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상반된 두 사람이 보여준 조화 - 알레나 바에바&바딤 콜로덴코 듀오 콘서트

글 입력 2019.05.11 00:11
댓글 0
  • 카카오 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 밴드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 플러스로 보내기
  • 글 스크랩
  • 글 내용 글자 크게
  • 글 내용 글자 작게
 

VNA_포스터_프로그램삽입.jpg
 
 
현재는 과거와 비교하면 상전벽해의 수준으로 세계화된 사회다. 그러나 아직 국가의 장벽과 고유의 문화가 현존한다. 그래서인지 나는 문화와 음악이 뗄 수 없는 연관성을 지닌다고 생각하며 이로 인해 주관적인 편견이 한 가지 있다. 유럽은 모범생처럼 정석을 추구하고 미국은 자유분방하다는 관념이다.

재즈만 보아도 유럽의 ECM 재즈 레이블과 미국의 블루노트 레이블이 다르지 않은가. 클래식 분야도 이와 유사한 경향성을 보인다고 짐작해본다. 왜냐하면 미국은 현대음악, 유럽은 고전적인 클래식을 담당하고 러시아는 정열적인 클래식을 추구하는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번 공연이 흥미로웠다. 러시아 출신의 피아니스트와 바이올리니스트가 협주 프로그램을 선보인다는 점이 말이다. 따뜻한 봄 날씨처럼 부드러운 온기를 지닌 두 사람이 들려주는 음악에 한껏 집중한 날이다.



1부


VK B&W image no logo credit Ellen Appel, Mike Moreland - The Cliburn - Copy.jpeg
 

바딤 콜로덴코는 베토벤의 월광으로 1부의 서막을 열었다. 월광은 클래식을 모르는 사람조차 한 번은 들어봤다고 여길 만큼 대중적인 곡이다. 하지만 이날 콜로덴코가 들려준 월광은 사뭇 다른 형상이다. 1악장은 금방이라도 소리가 끊어질 듯 가녀린 연주로 채워진다. 신경이 극도로 예민한 인간의 쇠약함을 음악으로 표현한다면 딱 그러할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이 곡은 베토벤이 자신에게 난청이 발병했다는 사실을 깨닫고 절망한 감정을 담은 작품이다.

2악장은 분위기를 조금 더 끌어올려 평이하게 흘러간다. 다음으로 이어지는 3악장의 해석이 인상적이다. 악보상엔 presto agitato로 매우 빠르고 격렬한 템포라 쓰여있지만 그는 3악장을 조금 느리게 진행한다. 빠르기보다 감정에 집중하려는 의지가 느껴졌다. 물론 악보를 명확히 파악할 정도의 독보 실력은 없어 순전히 귀에 의지할 수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독특한 당김음과 셈여림이 뚜렷하게 들렸다. 그는 보석 세공사처럼 음표를 세밀하고 부드럽게 표현하여 서정적인 월광을 들려주었다.

콜로덴코는 라흐마니노프 프렐류드 op.3 no.2도 절제된 감성으로 연주한다. 정해진 프로그램의 마지막 곡 역시 라흐마니노프의 프렐류드다. 총 10개의 작은 전주곡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그는 5번까지를 선보인다. 특히 2번과 4번은 콜로덴코만의 감성과 리듬감으로 표현한다. 그가 차분하고 절제된 감성으로 연주하는 축에 속한다는 것이 명백해 보였다.

1부의 앵콜곡으로는 리스트의 라 캄파넬라를 들려주었는데 이 작품 또한 낭만적이면서 노련한 기교가 돋보인다. 무엇보다 피아노의 음색이 실로폰 소리처럼 청아하고 상쾌했다. 그의 해석을 보면 이처럼 서정적이고 낭만적인 곡들에서 깊고 섬세한 감정 표현이 빛을 발한다. 개인적으로는 월광과 함께 1부의 베스트로 꼽고 싶다.



2부


Credit Vladimir Shirikov.jpg
 

2부는 1부와 달리 강렬하고 화려하게 진행된다. 첫 곡인 베토벤 소나타 제5번 봄은 곡의 제목답게 생동감이 넘친다. 알레나 바에바가 바로 이런 분위기를 견인한다. 콜로덴코에 비해 감정을 훨씬 드라마틱하게 표현하는 점에서 두 사람은 상반된 해석력을 보여준다. 바이올린이 힘 있게 리드한다면, 피아노는 차분하지만 짙은 감성으로 멜로디를 촘촘하고 풍부하게 메꿔준다.

2부는 알레나의 화려하고 열정적인 표현력으로 인해 자연스럽게 그에게 이목이 집중됐다. 콜로덴코의 협주가 바이올린을 더욱 돋보이게 만들어준 덕이다. 모든 협연자들이 원하는 파트너의 자세가 아닐까. 본인의 페이스를 잃지 않으면서 상대방과의 조화를 이루려는 모습 말이다.

생상스 서주와 론도 카프리치오소는 알레나의 현란한 기교와 섬세하고 정열적인 감성에 적합한 작품이다. 알레나는 넋을 잃고 빠져들 만큼 프로다운 실력과 세밀한 감정 표현을 가감 없이 표출한다. 화려한 감정표현에 비해 바이올린의 음색은 봄바람처럼 부드럽다.

이런 두 사람이 들려준 마지막 곡과 앵콜곡은 차이코프스키의 왈츠 스케르초, 멜로디다. 차이코프스키의 작품마저 서로에게 딱 맞는 옷을 입은 양 유연한 흐름을 보인다. 차이코프스키는 서유럽적인 색채를 풍기고 낭만파로 분류되는 러시아 작곡가다. 두 사람 역시 섬세하고 낭만적인 곡을 뛰어나게 표현한다는 점으로 보아 영리한 선곡이라 말할 수 있다. 지금의 계절에 어울리는 따뜻함과 활기를 품은 곡으로 넓은 공연장 구석구석은 온기가 깃들었다.

*

클래식의 매력은 연주자의 성향에 따라 악보에 쓰인 곡도 바뀔 수 있다는 것이다. 정해진 악보 안에서 기어코 자신만의 색깔을 찾아 덧씌우는 연주자들은 공연장으로 발길을 향하게 만든다. 이제서야 클래식이 조금씩 들리는 것 같다. 들으면 들을수록 나의 취향과 감성에 부합하는 곡을 찾고, 그 작품을 더욱 환상적으로 해석해주는 연주자를 찾는 재미. 그것이 클래식의 진정한 묘미가 아닌가 싶다. 그런 점에서 알레나 바에바와 바딤 콜로덴코를 알게 된 것이 가장 기쁜 밤이었다.


[장지은 에디터]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등록번호/등록일: 경기, 아52475 / 2020.02.10   |   창간일: 2013.11.20   |   E-Mail: artinsight@naver.com
발행인/편집인/청소년보호책임자: 박형주   |   최종편집: 2024.04.19
발행소 정보: 경기도 부천시 중동로 327 238동 / Tel: 0507-1304-8223
Copyright ⓒ 2013-2024 artinsight.co.kr All Rights Reserved
아트인사이트의 모든 콘텐츠(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제·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