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바딤 콜로덴코&알레나 바에바 듀오 콘서트

섬세한 피아노와 정확한 바이올린
글 입력 2019.05.08 2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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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딤 콜로덴코 & 알레나 바에바
듀오 콘서트

2019.05.01 8PM
@롯데콘서트홀





피로가 누적된 날들이 이어졌다. 이 날도 다를 바 없었다. 출근하듯 눈을 떴던 아침을 뒤로하고 낮잠을 자고 일어나니 내가 왜 호기롭게 공연을 보러 간다고 했을까 후회가 밀려들었다. 주섬주섬 준비를 시작하고 단장을 마치고 나니 그래도 외출 기분이 났다. 아직 노곤한 몸을 이끌고 공연장이 근처라 다행이라 생각하며 롯데콘서트홀로 향했다.

티켓을 수령하고 프로그램 북을 사서 빈 자리에 앉아 대기했다. 사람들이 많지 않은 로비는 활기 대신 단정한 분위기를 담고 있었다. 프로그램 북을 훑어봤지만 딱히 눈에 들어오는 내용은 없었다. 나는 클래식에 조예가 없다. 아트인사이트를 통해 음악회를 가기 시작했다. 살면서 본 음악회는 두 손에 꼽을 정도이고 클래식에 대해서 내가 얘기할 수 있는 건 없다. 야트막한 지식도 없지만 그래도 보고 싶었다. 생각해보니 피아노 독주도, 바이올린 독주도, 피아노와 바이올린 듀오도 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알레나 바에바가 LG 광고에 나왔다는 데서 내가 모르는 유명인인가 생각했고, 알레나에 대한 정보는 없었지만 므스티슬라브 로스트로포비치의 총애를 받는다는 부분에서 검증된 바이올리니스트인가 싶었다. 바딤 콜로덴코는 국내에서 일행을 통해 클래식 애호가들 사이에서는 알려진 이름이란 걸 알게 되어서 포털에서 검색하려던 손가락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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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티켓은 R석이었다. 좌석표를 확인하니 중앙이었다. 시야도 딱 좋아서 불필요한 피로감이 들어설 여지가 없었다. 착석하자 묘한 설렘이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클래식 공연장이 워낙 오래간만이기도 하고 무대 가운데 있는 피아노가 묘하기도 해서 피곤함에 녹아들던 정신이 조금씩 깨어났다.

바딤 콜로덴코가 등장했다. 무대 위에 오른 한 사람에게 모든 사람들이 집중하기 시작했다. 피아노 앞에 앉아 건반 위에 손가락을 올렸다. 약간의 정적이 흐르고 아주 여리게 월광이 시작되었다. 클래식을 몰라도 월광은 안다. 우리는 살면서 수도 없이 많은 버전의 월광을 들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나는 이런 월광을 들어본 적이 없다. 여리게 시작되었으나 정확하게 섬세했다. 나는 부드러운 스타일의 연주를 들으면 감성적인 감상에 빠지곤 하는데 그의 연주는 그렇지 않았다. 사람의 손가락 끝에서 피어나는 피아노 소리에 처음으로 몰입했다.

나는 피아노 소리를 그렇게 좋아하지 않는다. 피아노에서는 차가운 소리가 난다. 예쁘게 차갑고 아름답게 차갑고 중후하게 차갑고 풍부하게 차갑다. 그런데 그의 월광을 들을 때는 피아노의 차가움이 거슬리지 않았다. 되려 달빛을 연상하게 했다. 달빛이 여리고 여려 수면 위에 비친 달빛을 보고 있는 것 아닐까 할 정도로. 1악장이 끝나기도 전에 오늘 이 자리에 앉아있기로 한 내 선택이 그렇게 만족스러울 수가 없었다. 이 뒤의 연주가, 바에바와의 협연이 어떻든 간에 월광 하나로 충분하다고 생각할 만큼.

월광 다음으로 라흐마니노프의 전주곡이 이어졌다. 섬세하다는 인상은 색이 선명하단 느낌과 차이가 날 때가 있는데 그의 연주는 정확하게 섬세했고 러시아의 느낌을 그대로 전달했다. 연주자마다 스타일이 취향이냐 아니냐를 따져서 어떤 특징을 잘 살리고 아니고는 관심사가 아니었다. 취향이 맞지 않으면 강점이 매력으로 다가오지 않는다. 하지만 취향에 맞아 떨어지면 장점이 잘 보인다. 그의 라흐마니노프가 그랬다.

2부가 시작되고 바에바가 함께 무대에 등장했다. 바에바의 스타일은 귀로 듣지 않아도 눈으로 파악될 것 같았다. 어느샌가 보면 등을 동그랗게 말고 피아노를 연주하는 바딤과 달리 동적이었다. 이날 그녀가 입은 트임이 길게 들어간 드레스 자락이 그녀의 움직임을 따라 이리저리 움직였는데, 그 동작이 눈에 들어오고 이미지가 될 정도? 그녀에게선 퍼포먼스가 느껴졌다. 바딤에게서 섬세함이 느껴졌다면 바에바에게선 분명함이 느껴졌다.

인터미션 동안 잠시 둘의 소개문은 읽으니 2부에서 기대되는 건 차이콥스키였는데 의외로 생상스의 곡이 인상에 남았다. 우아함을 베이스로 한 화려함과 두 연주자의 스타일이 취향을 스치고 지나갔다. 이 곡을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연주했을까 곡에 대한 흥미를 불러일으켰다. 앞서 피아노 소리가 차갑다고 했는데 바이올린도 그와 비슷한 인상이었다. 섬세한 인상보다 날카로움이 더 크게 들린다. 따지자면 바이올린, 비올라보다 첼로와 콘트라베이스를 좋아한다.

후자를 무조건적으로 선호한다기보다 자연스럽게 귀를 기울이게 되는 건 후자이다. 그러다보니 차가운 피아노와 날카로운 바이올린의 조합을 굳이 찾을 일은 없었다. 2부 초반은 지나서야 내가 왜 지금까지 바이올린 솔로, 피아노 솔로, 바이올린과 피아노 듀오를 경험하지 않았는지 떠올랐다. 어느 정도는 취향이 일하고 어느 정도는 더 큰 취향이 일한다.

음악회를 다시 간다면 풀 오케스트라 공연일 거라 생각했다. 규모에서 오는 겹겹이 쌓인 소리가 좋아서 음악을 몰라도 오케스트라 공연은 좋았다. 피아노 독주, 피아노와 바이올린 협주라는 평소 취향을 생각하면 지나쳤을 공연을, 공연이 고파서 보게 되었다. 바딤 콜로덴코라는 피아니스트를 알고 생상스에 대한 그간의 생각을 다시 검토하는 시간이 되었다. 집에 돌아가면 찾아봐야지란 생각은 늦은 시간이 불러온 수마와 출근을 준비해야 하는 압박감에 잠시 밀렸지만 말이다.

책을 읽어도 마음에 드는 문장 찾기가 힘들고, 전시회에 가도 마음에 드는 작품과 마주치기 어려운데 모처럼 두 가지를 얻어 돌아왔다. 역시 사람은 평소에 안 하던 짓을 해야 무언가를 마주한다.



프로그램


베토벤
피아노 소나타 14번 "월광"

라흐마니노프
프렐류드 Op.3-2
프렐류즈 Op.23 No.1-5

베토벤
바이올린 소나타 5번, Op.24 "봄"

-Encore
리스트
라 캄파넬라

생상스
서주와 론도 카프리치오소, Op.28

차이코프스키
바이올린과 피아노를 위한 왈츠 스케르초, Op.34

-Encore
차이코프스키
멜로디



바딤 콜로덴코 Vadym Kholodenk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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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심의 여지 없는 놀라운 예술가”

Le Figaro, 2017년 11월 17일

 

바딤 콜로덴코는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와의 연주를 통해 ‘몰입하게 만드는 그의 선율의 음영과 반짝이는 패시지 워크’(Philadelphia Enquirer)라는 찬사를 받으며, 음악적으로 가장 역동적이고 테크닉적으로 가장 재능 있는 젊은 피아니스트 중 하나로 그 명성을 빠르게 쌓아가고 있다. 2013년 반 클라이번 콩쿠르 우승자인 콜로덴코는 즉시 그를 3년간 자신들의 첫 파트너 아티스트로 지명한 포트워스 심포니 오케스트라와 함께 청중과 평론가 모두를 사로잡았다. 그 전의 수상 경력으로는 2011년 도르트문트 슈베르트 피아노 콩쿠르 1등상과 2010년 일본 센다이 피아노 콩쿠르 1등상, 그리고 아테네 마리아 칼라스 콩쿠르 그랑프리 등이 있다.




알레나 바에바 Alena Baev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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므스티슬라프 로스트로포비치와 세이지 오자와의 총애를 받는 알레나 바에바. ‘매력적인 존재감’ ‘끊임없이 매혹적인 음향의 기술자’(New York Classical Review)로 묘사되는 그녀는 자기 세대의 최고의 바이올리니스트 중 하나로 급부상하고 있다.


2001년 비에니아프스키, 2004년 모스크바 파가니니, 2007년 센다이 국제 바이올린 콩쿠르 우승자인 그녀는 지금까지 이미 인상적인 커리어를 쌓아왔으며, 지금도 발레리 게르기예프, 파보 예르비, 블라디비르 유로프스키를 비롯한 세계 최고의 오케스트라와 지휘자 다수와 정기적으로 함께 작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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