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절의 너] 불가능의 가능

글 입력 2019.05.10 15: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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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2. 2019년 중간 점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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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다이어리 맨 앞장에는 세 문구가 있다.


가장 먼저, 다이어리를 장만하자마자 성경 구절을 일부러 찾아 파란색 볼펜으로 적었다. 단순한 소원이었다. 얼마 후 어떤 사람의 말이 마음에 잔잔한 물결을 일으켰는데, 쉬이 사라지지 않은 파동은 결국 보라색 펜으로 흔적을 남겼다. 해야 할 일이었다. 마지막으로 우연히 책에서 발견하고 그냥 지나칠 수 없었던 영어 단어는 연필로 썼다.


각각 다른 소원과 다짐. 가만히 보면 비슷한 것 같기도 한 세 개의 문장과 단어.


벌써 5월, 올해를 이끌어주길 바랐던 글자가 뚜렷하진 않아도 조금씩은 효력을 발휘하고 있다고, 믿게 되는 일이 있었다.


 

 

#083. 예상 밖의 일


 

처음엔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이라 생각했지만 아니었다. 형식적인 가르침의 범위에 해당하는 일이 있기도 하지만, 주 종목은 아니다. 진짜는 두 가지. 하나는 통제하는 일, 다음은 기다리는 일.

 

특히, 기다림에 관하여.


 

 

#084. 기다림


 

아이들과 내가 있는 공간에는 각자의 기다림이 있는 것 같다.

 

먼저 어른으로서 ‘모든’ 아이들을 기다리는 나의 기다림. 어른에게는 5초만 있으면 해낼 쓰기, ‘읽기’라는 개념을 의식할 필요도 없이 할 읽기, 아무튼 별 에너지를 들이지 않아도 가능한 읽기와 쓰기. 이런 기준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능력을 받아들이고 체감하는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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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는 속도가 빠른 아이의 기다림. 이미 어느 정도 ‘평균에 이른 어른들’과 달리, 아이들의 편차는 크다. 주어진 과제가 똑같아서 더 잘 드러나는 사실이다. 과제를 빨리 마친 아이는 “선생님 다 했어요!” 자신 있게 손을 들고 맞춤법 검사를 맡는다. 일단의 자유로움을 만끽하는 아이의 시선은, 바삐 움직이는 다른 아이의 손이나 허공에 머문다.

 

마지막은 느린 아이의, 자신을 기다리는 기다림. 과제를 다 해내기까지 멈추지 않으려는 마음도 기다림이라 말할 수 있다면. 키 큰 어른이 자기 머리 위에서 내려다보는 시선과 자기를 힐끗 쳐다보는 다른 아이의 응시를 기꺼이 감내해내는, 그런 기다림.


 

 

#085. 느림


 

수업이 끝나고 아이들이 달아나버린 빈 교실에 한 아이가 남았다. 그 아이는 완성하지 못한 문장의 뒷부분에 또박또박 글씨를 마저 적어 넣고 있었다. 보지 못했다면 상상하지도 못했을 속도로 움직이는 손, 그 손끝에서 완성되는 글자들. 아이는 조급해하지도, 애써 자신을 몰아붙이는 기미도 없었다. 단지 한 획, 한 획 천천히 그을 뿐. 멍하니 아이의 연필 끝을 바라보고 있자니 잠깐은 시간이 무한한 느낌이 들었다.

 

이상한 바람이 꾸물꾸물 피어올랐다. 이 아이가, 빨라지지 않으면 좋겠어. 끝까지 저 속도로 해내면 좋겠어. 아니, 어떤 건 절대로 해내지 못하길 바라. 그냥 그런 애가 너이기를, 그대로 남아있기를. 네 인생에 너를 다그치는 어른의 등장이 없기를.


 

 

#086. 가능의 불가능


 

집에 돌아와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엄마. 그 애가 조금 부러웠어. 나는 누군가 더 빨리하라고 재촉하면 그렇게 할 수 있는 사람이었던 거야. 차라리 그게 아예 불가능한 사람이었으면 처음부터 누군가 요구하는 속도를 거부할 수 있었을 텐데. 못해요, 하고 싶은데 못 해요, 라고. 불가능의 영역을 그대로 불가능으로 남겨둔다는 건 가능의 영역을 더 확실하고 뚜렷하게 그릴 수 있다는 말과 같은 뜻 아닐까? 불가능이, 불가능이 아니었던 거야. 반대로 나의 수없이 많았던 가능‘들’은 가능이 아니었던 거야.”

 


“어떤 일을 하겠다는 선택은 동시에 다른 일을 하지 않겠다는 선택을 수반합니다.”

 

- 매슈 비어드, <New Philosopher> 6호, 134쪽


 

뒤처지기 싫은 마음이 사회 시스템이 부여한 결과든, 스스로의 욕심이 만들어낸 마음이든 어떤 의미에선 재앙이 아니었나.


 

 

#087. 불가능의 가능


 

어떤 아이가 상담하며 결국 눈물을 흘렸다. 평소 수업도 잘 듣고 집중력도 좋은 아이였는데 그날따라 딱 하나, 절대로 할 수 없는 과제가 있었던 것이다. 읽기와 쓰기와는 다른, 자기 자신을 좀 더 외적으로 드러내야 하는 종류의 과제였다. 상담하던 선생님은 결국 그 아이를 안아주며 말했다.

 

“하지 마. 싫은 거 억지로 안 해도 돼.”

 

아이의 불가능은 안 해도 ‘된다’라는 다른 가능을 불러냈다.


 

 

#088. 불가능의 슬픔


 

수업 시작한 지 10분쯤 지났을까, 미처 챙기지 못한 준비물이 생각나 교실을 막 나오다가 급하게 들어가려는 아이와 마주쳤다. 훌쩍훌쩍 울고 있었다. 왜? 놀란 표정을 지으니 뒤에서 따라오던 선생님이 작은 목소리로 하는 말,

 

“늦어서, 속상해서 운대요.”

 

'불가능의 가능'을 모르는 슬픔이라, 네 눈물이 낯설지가 않다.


 

 

#089. 과거형


 

나는 왜 나를 기다리지 못했나.

 

아니. 요새는 ‘왜’라는 질문을 던지지 않으려 노력중이니 문장을 다시 쓰자. 그냥 이렇게,

 

나는 나를 기다리지 못했다.


 

 

#090. 현재형


 

이제는 기다린다. 많았던 가능 중에서 그림 그리기를 선택한 뒤 기다림이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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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가들이 그토록 신경을 쓰는 균형과 조화는 기계의 균형과는 다르다. 그것은 갑작스럽게 '일어나는' 것이며, 아무도 어떻게 또는 왜 일어나는지 정확히 알지 못한다.

 

- 곰브리치, <서양미술사>, 539쪽

 


갑작스럽게 손끝에서 일어나버리는 일을 기다리고 있다. 슬프지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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