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안봐도 사는데 지장은 없다니까요 - 안봐도사는데 지장없는전시

그래도 한번쯤은 봐도 괜찮을걸요
글 입력 2019.05.09 1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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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봐도 사는데 지장은 없다니까요

그래도 한번쯤은 봐도 괜찮을걸요


Review 민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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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인트로



사진을 찍어도 좋다는 안내를 받고 전시실로 입장한다. 사진을 찍을 수 없던 미술관이나 박물관에 자주 다녀서 그런지 아직 작품을 앞에 두고 셔터를 누르는 일이 그다지 익숙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이곳에서는 사진을 찍지 않는 게 오히려 허용되지 않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평일 오후라 사람들이 거의 없을 시간이라 사진 찍기에도 큰 무리가 없었기 때문에 이곳저곳 돌아다니며 사진을 찍을 생각에 설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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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실 입구에서 처음 마주한 건 ‘시계들’이었다. 아침, 낮, 저녁, 새벽으로 나뉘어진 전시장의 컨셉을 표현하기 위해 평범한 벽시계가 각각에 맞는 시각을 기록하고 있었다. 아침, 낮, 저녁, 새벽 네개의 시간은 각자에게 서로 다른 시간이지만 시계가 지정해놓으니 그 순간만큼은 같은 시간이 된 것 같은 느낌이다.


게다가 이 전시를 꾸민 아티스트들의 하루는 저녁이 아니라 새벽에 끝나기 때문에 끝이 새벽이라는 게 전시를 쭉 둘러보고 나니 뭉클한 감정으로 와 닿았다. ‘안봐도사는데지장없는전시’에 가장 잘 어울리는 인트로였다.




#2 아침



아침 섹션은 생각보다 어두웠다. 햇살이 내리쬐는 평온한 일요일의 아침이 아니라 어제 먹은 술의 숙취가 채 가시지 않아 피곤하고 찌든 모습으로 지하철에 올라탔을 때 맞는 형광등의 색깔이었다. 이곳에서 말하는 아침은 아무 말도 하지않고 걸어가는 수많은 개인들이 어디론가 향하는 모습. 우리들의 아침은 등교길이자, 출근길이다. 이어폰을 꽂고, 아직 덜 깬 잠에 취한 채 밤과 새벽을 오롯이 보냈던 혼자만의 세상에서 벗어나야 할 시간이다. 어쩐지 아침이 어둡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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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많은 사람들이 어디론가 향하는 모션그래픽을 담아낸 이 작품이 갖는 의미가 결국 ‘아침’이었다. 아침 섹션에서 가장 좋았던 작품을 꼽자면 아마 유고나카무라의 이 작품이 아닐까 싶다. 현대인에게 인생에서 아침은 딱 2/7 만큼의 행복감을 줄 뿐이다. 주말에도 어디론가 가는 사람들에게는 2/7도 벅찬 행복이겠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저 그래픽과 같은 5/7의 아침을 살아간다. 커피라는 든든하지만 날이 서있는 듯한 동반자와 함께 우리는 제각각, 어디론가 향한다.




#3 낮



‘낮’은 이제 정신을 차린 우리들이 맞이하는 세상을 보여주었다. 특이한 디자인 작품들과 체험형 전시가 포함된 전시 공간인 ‘낮’에서는 본업보다도 오히려 창의적인 생각으로 더 유명한 배달의 민족의 작품과 인디 게임 플로렌스를 플레이 할 수 있는 공간이 준비되어 있다. ‘배달의 민족’ 작품은 우리 생활과 너무나도 가까운 일을 하고 있는 만큼 작품에서도 일상의 모습을 가장 잘 보여주었다.


‘와 이런 것도 예술이야?’라고 묻는 사람들이 있다면, ‘미술관에 놓여져있는 모든 것들은 작품이 될 수 있다’라고 대답하고싶다. 1년 365일을 일기 형식으로 기록한 메모지를 이어붙인 작품이다. 특별할 것 없는 일기지만, 그 속에 1년의 모든 희로애락이 담겨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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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외에도 마음에 드는 작품이 많았다. 방에 하나쯤 걸어두고 싶은 저 감각적인 포스터는 마치 할머니집에 걸려있는 달마도를 떠오르게 했다. 현대판 달마상을 허한 내 방 벽에 놓는 상상을 해보았다. 저 표정없는 얼굴들을 보자. 무표정한 얼굴로 그들은 낮을 살아간다. 천년전의 달마와는 완전히 다른 생각을 하고 있겠지만 캔버스 안에 담긴 사람의 낮은 변함 없다. 그들은 무엇을 쫓고 있을까, 무엇을 쫓고 있는지 알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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낮의 한 편을 보고 난 후 플로렌스를 다시 한번 플레이 해보았다. 그때의 그 감정이 떠오르지는 않았지만 게임 장면을 펼쳐 전시해놓으니 꽤 멋진 애니메이션 작품이 되었다. 플로렌스가 겪는 감정을 요즘 내가 겪는 것 같아서 다시 한 번 마음이 짠해졌다. 음표를 따라 연주하듯 사랑을 하고 그 후에 자신을 찾아가는 그녀의 이야기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영화 라라랜드를 떠오르게 한다.



플로렌스 체험 (1).jpg


낮은 플로렌스 게임처럼 꿈과 사랑을 쫓을 청춘의 모습을 나타낸다. 하지만 배달의 민족의 365일 메모처럼 하루하루 이리저리 치이다 보면 둘 모두 희미해져 간다. 표정없는 현대판 달마의 모습처럼 나는, 우리는 낮을 살아가고 있다. 그래서 어떤 시간보다도 낮이 주는 아쉬움이 크게 다가왔다. 어떤 일을 해도 채워지지 않고 희미해지는 것들을 바라보며 얼마 남지 않은 낮을 아쉬워하고 있었다.



#4 저녁



하루를 끝마치고 우리의 동반자 커피를 잠시 내려놓고, 우리는 저녁으로 들어간다. 필름 카메라를 하나 들고 낮의 햇살이 비추지 못했던 것들을 플래시 라이트로 비추어 본다. 아침과 낮에서 깨어나 저녁을 채워주는 건 우리가 잊고 있었던 '감각'이었다. 감각적인 빛과 사진들이 우리들의 눈길을 사로잡는다.



이오_연결사회, 2017-2018, Digital print, Light panel, electric wires, 80x360cm.jpg
 

연결사회라는 이름의 이 작품은 뫼비우스 띠를 연상시킨다. 연결되어 있는 저 해괴한 실타래는 다름아닌 사람의 몸이었다. 익명성의 사회에 살고 있지만, 그 어느 때보다 각각의 개인들은 서로 연결되어 있다. 바로 저 화면 속에, 저 전선을 타고 인터넷의 공간에 원하든, 원하지 않든 우리는 연결되어 있다. 구글에 내 아이디나 이름을 쳐보면 상상 이상으로 많은 정보가 나온다.


저녁1.jpg
 

지친 몸과 정신을 술 한잔으로 위로해본다. 또다른 숙취의 아침이 올 것을 알고 있지만 저녁에 삼키는 알코올만큼 인생을 위로해주는 건 없다. 어지러운 정신으로 바라보는 모든 것들은 우리 눈에는 예술처럼 비친다. 그림을 그리지 못해도, 기타를 치지 못해도 그 순간을 담는 사진기만 있다면 우리 모두 예술가가 될 수 있을 것만 같다.



#5 새벽



새벽은 저녁의 감각을 조금 더 열어준다. 새벽이 없었다면 그 모든 예술 작품을 이 세상에 탄생할 수 없었을 지도 모른다. 좀 더 열린 그 감각의 풍경은 어떤 모습보다 활기차다. 밤에 한 잔 들이킨 알코올 때문일지 몰라도 새벽의 우리의 정신은 빛나는 네온사인처럼 더욱더 빛났다.


그 빛나는 정신에 문득문득 팝업창처럼 떠오르는 생각들은 머리 속을 떠다닌다. 그 생각들을 지우기 위해 마음을 다잡고 책을 펼쳐보기도 하지만 소용없다. 새벽의 공간은 우리의 복잡한 머리 속을 그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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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잡한 머리의 전원을 끄고 나면, 아니 사실 배터리가 다 나가서 저절로 꺼지겠지만, 우리의 하루는 끝이 난다. 드디어 정말 혼자만의 시간, 잠에 빠져든다. 그러나 혼자만의 시간을 나는 느낄 수 없다. 잠에서 깨면 또다시 어디론가 향하는 아침이 시작되고, 어제와 다를 것 없는 하루가 또 시작되겠지만 잠에 들어야 한다. 하지만 걱정하지는 말자. 하루를 아쉬워하는 사람들에게는 아침, 낮, 저녁, 새벽에 속하지 않는 꿈이라는 또 다른 시간이 찾아올 것이다.




#6 아웃트로



안봐도 사는 데 지장은 없었지만 총평을 해보자면, 보고나서 정말 여운이 많이 남는 전시였다.


솔직히 전시 제목때문일지는 몰라도 정말 안봐도 상관이 없겠구나 하고 큰 기대를 하지 않아서 더 큰 감명을 받았나보다. 전시를 모두 보고 석파정에 앉아 아름다운 풍경과 한옥이 만들어준 또다른 작품을 보고 있었다. 벤치에 앉아 지금까지 봤던 전시를 회상하면서 여유를 즐기다 보니, 이제 안하면 사는 데 지장 있는 일을 하러 갈 시간이 되었다.


저녁을 먹고 나니, 오늘의 아침과 낮은 안봐도 사는 데 지장 없는 이 전시 덕분에 꽉찬 기분이 든다.



[손민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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