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멍때리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 #후회가 피워낸 현재

#오늘의 멍때림 #지우개똥
글 입력 2019.05.10 1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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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멍때림 #지우개똥



돈이 없다. 그래서 요즘 책을 팔고 있다. 집에 있던 책을 팔아 밥을 먹고 술을 먹기 위해 그어 놨던 밑줄을 모두 지워냈다. 막상 보내려고 하니 아쉽긴 했지만 그래도 어쩔 수 없었다. 난 밥을 먹고 술을 먹어야 했다. 잘 가라, 내 책들아. 너희는 내 마음과 ‘몸’의 양식이 되었다.

방 한구석에는 밑줄을 지워내고 장렬히 전사한 지우개의 파편들이 똥이 되어 남아 있었다. 간만에 보는 지우개 똥이었다. 생각해보면 요즘은 지우개질을 할 일이 없다. 글씨를 잘 안 쓰기에. 수업 시간에 필기를 하거나 생각정리를 하는 것은 대부분 노트북이나 핸드폰으로 해결한다. 교수님  말을 받아 적기에도, 생각의 흐름을 따라가기에도 손 글씨보다는 타자가 훨씬 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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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우개 똥을 보니 문득 생각이 났다. 난 지우개 똥을 뭉치는 습관이 있었다. 뭉치고 쪼개고, 그걸 또 뭉치고 또 쪼갰다. 지금 보니 다소 변태스러운 이 짓을 고등학생 시절의 나는 하염없이 반복했다. 이 습관이 집중력을 망치는 것을 알았기에 책상은 깨끗하게 유지되어야 했다. 하지만 인간은 게으르고 같은 실수를 반복하기에 내가 책상을 치우지 않는 날은 그런 날에 비해 현저히 많았고, 그 다음 날 책상 앞에 앉으면 전날 태어난 똥들이 나를 반겼기에, 나는 그들을 뭉치고 쪼개고 뭉치고 쪼개는 비정상적인 행위를 반복하며 그렇게 고등학생 시절을 지나 보냈다.

어쩌다 이런 습관이 생겼는지는 모르겠지만 뭉치고 쪼개지는 일련의 반복이 그 시절 내가 살아가던 방식과 비슷했다는 생각은 얼핏 든다. 남들은 고등학생 시절이 즐거웠다고 하던데 난 전혀 아니다. 난 그 때로 돌아가라고 돈을 줘도 안 간다.



#후회



지금껏 살아오며 수많은 선택을 해왔지만 그 선택들을 후회한 적은 별로 없었다. 나의 현재가 나름 좋기에, 이를 만들어낸 과거의 무수한 점들에게도 역시 자부심을 가져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하지만 얼마 전 약간 다른 생각이 들었다. 그동안 내가 나에게 최면을 걸고 있었던 건 아닐까. 실은 후회하면서도 그 선택이 아쉬웠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싫어 스스로에게 최면을 걸고 있었던 건 아닐까. 진짜 솔직하게 말하자면 난 나의 과거에서 많은 것이 아쉽고 후회스럽다.

그 중 하나가 바로 고등학교이다. 내가 나온 고등학교는 정말 최악이었다. 그 때 당시에는 이 정도로 격하게 생각하지는 않았지만 성인이 되고 많은 것을 보고 배우며, 무엇보다 여성의 인권에 대해 생각을 하다 보니 최악이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내가 나온 고등학교는 여고였다. 치마가 무릎 밑까지 내려오고 매우 엄격히 두발을 잡았으며 속옷 색깔까지 제한하고 단정해 보인다는 이유만으로 발 아픈 구두를 신어야 했던 그런 학교였다. 기독교 학교였지만 이사장은 군인이었으며 어른들은 예뻐라 했지만 정작 당사자들은 스스로를 긍정할 수 없었던 그런 곳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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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토록 엄격한 교칙과 분위기를 지닌 학교라면 으레 ‘공부 굉장히 잘 하는’ 학교를 상상하기 마련이지만, 그것도 아니었다. 대한민국 사회에서 고등학교의 수준은 상위권 대학을 얼마나 많이 보냈느냐-로 판별되기 마련인데 이 학교는 그 수치조차도 현저히 낮았다. 내가 봤을 때 이건 학생들의 문제가 아니라 그 학교의 시스템 문제였다. 아니면 정 반대로, 대한민국의 기형적인 교육문화에 전면적으로 반박하며 단순히 국영수만이 아닌 ‘인생’을 가르치는 학교와 선생으로 거듭나고자 했다면 오히려 덜 억울했을 것 같다. 그 학교는 기독교와 군인정신이라는 간판 아래 종교적, 성차별을 당연한듯 행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정말 말도 안되는 상황들이 많았다.

그런 학교를, 난 심지어 전학으로 갔다. 원래는 자사고였으나 자사고가 일반고에 비해 3배는 많은 등록금을 내야 한다는 말을 듣고 부모님에게 일반고에서 내신 따겠다고 말했다. 그래서 나는 1학년으로 정식 입학도 하기 전, 겨울방학 학기에 전학 수속을 밟았고, 적어 내야 했던 세 개의 지망학교 중 다른 두 곳에서 붙을 것이라 생각하고 대충 칸 채우려고 쓴 나머지 하나만이 붙어버리는 대참사를 맞았다. 중학생 시절부터 좋진 않게 생각했던 학교였기에 안 가겠다고 버텨 보았으나 더 이상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렇게 나는 3월 1일의 하루, 혹은 이틀 뒤에 전학을 갔다.

그래도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라고 나름 잘 생활했다. 성적도 우수했고 반장, 부반장도 했었다. 하지만 이제 와서 돌이켜보면 그 학교를 가지 않았더라면 더 좋았을 것 같다. 나라는 사람 자체가 완벽을 향한, 혹은 1등에 대한 약간의 집착이 있는 사람인데 그러한 본성과 학교의 강압적인 분위기가 합쳐져 그 시절의 나를 너무 필요 이상으로 힘들게 했던 것 같다.

그 때 좀 더 즐겼더라면, 보다 여유롭고 자유로운 마음을 가질 수 있었더라면 좋았겠다는 생각을 많이 한다. 그 시절의 나는 무턱대고 빨리 달렸고, 스스로를 풀어주는 것의 중요성을 알지 못했기에 지나치게 빨리 달린 이들이 종종 그렇듯 결승라인 앞에서 엎어져 버렸다. 그러한 일련의 과정이 고등학교 때문이었다고 단 하나의 요인만을 콕 집어 말할 순 없겠지만 어쨌든 현재의 나는 그 고등학교를 3지망칸에 넣었던 과거의 나를 아쉬워한다. 그렇게 나는 지우개 똥을 뭉치고 쪼개고 뭉치고 또 쪼개며 지금 돌이켜봐도 딱히 예쁘게 기억하고 싶지 않는 나날을 보내 현재에 다다랐다.

그리고 현재의 나는, 아이러니하게도 그 지우개 똥을 박살내던 과거의 습관을 한동안 잊고 살았다.



#현재



결국은 다 그렇게 흘러 가는 것 같다. 그 시절의 내가 힘들었다는 사실과 그 고등학교가 최악이었다는 생각, 해서 나의 청소년기에는 온통 기대와 강박만 있었지 정작 나는 없었다는 생각이 변하지 않기에 문득 몇 년 만에 그 습관을 기억해낸 지금, 난 또 다시 과거의 나를 약간은 아쉬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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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돌이켜보면 그 후회가 피워낸 현재에도 종종의 즐거움은 있었다. 운 좋게 영화과가 있는 학교로 오게 되어 후에 영화 일을 꿈꾸게 되었을 때 영화과 수업을 청강하고 촬영을 도와줄 수 있었다. 또 어쩌다 보니 학교에 문화콘텐츠 학과라는, 당시 국내에 몇 없었던 전공이 있어서 다전공을 하며 내가 가고자 하는 길에서의 경쟁력을 만들어갈 수 있었다. 지난하고 후회스러운 과거에서 만들어진 현재에도 예상치 못한 기회는 존재한다. 그러니,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살아가야 한다면, 후회는 과거로 밀어두고 현재에 전력을 쏟아야 한다.

누구의 인생에도 후회는 있다. 못마땅한 과거가 만들어낸 현재가 못마땅하다면, 못마땅하지만 어쩔 수 없이 받아들여야 한다. 나의 빈 부분을 억지로 긍정하거나 변명하지도 말고, 있는 그대로를 스스로에게 ‘용납’시키며 온전히 표현할 수 있는 내가 되었으면 좋겠다. 나의 빈 부분은 변치 않게 존재할 터이고, 하지만 어느새 잠시동안 잊혀 질 것이기에. 그 힘으로 오늘을 살아내며 그렇게 난 계속 살아가야 하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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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민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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