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늘그막에 떠오른 꿈에 관하여, 창작가무극 - 나빌레라 [공연예술]

글 입력 2019.05.09 2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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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웹툰과 창작가무극 <나빌레라>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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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일의 캐스트
덕출 역: 최정수/ 채록 역: 강상준


이상한 일이었다. 주인공 덕출이 첫 등장부터 나오는 넘버인 ‘늙었다는 것, 겨우 그거 하나’를 부르는 와중에 객석에서 훌쩍이는 소리가 났다. 관객들이 벌써 울기 시작해 아직 이입을 제대로 하지 못한 필자는 당황했다.


무엇이 사람들의 마음을 흔들었는지는 머리로 이해가 갔다. 일흔을 앞둔 나이에 친구의 죽음을 계기로 자신의 꿈을 이루고 싶은 노인. 노인 복지가 발전하는 세태 속에서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다. 그러나 아직 어린 나이인 필자에게 죽음은 아직 멀리 있는 것이다. 처음에는 덕출을 무대 위 ‘등장인물’로만 볼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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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놉시스>

 

우편배달 공무원에서 퇴직하고 적적한 삶을 살던 노인 심덕출, 그는 친구의 장례식을 다녀온 후 옛날부터 꿈꿔오던 발레를 하기로 결심한다. 가족의 반대 끝에 어렵게 찾아간 문경군 발레단, 그곳에서 그는 전도유망한, 그러나 계속되는 부상과 생활고에 시달리며 하루하루 그저 버티고 있는 스물셋 이채록을 만나게 된다. 우여곡절 끝에 그의 제자가 된 덕출은 본격적으로 발레를 경험하게 되고 까칠한 줄 알았던 채록과 발레를 통해 서로를 이해하며 나이차를 넘어 우정을 쌓아간다.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채록은 덕출의 수첩을 보게 되는데......


  

원작 웹툰 <나빌레라>를 절반밖에 보지 못했다. 그럼에도 창작가무극을 보러 가기로 한 이유는 웹툰에서의 주인공이 ‘가족 구성원’에서 ‘개인’이 되기까지의 과정을 세밀하게 그려냈기 때문이다. 웹툰 초반에 덕출은 가족들에게 “발레가 하고 싶다”는 말 한마디를 쉽게 꺼내지 못한다. 적지 않은 나이에 발레는 어려운 도전이기도 하고 가족들에게도 얘기를 꺼내지 못한 아주 오래된 꿈이다. 여기에서 가족들과의 이해관계에 갈등이 생기기 시작한다.

 

함께 오랫동안 지내와 덕출을 당연히 잘 안다고 생각한 덕출의 자식들과 그의 아내는 그의 발레 선언에 당황스러워한다. 덕출의 결정을 탐탁지 않아 하는 아들과 아내의 입장도 이해가 간다. 그러나 그들의 프레임은 희생하고 사랑할 필요가 있는 가족에 머물러 있다. 노인은 그 오랫동안 머물렀던 둥지 속에서 벗어날 준비를 한다. 또한, 한 명의 사람으로 방황하고 있는 발레 스승 채록을 만나 우정을 쌓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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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의 걸음걸이와 알츠하이머까지
실감나게 표현한 덕출 역의 배우가 인상적이었다.



웹툰이 수작인 만큼 창작가무극 버전도 작품이 전달하려는 메시지는 따뜻하고 감동적이다. 가족들, 특히 덕출의 심정을 이해할 수 있는 중장년층과 함께 볼 수 있는 공연이다. 그러나 연출과 내용 면에서 좀 더 다듬어야할 아쉬움이 있었다.

 

1막 첫 장면은 덕출이 의사에게 알츠하이머 진단을 받는 것으로 시작한다. 원작과는 반대로 처음부터 주인공의 병을 공개한다는 점이 좀 의아했는데, 시간 순으로 설명하여 이해를 도울 지라도 극적인 요소가 줄어들어 감동이 덜한 느낌이 들었다. 1막 후반부에 반전으로 할아버지가 왜 기록용 노트를 항상 가지고 다니는지 이유를 설명해도 극 진행에 큰 걸림이 없다고 본다.

   

이 이야기의 소재는 한 노인의 꿈이었던 발레 도전기이다. 노년의 도전은 다른 사람들보다 제약과 어려움이 더 따르고 웹툰에서는 이 점이 잘 드러났지만 공연에서는 교훈적인 측면이 더 컸다. 둘 다 주인공이 한 명의 사람으로서 열정을 갖고 목표에 도달하는 점은 동일하다.


그러나 원작에서의 노인을 둘러싼 시사점(신체적 제약, 사회의 시선 등)이 공연에서 다소 희석되고 꿈을 이루는 것에 치중하여 낙관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제목인 ‘나빌레라’처럼 나비처럼 날아오르기까지의 어려움을 좀 더 담아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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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튜버 박막례 할머니의 공식 채널,

어디로 튈지 모르는 예측불가가 할머니의 매력이다.



작품을 보며 가장 많이 생각난 사람은 유튜버 박막례 할머니였다. 손녀가 더 늦기 전에 할머니와의 추억을 만들기 위해 올리기 시작한 영상을 계기로 할머니는 유명인사가 되었다. 나이에 안주하지 않고 도전하는 할머니와 응원하는 구독자 및 댓글들을 보며 노년의 삶에 관한 전형적인 편견을 버려야 한다는 교훈을 얻었다. 새로움을 시도하는 노인의 심정을 가장 잘 나타내는 구절이 이것이 아닌가 싶다.

 


난 그냥, 늙었다는 것

겨우 그거 하나 뿐

남은 날들이 새롭다

매일이 새롭다


-창작가무극 <나빌레라>, 매일이 새롭다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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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민정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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