여 조금 더 세밀한 분석이 가능할 것 같다. 작품 곳곳에 등장하는 상징들은 작품에서 말하고자 하는 바를 조금 더 이미지적으로 간결하고 인상깊게 기억할 수 있게 한다. 그것이 인물의 속성으로 부여될 때, 우리는 인물에 대해 알아가는 동시에 작품에서 말하고자 하는 바에 한 걸음 더 다가갈 수 있는 것이다.


미래소년 코난에 등장하는 주요 인물 중 코난은 힘을 지니고 있는 아이다. 큰 상어를 두 손으로 들 수 있을 만큼의 완력과 용기를 지니고 있는 인물로써, 새로운 시대를 개척하기 위한 힘을 지니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라나는 동물과 소통할 수 있는 인물로, 단순히 새로운 에너지와 미래사회에 있어야 할 기술 뿐 아니라 다른 생물들과 공존하며 화합할 수 있는 상징으로써 묘사되는 인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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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두 캐릭터는 러브라인을 그리기도 하는데, 미야자키 하야오는 ‘인류가 멸망한다는 말을 꺼내기보단 눈앞에 있는 여자애한테 가슴 설레며 쫓아가는 쪽이 좋아요’ 라고 했다. 구인류의 멸망과 신인류의 재생 사이에서, 어떤 세계관의 멸망과 재생을 사이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랑임을 말하고 있다. 아이들의 순수한 마음과 그에서 비롯된 사랑은 애니메이션의 오락적 요소와 서사적 재미를 충족하고 있다.


또한 사회학적으로, 미래소년 코난에서 뽑아볼 수 있는 사상은 마르크시즘과 생태정치학이다. 마르크시즘은 평등의 정신이 충만한 소규모 원시공산주의의 공동체를 강조한다. 코난의 할아버지는 어업을 하지만, 대사에서 엿볼 수 있듯, 마을 사람들의 각자의 생업에 종사하며 생산하는 것을 나누며 살아간다. 또한 생태정치학은 정치적 실현으로써의 생태주의인데, 아이하바 섬을 설명하는 단어 중 하나라고 볼 수 있다. 기술문명 전체계급주의 사회인 인더스트리아와 대조되는 세계로, 자율적 평등사회이며, 오토피아 사회이다. 오토피아는 당위적 요청 사회로, 유토피아와 다르게 실현 가능성이 있는 사회를 일컫는다. 유토피아는 어디에도 없는, 그러나 이상주의적인 사회를 일컫는다면 오토피아는 실현할 수 있는, 그리하여 아직 실현되지 않았지만 과학과 하나의 논리에 의해서 실현가능성이 있는 것들을 다루는 SF적 장르의 특성과 맞물리는 지점이 있다고 볼 수 있다.


이는 결과적으로 우리 사회가 나아가야 하는 방향에 대한 언급이자, 코난 속의 세계들은 두 세계(섬)의 대립을 통해 실현 가능한 자연친화주의적이고 공동체 생활 속에서 인류애가 넘치는 이상향의 세계에 대해 탐구하고 있는 애니메이션이라고 볼 수 있다.


‘미래소년 코난’을 통해서 나는 SF장르가 어떤 상징성을 갖고 대중들에게 다가올 수 있는지, 얼마나 친숙해질 수 있으며 우리 사회의 모습을 어떠한 각도에서 바라보고 이야기할 수 있는지를 살펴볼 수 있었던 것 같다. 그리고 이러한 경험을 통해 이 책을 조금 더 깊이 있게 이해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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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이라면 지레 겁을 먹던 대중들도 이제는 각종 애니메이션과 영화 혹은 광고 등을 통해 SF를 친숙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SF 장르가 성공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어려운 과학적 지식을 텍스트에 노골적으로 드러내기보다는 그것을 서사 속에 잘 녹여냈기 때문이다. 과학기술이 SF의 토대가 되어야 함은 틀림없지만, 그것이 서사의 흐름을 해친다면 결과적으로 작품의 완성도와 수용자의 흥미를 떨어뜨리게 된다. 나는 이런 지점들의 균형을 잘 유지해서 SF장르를 보다 친숙하게, 그리고 적극적으로 문학 작품 속에 녹여내는 시도를 해 볼 것이다.

 

이 책을 읽던 중 매 순간 깨달았던 점에 대해 말하자면, 바로 ‘가능성’이다. 무엇이 가능하고 무엇이 가능하지 않냐는 물음은 이미 의미 없게 된 것 같다. 질문을 바꿔서 나는 ‘무엇이 조금 더 개연성이 있고 무엇이 그렇지 않은지’ 혹은 ‘무엇이 우리에게 조금 더 친숙하고 무엇이 그렇지 않은지’에 대해 생각해 봐야 할 것 같다.



"판타지는 개연성 있게 만들어진 불가능한 것. SF는 가능하게 만들어진 개연성 없는 것."



델레이는



"헌신적인 애호가나 팬이라 해도, SF가 무엇인지 정의하기 힘들어 한다."



라고 적었다.


왜냐하면, SF의 윤곽에 한계란 없기 때문이다.



[이정문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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