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영화로 가득했던 3일간의 시간 [영화]

2019 제 20회 전주 국제 영화제를 다녀오다
글 입력 2019.05.12 1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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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 05. 02 ~ 04
제 20회 전주 국제 영화제
Jeonju International Film Festival


영화제를 처음 방문하게 된 건 얼마 되지 않은 일이다. 작년 10월 부산 국제 영화제를 처음 방문하고 나서는 영화제의 매력에 푹 빠졌다. 아직 정식으로 개봉하지 않은 수많은 국내외 영화들을 미리 만나볼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고, 감독과 배우와의 만남을 가질 수도 있고, 여러 행사나 세미나에 참석할 수도 있고, 활기찬 축제 분위기를 즐길 수도 있다.


하루에 3편 정도의 영화를 집중해서 보는 일은 조금은 힘이 드는 일이긴 하지만, 영화로 풍성해진 시간이 새롭기도 하고 뿌듯하기도 하다. 작년 부산 국제 영화제에선 인상 깊게 본 독일 영화 <카메라를 든 소녀>를 보고 감독과 연출자 분과 독일어로 짧은 대화를 나누고, 사인도 받고 함께 사진도 찍기도 했었다. 부산에서의 기억이 참 좋았기에 올해엔 전주 국제 영화제를 다녀오기로 했다. 이번엔 무슨 영화를 볼지, 전주는 부산과 달리 어떤 느낌일지. 가기도 전에 마음이 설레왔다.




안녕, 전주 국제 영화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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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지난주 목요일, 어제로 막을 내린 제20회 전주 국제 영화제를 다녀왔다. 전주 영화제는 이번이 처음이었는데 부산과는 또 느낌이 달랐다. 부산은 거대하고 엄청난 규모의 영화의 전당을 중심으로 한다면, 전주는 ‘전주 돔’과 영화의 거리를 중심으로 행사가 진행되고 있었다. 전주가 좀 더 아기자기한 느낌이었다.


오전 수업이 끝나고 바로 기차를 타고 달려와 오후 5시가 넘어서 전주에 도착했다. 일자로 곧게 쭉 뻗은 거리 곳곳엔 영화제 현수막과 포스터가 장식되어 있었다. 영화제 첫날부터 북적이는 인파와 축제 분위기. 거리를 따라 10분 정도 걸으니, 전주 영화제의 상징과도 같은 전주 돔이 보이기 시작했다. 근처 부스들을 둘러보고, 굿즈 샵에 들러 기념품을 산뒤 친구를 만나 저녁을 먹었다. 그리곤 전주 돔에서 개최되는 개막식과 개막작을 보러 나섰다.




개막식과 개막작 <나폴리: 작은 갱들의 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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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제 개막식을 보는 건 이번이 처음이었는데, 생각보다 엄청 큰 규모로 진행되었다. 개막식은 배우 최원영, 한예리가 사회를 맡아 진행되었다. 영화의 심사를 맡은 분들의 소개와 짧은 인터뷰가 이루어졌고, 이번 전주 영화제 개막작의 감독 클라우디오 조반네시와의 인터뷰도 이루어졌다. 영화 <악마를 보았다>, <광해>, <밀정> 등 수많은 한국 영화의 음악감독 모그(Mowg)의 축하 무대도 참 인상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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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폴리: 작은 갱들의 도시> 스틸컷



약 1시간 정도의 개막식이 끝나고 8시부터 <나폴리: 작은 갱들의 도시>가 시작됐다. 이탈리아 나폴리를 배경으로 이루어지는 이 영화는 어린 10대 소년들의 이야기라고 할 수 있는데, 로베르토 사비아노의 원작 소설 <고모라>를 기반으로 한 영화이다. 방황하던 10명의 소년들은 어른들의 마약 밀매 사업을 도우면서 돈을 벌고 힘을 길러나가며 동네를 지배하던 어른 갱단들을 제거하고 자신들이 최고 자리에 오르게 된다.


소년들은 권력과 돈에 찌든 기존 갱단 세력을 척결하고 올바른 지배를 하겠다는 생각을 지니고 있었지만, 결국 돈과 권력의 맛을 보게 되곤 기존의 어른들과 다를 바 없어진다. 이제 겨우 15살인 아이들이 순수를 잃고 탐욕에 찌들어 결국은 파멸의 길을 걸어나가는 모습이 참 씁쓸했다. 인간은 모두 어리석고 나약한 존재임을 뼈져리게 느끼는 순간이었다.




코리아 시네마 스케이프 : <영화광 연속 살인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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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광 연속 살인사건> 스틸컷.



그리고 다음날 아침, 박진성 감독의 <영화광 연속 살인사건>을 관람했다. 평소 스릴러 장르 영화를 잘 보지 못하는 편인데, 유명 스릴러 영화의 장면들이 등장한다는 점에 호기심이 생겨 보게 되었다. 영화는 액자식 구성의 형태를 지니고 있었다. 현실은 흑백 화면으로, 현실 속에서 촬영하는 영화의 장면은 컬러 화면으로. 영화에선 흔한 기법이라지만 현실과 허구를 오가며 전개되는 이야기는 영화에 더욱 몰입하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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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광 연속 살인사건> GV 현장



블랙 코미디라고 할 수 있는 이 영화는 유쾌하면서도 풍자적으로 영화를 전개시켜 나갔다. 현실을 꼬집기도 하고, 모든 인간이 지닌 악한 감정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독립 영화계의 현실을 여과 없이 드러내 보이기도 했다. 배우들의 연기도 참 좋았고 무엇보다 주제가 참 신선했다. 평소 스릴러 장르에 익숙하지 않음에도 유쾌하고 흥미롭게 볼 수 있었다.




한국 단편경쟁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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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영화는 한국단편경쟁 모음집이었다. 한국 단편 영화를 그다지 자주 본 편이 아닌데, 한국 단편을 좋아하는 친구의 추천으로 선택하게 되었다. <탈날 탈>, <우린같이 영화를보고 소설을읽어>, <레오>,<링링> 총 4편의 단편이 연달아 상영되었다. 이 중 가장 좋았던 영화는 이덕찬 감독의 <레오>와 윤다영 감독의 <링링>이었다.


<레오>는 10년간 첼로를 연주해온 은애의 이야기이다. 미국에서의 유학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온 은애는 자신의 분신과도 첼로를 팔려고 한다. 영화는 담담하고 차분하게 이야기를 전개해간다. 나 또한 오래도록 피아노와 바이올린을 배워 왔었기에 은애의 심정에 더 깊게 공감할 수 있었던 것 같다. 모든 장면들을 쉽게 지나칠 수 없었다. 저 멀리 멀어져 가는 그녀의 첼로 '레오' 와 함께 울려 퍼지던 클래식 음악- 그 마지막 장면이 잊혀지지 않는다. 이번 영화제에서 가장 좋았던 영화이다.


<링링>은 어딘가 불안정하고 위태로워 보이는 한 가족의 이야기다. 무더운 날이 계속되는 한여름, 주인공 진아는 주말마다 매번 낚시를 하러가는 아빠를 의심하며 그 행적을 쫓는다. 영화에는 비, 낚시, 호수, 화장실, 태풍 등 물과 관련된 것들이 계속해서 등장한다. 영화의 결말은 허망하고 충격적인데, 인간의 욕망과 본성에 대해 이토록 개성 있게 담아낸 영화가 있을까 싶다. 습하고 때로는 불쾌하기까지 한 여름의 모습과 너무도 잘 어울리던 영화다.




100 FILMS, 100 POST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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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복 예술공장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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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 FILMS, 100 POSTERS>는 이번 영화제와 함께 개최되었던 전시다. 이번 전주 국제영화제에서 상영되는 100편의 영화 포스터를 100명의 그래픽 디자이너가 제작하여 선보이는 전시인데, 2015년부터 매해 진행되어 오고 있다. 기존의 영화 포스터가 지니고 있는 관습과 상업적 색채가 없이, 각 디자이너들의 해석이 온전히 담긴 작품을 볼 수 있다는 점에서 좋은 기획이라고 느꼈다.


전시는 팔복 예술공장에서 진행되었고, 전주 돔 근처에서 셔틀버스를 타고 20분 정도 달리면 도착한다. 서울 성수동의 풍경을 떠올리게 하는 날것 그대로의 건물이 참 인상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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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제의 영화를 이렇게 포스터로 만나니 참 새롭고 신기했다. 이번에 관람했던 영화 <우린같이 영화를보고 소설을읽어>, <레오>, <링링>, <내일부터 나는> 도 만나볼 수 있었다. 각자의 매력을 뽐내고 있는 포스터들을 구경하며 오랫동안 시간을 보냈다. <레오>, <30>, <Still Recording> 총 3개의 포스터를 구매했다. 오직 전주 영화제에서만 만나볼 수 있었던 개성 가득한 전시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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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에서 보냈던 2박 3일의 시간들. 목요일 저녁에 도착해 토요일 점심에 떠나서인지 2박도 짧게 느껴졌다. 아쉬운 마음을 안고 집으로 향하는 기차에 올라섰다. 전주 국제 영화제는 이번이 처음 방문한 것이었기에 모든 게 새롭고 신선했고, 관람했던 영화들도 전반적으로 모두 좋았다. 무엇보다 이번 기회로 한국 단편의 매력을 흠뻑 느낄 수 있었다. 다음에는 더 많은 한국 단편을 만나고 싶다.


올해로 벌써 20회를 맞는 국제 영화제. 역시 세상은 넓고, 세상엔 이렇게 좋은 영화들이 많다는 걸 다시 한번 느낀다. 아직 개봉하지 않은 영화를 제일 먼저 만나볼 수 있고, 감독과 배우를 만날 수도 있고, 여러 다양한 행사와 축제 분위기를 만끽할 수 있다는 점이 영화제의 큰 매력이 아닐까 싶다. 이젠 영화제의 매력에 단단히 빠져버린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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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정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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